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9화 (9/250)

제2장. 몸 쓰는 게 특기입니다 (5)

수많은 카메라들이 그를 집중 조명했다.

황조운이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손을 흔들었다.

잘생긴 척은 정말 잘하는 것 같다. 황조운이란 사람은 개인적으로 싫어하지만, 저런 쇼맨십은 확실히 인정한다.

물론 인성은 별개의 문제겠지만.

“이제 슬슬 시작해 볼까.”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기 전이었다.

“태오야.”

승훈이 형이 조용히 나를 불렀다.

그러더니 스마트폰을 꺼내 방금 녹화한 영상을 리플레이로 보여 줬다.

“네 추측이 맞았다. 스태프 몇몇이 황조운이랑 내통하고 있었어.”

“그래?”

“혹시 몰라서 코스 조작하는 거, 영상으로 남겨 뒀다. 어떻게 할래?”

지금 바로 공개하면 촬영 분위기를 다운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꼭 하고 싶은 게 있었다.

“잠깐 보류해 줘. 나중에 공개해야 하니까.”

“밝힐 생각은 있나 보구나.”

“물론이지. 황조운이 방송 잘하는 건 인정하지만, 그래도 조작은 용서할 수 없으니까. 그리고…….”

가볍게 몸을 풀었다.

“헌터 비하 발언에 대한 책임은 확실하게 지게 만들고 싶거든.”

아무리 방송이라도 당하고만 살 생각은 없었다.

받은 게 있으면 되갚아 줘야지.

확실하게.

* * *

“스타팀의 마지막 선수를 모셔 보도록 하겠습니다! 강태오 씨입니다!”

여기저기서 환호와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스타트라인에 서기 전에 김수월은 내게 먼저 지옥 코스에 임하는 각오를 물었다.

“어떤 각오로 임하시겠습니까?”

“각오라기보다는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되나요?”

“부탁이요?”

“예, 코스가 너무 쉬운 거 같아서요. 난이도를 좀 높였으면 합니다만. 가능할까요?”

김수월과 스태프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남들은 어렵다고 난리를 피우는 지옥 코스인데, 오히려 난이도를 높여 달라고 하니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그러나 나는 솔직한 심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는 말입니다. 혹시 가능하다면 난이도를 좀 높여 주세요.”

난이도 조절도 가능은 할 것이다.

황조운은 그걸로 지옥 코스를 통과했으니 말이다.

PD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PD님께서 알겠다고 하시네요. 정말 자신 있으신 거죠?”

“네, 물론입니다!”

이까짓 거, 몬스터와 밤을 지새워 가며 목숨을 걸고 싸운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준비!”

MC의 말에 따라 바로 자세를 취했다.

탕!

출발 신호와 함께 나는 빠른 속도로 외나무다리 코스에 돌입했다.

“흡!”

외마디 기합 소리와 함께 나는 외나무다리 가운데에 한 번만 발을 딛고 그대로 점프해 버렸다.

외나무다리 건너기가 아니라 외나무다리 뛰어넘기 수준이었다.

그물망 오르기도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두 다리에 기력을 불어 넣었다.

공중으로 크게 도약했다.

그물망에 손을 델 것도 없었다.

문제의 에어볼 코스.

거의 연발 수준으로 발사되는 에어볼들.

그러나 빈틈은 분명 존재했다.

“읏차!”

나는 교묘하게 회피 동작을 펼치면서 에어볼들을 전부 피해 냈다.

흔들다리 코스는 외나무다리와 마찬가지로 거의 뛰어넘다시피 하면서 통과했다.

마지막, 미끄러운 언덕 코스.

물이 거의 폭포수처럼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뒤로 두세 걸음 물러섰다.

굳이 미끄러운 부분을 디딜 필요가 없었다.

단숨에 점프해 버리면 된다.

언덕을 그대로 뛰어넘은 나는 맨 위에 위치한 스위치를 눌렀다.

두 갈래의 연기가 ‘푸슉!’ 하고 위로 솟아올랐다.

기록은?

“노, 놀랍습니다! 강태오 선수…… 12초 나왔습니다! 굉장하군요!”

듣도 보도 못한 신기록이 탄생했다.

* * *

황조운은 자신이 이번 촬영의 주인공이 될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황조운은 나의 활약을 더욱 빛나게 만들기 위한 일종의 발판에 불과하다.

황조운이 세운 지옥 코스 신기록을 내가 30분도 채 안 돼서 다시 가져왔다.

원래 줬다 빼앗는 게 더 재미있는 법이다.

황조운은 애써 웃으면서 다른 출연진과 함께 나를 축하해 주기 위해 다가왔다.

“자, 잘하셨어요, 태오 씨.”

“감사합니다. 조운 씨가 조언해 준 덕분에 신기록을 세울 수 있게 되었네요. 고맙습니다.”

“하, 하하하…….”

어색하게 웃는 황조운이었다.

지금 그는 배가 너무 아플 것이다.

내가 주인공 자리를 빼앗았으니 말이다.

말도 안 되는 시간을 기록하면서 최단시간 내에 지옥 코스를 클리어해 버린 나.

MVP는 당연히 내 차지가 되었다.

김수월은 스타팀의 주역인 나를 카메라 앞에 세웠다.

“MVP를 차지하게 된 소감 한 말씀 해 주세요.”

“소감이랄 건 딱히 없는 거 같고요. 이번에 처음 출발 스타팀에 출연해 봤는데, 굉장히 재미있는 거 같아요. 나중에 또 불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출발 스타팀의 엔딩 멘트는 MVP를 차지한 출연자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특권이다.

이 특권이 평소에는 황조운에게 향했으나, 오늘만큼은 내게 부여되었다.

“지금까지 출발 스타팀이었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김수월의 말을 끝으로 오늘 촬영은 마무리되었다.

“수고하셨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출연진과 스태프들이 서로에게 고생했다는 말을 남기면서 훈훈하게 녹화를 끝냈다.

나는 황조운에게 다가가 먼저 악수를 청했다.

“오늘 녹화, 재미있었습니다.”

“……저야말로요.”

황조운은 똥 씹은 표정을 지으면서 마지못해 내 손을 잡아 줬다.

난 황조운의 기분이 안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다가가서 악수를 청했다.

내 복수의 전초전이라고 보면 된다.

녹화를 마친 후에 나는 승훈이 형이 운전하는 차에 올랐다.

“형, 아까 녹화해 둔 거, 나한테 파일로 전송해 줄 수 있어?”

“어렵지 않지. 근데 그거는 어떻게 활용하게?”

“나중에 보면 알아.”

보아하니 황조운과 함께 그에게 협조해 준 출발 스타팀 스태프 몇몇은 코스 조작을 한두 번 해 본 게 아닌 듯했다.

황조운을 띄워 주기 위해 수차례 이런 조작을 벌였을 터.

시청자들을 속인 죄.

‘달게 받을 준비가 되어 있으려나 모르겠네.’

내가 알 바는 아니지만.

* * *

헌터로 활동하면서 나는 많은 사람들을 구했다.

그중 한 명이 바로 오늘 만날 사람이었다.

“태오야!”

40대 후반의 한 남성이 내가 미리 자리 잡은 카페를 찾았다.

나를 보자마자 그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케이블 채널 QWE의 보도국장, 최재현.

오랜만에 만난 그에게 먼저 안부를 물었다.

“그동안 잘 지내셨죠?”

“네 덕분에 잘 지냈지! 네가 3년 전에 나하고 우리 가족들을 몬스터들한테서 구해 주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난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거다.”

최재현은 나에게 크게 한번 신세를 진 적이 있었다.

사람 구해 준 일 가지고 이걸 이용할 생각은 없었기에 내가 먼저 그에게 연락을 주거나 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은 좀 달랐다.

“국장님께 특종거리 하나 드리려고요.”

“음? 특종거리?”

“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최대한 많은 대중이 볼 수 있게끔 널리널리 퍼뜨려 주세요.”

“허허, 특종거리는 나 같은 사람에게 있어서 선물이나 다를 바 없는데. 내가 너한테 은혜를 갚아야 하는데, 오히려 내가 선물을 받게 되다니. 이거 참…….”

난감해하면서도 최재현의 눈빛은 반짝이고 있었다.

최재현도 언론인이다.

특종이라는 말에 반응을 안 할 수가 없을 것이다.

“내용이 뭔데?”

조심스럽게 내가 줄 선물의 정체에 관심을 보였다.

“출발 스타팀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아시나요?”

“알다마다.”

“그럼 황조운이라는 사람도 알겠네요?”

“출발 스타팀에서 자주 활약을 펼쳐서 여기저기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남자 배우로 알고 있는데.”

“그 황조운이 맞습니다.”

최재현이 알고 있는 게 맞음을 확인시켜 줬다.

“일단 이 영상부터 봐 주세요.”

승훈이 형이 촬영한 증거 영상을 먼저 보여 줬다.

황조운과 스태프가 몰래 밀담을 주고받는 것으로 시작해서 컨트롤 기기를 조작하는 장면까지 전부 다 생생하게 찍혀 있었다.

“세상에……!”

황조운이 딱히 위법 행위를 저지른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건 방송을 즐겨 보는 시청자들의 재미와 신뢰를 배신한 행위였다.

최재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조작이라는 게 참 무서운 건데…….”

원래 방송이라는 게 짜여진 각본이 없을 수가 없는 법이다.

하지만 이것과 조작은 다르다.

“제가 알아보니까 출발 스타팀 PD님은 이걸 모르시더라고요. 황조운이 몇몇 스태프를 끌어들인 거 같아요.”

“그쪽 PD가 불쌍하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최재현은 내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내부적으로 좋게 해결하고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최 국장님, 제 성격 아시잖아요? 얌전히 안 넘어간다는 거.”

“황조운이 너한테 나쁜 짓이라도 했나 보구나.”

“저와 헌터들을 대놓고 무시했거든요. 어그로 끈답시고 저를 노골적으로 폄하하는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고요.”

최재현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황조운이 지뢰를 아주 제대로 밟았구만.”

내 목적은 단 하나다.

“황조운 X 되게 만드는 거. 그거 하나면 됩니다.”

인정사정 봐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최재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았다. 기자들 소집시켜서 대대적으로 기사 보내라고 전달해 두마. 그리고 내 연줄이 닿는 외부 기자들한테도 연락해서 인터넷에 기사 뿌리게끔 하마.”

“감사합니다, 국장님.”

“천만에! 나야말로 특종거리 줘서 고맙지. 일 진행되는 대로 따로 연락 주마.”

“예, 기다리고 있을게요.”

반격이 시작되었다.

* * *

황조운에 관련된 소식이 전파를 타기 시작했다.

이것을 시작으로 황조운의 조작 사건과 연관된 각종 기사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실시간 트렌드 순위에 ‘황조운’이라는 이름 세 글자가 1위로 랭크되었다.

물론 좋은 의미로 랭크된 게 아니었다.

나는 두 발 뻗고 커뮤니티의 반응을 살폈다.

-황조운이 출발 스타팀에서 조작했다고 하던데?

-내 그럴 줄 알았다. 어쩐지 황조운이 도전할 때마다 코스들이 이상하게 난이도가 낮아진 느낌이 들더라고.

-헐, 나도 그런 생각 들었었는데 ㄷㄷㄷㄷㄷㄷ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그럼 결국 조작해서 자기 인기 올린 거잖아?

-그쪽 제작진하고 내통한 거라며?

-근데 영상은 누가 찍었대? 엄청 깔끔하게 찍었네 ㅋㅋㅋㅋㅋㅋㅋㅋ

승훈이 형의 촬영 솜씨를 칭찬하는 댓글도 간혹 보였다.

헌터를 서포트하는 입장이다 보니 승훈이 형은 몬스터의 전력을 분석하기 위해 간혹 촬영 장비를 들고 목숨을 걸고서 몬스터를 찍는 그런 일도 했었다.

그 실력을 이번에 써먹은 것이다.

승훈이 형 덕분에 나는 황조운한테 제대로 복수할 기회를 거머쥐게 되었다.

‘황조운 측은 뭐라고 답을 내놓을까?’

이게 가장 기대된다.

부정하고 싶어도 너무 확실한 증거가 있다 보니 발뺌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가 입장을 드러내기도 전에 출발 스타팀 측에서 먼저 입장을 표명했다.

[영상에 찍힌 스태프들을 불러 취조한 결과, 예전부터 이런 조작 행위를 몇 차례 해 온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불미스러운 사건을 저지르게 되어 시청자 여러분들에게 죄송할 따름입니다.]

출발 스타팀 제작진이 먼저 사실 확인 여부를 밝혔다.

이것은 곧 황조운에겐 외통수가 되었다.

이제 남은 건 하나뿐이다.

‘황조운이 언제 사과문을 올리느냐. 이것만 기다리면 되겠네.’

지체하면 지체할수록 억측만 늘어날 것이다.

출발 스타팀 측의 입장 발표가 있은 후.

1시간 뒤에 황조운의 소속사에서 사과문을 기재했다.

사과문이라고 해 봤자 별거 없었다.

죄송하다. 그리고 잘못을 저지른 것에 대한 반성의 의미로 당분간 모든 프로그램에서 잠정 하차하며 자숙의 시간을 가지겠다.

이런 내용들이었다.

예능계의 떠오르는 샛별이라고 불리기 시작한 시점에서 벌어진 조작 사건.

이것은 황조운을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황조운이 조작 말고 잘못한 게 있다면…….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하필 나를 건드렸다는 거지.’

헌터로 활동하면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어 본 나다.

오히려 황조운은 이 정도에서 끝난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아, 성질 많이 죽었네, 강태오.’

나도 모르게 자조 섞인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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