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일하는 헌터님 (1)
‘도정수의 미팅 타임’에 이어서 ‘출발 스타팀’까지.
지금까지 단 두 개의 프로그램밖에 출연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내 이름을 여전히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방송 당일에는 내 활약상을 다룬 글들이 쇄도했었다고 승훈이 형을 통해 들었다.
승훈이 형이 말하길, 체감상 헌터로 활동할 때보다도 더 자주 사람들의 입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거 같다고 하던데.
‘이걸 기쁘게 받아들여야 할지, 아니면 슬프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네.’
어쨌든 레이드 시대가 종결된 이후에도 나를 향한 사람들의 관심이 끊이질 않는다는 건 긍정적인 신호니까.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쳐 뒀던 블라인드를 올리고 내리쬐는 아침 햇살을 온몸으로 만끽했다.
평화의 시대.
이 말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저 파란 하늘에 게이트가 버젓이 떠 있었는데.’
차원의 균열, 속칭 ‘게이트’라는 것이 대한민국 상공의 풍경을 어지럽히게 만든 지 8년이나 됐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몬스터와의 싸움.
그러나 우리는 게이트를 넘어온 몬스터들을 차례차례 격파하는 데에 성공했고.
마침내 다시 평화의 문을 열 수 있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다 내 덕분이지.’
내가 드래곤을 쓰러뜨렸으니까.
잘난 척 좀 한다고 누가 욕하거나 그러진 않겠지?
‘어디 보자.’
어제 미리 사 온 커피 하나를 냉장고에서 꺼내 소파에 앉았다.
TV를 틀고서 스마트폰으로 오늘의 일정을 살폈다.
“촬영은 다음 주에 하나 잡혀 있고.”
오늘은 승훈이 형의 호출로 잠깐 소속사를 방문하기로 했다.
일이 하나 들어왔는데, 내가 꼭 봐 줬으면 좋겠다고 들었다.
‘방송 일은 아닌 거 같은데.’
그렇다면.
“설마 헌터 쪽 일인가?”
혼잣말을 흘리면서도 그건 아니겠지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레이드 시대는 끝났다.
더 이상 나와 같은 헌터가 무기를 들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갑자기?
‘뭐, 내가 혼자 고민해 봤자 별 의미 없겠지.’
이럴 때 가장 확실하고 정확한 방법은.
가서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고 대답을 들어 보는 것이다.
* * *
내 집 앞까지 직접 차를 끌고 나를 픽업하러 온 승훈이 형과 함께 BOO 본사로 향했다.
빌딩 로비에 평소 내가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이 생겼다.
“7층에 뭐가 새로 생겨?”
“응? 아, 우리, 엔터 사업도 같이 진행하기로 했잖아. 그래서 7층에 사무실을 따로 차리려고 생각 중이신가 봐.”
“아, 그래?”
“나중에 필요하면 녹음실이나 안무 연습실 같은 것도 준비해 둘 거래.”
“연 대표님, 본격적으로 하실 건가 보네.”
“우리도 먹고살아야 하니까.”
하기사.
레이드 시대가 종결된 덕분에 실업자 신세가 된 건 나 같은 헌터만이 아니다.
몬스터를 상대하는 일을 업으로 삼던 관계자들 또한 마찬가지.
헌터 매니지먼트 역시 새로운 생업 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럼 헌터나 몬스터 일 쪽은 아예 접는 거야?”
“그렇진 않을 거야. 안 그래도 너를 부른 이유가 그것하고 관련이 있거든.”
그것이라 함은.
“설마…… 몬스터 때문에?”
타이밍 좋게 엘리베이터가 띵! 소리를 내면서 최상층에 도착했음을 알렸다.
승훈이 형이 먼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며 내 물음에 답했다.
“대표님이 직접 설명해 주실 거야.”
“…….”
느낌이 그다지 좋진 않다.
* * *
연수하 대표를 만나자마자 나는 승훈이 형과 함께 다시 어디론가로 향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바로 레이드 시대의 잔재로 남아 있는 반파된 몬스터 던전.
차에서 내리자마자 연 대표가 나에게 물었다.
“여기, 기억나지?”
“그럼요.”
공교롭게도 내가 아는 장소다.
3개월 전이었나. 이곳 송도에 게이트가 열리면서 도로 한가운데를 뚫고 던전 입구가 형성되었다.
이곳에서 쏟아진 몬스터들 덕분에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었다.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발생한 사고였기에 피해가 꽤 컸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에는 나도 현장에 출동했었다.
레이드 시대도 끝났으니, 던전도 철거를 해야 한다.
그러나 철거 작업은 진행되지 않고 있었다.
이유가 있다.
“던전 안쪽에서 몬스터를 봤다는 인부의 증언이 나왔어.”
몬스터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한쪽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레이드 시대가 끝났다고 몬스터의 존재 자체도 완전히 소멸된 건 아니다.
차원의 균열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계로 넘어온 몬스터들이 아직 곳곳에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내가 드래곤을 제거한 뒤에도 심심치 않게 몬스터가 목격되었다는 사례가 몇 차례 있었으니까.
좀 더 자세한 현장 조사를 위해 승훈이 형, 연 대표와 함께 민간인들의 출입을 막기 위해 설치되어 있는 접근 금지 라인 안쪽으로 향했다.
이때, 제대로 손질이 안 된 턱수염을 지닌 30대 후반의 남자가 내게 먼저 인사를 건네왔다.
“안녕하세요, 강태오 씨.”
처음 보는 얼굴이다.
내가 고개를 살짝 갸우뚱하자, 남자가 명함 한 장을 내밀며 자신을 소개했다.
“QWE에서 일하고 있는 연예부 소속 남지덕 기자입니다.”
“QWE라면…… 최 국장님하고 같이 일하시는 분인가 보군요.”
“예. 안 그래도 국장님한테서 이런저런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기자라는 말에 승훈이 형이 헛기침을 하면서 관심을 본인 쪽으로 돌렸다.
“죄송합니다만, 여기는 관계자 외 출입 금지입니다만.”
“경찰분들한테 잠깐 허락받고 들어온 거니까 안심하셔도 됩니다, 하하하.”
그쪽하고 연줄이 좀 있는 사람인가 보다.
연예계 쪽 담당인 남지덕 기자가 카메라를 꺼내면서 왜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본인의 입으로 술술 털어놓기 시작했다.
“여기서 대기 타고 있으면, 이렇게 태오 씨가 오실 거라고 생각했었거든요.”
“저요?”
“네.”
왜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이유가 궁금했다.
남 기자가 카메라를 들고서 나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일하시는 모습 좀 찍을 수 있을까 해서요.”
“상관없습니다만. 그게 여기까지 온 이유의 전부인가요?”
“이것만으로도 충분하죠. 요즘 태오 씨만큼 핫하신 분이 또 어디 있다고요.”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뭐, 이런 게 기자의 일일 테니까.
사진 찍는 건 좋지만.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던전 근처에 너무 가까이 오지는 마세요.”
“몬스터라도 있습니까?”
“그걸 확인하기 위해 제가 온 겁니다.”
나 혼자만 온 것인 줄 알았는데, 몰래 온 손님이 한 명 더 있었다.
“강태오.”
노골적으로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면서 내 이름을 부르는 금발 숏컷의 남자.
“오랜만이다, 데이브.”
내가 천연덕스럽게 반가운 척 인사를 건네자 데이브의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네놈은 여기 뭐 하러 왔냐.”
“정식으로 의뢰받고 왔지. 그렇죠, 대표님?”
연 대표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관에서 몬스터 조사를 의뢰한 곳은 우리 BOO만이 아닌가 보다.
그래도 난 상관없다.
내가 할 일만 하면 되니까.
한편, 남 기자는 뒤에서 나와 데이브의 투 샷을 담기 위해 연신 셔터를 눌러 댔다.
“역시. 여기 오길 잘했군요.”
아무래도 여기 있는 우리들 중에서 남 기자가 가장 득을 본 거 같다.
* * *
던전 입구로 들어가기 전에, 연 대표가 내게 양해를 구했다.
“잠깐만, 만날 사람들이 좀 있어서. 한 10분 있다가 들어가자.”
“알겠습니다.”
“승훈이도 나 따라서 와.”
연 대표가 승훈이 형을 데리고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심심함을 느낀 나는 일부러 데이브에게 말을 걸어 봤다.
“저기 저 기자들은 뭐냐. 네가 데려온 거야?”
“다큐 찍는 거다.”
“다큐를? 네가?”
“왜, 난 다큐멘터리 찍지 말라는 법 있냐?”
딱히 그런 건 없다.
단지 데이브와 다큐가 내 머릿속에서는 잘 매칭이 안 된다는 것뿐.
카메라를 어깨에 짊어진 VJ가 데이브에게 물었다.
“저희도 따라서 들어가야 합니까?”
“아니요. 여기서부터는 위험 지역이라서, 여러분들은 아마 출입이 금지되어 있을…….”
데이브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던전 안쪽에서 미세한 바람이 불어왔다.
단순한 바람이 아니었다.
무언가의 기척을 싣고 불어온 바람.
나와 데이브의 귀가 동시에 쫑긋 세워졌다.
오랜만에 느끼는 낯설지 않은 감각.
“뒤로 물러서세요!”
내 외침에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였다.
쩌저적-!
던전 입구에 여러 개의 커다란 균열이 발생했다.
지면이 진동하자, 던전 깊숙한 곳에 몰래 숨어 있던 몬스터 하나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덕분에 던전 철거 현장에 있던 인부들은 기겁을 하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모, 몬스터……!”
“뭐 해! 빨리 도망치지 않고!”
일반인들은 몬스터를 상대할 힘이 없다.
대신에, 몬스터들을 상대할 수 있는 적성자들이 마침 이곳에 둘이나 있다.
지상 7층 높이까지 솟아오른 덩치 큰 지네 괴물을 올려다보고 있자니, 의도치 않은 미소가 지어졌다.
“간만에 몸 좀 풀어 볼까.”
안 그래도 요즘 몸이 찌뿌둥했는데, 잘됐다.
반면, 데이브는 나와 달리 크게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아이템이라도 가져올걸!”
낭패다.
이런 심정이 확연하게 느껴졌다.
“야, 데이브.”
주먹을 몇 차례 쥐락펴락한 나는 데이브에게 일침을 가했다.
“아이템이 있어야 몬스터랑 싸울 수 있냐? 이딴 잡몹은 맨손으로도 충분하잖아.”
잡몹이라는 말 때문일까.
지네 괴물이 가장 먼저 나를 노렸다.
거대한 머리가 바로 내 위로 쏟아졌다.
“흥!”
짧게 코웃음을 치고서 뒤로 빠르게 물러섰다.
쿠우웅-!
녀석의 머리가 지면에 박혔다.
예전에도 이렇게 생긴 거대 지네 괴물을 상대했던 적이 있었다.
마치 온몸에 철갑을 두르고 있는 것처럼 단단한 몸체가 특기인 녀석.
하지만 딱 한 군데, 약점이 존재한다.
머리와 몸통이 이어지는 중간 부분.
바닥에 뒹굴거리는 쇠막대기 하나를 집어 들고서 마나를 불어 넣었다.
‘이 정도면 되겠지?’
충분하다 싶을 때, 강화된 쇠막대를 있는 힘껏 던졌다.
푸우욱!
쇠막대기가 몸에 깊숙이 박히자, 지네 괴물이 듣기 싫은 괴성을 지르며 격하게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아직 안 끝났어!”
튀어나온 쇠막대기 끝부분을 오른 주먹으로 강하게 가격했다.
그러자 ‘퍼어엉!’ 하고 뭔가가 터지는 소리가 사방을 가득 메웠다.
머리와 몸통이 분리된 지네 괴물.
사방에 튀긴 파란색의 피들이 역한 냄새를 풍겼다.
“후우!”
녀석이 죽었음을 확인한 나는 얼굴에 살짝 묻어 있는 놈의 피를 손등으로 훔쳤다.
일격에 끝나 버린 몬스터와의 전투.
아니, 전투라기보다는 일방적인 사냥에 불과했다.
넋이 나간 표정으로 내 활약상을 지켜보는 남 기자와 데이브의 다큐멘터리 촬영팀을 향해 나는 손으로 브이(V) 자를 만들어 보였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사진이라도 좀 찍어 주실래요?”
사람은 본인의 일에 집중할 때가 가장 멋있는 법.
지금의 내가 그렇다.
그냥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