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헉…… 헉…….”
거친 호흡이 절로 내쉬어졌다.
팔과 다리는 의지와 상관없이 부르르 떨렸다.
검 끝에 흐르는 붉은 피. 그리고 눈앞에 쓰러져 있는 거대한 생명체.
레이드 시대가 열리고. 마지막 최종 보스급 몬스터, 일명 ‘드래곤’이 쓰러졌다.
이 녀석을 쓰러트리기 위해 지난 8년간 얼마나 많은 헌터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을까.
이제 고작 25세에 불과한 나로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더 이상 헌터들은 무기를 들지 않아도 된다.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며 지내지 않아도 된다.
“잘했어, 태오야!”
“얌마, 난 니가 해낼 줄 알았어!”
동료 헌터들이 내게 다가와 어깨를 토닥였다.
울먹이는 이들도 있었다.
카메라 플래시가 사방에서 터졌다. 드래곤의 피를 뒤집어쓴 나에게 모든 카메라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인류 최강의 SSS급 헌터, 강태오. 레이드 시대에 마침표를 찍다!]
벌써부터 각종 기사의 헤드라인이 눈이 훤했다.
인류의 위기는 끝났다.
하지만 이 순간, 난 이런 걱정이 들었다.
‘이제…… 뭐 먹고살지?’
인류는 평화를 되찾았다.
그와 동시에 최강의 헌터라 불렸던 나, 강태오는 하루아침에 백수가 되어 버렸다.
* * *
8년 전, 레이드 시대의 시작을 알렸던 런던 게이트가 열릴 당시.
나는 연예인이 되기를 꿈꾸는 평범한 가수 지망생이었다.
그러나 게이트를 통해 넘어온 수많은 몬스터들은 이런 나의 꿈을 앗아 가 버렸다.
연예계고 뭐고, 일단은 생존이라는 것에만 집중해야 했다.
그러던 내 삶은 어느 순간, 180도 크게 바뀌었다.
[삐빅! 헌터 적성자입니다.]
현대 무기도 통하지 않는 몬스터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헌터라는 존재가 지닌 특별한 능력이 필요했다.
그리고 우연의 일치인지, 헌터 적성 능력 평가를 받은 나는 잠재력 최고 등급인 SSS급을 받으면서 헌터로 데뷔하게 되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바로 SSS급 헌터, 강태오다.
처음에 무기를 들고 몬스터를 죽였을 때의 감각이 아직도 잊히질 않는다.
그저 노래하고, 춤추고.
이것밖에 하지 않았던 내가 무언가의 생명을 빼앗는 일을 하게 되다니.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살기 위해서는, 그래야 했으니까.’
그래서 나는 그 좋아하던 가수의 길을 포기하고 헌터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8년 후.
드래곤을 쓰러뜨린 뒤, 바로 다음 날 아침.
문을 열자마자 수많은 기자들이 날 기다렸다는 듯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강태오 씨! 드래곤을 쓰러트렸을 때의 상황은 어땠나요?!”
“본인의 손으로 레이드 시대를 종결시킨 소감 좀 말씀해 주세요!”
“향후의 계획은?!”
“혹시 정해진 일정 같은 건 있습니까!”
엊그제부터 기자들은 내 집 앞에서 이런 식으로 진을 치고 있었다. 이미 기자회견 때 다 실토했음에도 불구하고 맨날 이런 식으로 나를 괴롭혔다.
하, 귀찮아 죽겠네.
좀 쉬게 해 주면 어디가 덧나나.
“질문 있으면, 회사 통해서 연락 주세요. 정식 인터뷰 요청도 그쪽을 통해 해 주시고요. 그럼 이만.”
“가, 강태오 씨!!”
“잠시만요!!”
현관문을 닫으려 하자 기자들이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저들을 상대할 생각은 없었다.
우선은 휴식.
앞으로의 일정은 그다음에 천천히 고려해 볼 예정이었다.
내가 몸을 담고 있는 헌터 매니지먼트 측에서도 일단 쉴 것을 권유했다.
드래곤을 잡기 위해 3일 밤낮을 설치며 전투를 벌였다.
처음에는 드래곤보다 내가 먼저 죽는 거 아닐까 하고 생각했으나, 결과적으론 나의 승리로 돌아갔다.
이계의 틈을 생성하는 원인체였던 드래곤을 제압했으니,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은 몬스터로부터 위협받지 않아도 되었다.
동시에 헌터들도 평온한 일상을 되찾았다.
다만 내 나이, 25세. 아직 미래도 창창하다.
그런데 벌써부터 백수가 되어 버린 것이다.
물론, 모아 놓은 돈은 상당수 있었다. 강한 몬스터를 쓰러트릴 때마다 더 센 보수를 받아 왔었으니까.
헌터 랭킹 1위였기에 상금 랭킹도 독보적인 1위를 달렸다.
축적해 놓은 돈도 많고.
“굶어 죽을 걱정은 없기야 하지만.”
뭔가 아쉽다.
무대를 마친 배우가 느끼는 공허함 같은 거라고 할까.
그런 마음이 드니, 약간은 답답한 심정도 들었다.
“이제 와서 ‘몬스터가 다시 나타나게끔 해 주세요.’ 하고 빌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만약 정말로 그랬다간, 나에게 엄청난 비난의 화살이 쏟아질 것이다.
그건 피하고 싶었다.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할 때였다.
띵동!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또 기자들인가?
무시를 했지만, 이후에도 초인종 소리는 계속해서 날 귀찮게 했다.
띵동, 띵동, 띵동!!!
“집착이 어마어마하네.”
그래도 계속 무시하면 나만 손해일 거 같아서 다시 현관문으로 향했다.
문을 여는 순간, 예상치 못한 인물이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잘 지냈냐, 태오야.”
“승훈이 형? 여긴 무슨 일로 왔어?”
이승훈. 내가 소속되어 있는 헌터 매니지먼트 회사, BOO에서 헌터 관리 업무를 소화하고 있는 형이었다.
나의 매니저 같은 형이라고 할까.
“자세한 건 안에 들어가서 이야기하자. 주변에 기자들 아직도 많다.”
승훈이 형을 보는 것이 꽤 오랜만인 것처럼 느껴졌다. 드래곤과의 전투가 시작된 이후로 처음이니까, 대략 일주일밖에 안 되었는데도 말이다.
소파에 앉자마자 승훈이 형이 곧장 입을 열었다.
“그래, 몸은 좀 괜찮고?”
“어, 휴식기 가지면서 피로만 풀면 될 거 같다고 의사 선생님이 그러시더라.”
“하여튼 너도 대단하다. 3일 동안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으면서 그 무시무시한 드래곤과 싸우다니. 게다가 이기기까지 하고. 진짜 인류의 구원자구나.”
“그만해. 내가 그런 호칭, 별로 안 좋아하는 거 형도 잘 알잖아.”
엄밀히 말하자면 싫어하는 건 아니고, 그냥 좀 부담스러웠다.
사실 최강의 헌터라고 붙은 별칭도 이런 이유에서 좋아하진 않았다.
헌터 랭킹 부동의 1위였기에 이런 소리를 듣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싫은 건 싫은 거였다.
“자, 받아라.”
“뭔데?”
“형이 주는 소소한 선물.”
내용물을 확인하자마자 익숙한 포장지가 눈에 띄었다.
“아이스크림. 태오, 네가 좋아하는 가게 거다.”
“오, 진짜?”
“물론.”
“초코 맛?”
“당연하지, 얌마. 내가 너랑 알고 지낸 지가 8년이 넘는다. 네가 좋아하는 음식 정도는 다 꿰차고 있어.”
“역시 승훈이 형이야.”
승훈이 형에게 엄지를 추켜올려 줬다.
형은 나와 마음이 잘 맞는다. 그래서 난 헌터로, 형은 매니저로 같이 호흡을 맞춰 왔다.
앞으로도 그랬으면 좋겠지만…….
“회사에선 뭐래?”
“뭐가?”
“앞으로 헌터들이 해야 할 일이 없어졌잖아. 이제 헌터들은 백수 됐고, 회사 운영도 더 이상은 의미가 없지 않아?”
“흠, 그렇긴 하지.”
인류 입장에선 지금 당장은 기뻐할 수 있었다.
그러나 헌터 매니지먼트, 그리고 헌터들은 솔직히 말해서 마냥 기뻐할 수는 없다.
존재 의의가 사라진 것과 마찬가지니까.
몬스터를 쓰러뜨리기 위해 평생 헌터 외길을 걸어왔던 자들이 이제 와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건 헌터들을 관리하는 헌터 매니지먼트들도 같은 입장이었다.
“안 그래도 그것 관련해서 너한테 이야기 좀 하려고.”
승훈이 형이 수첩을 꺼내 들었다.
내 스케줄을 체크할 때 주로 애용하는 작은 수첩이었다.
“일단은 방송에 좀 나가라.”
“방송? 왜?”
“요즘 방송사 측에서 헌터들을 섭외하느라 난리도 아니라는 정보가 있어.”
“뜬금없네.”
“아니지, 뜬금없진 않아. 오히려 이건 당연한 현상 아니냐.”
승훈이 형이 내 말에 반론을 가했다.
“레이드 시대가 끝났으니, 당분간 대중의 관심은 그간 기밀 유지가 되었던 몬스터, 던전 이야기에 집중될 거야. 정부도 더 이상 던전과 몬스터에 관련된 정보를 숨길 필요가 없게 되었으니까. 실제로 기밀 유지 조항이라든지 이런 것에 더 이상 터치 안 한다고 공문이 내려왔어.”
“그 꽉 막힌 사람들이 정말 그런 말을 했어?”
“더 이상 기밀 정보로서의 가치가 없어졌으니까.”
시대가 변하니 방침도 변하나 보다.
뭐, 나야 크게 상관없지만.
“방송사가 원하는 건 그거야. 직접 현장에서 뛰었던 헌터들이 나와서 대중이 몰랐던 썰 좀 풀어 달라는 거지. 그것만큼 자극적인 것도 없을 테니까.”
잠시 냉수로 목을 축인 승훈이 형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러면 시청률도 확 올라갈 테고. 여기에 더해서 썰 풀어 주는 그 헌터가 인류의 구원자라고 한다면, 시청률이 더 올라가지 않을까?”
“그게 PD들의 생각이다 이거지?”
“어. 우리 회사 측에선 이 열기가 식기 전에 당분간은 이쪽으로 최대한 돈 땡겨 보자는 심산이지. 넌 모르겠지만, 방송국 측에선 지금 네가 섭외 1순위야. 그리고 너, 말솜씨가 전혀 없는 편도 아니잖아?”
“그야 그렇지.”
브리핑이라든지 인터뷰 같은 것 등도 자주 해서 그런지 말재간은 좀 있는 편이었다.
“방송국에 얼굴 자주 비치면서 인지도 좀 올려 두면 편할 거다. 훗날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강연 같은 것도 할 수 있고. 책도 출간하고. 이런 것도 나쁘지 않겠지. 어떠냐?”
음.
솔직히 말하자면.
“별로 구미가 안 당기는데.”
바쁘게 움직이려고 하던 승훈이 형의 펜이 멈췄다.
“왜? 네가 가서 말 조금만 털어 줘도 시청률 30…… 아니지, 한 50퍼센트는 찍을 거 같은데.”
“그건 너무 오버고. 당분간은 머리 좀 식히면서 지내려고. 그러면서 앞으로 뭐 하면서 살지 생각도 좀 해 보고.”
시간과 돈, 그리고 명예.
지금의 내겐 어느 것 하나 부족한 게 없다.
단지 신경 쓰이는 게 하나 있다면.
이제는 헌터로서의 내 존재 의의가 사라진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과 공허함. 이 정도가 다였다.
승훈이 형은 작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미안하다. 안 그래도 너, 많이 피곤할 텐데. 내가 괜히 이런 말 꺼낸 거 같네.”
“괜찮아, 신경 쓰지 마.”
오히려 나를 위해서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것도 잘 안다.
승훈이 형은 예전부터 내가 세운 공적만큼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항상 투덜거렸기 때문이다.
방송 활동에 집중하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내 활약상들도 대중에게 널리 퍼질 터.
그러나 나는 딱히 그런 거에 욕심은 없다.
세계를 구한 영웅이라고 칭송받는 것도 약간 부끄러운데.
그걸 내 입으로 공연히 떠들고 다니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은 TV에서 흘러나오는 모 토크 프로그램에 의해 채 얼마 가지 않게 되었다.
“어? 마침 데이브 나오네.”
데이브 리.
한국계 미국인으로, 나와 같은 헌터로 일했던 남자다.
내가 부동의 헌터 랭킹 1위라고 불릴 때, 데이브 리는 만년 2등이라는 놀림 아닌 놀림을 당하곤 했었다.
그런 데이브가 TV에 다 나오고, 참 신기하다.
승훈이 형도 궁금한지, TV의 볼륨을 좀 더 키웠다.
-다시 한번 저희 프로그램에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데이브 씨. 요즘 한창 바쁘시죠?
-네, 뭐, 그렇죠.
-미국에서도 TV 출연 요청이 많이 들어오는 것으로 아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한국에 계속 머무르실 거라고 하셨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혹시 이유가 있을까요?
잠시 대답하기를 망설이던 데이브가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그냥 제 또 다른 모국인 한국이 좋아서 그렇습니다, 하하하.
승훈이 형이 내가 대신 하고 싶은 말을 꺼냈다.
“뻥치네. 태오 견제하려는 심산이 빤히 보이는데, 뭐.”
만년 2등이라는 게 트라우마로 남아서일까, 데이브는 사사건건 내가 하는 일에 시비를 걸곤 했었다.
레이드 시대가 종결되고. 헌터들이 무대에서 내려옴과 동시에 데이브는 또 다른 무대 올라서 어떻게든 나를 제치고 자신을 돋보이게 만들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사실 드래곤 토벌 작전은 제가 마무리 지을 계획이었습니다. 강태오 그 자식…… 어흠, 죄송합니다. 강태오 헌터가 자기 혼자서 지나치게 시간을 끌면서 공적을 전부 가로채 버린 탓에 제가 활약할 무대가 사라져 버린 게 너무 아쉽더라고요.
X랄하네.
만약에 내가 그 자리에서 드래곤과 일대일 혈투를 벌이지 않았더라면, 세계는 멸망했을 것이다.
일분일초를 다투는 전장에서 다음 기회니 뭐니 그런 걸 논할 시간이 어디 있겠나.
승훈이 형도 기가 찬 모양인지 여러 차례 혀를 찼다.
“데이브 저 녀석, 너 싫어하는 건 여전하네.”
이제는 그러려니 하려고 했었지만.
설마 레이드 시대가 종결되고 난 이후에도 저런 식으로 나를 도발할 줄은 몰랐다.
내 성격상.
‘당하고만 살진 않지.’
TV에 나와서 자기 자랑만 늘어놓는 식으로 저렇게 입을 털고 있는 데이브를 보니, 순간적으로 발끈했다.
“형, 내가 지금 무슨 말 하고 싶어 하는지, 형은 알지?”
내 말을 듣자마자 승훈이 형이 내려놓았던 팬을 다시 들어올렸다.
“알다마다. 스케줄 빠르게 잡아 보마. 시청률 잘 나오는 프로그램들 위주로.”
이래서 내가 승훈이 형을 싫어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