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신이 되어버렸다.
그들이 사라지자 다시 시간이 돌아가기 시작하였다.
그곳에 남아있던 사람들은 상념에서 깬 듯이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왜, 우리가 여기에 있는 거지?”
“그, 그러게요? 아…! 머리가 깨질 것 같아요.”
레이나가 인상을 쓰며 머리를 매만졌다.
그녀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 또한 극심한 두통을 겪었다.
분명 마왕과 천족 무리가 있었는데 그들은 무력했다.
8서클의 마법사인 아드리안이 있었고 7서클의 마법사도 셋이나 있었다. 비록 그들 중 하나는 죽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왕에게 치명상 하나 줄 수 없었다.
하지만 칼슨이 그들을 물리쳤다.
“드레이크 공작이 이 세상을 구했군. 그것도 자신을 희생해서 말이야.”
“크흐윽, 영주님!!”
그들은 갑자기 칼슨의 죽음을 슬퍼하였다.
죽지도 않은 칼슨을 그들은 죽은 줄 알고 있었다.
사실 그들의 기억은 관리자에 의해 조작되었다.
칼슨이 압도적으로 마족과 천족을 쓰러트린 사실이 아닌 그의 희생으로 물리친 것으로.
자신의 생명력을 산화시켜 그 힘으로 마왕과 천족들을 모두 쓰러트리고 그대로 죽어버렸다고 말이다.
그곳에 있는 이들 모두가 그렇게 기억하고 말았다.
그렇게 이곳에서 칼슨은 세상을 구한 영웅이 되었다.
그리고 훗날 그는 대륙의 역사에 기록되었다.
모든 이들이 그를 찬양하며 기억하였다.
마치 불멸의 존재인 신처럼 말이다.
* * *
신계.
신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그곳은 끝이 없는 지평선이 사방에 펼쳐져 있었다.
마치 끝없이 펼쳐진 사막처럼 말이다.
하지만 바닥엔 모래 대신 새하얀 대리석이 깔려있고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넓게 퍼져있었다.
하늘에는 밤하늘의 우주가 그대로 비쳤는데, 신기하게도 별빛 때문인지 어둡지 않고 환하였다.
마치 현실 같지 않은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그곳.
비현실적인 그곳에 갑자기 두 명의 사람이 섬광과 함께 나타났다.
“커허억!”
백금발의 남성이 자리에 주저앉으며 헛구역질을 하였다.
상당히 고통스러웠는지 얼굴에 핏줄이 잔뜩 서 있는 남성.
그는 바로 칼슨이었다.
그 옆에는 금발의 남성이 서 있었다.
바로 관리자라고 불린 남성이었다.
그가 칼슨을 이곳으로 데려왔다.
그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칼슨을 보며 웃었다. 그러면서 말을 하였다.
“하하, 괜찮아? 차원이동을 처음 겪는 신이라면 다들 그래. 나도 이전에 그랬고. 특히 신계로의 이동은 걸리는 제약들이 상당히 많아. 그나마 신이 되어서 이 정도지. 인간이었다면 육신이 버티지 못하며 그대로 가는 실처럼 뽑아져 버렸을 거야.”
별거 아니라는 듯이 관리자는 말하였지만 칼슨은 정말 죽는 줄 알았다.
난생처음 겪는 엄청난 중력과 핵폭발의 몇십 배는 될 법한 파괴 에너지, 그리고 난생처음 보는 갖가지 특이한 힘들이 끊임없이 그의 몸에 부딪히며 고통을 주었다.
“씨발!”
난데없이 튀어나와 버린 욕설.
신이 되면서 감정이 마모되었다고 생각되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상상도 못 할 고통이 칼슨에게 쏟아져 들어오면서 철벽같던 정신력이 한순간 무너졌다.
그리고 잠시였지만 칼슨은 자신의 검으로 관리자를 죽여 버릴까도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 마음을 아는 듯 관리자는 손을 저으며 말하였다.
“나를 죽이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접어두라고. 아쉬고르는 신을 죽일 수 있는 검이지만 실제로 신을 죽일 순 없어.”
“…….”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신을 죽일 수 있는데 죽일 순 없다니.
칼슨이 아무 말이 없자 그는 조용히 미소 지으며 손을 폈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갑자기 검이 만들어졌다.
보랏빛 검신이 돋보이는 검.
바로 자신의 검인 아쉬고르였다.
자신과 같은 검을 들고 있는 것을 보자 칼슨의 마음에 잠시 동요가 일었다. 그 모습을 본 관리자는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신기하지? 이 검은 웬만한 신들은 다 가지고 있어. 왜 그런지 아나?”
“…….”
“이건 신이 삶이 무료해져 자신을 죽이고 싶을 때 쓰는 검이거든. 한마디로 자살용 검이라고. 아마 네가 가지고 있는 검은 신들 중 누군가가 장난질을 쳐놓은 상태로 세상에 풀어놓은 거야. 단순한 재미로 말이야.”
“뭐라고?”
관리자의 말에 칼슨은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스킬로 봤을 때는 1,500년 전 드워프가 만든 검이라는 설명이 있었다. 그런데 신들의 장난질로 놓였던 검이라니.
역시나 관리자는 바로 그 의문에 답을 주었다.
“네가 보는 상태창이 과연 온전히 사실만 알려주었을까?”
“뭐? 그게 도대체 무슨…?”
그의 말에 칼슨은 말을 잇지 못하였다.
그동안 상태창을 절대적으로 믿고 있었던 터라 관리자가 던진 말은 칼슨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그런 칼슨을 보며 관리자가 말을 이었다.
“물론 사실은 맞지. 다만 만들어진 설정에 한해서 말이야.”
“만들어진 설정이라니? 그것이 대체 무슨 말이냐?”
“말 그대로야. 다만 그 검은 어떤 신이 좀 장난을 쳐놨어. 그래서 너 같은 오류 인자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이고.”
“…….”
그의 말에 따르면 그냥 이 세상 자체가 신들의 놀이터였던 것이다. 자신은 그들의 유희 중에 나온 만들어진 신이라는 것이고.
칼슨의 마음이 착 가라앉았다.
그렇게 아등바등 상태창과 메시지가 이끄는 대로 해왔건만 그게 다 신들의 유흥거리였다니.
자신은 그들의 재미를 위한 한낱 인형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기분이 막 더럽거나 하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그 덕에 자신 또한 신이 되었으니까.
문제는 관리자가 왜 자신을 이곳에 데려왔느냐는 것이다.
그 의문을 품자마자 그는 곧장 그에 대한 답을 주었다.
“그분께서 너를 보고자 하신다.”
그분? 전에 말했던 윗분이라는 자인가?
아마 관리자보다 상급의 신으로 보였다.
그러고 보니 인간이나 신이나 위아래가 있는 것은 똑같나 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얘가 이번에 신이 된 놈이야?”
시정잡배가 연상되는 다소 경박스런 말투.
하지만 그것과는 달리 그 소리에는 형용할 수 없는 힘이 느껴졌다.
귓가에 계속 맴돌면서 확실히 인식시키는 기분.
말 자체가 강제적으로 뇌 속에 파고드는 느낌이다.
칼슨이 고개를 돌려 그곳을 보니 갈색머리의 중년인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가벼운 린넨 옷을 입고 있었다. 의복이 화려하진 않았지만 때 하나 없는 새하얀 색이 무척이나 경건한 느낌이 들게 하였다.
그가 나타나자 관리자는 살며시 웃으며 대답을 하였다.
“예, 그렇습니다. 지배자시여.”
그 말을 들은 남성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다시 칼슨을 유심히 보았다. 단지 흩어봤을 뿐이지만 칼슨은 자신의 몸 구석구석이 파헤쳐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곧 그가 한쪽 눈썹을 치켜세우며 입을 열었다.
“흠, 자세히 보니까 이거 다른 차원에서 온 놈인데?”
“예? 다른 차원이라고요? 그게 무슨 말이십니까?”
그의 말에 관리자는 놀란 듯이 묻는다.
지배자는 피식 웃으며 그의 의문에 답해주었다.
“357델타 차원 알지? 베이모스가 지배자로 있는 곳. 이놈 거기에서 왔어. 육체는 우리 쪽 관할이지만 영혼은 영락없이 그쪽 꺼야. 언제 우리 쪽에 기어들어 와서 이 난리를 쳤는지 모르겠지만……. 아, 그러고 보니 베이모스 이 새끼가 전에 나 몰래 여기 왔을 때 그랬구먼.”
“아, 베이모스님 말입니까? 그분이라면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지배자의 말에 관리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였다.
이어서 지배자가 귀찮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건성으로 말하였다.
“그래, 그러니 빨리 거기로 보내버려. 그럼 그 새끼가 알아서 처리하겠지.”
“그, 그래도 신이 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우리 쪽에서 맡아야 하지…….”
“야, 지금 우리 차원에 자리 없는 거 몰라? 그럼 네 구역을 넘기던가?”
지배자가 다소 신경질적인 태도로 으름장을 부리자 관리자는 잠시 굳은 표정을 하며 곧장 답하였다.
“흠, 알겠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처리하겠습니다, 지배자님.”
말을 마치자 관리자는 다시 칼슨을 보며 말을 하였다.
“자, 들었지? 너, 이쪽 출신이 아니라고 하네. 그러니 원래 있던 곳으로 가야겠어.”
그 말을 들은 칼슨은 조금 어처구니가 없었다.
무슨 짐짝 취급하듯 이쪽의 의사 따윈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말을 하였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한마디 하였다.
“지금 뭐 하는 거지? 내가 그리 우습나?”
차분히 말하였지만 경고가 다분한 말.
이에 관리자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너무 기분 나빠 하지 말라고. 우리야 자리가 없어서 보낸다고 하지만 그쪽에는 자리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아무튼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지야. 다음에 기회가 돼서 또 볼 수 있었으면 좋겠군. 그럼 그곳으로 가자고 내가 안내해 줄게.”
“하! 이런 개 같은 새끼들!”
욕을 내뱉은 칼슨은 그대로 검을 휘두른다.
타아앙!
섬광같이 빠른 속도였지만 상대는 칼슨과 똑같은 검으로 그의 공격을 막아내었다.
그리고 차가운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어이, 이쯤 하라고. 우리도 어쩔 수 없이 이러는 것이니까.
“엿이나 까잡숴!”
상대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느낀 칼슨.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을 압도하는 느낌도 아니었다.
끝까지 밀어붙인다면 쓰러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뒤에 있던 지배자가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하, 고놈 성질 더럽네. 하긴 357델타 출신이라 그런지 성깔이 있어. 베이모스 새끼도 그런데 네놈도 똑같네, 아주 똑같아.”
조금 짜증이 섞인 목소리.
그러나 그에 실린 힘은 도저히 가볍지 않았다.
언변만으로도 자신의 몸을 압박하는 게 느껴졌다.
앞에 있는 관리자는 그나마 해볼 만했는데, 뒤에 있는 저자는 아니었다. 급이 차이가 확실하게 느껴졌다.
칼슨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다시 이어진 지배자의 말.
“암튼 미안하게 됐지만 우리로선 어쩔 도리가 없어. 그러니 이제 그만 난동 피우고 네놈 동네로나 가라.”
그 말과 동시에 손가락을 튕겼다.
딱!
그러자 칼슨의 모습이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 * *
357델타 차원의 신계.
그곳의 지배자인 베이모스.
그는 오랜만에 자신의 친우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그 친우는 바로 708알파 차원의 지배자 알바트로스.
그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네가 싼 똥은 네가 치워라.”
참으로 경박한 말투.
그놈다웠다.
그 말 한마디로 베이모스는 그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예전에 자신이 몰래 심어두었던 영혼.
그것이 이곳으로 오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육신이 파괴되어 소멸될 위기에 있던 그것을 재미 삼아 다른 차원의 육신에 심어두었다.
물론 친우인 알바트로스 또한 자신이 뭔가를 했던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몰래 영혼을 심은 것은 알지 못하였다. 게다가 베이모스는 그 영혼의 성장을 위해 그곳 시스템 일부를 건드려 그에게 가이드라인을 제공해주었다.
그래 놓고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알바트로스의 말을 듣고 바로 직감하였다.
그 영혼이 결국 신이 되어 이곳에 오고 있다는 것을.
그는 새로운 신을 맞이하기 위해 기쁜 마음으로 기다렸다.
잠시 후 그곳에 칼슨이 나타났다.
그리고 잔뜩 인상을 쓰며 외쳤다.
“이 씨발 새끼들아!”
난데없이 튀어나오는 칼슨의 욕설.
생전 처음 겪는 상황에 베이모스는 굉장히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