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마왕 강림 (2)
“……??”
갑작스레 검은 그림자가 자신들에게 다가오자 의문을 표하는 마족들. 하지만 그때 몇몇 마족이 다가오는 그림자에 위협을 느끼며 경고하듯 소리쳤다.
“%킳#&&뀃$#!!”
“$넒&$멝??”
동료의 경고를 들은 마족들은 곧장 방어 자세를 취하였다.
하지만 그림자는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고 그들 발밑에 멈춰 섰다.
“%핧&섥$디#?”
막상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자 마족들은 조금 당황하였다. 하지만 이내 그곳에서 검은 칼날이 치솟으며 마족들을 사정없이 베어버렸다.
서걱! 서걱! 서걱! 서걱! 서걱!
강력한 오러 블레이드에 의해 그들의 신체가 너덜너덜해졌다. 하지만 그들은 걱정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재생력을 믿었기 때문에.
하지만 그들의 예상과는 달리 잘린 신체는 더 이상 복구되지 않았다. 아니 도리어 더욱 악화되며 더욱더 몸이 만신창이가 돼버리고 말았다.
“끨$%끼아아아아!”
“쓁$&깛@크하아아악!”
자신의 몸이 재생되지 않자 비명을 지르는 마족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그들이 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후드득─ 철퍽! 철퍽!
바닥에 그들의 육편들이 여기저기 떨어졌다.
다가온 마족들을 모조리 처치한 백금발의 남성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는 바로 칼슨이었다.
이제는 손쉽게 처리가 가능한 마족들.
불과 1차 봉인이 해제되었을 뿐인데 무시무시한 위력을 선보였다.
만약 2차, 3차의 봉인이 풀리면 얼마나 강해질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마족 살해 49/100]
씨익─
봉인 해제 수치가 올라가자 칼슨은 입가에 미소가 절로 그려졌다.
그때 옆에 있던 아드리안이 씁쓸한 표정을 하며 말을 하였다.
“이런, 결국 마왕이 강림한 것 같군. 우리가 너무 늦어버렸어.”
청천벽력 같은 아드리안의 말.
하지만 현재 눈앞의 상황은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뒷받침해주고 있었다.
제국에서 출발한 지 불과 이틀밖에 되지 않았다.
아드리안이 공간이동을 사용했기에 시간을 많이 단축할 수 있었다.
그는 사전에 공간이동을 위해 미리 장소를 준비했었다.
그곳은 글래툰 왕국 국경에 위치한 어느 동굴.
정확한 좌표를 확인하고 침입자들을 막기 위해 봉인도 걸어두었다.
그렇게 완벽하게 밀폐된 공간.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공간이동 시 사고가 날 수 있었다.
만반의 준비를 해두었었지만 그 혼자 12명의 인원을 이동시키기는 힘들었다. 그렇지만 다행히 이곳엔 7서클 마법사가 셋이나 있었다.
그래서 가까스로 12명의 인원을 준비된 장소까지 공간이동을 시킬 수 있었다.
그 이후 이틀 동안 이동하였는데 벌써 마수와 마족을 마주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정도의 마수와 마족이 들이닥쳤다는 것은 마왕이 강림하여 마계와의 통로가 열렸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곳에 있던 마수와 마족들이 쏟아져 나와 여기 있는 피난민들에게까지 이르게 된 것 같았다.
피난민들이 그들에게 유린당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방어 병력이 없었다. 그것을 보니 이미 글래툰 왕국은 국가로서 기능이 상실돼 보였다.
현재로서는 글래툰 왕국의 도움은 일말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
여기 있는 12명의 원정대가 마왕을 상대해야 할 판이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칼슨이 물었다.
그 물음에 아드리안은 선뜻 대답하지 못하였다.
마왕은 강하다.
8서클인 자신이 엄두도 못 낼 만큼 말이다.
물론 이곳엔 자신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대륙 10강인 칼슨이 있고 7서클 마법사가 셋이나 있다.
그밖에 쟁쟁한 강자들이 10명이 넘는다.
하지만 그런 그들과 함께한다 해도 마왕을 상대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지 않는다. 아무리 강하다고 하여도 인간은 마왕에게 한낱 벌레와도 같은 존재였다.
그럼 이대로 물러나야 하는가?
아드리안은 고개를 저었다.
현재 마왕이 강림하면서 마수와 마족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자신들이야 그들을 상대할 수 있지만, 일반 병사들이나 기사들로는 한계가 역력하였다.
결국 희생자들이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런데 자신들이 물러난다면 어찌 되겠는가?
방금 전처럼 끔찍한 참사가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다.
아드리안의 고민이 깊어지자 칼슨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파울러 님, 이제 더 이상 묻지 않겠습니다. 파울러 님이 어떤 판단을 내리신다 하더라도 저는 저대로 놈들을 상대하러 가겠습니다.”
신념으로 가득해 보이는 칼슨의 모습에 아드리안의 눈이 흔들렸다.
그렇다. 눈앞의 이 자는 자신의 안위 따위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 보였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 목숨까지 바칠 비장한 각오가 느껴졌다.
아드리안은 부끄러웠다.
순간 세상을 구하는 것보다 자신의 안위를 생각한 것을.
세상의 균형과 수호를 위한 섀도우즈의 멤버임에도 불구하고 겁부터 집어먹고 물러서려 했다는 것을 말이다.
“이거 자네에게 면목이 없구먼.”
솔직한 심정을 그대로 말하였다.
칼슨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아드리안의 생각처럼 칼슨은 정의감이나 영웅심에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다가갈수록 많은 마족을 상대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 말한 것이었다.
현재 1차 봉인 해제가 된 것만으로도 엄청난 효과를 보았는데 2차까지 해제되면 어떻게 될 것인가?
예상컨대 1차 봉인 때보다도 더욱 강한 효과를 얻을 것이 분명하였다.
그리고 애초에 칼슨은 마왕까지 상대할 생각도 없었다. 그냥 적당히 마족들을 처리하며 검의 봉인만 해제할 생각뿐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이런 칼슨의 생각을 모르던 아드리안은 자신을 부끄러워하였다. 그리고 칼슨을 사명감이 투철한 영웅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조금 전부터 칼슨을 보는 표정이 예사롭지 않았다.
‘뭐야? 갑자기 왜 저래?’
아드리안이 지긋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자 등골이 쭈뼛 서는 느낌이 들었다.
그의 시선이 굉장히 부담스럽던 칼슨은 애써 시선을 회피하였다.
아무튼 그들은 마왕이 강림한 곳으로 목적지를 정하였다.
그곳에 가는 것을 위험하다며 걱정하는 이도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그들 중 가지 않겠다고 하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 * *
모로 협곡.
이곳은 글래툰 왕국 서쪽에 있는 협곡으로 왕국 중앙에서부터 왕국 서쪽 끝까지 이어진 기다란 협곡이었다.
그리고 최근 마왕 아운이 강림한 곳이기도 하였다.
아운이 강림한 후로 이곳에는 마계로 가는 차원문이 생성되었다. 하지만 그곳은 아운의 영향력만을 허용하였기에 다른 마왕의 권속들은 이곳으로 들어올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의 권속만 하여도 이 세상을 뒤집어버리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게다가 자신이 강림하였기에 그 누구도 대항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조금 마음에 걸리는 것은 자신을 강림시킨 그놈.
분명 그는 평범한 인간 놈이 아니었다.
게다가 놈은 자신에게 이상한 말을 남긴 후 사라졌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마음껏 즐기시기 바랍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라니?
소환도 아닌 강림이었다.
본체 자신이 온 것이기에 소환처럼 지속시간이 있을 리가 없었다.
한마디로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만 그놈의 태도를 보건대 거짓말이나 농담을 하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마치 무슨 음모나 꿍꿍이가 있는 듯한 느낌.
뭐, 아무려면 어떤가.
그저 한낱 인간의 스쳐 지나가는 말일 뿐.
지금은 놈의 말대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될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갑자기 자신의 권속 몇이 사라진 것을 느꼈다.
약해빠진 부하들이었지만 그래도 제법 쓸 만한 놈들이었는데 순식간에 죽어버렸다.
‘인간 놈들 중에서도 꽤 강한 놈들이 있나 보군.’
하긴, 자신에게 이상한 말을 남기고 떠난 놈 또한 인간치곤 상당히 강한 놈이었다.
그런 놈들이 하나라는 법은 없지.
이에 조금 흥미를 느낀 아운. 하지만 그와 동시에 마음속에서 화가 일어났다.
제법 강하다고는 하지만 버러지 같은 인간 주제에 감히 자신의 권속을 죽이다니.
그는 자신의 소유물을 잃은 것에 깊은 분노를 느꼈다.
아운은 즉시 발걸음을 옮겼다.
자신의 분노를 풀 대상을 찾으러.
* * *
피난민들을 공격하던 마수와 마족을 처리한 칼슨과 아드리안의 일행은 또다시 마수와 마족들을 마주하였다.
그 수는 무려 수백의 마수와 수십의 마족.
처음에 조우했던 수보다 월등히 많았다.
막강한 적들이었지만 이쪽도 만만찮은 전력.
칼슨과 아드리안을 필두로 쟁쟁한 자들이 잔뜩 있었다.
3명의 7서클 마법사와 에드와 같은 소드 마스터를 넘어선 자들도 있었지만 그들보다 대단한 것은 바로 에밀리와 레일리였다.
정령사인 에밀리가 강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는 최근 친화력과 경지가 높아져 땅의 상급 정령과 물의 상급 정령과 계약을 맺게 되었다.
다만 바람의 정령은 이전과 같이 상급의 정령만 가능하였다. 본래 정령왕과도 계약이 가능한 친화력을 보유하였지만 아직 마나가 부족하였기에 소환하기가 조금 힘들었다.
그래도 군주급 정령인 스카디엘라의 격이 더 올라갔다. 그로 인해 어지간한 마족은 그녀 혼자서도 둘, 셋은 상대할 수 있을 정도.
드루이드인 레일리의 실력은 이때 처음 보았는데, 그녀는 혼자서 네, 다섯의 마족들을 상대하였다.
각종 야수로 변신하며 근접전투를 벌이는 와중 대자연의 힘을 빌어 마족들을 공격하였다.
특히 매서운 폭풍을 일으키거나 땅에서 용암을 분출시켜 많은 마수들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
또한 식물의 성장을 촉진시켜 마수들의 움직임을 봉쇄하여 다른 이들에게 도움도 주었다.
정령사 못지않게 희귀한 드루이드.
칼슨은 그 진면목을 이곳에서 처음 확인하였다.
‘이런! 얘들 왜 이렇게 쎄?’
혼자 착실히 마족 살해 카운트를 채우려던 칼슨.
하지만 아드리안을 비롯해 뛰어난 동료들 때문에 그 목적을 다 못 채웠다.
조금 아쉬웠지만 그래도 그들로 인해 수월하게 마족과 마수들을 처리할 수 있었다.
[마족 살해 83/100]
최대한 많은 수의 마족들을 처리하려 하였지만 그곳에 있던 놈들의 반절도 못 가져갔다.
그래도 이제 남은 수치가 스물이 채 안 되었기에 다음에 맞닥뜨리게 된다면 무난히 수치를 채울 수 있어 보였다.
마족과의 전투를 마친 일행들은 휴식을 취하며 정비를 하기 시작하였다. 압도적으로 그들을 처리하였지만 그래도 제법 힘을 많이 썼기에 호흡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었다.
거기다 식사를 한 지 오래되었기에 몇몇 이들은 음식을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전장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식사는 할 수 없었다.
그저 냄비에 물을 붓고 건조식품을 넣어 간단히 스튜를 만들었다.
참으로 소박한 여행자들의 음식.
이곳에 있는 이들은 다들 어딜 가든지 충분한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자들이었다. 그렇지만 음식 투정을 하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그저 허기를 채울 수 있으면 만족하듯 따뜻한 스튜를 단숨에 비웠다.
짧고 간단했던 점심 식사.
그렇게 배를 채운 후 막 이동을 하려던 때였다.
갑자기 아드리안이 인상을 쓰며 몸을 비틀거렸다.
“크으윽! 이것은 대체!”
칼슨도 느꼈다.
강대한 기운이 이곳에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이런 기운은 분명 이전에 느꼈던 적이 있었다.
세르보가 소환했던 마왕이 뿜어내던 그 기운.
그 압도적인 존재감이 느껴졌기에 순간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다른 이들 또한 그것을 느끼는지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윽고 그 기운의 주인이 그곳에 나타났다.
【너희들이냐? 내 권속을 없앤 놈들이?】
그들 앞에 거대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