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백수가 된 헌터 (3)
도정수와 김 PD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직접 말로 듣지 않아도 이들의 마음의 소리가 어떤지 들리는 듯했다.
앗차, 망했다.
아마 이렇게 생각하고 있겠지.
-헌터 때문에 저와 제 가족들의 삶이 완전히 망가졌어요. 아마 당신은 모를 거예요, 제가 어떤 기분인지!
“저, 저기…… 잠시만요. 우선은 진정 좀 하시고요.”
도정수가 여성 시청자를 진정시키기 위해 나섰다. 그러나 격한 그녀의 감정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이후에도 나에게 온갖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헌터들은 다 나가 죽어야 한다느니 어쨌느니.
이거 참, 곤란하네.
스튜디오 분위기도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방청객들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은 얼굴을 했다.
스태프들도 당황하는 기색이 보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지금 이 촬영이 생방송이 아니라는 점일까.
만약 생방송이었다면, 방송 사고 제대로 났을 것이다.
이건 나중에 얄짤없이 편집되겠군.
가만히 있을까 하다가, 도중에 어떤 아이디어 하나가 뇌리를 스쳤다.
스태프가 전화를 돌리기 전에.
“여보세요, 강태오입니다.”
내가 먼저 나서기로 했다.
내 이름을 듣자마자 여성의 목소리 톤이 또 한층 상승했다.
-당신 때문에 우리 가족이……!
“일단 진정하시고요. 구체적으로 어떤 피해를 보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이 자리에서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원인을 알아야 문제를 해결하는 법이다.
마냥 ‘헌터들은 죄다 쓰레기다!’라고 외치는 건 옳은 행동이 아니었다.
여성도 뒤늦게나마 감정을 추스른 모양인지 내 말에 따르기 시작했다.
-헌터들이 몬스터와 싸울 때, 제 남편은 큰 부상을 당했어요. 지금도 병원에 입원해 있고요. 게다가 집도 다 부서졌고, 갈 곳이 없게 되었어요.
“그런 일이 있었군요.”
-레이드 시대가 종결되었다고 기뻐할 때, 저희 가족들은 병원에서 남편을 부여잡고 하염없이 울었어요. 평화의 시대가 왔다고 하는데, 도대체 뭐가 평화로운가요?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이번에 피해를 입은 분들에게 정부가 따로 보상액을 지급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혹시 얼마 받으셨나요?”
지원금이 넉넉했다면 생활고로 어려움을 토로하진 않았을 것이다.
내 질문을 받은 여성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이후, 무거운 한숨과 함께 구체적인 액수를 토로했다.
-……5백만 원이요.
“터무니없이 적은 액수군요.”
집 잃고, 남편이 큰 부상을 당했다. 그런데 이 모든 걸 고작 5백만 원으로 해결한다는 건 말이 안 됐다.
이러니까 사람들이 정부 욕을 하는 거지.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왜요, 모욕죄로 고소라도 하시게요?
“아니요. 그런 용도로 묻는 거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여성을 안심시켜 줬다.
내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모두가 다 기정사실이 될 수밖에 없었다.
비록 생방송이 아니라 하더라도 거의 백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내 말을 실시간으로 듣고 있었으니까.
여성도 그걸 아는지 내 요청에 따라 순순히 이름을 밝혀 왔다.
-이희진이에요.
“희진 씨, 나중에 제가 이 전화번호로 따로 연락을 드릴게요. 그때 계좌 번호 하나만 보내 주세요.”
-계좌 번호는 왜요?
“제가 후원해 드리려고요.”
-네……???
방청석이 크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제가 희진 씨의 남편분이 무사히 퇴원할 때까지 병원비를 지원해 주고, 집도 역시 새로 마련하게끔 도와드리겠습니다.”
-왜 당신이 그걸…….
그냥 전화 끊고 편집할 수도 있었다.
하나 그렇게 되면 재미없어진다.
모처럼 내가 방송에 나오지 않았는가.
그리고 이번 편은 무조건 내가 하드 캐리를 하기로 결심했다.
그러기 위해선 이슈가 필요하다.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자극적인 이슈가.
“몬스터를 사냥하는 건 헌터의 일입니다. 헌터가 몬스터를 사냥하는 이유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함이죠. 그런데 몬스터와 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민간인에게 피해가 발생했고, 그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안 이상, 가만히 넘어갈 수 없습니다. 전 이런 마음가짐으로 헌터 생활을 해 왔어요.”
-…….
“헌터들이 나쁜 건 아닙니다. 희진 씨를 위해 목숨을 내걸고 싸우는 존재 역시 헌터라는 점을 그저 알아주셨으면 해요. 제가 지원금을 보내 드리는 이유는 단지 이것뿐입니다.”
잠시 말을 잇지 못하는 여성 시청자.
내가 생각해도 참 멋진 말들이다.
스튜디오 전체가 숨을 죽이며 우리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김 PD를 비롯해 진행자인 도정수와 이진주, 스태프들과 방청객들 중 누구 하나도 이 대화에 끼어들지 못했다.
이후, 여성 시청자의 한결 밝아진 목소리가 스튜디오를 가득 채웠다.
-미안해요. 제가 지금까지 잘못 생각했었나 봐요.
“아닙니다. 그럴 수 있죠.”
미션 클리어.
이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저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진 것뿐이었다.
통화를 종료한 후,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자, 다음 시청자분 연결해 주시죠.”
게스트로 초청된 난 어느 순간 진행자 역할까지 도맡아 하고 있었다.
* * *
드디어 녹화 촬영이 종료되었다.
오전에 이곳 촬영장을 찾았는데, 벌써 어두컴컴해지기 시작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출연진과 스태프들이 서로 인사를 주고받았다.
그러는 사이에 김청호 PD가 나와 승훈이 형이 있는 곳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저기, 강태오 님! 아까 일 때문에 그러는데…….”
“태오 씨라고 편하게 불러 주세요, PD님.”
“그럼 태오 씨…… 아니, 그보다 아까 전화 통화하실 때 했던 말씀 말입니다만. 너무 무리 안 하셔도 됩니다. 굳이 태오 씨가 부담하실 필요까진…….”
“아니요, 괜찮습니다. 그냥 제가 개인적으로 기부하고 싶었던 것뿐이니까요. 그리고 회사 측에서도 도와준다고 했어요.”
“네?! BOO에서도요?”
김 PD의 시선이 승훈이 형 쪽으로 향했다. 그러자 승훈이 형이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저랑 한마디 상의도 없이 멋대로 저런 말을 해 버렸더라고요. 그래도 소속사 입장에서 가만히 넘어갈 수도 없는 거 같아서 대표님이랑 방금 통화해서 합의 봤습니다. 태오 이름으로 회사가 책임지고 기부금 전달하기로요.”
“그래도 좀…….”
“괜찮습니다. 김 PD님께서 그렇게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태오, 이 녀석이 하는 일은 매번 이랬으니까요.”
역시 승훈이 형. 나에 대해서 너무 잘 안단 말이야.
승훈이 형이 이렇게까지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김 PD는 여전히 당황해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여기서 나는 쐐기를 박기로 했다.
“대신에 김 PD님이 좀 도와주세요.”
“네, 말씀만 해 주세요. 이번 일에는 저희 쪽 책임도 크니까요.”
그제야 김 PD의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간단한 겁니다. 기자들한테 제가 이번에 한 일, 기사로 슬쩍 풀어 주세요.”
“기자들한테 풀라고요?”
“네. 그리고 이희진이라는 사람과 나눴던 대화 내용은 절대로 편집하지 마시고요. 그 부분은 특별히 강조해서 방송에 내보내 주세요.”
“그거야 상관없습니다만…….”
때마침 지나가던 도정수가 우리의 대화를 엿들었는지 불쑥 몇 마디를 첨가했다.
“그런 일이라면 저도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이래 봬도 아나운서 출신이다 보니 언론 쪽에 알고 지내는 사람이 많거든요.”
김 PD의 얼굴에 다시 화색이 돌았다.
“그럼 부탁 좀 드릴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나의 오늘 목적은 이번 방송을 통해 최대한 화젯거리를 많이 만드는 것이었다.
이런 기사를 적당히 흘려보내게 되면, 본방에 대한 관심이 샘솟을 터.
‘이번 주에 본방 꼭 사수해야지.’
벌써부터 송출 당일이 기대되었다.
* * *
녹화가 끝난 후.
정확히 3일째가 되었을 때, 방송이 나가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인기 포털 사이트 검색어 순위에 두 개의 단어가 갑작스럽게 등장했다.
첫 번째는 내 이름인 강태오.
그리고 두 번째는 2억이라는 금액이었다.
스마트폰을 통해 인터넷 기사들을 쭉 훑었다.
[SSS급 헌터 강태오. 방송 도중에 2억 원 기부!]
[강태오,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대신 하다!]
[인류의 구원자, 강태오. 마음씨도 역시 구원자!]
[방송 중에 ‘2억 원 기부’, 대체 무슨 사연이?]
내 기부 사실이 벌써부터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해 퍼지기 시작했다.
화제성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 정도까지 관심이 급등할 줄은 예상 못 했다.
생각보다 나란 존재가 대중에게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는 걸 이번 일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이렇게 하면 사람들은 궁금해서라도 본방송을 보려고 하겠지.
때마침 내 집을 방문한 승훈이 형이 늦은 저녁 식사를 하며 물었다.
“출연료를 받기는커녕 2억을 날려 먹다니, 너란 녀석도 참 대단하다.”
“형, 저번에도 말했잖아. 이건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앞으로 헌터가 사람들에게 주목받을 만한 일은 없어질 것이다.
싸워야 할 몬스터도 사라졌으니까. 헌터의 존재 의의는 사실상 퇴색되었다 봐도 옳았다.
난 개인적으로 내가 얻은 이 인지도를 끝까지 유지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대중의 입에 끊임없이 오르락내리락해야 했다.
내 말에 승훈이 형이 피식 웃음을 토해 냈다.
“헌터가 아니라 연예인 같다, 너.”
“내가?”
“그래, 연예인이라는 게 본래 그런 거 아니냐. 대중의 관심을 먹고 사는 자들.”
“하긴, 그렇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대중이 나를 기억해 주고, 나를 찾아 줘야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이 꾸준히 늘어난다. 그래야 나의 이 부지런 떨고 싶은 욕구를 채울 수 있을 테니까.
이렇게 따지면 연예인이랑 별반 다를 바가 없는 건가.
“흠, 연예인이라…….”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애초에 내 장래희망은 가수가 되는 거였다.
지금은 물론 옛날 꿈으로 남게 되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방송 관련 일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흥미가 생겼다.
그리고.
‘백수 헌터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싶진 않았으니까.’
승훈이 형 역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번 기회에 방송 한번 본격적으로 해 볼래?”
“내가?”
“저번에 그랬잖아. 너, 가수가 되는 게 꿈이었다고. 혹시 모르지. 방송 활동 열심히 하다가 나중에 인기 높아지면 앨범도 내고, 그렇게 될지.”
승훈이 형의 이 말이 나를 사로잡았다.
방송에 대한 꿈.
레이드 시대가 끝났으니.
이제는 이 꿈을 마음껏 펼칠 수가 있게 되었다.
게다가.
“언론들도, 대중도 모두가 다 너를 주목하고 있어. 어쩌면, 원래 네가 꾸었던 꿈을 이루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일지도 몰라.”
형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사실이니까.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나도 어느 정도 욕심이 있다.
고민이 길어 봤자 무엇 할까.
“알았어. 그럼 일단, 방송 쪽 일에 집중하는 것으로 할게.”
“오케이. 나도 그렇게 일정 짜 보마.”
처음에는 데이브 녀석에게 욱해서 한 방 먹일 생각으로 방송 출연을 결정지은 거였는데.
어쩌다 보니 전문 방송인으로 가닥을 잡게 되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 형.”
“나야말로. 아, 그렇지. 라이프북에 뭐라고 말이라도 남겨 줘라.”
“왜?”
“들어가 보면 알 거야.”
나의 SNS 계정은 승훈이 형이 관리해 주고 있었다.
주로 사용하는 SNS는 아까 승훈이 형이 말했던 라이프북이다.
오랜만에 직접 접속을 했다. 그러자 알람이 수도 없이 뜨기 시작했다.
“우왓, 이게 뭐야!”
댓글 5,372개. 좋아요 8만여 개.
난리도 아니고만.
“SNS에서 스타 됐더라, 너.”
“그러게. 전혀 몰랐네.”
일일이 답해 줄 순 없었다. 아무리 할 일을 찾아 부지런함을 떠는 나라 하더라도 5,372개의 댓글에 하나하나씩 답하는 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어떤 식으로 내가 특정 민간인에게 2억이라는 거금을 기부하게 되었는지 궁금해하는 내용이 가장 많았다.
하기야,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기자들도 내가 2억을 기부했다고만 알고 있지, 어떤 이유로 인해 기부까지 하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일부러 이 정보를 흘리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본방 사수’를 하게끔 유도하기 위해서였다.
스마트폰을 터치해 한글 자판을 띄웠다. 바삐 움직이는 내 손놀림을 포착한 승훈이 형이 내용을 물었다.
“뭐라고 남기게?”
“별거 없어.”
궁금증을 더 증폭시키기 위한 댓글만 남겼을 뿐이었다.
-강태오 : 이번 주 금요일! 도정수의 미팅 타임 본방에서 확인해 주세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