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몸 쓰는 게 특기입니다 (4)
최종적으로 코스 점검이 끝난 직후, 김수월이 마이크를 들고 무대로 올랐다.
“그럼 지금부터 스타팀 대 라이벌팀의 대결을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대결 시작을 알리는 김수월의 멘트에 관중의 환호성이 높아졌다.
드디어 본게임이 시작되었다.
나를 비롯해 스타팀 멤버들이 차례차례 자리를 잡았다.
“첫 번째로 스타팀에서 출전할 사람은 바로 이분입니다!”
가수 겸 배우로 활동 중인 이진효가 무대 위로 올라섰다.
순번을 기다리는, 혹은 이미 차례가 끝난 스타는 벤치로 돌아와 앉아 있으면 된다.
참으로 편안한 시스템이었다.
벤치에 앉아 있는 스타보다 무대 위에서 코스에 도전하는 스타에게 더 많은 카메라의 시선이 향했다.
벤치에 있는 동안은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다는 게 이 방송의 묘미였다.
이 묘미를 십분 활용하기 위함인지 황조운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강태오 씨.”
“예.”
“순서, 정말 마지막으로 해도 괜찮나요?”
황조운이 재차 내 의사를 확인했다.
스타팀의 순번상 내가 맨 마지막으로 배치되었다.
황조운은 바로 내 앞이었다.
이런 식으로 순서가 배정된 건 서로 간 합의의 결과였다.
처음 스타들끼리 모여서 회의를 할 때, 먼저 누가 몇 번째 순서에 뛰겠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나섰다.
난 가장 마지막에 뛰고 싶다고.
“예, 괜찮습니다.”
황조운에게 걱정 안 해도 된다는 뉘앙스로 답했다.
황조운은 딱히 마지막 순서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가 출연했던 출발 스타팀의 편들을 모니터링한 결과, 그는 여태까지 단 한 번도 마지막을 차지한 적이 없었다.
이유는 얼추 알 것 같았다.
장시간 진행될수록, 그리고 순번이 마지막으로 갈수록 사람들의 관심을 별로 받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프로그램의 특성상, 같은 도전이 반복되니까.
그게 약간의 지루함을 불러일으키는 듯했다.
실제로 그런 비슷한 사례가 몇 번 있었다.
가장 베스트라 생각하는 부분은 중후반 정도?
황조운의 순번이 딱 그러했다.
아마 그는 자신이 베스트 자리를 차지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실제로 황조운의 표정을 보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표정으로는 나를 위하는 것처럼 연기했지만, 눈은 웃고 있었다.
‘겉과 속이 다르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남자군.’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누가 뭐래도 내가 생각하는 베스트는 가장 마지막이었으니까.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저로선 뭐라 드릴 말이 없네요. 태오 씨는 방송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라서 잘 모를 거예요. 제가 팁을 드리자면 말이죠…….”
뭐냐, 이 꼰대 마인드는.
갑자기 방송 초심자에게 와서 방송이라는 건 어떻다,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 왈가왈부를 할 줄이야.
기자를 통해서 나를 디스하는 기사를 내보냈을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지만 말이다.
“어때요, 이제 감이 좀 오죠?”
“아, 예.”
감이 오긴 개뿔.
들을 가치도 없었기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들었다.
현역 시절 때부터 갈고닦아 온 스킬 중 하나였다.
이미 결과는 빤히 보이는데 회의가 쓸데없이 길어질 때 자주 사용했었는데, 이걸 또 하게 될 줄은 몰랐다.
* * *
다섯 번째 순번을 배치받은 각 팀의 선수들이 무대에 올라섰다.
이때까지 지옥 코스를 성공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확실히 코스가 어렵긴 한가 보다.
황조운은 통과자가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했다.
“성공하는 사람이 한두 명 정도는 나와 줬으면 좋겠는데요. 아쉽네요.”
아쉬움이 전혀 느껴지지 않은 말투였다.
도리어 이런 생각을 하겠지.
아무도 성공 못 한 코스를 오로지 혼자서 멋지게 성공한다. 그렇게 되면 황조운은 스포트라이트를 독점하게 된다.
얼마나 좋은 시나리오란 말인가.
내가 만약 방송 작가였다면, 황조운의 관심을 독차지했을지도 몰랐다.
그러고 싶은 생각은 애초에 없지만.
어디 보자.
코스를 다시금 찬찬히 살펴봤다.
지옥 코스는 총 다섯 단계로 이뤄져 있었다.
첫 번째, 외나무다리 건너기.
두 번째, 그물망 오르기.
세 번째, 에어볼 통과하기.
네 번째, 흔들다리 건너기.
다섯 번째, 미끄러운 언덕 오르기.
양 팀의 선수들은 두 번째까지는 무난하게 잘 통과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문제는 세 번째였다.
에어볼 통과하기.
저 코스는 각각 좌, 우측에서 발사되는 에어볼을 피해 건너편으로 넘어가면 되는 구간이었다.
다리만 건너면 되는데, 에어볼의 크기가 꽤 큰 데다 생각보다 자주, 그리고 빠르게 발사된다.
에어볼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그대로 무게중심을 잃어 아래 물구덩이로 ‘풍덩!’ 하고 떨어지게 된다.
여기서 90% 이상의 선수들이 탈락했다.
‘헌터 교육 과정에서도 저런 거 비슷한 게 있었지.’
설령 에어볼 구간을 통과했다 하더라도 흔들다리 구간 역시 만만치 않다.
흔들다리 코스는 첫 번째 코스인 외나무다리와 비슷한 구조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다리가 흔들린다는 옵션이 추가되었다.
흔들리는 강도가 예사롭지 않았다.
외나무다리인 데다 격하게 흔들리기까지 하니 선수들이 무게중심을 잡지 못하고 속속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확실히 지옥 코스라 불릴 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조운은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너무하네요. 나름 에이스들이라고 뽑아 놓은 참가자들인데, 네 번째 코스까지 가지도 못하다니. 태오 씨도 그렇게 생각하죠?”
“그러게요.”
공감은 하지만, 황조운의 말에 동의를 표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황조운은 떨어지는 참가자들을 바라보며 비웃음을 쏟아 냈다.
절정은 황조운의 배우 후배인 김천이 탈락했을 때였다.
“하하! 야, 김천, 완전 허당이네! 그것도 못 하면서 액션신은 어떻게 찍었냐! 영화 아직 개봉도 안 했는데, 망하게 생겼네!”
“그, 그럴 리가요, 선배님…….”
김천이란 배우는 그저 머쓱한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었다.
아직 개봉도 안 한 후배의 영화에 저주 퍼붓기라.
방송이라서 저렇게 웃는 거지, 만약 방송이 아니었더라면 주먹이 날아왔을지도 몰랐다.
방송 참 살벌하게 하네.
그렇게 탈락의 쓴맛을 맛보는 참가자들이 늘어 갈 무렵.
“다음, 스타팀의 에이스! 황조운 씨입니다!”
드디어 황조운의 차례가 다가왔다.
가볍게 몸을 풀며 무대 위로 오르는 황조운.
그 전에 그는 나에게 새겨들으라는 식으로 말했다.
“제가 하는 거 잘 보고 배우세요. ‘방송이란 이런 거다!’라고 확실하게 보여 주겠습니다.”
“기대하겠습니다.”
어디 한번 집중해서 보도록 하자.
황조운이 과연 저 코스에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 * *
“황조운 씨의 도전입니다! 준비되시면 ‘도전!’이라고 외쳐 주세요!”
“예.”
무대 위에 올라선 황조운이 가볍게 몸을 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상의를 탈의했다.
탄탄한 근육으로 도배된 황조운의 조각 몸매가 드러나자, 팬들의 목소리가 더더욱 상승했다.
특히나 여성 팬이.
일종의 팬 서비스인가?
남자 시청자 입장에서 보자면 별다른 감흥이 안 느껴진다.
같은 출연자 입장에서 보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버하네.’
그래도 황조운은 자신이 괜찮은 쇼맨십을 보였다고 생각하는 모양인지 씨익 미소를 유지했다.
쇼맨십이 아니라 쌩쇼 아니냐, 저 정도면.
이후, 드디어 모든 과정을 다 소화한 황조운이 자신감 있게 외쳤다.
“도전!”
그의 외침과 함께 연기 기둥이 솟구쳤다.
첫 번째 코스, 외나무다리 건너기.
이건 뭐, 쉬운 편이었다.
중심만 잘 잡으면 그만이었다.
외나무다리 건너기를 방해하는 마땅한 장애물도 없었고 말이다.
방송 무대라는 심리적인 압박감만 잘 견딘다면 누구든 무난하게 통과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다음부터였다.
그물망 오르기.
“흡!”
근육질 몸매를 뽐내며 그물망에 오른 황조운. 팔의 근력을 상당히 요하는 코스였다.
상체가 잘 단련되지 않은 사람이거나 혹은 균형 감각이 없는 사람은 떨어지기 십상이었다.
황조운은 그 두 가지를 다 갖췄다.
괜히 근육으로 도배된 몸이 아니었다.
영차, 영차, 영차.
그물망 오르기에 성공한 뒤에 미끄럼틀을 타고 세 번째 코스로 향했다.
여기까지 소비된 시간은 채 20초도 안 됐다.
“황조운 선수! 마의 구간에 접어듭니다!”
에어볼 통과하기 코스가 등장했다.
펑! 소리와 함께 바로 선수의 신체에 닿을 만큼 빠른 속도로 날아들었다.
그러나 여기서부터가 문제였다.
에어볼을 발사하는 기계의 움직임이 현저하게 느려지는 게 포착되었다.
‘아까에 비해서 움직이는 게 너무 둔한데?’
내 착각은 절대로 아니다.
몬스터와의 실전에서 다져진 눈썰미인데, 틀릴 리가 없다.
역시 황조운이 뭔가 사주를 넣은 게 분명하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어떻게든 참가자들을 이 구간에서 떨어뜨리게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맹렬히 에어볼 대포를 쏘아 대던 기계들.
그러나 지금은 천천히, 느긋느긋하게 에어볼을 쏘아 댔다.
그 차이가 내게는 너무 확 느껴졌다.
그러나 나 이외에 다른 사람들은 차이를 느끼지 못한 듯했다.
생각해 보면 황조운이 상의 탈의까지 하면서 일부러 시간을 끈 이유도 있었다.
앞선 경기를 잊어버리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왜냐하면 바로 황조운이 코스를 건넜더라면, 분명 에어볼이 발사되는 텀이 앞의 선수와 차이가 너무 많이 난다는 걸 사람들이 바로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걸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황조운은 일부러 시간을 끈 것이다.
상의 탈의를 하면서까지.
‘잔머리가 보통이 아니네.’
그러나 내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황조운 선수! 에어볼 구간을 통과했습니다!”
김수월의 멘트가 현장 분위기를 뜨겁게 달궜다.
마의 구간을 통과했지만, 또다시 두 번째 마의 구간이 이어졌다.
네 번째, 흔들다리 건너기.
첫 번째 코스와 비슷해 보일지 모르지만, 흔들거림의 강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아무리 균형 감각이 좋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흔들다리를 건너는 건 꽤 위험해 보였다.
황조운이 흔들다리 코스 앞에 마주 섰을 때였다.
“…….”
모자를 깊게 눌러쓴 스태프 한 명이 빠르게 장소를 이동했다.
주변을 둘러보더니, 코스를 컨트롤하는 장비가 있는 쪽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기계에 손을 대기 시작하더니 또 이상 징후가 발생했다.
매섭게 떨던 흔들다리의 떨림이 아까에 비해 진정되었다.
미세한 차이였지만, 난 그걸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신중하게 흔들다리 부분을 통과하는 황조운.
앞선 세 개의 코스에선 40초라는 시간을 소비했지만, 흔들다리 코스 하나에 20초라는 시간을 투자했다.
기록보다 통과에 비중을 둔 플레이었다.
하기야, 나 같아도 황조운과 같은 식으로 행동했을 것이다.
어차피 여태껏 아무도 통과한 이가 없었다. 통과만 하더라도 영웅 취급을 받을 것이다.
흔들다리를 건너자, 김수월이 더더욱 멘트에 박차를 가했다.
“황조운 선수!! 유일하게 4단계를 통과했습니다! 역시 스타팀의 영웅다운 면모군요!”
황조운 비행기 태워 주기는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단계!
미끄러운 언덕 오르기 코스였다.
위쪽에서 물이 계속 흘러내린다. 참가자는 물에 젖은 매트리스 미끄럼틀을 맨몸으로 올라야 한다.
코스 기계를 조작하는 스태프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두 사람이 또 뭔가 이야기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코스에 변화가 생겼다.
새어 나오는 물의 양이 줄어들었다.
‘미친.’
나도 모르게 욕지거리가 튀어나올 뻔했다.
황조운은 스태프와 눈을 마주쳤다.
신호를 주고받자마자 황조운이 매트리스를 향해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약간 미끄러지나 싶더니, 이후 줄기차게 잘 올라갔다.
결국 끝까지 올라서는 데에 성공한 황조운이 멋지게 슬라이딩을 하면서 버튼을 터치했다.
삐이익!
“통과했습니다! 자그마치 1분 30초!! 굉장한 기록이 탄생했습니다!!!”
지옥 코스를 통과한 건 황조운이 처음이었다.
황조운 덕분에 나는 확실하게 알아차렸다.
‘어디서 주작질이냐.’
딱 걸렸다, 네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