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아크레프 제국의 위기 (13)
“크아아아아악!”
온몸이 찢어질 것 같은 통증에 마르코스는 비명을 질렀다. 도대체 자신의 몸에 무슨 짓을 한 것인가. 그것에 대해 의문을 품었지만 상상하지 못할 고통에 사고가 마비되어갔다.
그런 마르코스를 본 마스터는 무미건조한 얼굴로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그동안 모아놓은 생명력이 제법 되는구나. 나 몰래 많이도 챙겨뒀군 그래.”
“크허어어억! 아, 아니! 마, 마스터어어어!”
“그래도 마지막엔 꽤 쓸모가 있구나, 마르코스. 그동안 수고 많았다.”
그가 작별 인사를 고하자 마르코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제까지 온갖 잡일을 다 시키며 부려 먹더니 이제 와서 폐기처분이라고? 곧 제국을 손에 넣을 수 있었는데 이대로 죽기엔 너무 억울하였다. 그의 얼굴에서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토해내듯 고함을 질렀다.
“씨발, 이 개새끼야!!!!”
마지막으로 뱉어낸 욕지거리. 결국 그것이 그의 마지막 유언이 되었다.
퍼어어억!
그의 몸이 산산조각이 나며 주변으로 그의 유해가 여기저기 떨어졌다. 그리고 그곳에 초록빛의 구가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마도 그것이 마르코스가 그동안 모아놓았던 생명력. 그것을 본 마스터는 비릿한 미소를 보였다.
평소에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그가 이런 표정을 보인 것은 굉장히 드물었다. 만약 그를 아는 누군가가 이런 모습을 본다면 상당히 놀랐을 것이다.
잠시나마 그에게 있던 표정이 다시 사라졌다.
그리고 그는 손을 뻗으며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초록빛의 생명력 덩어리가 그의 손으로 서서히 빨려들어 갔다.
그렇게 점점 마스터에게 흡수된 생명력이 어느덧 사라지자 그는 손을 거두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곧 그의 몸이 흐려지기 시작하더니 어느덧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이제 아무도 없는 그곳.
한참 후 수색을 하던 병사가 그곳을 발견하기까지 아무도 그곳에 나타나지 않았다.
온통 피범벅이 되어 불그스름해진 방.
그저 마르코스의 핏빛 유해만이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을 뿐이었다.
* * *
도주한 마르코스를 찾기 위해 그곳에 있던 병력들은 황궁 곳곳을 샅샅이 뒤졌다.
그 와중에 변형체들과 더불어 마수들과 마족들의 공격이 있었지만 칼슨과 아드리안 등 여러 명의 강자에 의해 처리되었다.
방금도 칼슨이 마족 하나를 막 베어내고 있었다.
“캬하아아아악!”
[마족 살해 37/100]
보이는 족족 마족을 처리하니 꽤 많은 수치를 올릴 수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마족 하나하나 처리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칼슨의 검은 그들의 주 권능인 재생을 무력화시킨다.
아니 오히려 상처를 악화시켜서 치명상을 입으면 그대로 죽어버리니 이전이랑 비교도 안 되게 상대하기 쉬워졌다.
그렇게 착실히 황궁 안을 수색하고 있을 때 한 병사가 허겁지겁 다가오며 말을 하였다.
“차, 찾았습니다! 화, 황제 아니, 반역자 마르코스를 찾아냈습니다.”
“뭐? 그곳이 어디냐? 어서 앞장서라!”
병사의 말에 칼슨이 반문하며 말을 하였다.
그의 말에 병사는 앞으로 나서며 칼슨을 안내하였다.
병사가 안내한 곳은 바로 마르코스가 2 황자 시절 썼던 궁이었다. 정확히는 그곳 집무실이었는데 그곳에 도착한 칼슨은 절로 인상이 찌푸려지고 말았다.
사람의 형체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육편들.
이미 고깃덩이에 가까운 것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어떻게 마르코스라는 것을 알았는지 신기할 정도.
그때 병사가 옷가지와 황관을 보여주며 말하였다.
“여기에 이게 있었습니다.”
“흠…….”
피가 잔뜩 묻어 더럽고 찢어져있었지만 이건 분명 황제의 의복이었다. 거기다 황관까지.
확실히 마르코스를 증명하는 물건이었다.
물론 자신의 죽음을 위장하려고 이런 짓을 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다른 병사가 찾은 마르코스의 머리를 보고는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마르코스는 죽었다는 것을.
그렇게 되니 한 가지 의문점이 생겼다.
대체 누가 그를 죽였는지 말이다.
분명 그는 귀환 마법으로 그곳을 벗어났다.
그리고 이곳에 도착했을 테고.
그런 다음 황궁을 빠져나가려 했을 터였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 그를 죽였다.
그것도 이렇게 시신을 산산조각을 내면서까지 말이다.
그가 누구인지도, 어떤 목적으로 마르코스를 죽였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칼슨이 의문으로 가득할 때 아드리안과 다른 일행들 또한 이곳으로 오고 있었다.
“그래, 그 흑마법사 놈을 발견했다고?”
아드리안이 다가오면서 말하였다.
이에 칼슨이 상황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칼슨의 말을 들은 아드리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고는 바닥을 손으로 집으면서 입을 열었다.
“흠, 그렇군. 그러고 보니 여기 미세한 흑마법의 기운이 남아있어. 그렇다는 건…….”
도중에 말을 끊은 아드리안은 칼슨을 바라보며 말을 하였다.
“…이놈을 죽인 자 또한 흑마법사일 확률이 높네.”
“예? 그게 정말입니까?”
아드리안의 말에 눈을 크게 뜨며 놀라는 칼슨.
같은 흑마법사가 그를 없애다니.
게다가 마르코스는 꽤나 실력 있는 흑마법사다.
그런 그를 이리 처참하게 죽일 수 있는 자라면 얼마나 강한 자란 말인가.
흑마법사들 중 그런 자가 있다니.
칼슨의 표정이 좋지 않자 아드리안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하였다.
“너무 걱정하지 말게나. 놈이 흑마법사에게 죽었는지는 확실하지는 않네. 그저 흑마법의 흔적만 남아있을 뿐이니까. 그래도 뭐 놈이 강한 누군가에게 죽였다는 것은 사실이긴 하지.”
“예, 그렇군요.”
칼슨 또한 같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정체를 확실히 알 수 없다는 것이 찝찝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황궁은 다시 수복이 되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다소 희생이 있었지만 그래도 황궁 내 흑마법사들의 잔재를 말끔히 없앨 수 있었다.
황궁이 완전히 정리되고 다음 날 에르시오가 이곳에 왔다.
1 황자 가레트와 2 황자 마르코스가 없는 지금 이제 그가 아크레프 황실의 유일한 계승자였다.
그는 자잘한 의식은 생략한 채 곧장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그가 이리 서둘러 황위에 오른 것은 마르코스같이 황위에 강한 욕심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서둘러 황위에 올라 글래툰 왕궁으로 원정을 간 제국의 병력들에게 회군의 명을 내리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황제가 된 그는 우선적으로 먼저 전령을 보내 회군을 명하였다.
허나 서찰을 띄워 보낸 전령새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전장의 근황을 알려주는 전령 또한 오지 않았었다.
그렇게 아무런 소식 없이 이틀이 지난 후, 글래툰 왕국에서 날아온 전령이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줬다.
“뭐라? 지금 그게 사실이더냐?”
“예, 폐하.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허어…. 그럴 수가…….”
보고를 받은 에르시오는 믿기지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전해진 보고는 다름 아닌 원정군과 글래터 군의 공멸. 방금 전 똑똑히 그것을 들었음에도 에르시오는 물론 그 주변의 대신들 또한 자신이 잘못 들었는가 하고 어리둥절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런다고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에르시오가 몇 번이고 되물었지만 보고하는 이의 대답은 같았다.
간략하게 설명이 되어 있지만 내용의 전말은 이러했다.
글래툰 왕국의 병력들은 기존에 계획했던 대로 최대한 전면전을 피하며 시간을 끌었다.
초반에는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하였다.
하지만 문제는 어제 그들이 왕국 서쪽에 있는 모로 협곡에서 작전을 벌였을 때였다.
그들이 도주하려던 퇴로에서부터 어두운 안개가 덮쳐왔다.
그것은 바로 독무였다.
한번 숨을 들이마셔도 중독되어버리는 독연기가 모로 협곡을 가득 채워갔다.
그 독안개에 대부분의 병사들이 중독되어 죽어 나갔다.
거기다 그 독무는 글래툰 병사에게만 간 것이 아니었다.
독안개는 제국의 병사들도 덮쳤다.
협곡에 들어섰기에 주변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는 독 연기에 수많은 이들이 중독되어 죽었다.
그렇게 협곡에서 죽은 이들만 십만이 훌쩍 넘었다고 하였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내용이지만 사실이었다.
독안개가 걷히고 그곳을 살핀 정찰병의 보고이기에 틀림이 없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에르시오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무리 협곡이고 막힌 지형이라 하지만 10만이 넘는 인원이 하루아침에 죽어버리다니,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그것을 들은 아드리안 또한 심각한 표정을 하며 말하였다.
“폐하, 아무래도 저랑 동급의 흑마법사가 수작을 벌인 듯합니다.”
그 말에 에르시오는 두 눈을 크게 뜨며 놀라워한다.
“아니, 그렇다면 8서클의 흑마법사가 개입했단 말이오?”
“예, 아무래도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큰 독안개를 만든 것은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허허, 그럴 수가….”
8서클 흑마법사의 출현에 인상을 찌푸리는 에르시오. 하지만 이어서 나온 아드리안의 말에 더더욱 표정이 구겨졌다.
“문제는 놈들은 그들을 제물로 마왕을 강림시킬 것입니다.”
“지금 마왕이라고 하셨소?”
에르시오도 마왕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마족들의 우두머리이며 마계의 주인들.
고문서에 따르면 그들의 수는 총 13명으로 알려져 있었다.
1마왕인 탐욕의 제롬부터 13마왕인 우울의 가롯까지.
어떤 마왕인지는 모르지만 아마 그들 중 하나라도 이 세계에 강림시킨다면 큰 혼란이 올 것이다.
이에 에르시오는 다급히 말하였다.
“그렇게 돼서는 절대 안 되오. 무조건 막아야 하오!
파울러 경, 그리고 드레이크 공작. 염치없는 부탁이지만 부디 그들의 야욕을 막아주시오. 만약 마왕이 강림하게 된다면 이 세계에 끔찍한 재앙이 시작되고 말 것이오.”
그렇게 에르시오의 명에 의해 아드리안과 칼슨은 고개를 숙이며 말하였다.
“예, 폐하.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에르시오가 부탁을 하기는 하였지만 아드리안은 원래 섀도우즈의 일원이기에 굳이 에르시오가 부탁하지 않았어도 본인이 나서서 마왕 강림을 막으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칼슨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흑마법사들이 있다면 그들이 소환할 마족 또한 만날 수 있다.
현재 자신의 검 아쉬고르의 2차 봉인을 해제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많은 수의 마족을 없애야 했다.
현재의 수치는 41/100.
아직 60여 개를 더 채워야 봉인이 풀릴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칼슨은 흑마법사 놈들을 상대해야만 했다.
그렇게 서로의 목적은 다르지만 목표는 같았다.
다음날 마왕 강림을 막기 위한 12명의 원정대.
그들은 흑마법사들의 마왕 강림을 막기 위해 글래툰 왕국으로 떠났다.
* * *
글래툰 왕국의 모로 협곡.
그곳에는 수많은 시신들이 놓여 있었다.
독에 중독돼서인지 시신들 대부분이 피부가 시커멓게 변해있었다.
철퍼덕!
팔이 긴 마수 하나가 시체를 한 곳에 쌓고 있었다.
놈은 시체를 그곳에 던져놓고는 다시 어디론가 이동하였다. 아마 이곳 어딘가에 있을 시신을 찾으러 가는 것으로 보였다.
시체를 옮기는 마수는 하나가 아니었다.
그 마수 말고도 제법 많은 수의 마수들이 이곳저곳에서 시신들을 옮기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는 이들이 있었다.
검은 후드를 눌러 쓴 이들.
어비스의 흑마법사들이었다.
그들은 마수들을 부려서 죽은 시체들을 한군데로 모아두고 있었다.
그때 그들에게 다가오는 이가 있었다.
붉은 후드가 달린 로브를 입은 남성.
바로 흑마법사들의 수장, 어비스의 마스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