제3장. 일하는 헌터님 (2)
몬스터 소동이 일어난 그날 저녁.
각종 SNS 트렌드 순위에 ‘#강태오’라고, 내 이름이 올라왔다.
마지막 보스 몬스터였던 드래곤을 쓰러뜨린 후, 대한민국에 처음으로 실체를 드러낸 몬스터의 존재.
그리고 이 몬스터가 등장하자마자 5분…… 아니지, 실제로는 1분도 안 걸렸을 거다. 이런 짧은 시간 내에 제압해 버린 내 활약상이 기사를 통해 빠르게 퍼져 나갔다.
오늘 있었던 일을 가장 발 빠르게 소식지에 실은 쪽은 바로 QWE의 남지덕 기자였다.
몬스터 사체 옆에서 내가 손으로 브이 자를 그리면서 여유 만만한 미소를 짓고 있는 사진까지 제대로 첨부되어 있었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사진빨을 잘 받는 거 같단 말이야. 형도 그렇게 생각하지?”
현장에 있었던 승훈이 형이 작은 한숨을 삼켰다.
“넌 왜 그렇게 여유 만만이냐. 몬스터가 다시 나왔잖아.”
“뭐, 남은 몬스터들이 어딘가에 꽁꽁 숨어 있을 거라는 가설은 예전부터 있었잖아. 이제 와서 새삼스레.”
그리고 남 기자 앞에서 직접 말은 안 했지만, 사실 나는 오히려 이런 일이 생기기를 은연중에 바라고 있었다.
레이드 시대가 끝났다고 모든 문제가 다 사라진 건 아니다.
힘을 가진 존재, 헌터들.
그리고 이 헌터들과 함께 움직였던 사람들.
이들이 할 일이 생기게 된 것이다.
“어차피 더 이상 게이트는 안 열릴 테니까, 남은 몬스터들을 차츰차츰 정리하면서 사회에 녹아들어 갈 수 있도록 헌터들에게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줘야지. 생각해 봐. 이제 싸울 일도 없고, 우리 헌터들의 힘을 두려워하는 인간들이 언제 날뛸지 모르잖아? 그러면 그릇된 생각을 가진 헌터들도 나올 테고.”
“그거야…….”
“그때는 몬스터가 아니라 헌터들과 싸우는 날이 오게 될지도 몰라.”
인간이란 존재는 누군가를 비교하고 차별하고, 그리고 경계하는 걸 좋아한다.
초인적인 능력을 지닌 헌터들. 사회가 이 헌터들을 다시 받아 줄 때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한 법.
잔여 몬스터들의 존재가 당분간 이 시간을 벌어 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긍정적인 시각으로 오늘의 사건을 바라보고 있었다.
게다가.
“헌터의 중요성이 올라가면서, 나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같이 올라갈 테고.”
한동안 잠잠했던 기자들이 벌써부터 우리 집 앞에 진을 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와 더불어 바빠진 게 하나 더 있었다.
바로…….
띠리리링-!
“하, 씨. 또 전화 오네.”
승훈이 형이 인상을 팍 구기면서 책상 위에 잠시 올려 둔 업무용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예, 강태오 매니저 이승훈입니다. 아…… 프로그램 출연 문의요? 죄송합니다. 지금 여기저기서 출연 문의가 빗발치고 있어서요. 조금 있다가 다시 연락드릴 테니까, 문자 한 통만 보내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꼭 연락드릴게요. 그럼요, 그럼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기사가 나간 이후 지금까지, 1시간 만에 전화가 수십 통이 빗발쳤다.
방금 전에 승훈이 형이 언급한 것처럼, 전부 다 내게 섭외 요청을 하기 위한 전화들이었다.
이전에도 이런 연락을 많이 받긴 했지만, 오늘만큼 방송국 사람들이 열정적인 적은 아마…… 내가 막 드래곤을 쓰러뜨렸을 때 이후로 처음일 것이다.
전화를 거의 강제로 끊다시피 한 승훈이 형이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면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네 생각대로냐?”
승훈이 형의 물음에 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할 수밖에 없었다.
* * *
몬스터의 등장.
이에 따라 사람들은 다시금 헌터들을 찾게 되었다.
덕분에 헌터라는 종목은 크게 떡상했다.
데이브를 위주로 촬영했던 다큐멘터리가 방영되는 날.
당시에 거대 지네가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이 TV에 선명하게 송출되었다.
내가 거대 지네를 단숨에 제압하는 모습까지 편집 없이 전부 화면에 담겼다.
짧은 순간 스쳐 지나가는 데이브의 썩은 표정.
분명 주인공은 데이브가 되었어야 했는데.
‘누가 보면 내가 주인공인 줄 알겠네.’
지금쯤 데이브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눈앞에 훤히 보이는 거 같다.
야생 몬스터가 등장할 경우, 나에게도 직접 연락이 올 예정이다.
시간이 허락하거나, 아니면 마침 내가 현장에 있거나. 이런 경우에는 나도 헌터로서 몬스터 토벌에 참가하겠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웬만하면 나는 잘 나서지 않을 생각이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첫 번째로 이미 나 없이도 충분히 몬스터들을 토벌할 만한 환경이 구축되었다는 점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보다 두 번째 이유가 더 크다.
‘이제는 헌터가 아니라 방송인이 되기로 했으니까.’
지금까지 나는 인류를 위해서, 무고한 사람들을 위해서 충분히 희생했다.
이제는 내 개인적인 삶에 좀 더 충실하고 싶다.
가수 지망생 때 이루지 못한 가수라는 꿈을 이루는 것.
당분간 이 꿈에 집중하고 싶다.
그때까지 나는 지금의 이 상황을 절묘하게 잘 이용할 생각이다.
우선은 밀려드는 섭외 요청부터 하나하나씩 정리할 생각이다.
‘그리고 차츰차츰 가수 데뷔 준비도 해야겠지.’
안무 연습도 다시 해야 되고, 보컬 수업도 지속적으로 받아야 한다.
난 연기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예능감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평생 몬스터라는 화제성으로 방송 프로그램으로부터 섭외 요청을 받고 다닐 수는 없을 테고.
결국 장기적으로 연예계에서 성공을 하려면, 잘하는 걸 해야 한다.
‘승훈이 형한테 전화 좀 해 볼까?’
조만간 레슨 담당할 선생님들 섭외할 거라고 했었는데.
어떻게 진행되어 가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어졌다.
-여보세요.
“형, 난데. 저번에 말했던…….”
-야, 마침 잘됐다. 안 그래도 너한테 할 말 있었는데.
역시 나하고 형하고 텔레파시가 잘 통하는구나.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
갑자기 형이 다른 쪽으로 이야기를 틀었다.
-너한테 출연 섭외 요청 하나 들어온 거 있거든. 일정 확인해 보려고 하는데. 이번 주 금요일 어떠냐?
“금요일? 바로 내일이잖아. 무슨 프로그램인데?”
-뉴스. BLT 9시 뉴스 테이블 알지? 거기 보면 수요일, 금요일마다 유명인들 초대해서 앵커하고 인터뷰하는 코너 있잖아. 거기 나와 달라고 요청 들어왔다.
하루 전에 당돌하게 나에게 섭외 요청을 해 온 프로그램의 정체를 알게 된 순간.
어느 한 인물의 이름이 뇌리를 스쳤다.
“설마 섭외 요청한 사람이…….”
-맞아.
이윽고 형의 입에서 내 머릿속에 떠오른 어느 한 여성의 이름이 거론되었다.
-강아송 아나운서님이 너 직접 초대하고 싶다더라.
* * *
오후 7시를 막 넘긴 시점.
BLT의 간판 뉴스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는 9시 테이블.
이곳의 메인 앵커인 강아송은 정장을 차려입은 자신의 모습을 거울 앞에서 수십 번 넘게 돌아봤다.
그러더니 뒤에서 자신의 머리를 만지고 있는 스타일리스트에게 물었다.
“나, 살 좀 찐 거 같지 않아?”
강아송 앵커가 묻자, 스타일리스트가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거세게 가로저었다.
“언니가 살찐 편이면, 저는 지금 당장 단식원 들어가야 해요.”
그 정도면 충분한 몸매다.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강아송은 자신의 체형에 살짝 불만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스타일리스트가 빗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길게 쓸어내렸다.
“언니, 또 댓글 보신 거예요?”
“아니, 뭐…….”
쉽게 부정하지 않는 어투였다.
“예전에 그런 거 신경 안 쓰셨잖아요?”
“그러게. 아무래도 나도 나이를 먹긴 했나 봐.”
“아직 한창이신데요, 뭘.”
20대 후반, 비교적 늦은 나이에 아나운서계에 뛰어든 그녀는 10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기간에 간판 프로그램의 앵커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다.
능력 있고, 성격 좋고.
하지만 그녀의 초고속 성장의 가장 큰 원동력은 무엇보다도 바로 남에게 지지 않겠다는 강한 승부욕이다.
이 성격은 공교롭게도 강태오와 닮았다.
“아까 PD님한테 들었어요. 언니가 강태오 씨, 오늘 프로그램에 출연시키자고 하셨다면서요?”
“응, 맞아.”
“대한민국에서…… 아니지. 세상에서 가장 바쁜 분인데, 과연 나와 줄까요?”
게다가 시간을 넉넉하게 두고 섭외 요청을 한 것도 아니고.
강태오 입장에선 오히려 이런 식의 섭외 요청이 불쾌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스타일리스트는 그게 걱정이었다.
그러나 강아송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반응을 보였다.
“무조건 올 거야.”
강아송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기실 바깥에서 잠깐의 소란이 발생했다.
잠시 후.
스태프 한 명이 노크를 하고서 강아송이 있는 대기실을 찾았다.
“아송 씨, 태오 씨가 인사드리고 싶다고 찾아왔어요.”
천하의 강태오가 직접 이곳까지 행차했다는 말에 스타일리스트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못 믿겠다는 표정도 잠시.
강태오가 몸소 모습을 드러내고 나서야 스타일리스트는 스태프가 한 말이 진짜임을 깨닫게 되었다.
강아송이 스타일리스트를 향해 작게 윙크하면서 말했다.
“거봐, 내 말이 맞지?”
“그……러네요? 아니, 근데 어째서…….”
아쉬울 거 하나 없는 강태오가 왜 굳이 이런 급한 출연 요청을 받아들였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이 궁금증은 강태오의 한마디로 인해 풀리게 되었다.
“오랜만이야, 누나.”
* * *
내가 방송에 여러 차례 나왔어도, 웬만하면 카메라 앞에서 잘 이야기하지 않는 게 딱 하나 있다.
바로 ‘가족’에 관해서다.
승훈이 형이나 연 대표처럼 나하고 정말 가까운 사이인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내 가정사.
어렸을 때 사고로 인해 아버지, 어머니를 잃게 된 나에게 있어서 유일한 가족이 된 사람이 있다.
바로 눈앞에 있는 내 친누나, 강아송이다.
나와 누나는 나이 차이가 꽤 많이 나는 편이다.
내가 지금 25살.
누나는 35살로, 나와 딱 열 살 차이다.
그래서인지, 부모님을 일찍 떠나보낸 이후부터 누나는 줄곧 내게 있어서 엄마이자 아빠 같은 존재로 남았다.
다른 사람들 말은 등한시해도, 유일하게 딱 한 사람, 누나의 말만큼은 제대로 귀담아듣기로 했다.
어렸을 때부터 난 그렇게 맹세했다.
“어서 와. 오느라 고생 많았어.”
“고생은 승훈이 형이 했지. 운전했으니까.”
나는 차 뒤에 얌전히 앉아서 편하게 왔다.
“그나저나 누나는 저번보다 더 예뻐진 거 같네?”
“어머, 보자마자 사탕발림이니? 그렇게 칭찬해도 아무것도 안 떨어져.”
“알고 있어.”
미모, 몸매, 성격, 능력 등.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누나가 아직도 솔로로 지내는 이유가 있다.
나 때문이다.
가수를 꿈꾸는 나를 위해서 누나는 20, 30대 청춘을 모조리 포기했다.
그래서 나는 헌터로도, 방송인으로도, 그리고 예전에 미처 이루지 못한 가수로서도, 어떻게든 성공하기로 결심했다.
그게 누나가 날 위해 희생한 지난날에 대한 일말의 보답이 아닐까.
하지만 그 전에.
‘동생이 왔으니까, 누나 기 좀 살려 주고 가야겠지?’
이것이 내가 여기에 온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