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화 마왕 강림 (3)
머릿속을 때리듯이 울리는 음성.
고차원 존재가 보내는 의념에 모두들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부, 분노의 마왕, 아운!”
그것을 알아본 듯 아드리안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게다가 딱히 그의 말이 아니어도 다른 이들 또한 그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상상도 하지 못할 막강한 존재감이 그들을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반 마족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압박감.
마왕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젠장, 왜 벌써 나타나고 지랄이야?’
갑작스런 마왕의 등장에 칼슨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저 차근차근 마족을 처리해서 검의 봉인이나 풀려고 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제 막 마족들을 상대해가며 신나게 카운트를 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최종 보스가 나왔으니 짜증이 확 밀려왔다.
원래 마왕은 부하들을 먼저 보내 용사들을 어느 정도 성장시킨 다음에 나오는 거 아니었나?
좀 상대할 수 있을 만할 때 나와야지, 지금부터 나오는 건 좀 반칙 아닌가. 아니 최소한 검의 봉인이라도 풀린 다음에 나왔으면 조금이나마 이해라도 하겠다.
이제 막 놈들에게 다가가는 초입부인데 벌써부터 대장이 나타나면 어쩌라는 말인가.
정말 해도 해도 너무했다.
‘씨발! 씨발! 씨발!’
속으로 사정없이 욕이 내뱉으며 엉킨 마음을 진정시켜본다. 칼슨이 그렇게 마음을 가다듬고 있을 때 마왕이 자신들을 향해 주먹을 날린다.
부우우우웅─
집채만 한 주먹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었다.
맞으면 즉사.
칼슨을 비롯한 일행들은 순간적으로 몸을 놀려 몸을 피하였다.
콰아아아아앙!
땅이 터져나가며 흙더미가 여기저기 튀었다.
“콜록, 콜록!”
“케헤엑!”
몸을 피한 일행들이 흙먼지를 삼키며 기침을 한다.
하지만 마왕의 공격은 한 번이 아니었다.
부우웅──
그때 아드리안이 손에서 마법이 펼쳐졌다.
《절대 방벽》
일반적인 방벽보다 몇 배는 두꺼운 무형의 막이 생성되며 마왕의 주먹을 막아섰다.
쿠우웅!
“크으으윽!”
아드리안이 신음 소리를 내며 고통스러워했지만 그가 생성한 방어막은 마왕이 내지른 주먹을 막아내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이어지는 마왕의 공격.
쿠우우웅! 쿠웅! 쿠우웅! 쿠웅!
“크어어어억!”
계속해서 마왕의 주먹이 방어막을 내리치자 피를 토하며 괴로워하는 아드리안. 이내 방어막에 미세한 실금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쩌저적─ 쩌어억─ 쩌억!
작은 실금은 충격이 가해질 때마다 점점 커지기 시작하더니 곧 전체로 퍼져나갔다.
파지지직! 파직!
그렇게 곧 깨지기 일보직전.
서걱─!
섬뜩한 절단음과 함께 마왕의 오른쪽 다리에 커다란 검이 지나갔다. 그리고 중심을 잃으며 몸이 기우는 마왕의 거체.
쿠우우우웅!
10미터나 되는 큰 몸체가 땅에 떨어지며 큰 진동과 동시에 흙먼지가 퍼져나갔다.
그리고 곧 먼지가 사라지면서 칼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젠장, 이건 여기서 보여줄 게 아닌데….”
짜증이 섞인 푸념 소리.
어느새 거대한 검을 든 철갑의 거인이 그곳에 나타났다.
그것은 바로 칼슨의 기간테스.
“허어, 저 강철 골렘은 무엇이지? 설마 드레이크 공작이?”
기간테스를 본 아드리안의 눈이 커졌다.
그 외 다른 섀도우즈의 멤버들도 마찬가지.
그들은 난생처음 보는 철갑 거인의 모습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게다가 철갑 거인은 하나가 아니었다.
“영주님! 이거 잘 안 움직이는…. 아! 된다! 이제 잘 됩니다.”
칼슨이 타고 있는 기체에 비해 좀 더 날렵해 보이는 디자인의 기간테스. 바로 에드가 타고 있는 2호기였다.
칼슨이 타던 기체에 이어 두 번째로 제작한 기체였는데 제작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칼슨의 기체에 비해 무게는 가볍고 조금 경량화 되어있는 게 주요 특징.
제작 후 몇 번의 테스트를 거친 후 칼슨의 아공간 주머니에 1호기와 같이 보관되어 있었다.
에드는 많이 타보지 않았는지 조금 어색한 동작을 하다가 이내 적응하며 제대로 움직였다.
그렇게 2기의 기간테스는 쓰러진 마왕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어느새 생성된 무형의 방어막.
콰아아앙! 쿠우우웅!
둘의 검격을 막아내며 굉음을 만들어내었다.
스으으으윽
어느새 몸을 일으킨 마왕. 다리 하나가 하나 없었지만 몸을 공중에 띄워서인지 어렵지 않게 서 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권능을 일으켜 다리를 재생시키려 하였다.
부우우우우욱───
검은 실들이 자라나며 새 다리가 만들어지는 듯하였다. 하지만 이내 그 실들이 부서져 가며 재생이 멈추었다. 아니 오히려 잘려진 부위마저 부서지기 시작해 아운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표정을 굳혔다. 그리고 그대로 자신의 허벅지 윗부분을 베어내었다.
그러자 부서져 가던 부위가 그대로 떨어져 나가며 땅에 떨어졌다. 그리고 다시 권능을 이용해 재생을 시도하였다.
부우우우우욱───── 파앗!
검은 실들이 다시 솟구쳐 나오며 순식간에 다리를 만들었다.
‘젠장!’
그것을 본 칼슨은 이를 악물었다. 오러 블레이드를 일으키며 사정없이 두드려보았지만 그가 만든 방어막은 너무나도 견고하였다.
이대로는 답이 없었다.
더욱 강력한 일격으로 단숨에 격파해야 했다.
그래서 검을 거두고 오러 블레이드를 고속으로 회전시켰다. 엄청난 오러가 소모되었지만 이제 그는 SSS급의 오러 보유자였다. 이 정도의 오러 소모는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위이이이이이이잉───
오러 블레이드가 고속으로 회전하면서 주변의 공기를 한껏 빨아들였다. 그로 인해 주변이 흔들리며 거친 바람이 몰아쳤다.
아운 또한 그것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또 다른 권능을 사용하였다.
하늘에서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들었다. 검붉은색의 불길한 느낌의 먹구름이었다.
그것은 천천히 회전하더니 곧 소용돌이처럼 변하였다.
그리고 그곳의 중심에서 붉은빛 덩이들이 떨어졌다.
그것을 본 아드리안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저 붉은빛 덩이 하나하나에서 자신의 마법인 파멸의 광선과 비슷한 기운이 느껴졌다.
절대적인 파괴의 기운.
만약 그렇다면 상당히 위험하였다.
그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모두 저 빛 덩이들을 막으시오! 하나라도 이곳에 떨어지면 안 되네!”
아드리안의 외침에 모두들 진땀을 흘렸다.
그의 당혹스런 목소리를 듣건대 저것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있는 힘껏 그것을 막아내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아드리안이 먼저 그 위로 8서클 마법인 절대 방벽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그의 뒤를 이어 7서클 마법사 셋이 방벽 마법으로 그것을 보조하였다.
머리 위에 막강한 보호막이 펼쳐졌다.
그리고 곧장 그것과 부딪히는 붉은빛 덩어리들.
콰지지지지직!
어떤 강력한 공격이라도 막아내는 절대 방벽이 순식간에 우그러지며 금이 가기 시작하였다.
그나마 보조해주는 다른 방벽 마법 때문에 부서지는 속도는 늦출 수 있었다.
하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흐어어어억!!”
“꺄아아악!”
시전하였던 방어막이 모두 깨지기 직전.
투욱!
가벼운 타격음과 함께 아운을 보호하였던 방어막이 흔들렸다.
그리고 그것은 곧 여기저기 금이 가면서 산산이 깨지고 말았다.
그것을 본 아운의 표정이 굳어졌다.
자신의 권능으로 만든 보호막은 저리 쉽게 부서지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저렇게 유리처럼 산산조각이 나버리다니.
눈으로 직접 보고있지만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아운이 잠시 당황하고 있을 때 이미 준비 중이었던 에드의 기간테스가 검격을 날렸다.
스걱!
오러가 깃든 거대한 검이 아운의 몸을 베었지만 깊이가 얇았다. 하지만 그를 당혹스럽게 만들기는 충분하였다.
그로 인해 그의 권능의 일부가 흔들렸다.
퍼어엉! 퍼엉! 콰아앙!
권능이 흔들리면서 그가 만들어낸 붉은빛 덩어리들이 더 이상 내리꽂히지 못하고 그대로 터져버렸다.
“커어어억!”
“꺄아아아악!”
자신들을 위협하던 붉은 빛 덩이들은 사라졌지만 그것이 폭발하며 생긴 여파로 마법으로 막고 있던 이들에게 충격이 전해졌다.
그 충격에 정신을 못 차리는 마법사들.
하지만 그들 덕에 다른 이들은 무사할 수 있었다.
그렇게 무사한 나머지 사람들은 아운에게 맹공격을 하기 시작하였다.
휘이이이이잉!
에밀리의 손에서 다량의 마나가 퍼져나갔다.
그러자 강력한 회오리가 전방을 휘몰아치기 시작하였다. 그와 동시에 끔찍할 정도로 시린 한파까지 덮치며 아운의 몸이 급속도로 얼어붙어 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발밑이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그곳에서 뜨거운 용암이 분출되기 시작하였다.
바로 드루이드의 마법.
위아래로 막강한 공격이 들어오자 아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순간적이나마 위협을 느낀 아운.
벌레만도 못한 인간 따위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될 줄이야.
자존심이 상한 그의 마음은 분노로 가득 차게 되었다.
【이제 여흥은 없다!】
분노가 전해지는 그의 음성.
그 말과 동시에 아운은 본신의 힘을 완전히 개방하였다.
퍼어어어어어엉!
그의 몸에서 섬광이 일면서 커다란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그로 인해 생긴 압력은 주변에 있던 이들을 일시에 날려버렸다.
다들 버텨보려 했지만 너무나도 강한 힘에 의해 버티지 못하며 날아갔다. 그래도 정신을 잃은 이는 없었다.
탁!
모두 안정적으로 균형을 잡으며 안전하게 착지하였다.
그러고는 앞을 바라보았다.
“허억!!”
어느새 눈앞에서 사라진 아운. 일순간에 그가 보이지 않자 모두들 당황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의 존재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그 강대한 압박감은 자신들을 계속해서 짓누르고 있었다.
“저, 저기 있네! 저기에!”
아드리안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하자 모두 그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거대했던 아운은 없었다.
다만 성인 남성만 한 크기의 존재가 있었다.
창백한 하얀 피부에 검은 뿔이 이마에서부터 시작해 위쪽으로 쭉 뻗어있었다.
그리고 얼굴을 제외한 나머지 몸은 검은색으로 덮여져있었다. 마치 빛이 하나 없는 칠흑같이 말이다.
이전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었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존재감은 그가 아운이라는 것을 증명해주었다.
번뜩!
그가 눈을 떴다.
흰자위가 하나도 없는 온통 시커먼 눈.
마치 심연을 바라보는 듯한 그 눈에 모두 일순간 얼어붙었다.
휘익!
그가 손을 휘저었다.
퍼어억! 퍼억! 퍼어억!
그러자 헤론과 그 옆에 있던 애나와 로툰의 몸이 터져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아드리안이 미처 반응조차 못 할 정도로 순식간에.
한순간에 3명이 죽어버리자 모두들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그들의 시선에서 두려움이 느껴지자 아운은 제법 만족스러운 듯 비릿하게 웃었다.
그리고 다시 또 공포를 각인시켜주기 위해 손을 들었다.
하지만 그때 낯익은 기운이 감지되며 시선을 돌렸다.
그의 시선에 익숙한 자가 들어왔다.
붉은 옷을 입고 자신을 농락하고 사라졌던 그 인간.
바로 어비스의 마스터였다.
그를 보자 아운의 분노는 한층 더 짙어졌다.
당장 놈을 없애기 위해 그쪽 방향을 향해 손을 뻗었다.
형용할 수 없는 강대한 힘이 그에게로 쏟아졌다.
하지만 어비스의 마스터는 그저 묵묵히 있을 뿐이었다.
콰아아앙!
폭음과 함께 사라진 아운의 힘.
자신의 힘이 사라지자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하였다. 하지만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샤아아아아───
새하얀 빛이 어비스 마스터를 감싸고 있었다.
불길한 느낌을 주는 아운의 기운과는 달리 매우 경건하고 성스러운 느낌이었다.
아운은 그것을 알고 있다.
그것은 바로 천족의 기운.
【네놈의 정체는 천족의 끄나풀이었나?】
인상을 쓴 아운의 물음에 그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윽고 입을 열었다.
“그동안 마음껏 즐기셨습니까? 아쉽지만 이제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나른하고도 무심한 말투.
하지만 곧 그 의미를 깨달은 아운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늘에서 거대한 빛이 뿜어지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