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아크레프 제국의 위기 (10)
제국 동북부 렝케르트 후작의 성.
평소에는 영주인 렝케르트 후작과 그 식솔들만이 조용히 지내고 있을 이곳에 지금은 제법 많은 손님들이 와있었다.
그 때문에 그들의 수발을 해줄 하인들의 움직임 또한 매우 바빠졌으며, 주방의 요리사들과 그의 조수들도 오랜만에 많은 양의 식사 준비를 하느라 간만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성안에 있는 중앙 회의실.
후작령인 만큼 성안에 있는 그 회의실 또한 꽤 넓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인원이 들어차서인지 큰 회의실이 비좁게 느껴졌다.
중앙에 큰 원형 테이블이 펼쳐져 있었고 그곳에 12명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그곳엔 렝케르트 후작을 비롯해 아크레프 제국의 대영주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북부의 대영주 다르칸트 공작.
서부의 대영주 말테론 후작.
남부의 대영주 베르논 공작.
그 밖에 백작 이상의 영주들.
그런 이들이 무려 9명이나 이곳에 와있었다.
그리고 3명이 더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그들은 제국의 영주들이 아니었다.
백금발의 청년과 로브를 두른 진갈색 머리의 사내, 그리고 고귀함이 느껴지는 장년의 남성.
바로 칼슨과 아드리안, 그리고 에르시오였다.
그중 창가를 뒤로 한 자리에 에르시오가 앉아 있었는데 그곳이 테이블에서 제일 상석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의 양옆에 칼슨과 아드리안이 앉아 있었다.
비록 그들은 제국의 사람이 아니었지만 그들의 명성은 대륙 전역에 알려져 있었다. 한 명은 대륙 10강이자 최강의 검수. 다른 한 명은 대륙 10강이면서 절대의 영역이라는 8서클의 마법사였다.
그렇기에 지금 이곳에 모인 다른 이들에 비해 넘치면 넘쳤지 모자람이 없는 인물들이었다.
그들은 지금 황제가 된 마르코스가 흑마법사이며 황궁 또한 그들에 의해 점령된 상태라고 말하였다. 그래서 서둘러 그들을 처리하고 황궁을 수복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렇게 해야 제국의 병력이 글래툰 왕국과 본격적으로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큰 피해 없이 전쟁을 멈출 수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이곳에 모인 영주들은 그 이야기에 큰 관심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들에게 마르코스의 정체도 중요하였지만 그보다 그가 무작정 전쟁을 일으키는 미친 짓을 벌이고 있기 때문에 나서려던 것일 뿐.
거기다 몇몇 영주는 에르시오랑 친분이 있었기에 마르코스를 황위에서 끌어내리고 에르시오를 황제로 옹립하는 것에 더 목적을 두고 있었다.
서로 다른 의도.
각자 원하는 바가 어찌 됐든 중요한 것은 마르코스를 제거하고 전쟁을 끝내는 것이다.
그 공통된 목적이 이들을 이곳에 모이게 하였다.
정보에 의하면 현재 황궁에 주둔한 병력은 1만 정도 예상하였다. 하지만 칼슨과 아드리안은 병력들의 수보다 마수나 마족들을 더욱 경계하였다.
직접 그것들을 보았던 에르시오 또한 그것들의 위험성에 대해 토로하였지만 겪어보지 못한 영주들은 과장된 이야기라 여기며 그들의 말을 건성으로 받아들였다.
그래도 그곳을 지키는 정예 병력과 기사들에게는 민감하게 반응하여 그에 맞게 자신들의 병력들을 추슬러 이곳에 왔다.
그렇게 모인 병력이 대략 2만여 명. 정예 중 정예만 데려왔으며, 그중 기사의 수는 3천 명이 넘어갔다.
기습적으로 황궁을 공략해야 했기에 이런 일에는 병력의 양보다 질이 더 중요하였다. 그래서 많은 병사들을 데려가는 것보다 기사들 위주의 정예 전력을 꾸린 것이다.
칼슨과 아드리안 또한 그들의 선택이 합당하다 여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까지 마수들과 마족들 상대할 때를 생각해보면 일반 병사는 그렇게 큰 도움이 안 되었다.
최소 오러를 가진 기사는 돼야 그나마 피해를 줄 수 있었기 때문에 단순히 머릿수만 많은 것은 오히려 방해만 될 뿐이었다.
회의는 에르시오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 예상했지만 의외로 이른 시간에 끝이 났다.
꽤나 많은 의견들이 오가고 몇몇은 언쟁을 하였다. 하지만 결국 결론은 한 가지였다.
그것은 바로 단숨에 몰아쳐 진입하는 것이었다.
황궁으로 들어가는 3개의 관문을 동시에 들어가 마르코스의 전력을 각개 격파해서 쓰러트리는 것.
그것이 그들이 결정한 계획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병력을 3개의 군단으로 나누기로 하였다.
1군단은 칼슨과 다르칸트 공작.
그들은 황궁의 북쪽을 맡기로 하였다.
2군단에는 아드리안과 말테론 후작이 배정되었다.
그들은 황궁의 동쪽 관문으로 진입하기로 하였다.
마지막으로 3군단에는 베르논 공작과 렝케르트 후작 그리고 몇몇의 백작들이 합류하였다.
그들은 황궁의 남쪽을 맡았는데 그곳이 가장 큰 출입구라 가장 많은 수의 전력을 배치하였다.
아무튼 그렇게 하기로 한 그들.
에르시오 연합군은 다음날 곧장 수도인 베이도스로 이동하였다.
렝케르트 후작령은 베이도스랑 그리 멀지 않았기에 에르시오 연합군이 그곳까지 가는데 고작 사흘 정도의 시간밖에 소요되지 않았다.
* * *
베이도스 인근에 있는 평원.
어느새 저녁 해가 지평선 아래로 내려가고 밤이 되었다.
칠흑 같은 밤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하늘에 떠 있는 달이 얇은 초승달이라 그 빛이 밝지는 않았다.
어두워 아무도 없는 이곳에 사람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것도 한두 사람이 아닌 무수히 많은 이들의 발소리.
그때 지팡이를 든 한 남성이 손을 위로 치켜들며 주문을 외운다. 이윽고 그의 손에서 짙은 푸른빛의 기운이 사방으로 펼쳐지기 시작. 투명한 막으로 변하며 주변을 잠식해 들어갔다.
그러자 제법 소란스럽던 소음이 순식간에 사라져갔다.
그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에도 불구하고 그 일대가 거짓말같이 조용해졌다.
이에 옆에 있던 자가 놀라움을 표하며 말을 하였다.
“허, 그 많은 이들의 발소리가 일순간에 사라지다니……. 역시 대단합니다. 파울러님. 과연 8서클 마법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하는군요.”
“칭찬이 과하네, 드레이크 공작. 뭘 이런 거 가지고 그러는가. 고작 소리 차단 마법의 범위를 늘린 것뿐이라네.”
그의 칭찬에 아드리안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손을 저었다.
하지만 칼슨은 저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안다.
일반적인 소리 차단 마법이 대략 방 하나 정도의 범위를 가진다.
하지만 지금 아드리안이 행한 마법은 2만 명의 발소리를 제거하였다. 대충 눈짐작을 해봐도 일반적인 소리 차단 마법 범위의 수백 배는 되어 보였다.
그것을 단숨에 가능하게 만든 그의 실력에 칼슨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소리를 죽인 병사들은 어느덧 도시 외곽에 다다랐다. 외곽 성벽 위를 보니 몇몇 이들이 그곳을 순찰하고 있었다.
그들은 앞서 그곳에 침투해 성벽을 정리한 아군들.
미리 잠입하여 성벽을 지키는 병사들을 처치하고 에르시오의 연합군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하얀 천을 흔들며 괜찮다는 신호를 보내었다.
그것을 확인한 지휘관들은 조심스레 그곳으로 다가갔다.
드르르르르륵───
거친 마찰음을 내며 외곽 성문이 열렸다.
에르시오 연합군은 신속히 그곳을 통해 도시 내부로 진입하였다.
한밤중이어서 그런지 거리는 사람 하나 없이 조용하였다.
하지만 2만이나 많은 병력이 일시에 들어가기엔 너무 좁았다.
그렇기 때문에 계획한 대로 3개의 군단으로 나누어서 내성으로 진입하기로 하였다.
칼슨 일행은 다르칸트 공작과 함께 1군단에 있었다.
다르칸트가 데리고 온 병력이 주를 이루었는데 그 수는 대략 5천 남짓.
그래도 기사가 1천이나 되기에 상당한 전력이라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내성 북문을 향해 갔는데 다행히 가는 길에는 그들을 막아서는 적들이 없었다. 아마도 이렇게 쳐들어올 줄 예상하지 못했기에 대응을 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경계를 늦출 순 없었다.
놈들은 악독한 흑마법사 무리들.
마수와 마족들을 소환하고 병사들이나 일반 주민들마저 끔찍한 괴물로 만들어 수족으로 다루는 놈들이었다.
그렇게 주변을 살피며 가던 끝에 어느덧 내성의 근처까지 들어왔다.
내성 북쪽 문이 시야에 들어오자 칼슨은 다르칸트 공작에게 말하였다. 그러자 다르칸트 공작이 손을 들어 병사들을 세웠다. 그의 신호에 기사들뿐만 아니라 병사들마저 즉각 자리에서 멈추었다. 정예들이라 그런지 동요 없이 일사불란하게 행동하였다.
그렇게 병력을 멈춰 세운 후 칼슨은 내성 성벽 위를 보았다.
간헐적으로 성벽 위를 지나다니는 병사들이 보였다.
일단 저들을 제압해야 할 것 같았다.
외성에 비해 더 높은 내성.
눈짐작으로 봐도 5미터는 가볍게 넘어 보였다.
어지간한 기사들은 그 높이를 타고 올라가기 쉽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칼슨과 에드가 나서며 그곳으로 다가갔다.
둘은 소드 마스터를 넘어선 경지.
이 정도 높이쯤은 가볍게 넘어갈 수 있었다.
성벽 위로 올라간 그들은 그 주변의 병사들을 살펴보았다.
성문 쪽에 4명, 성벽을 돌며 순찰하는 이들이 3명.
총 7명의 병사들이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칼슨은 에드에게 순찰을 도는 이들을 처리하라고 지시하였다. 그리고 자신은 성문 쪽을 지키는 놈들을 처리하러 갔다.
화톳불 주변에서 서로 잡담을 하는 병사들.
불빛에 적응되어 있어서 어둠 속에 가려져 있는 칼슨을 보지 못하였다. 최대한 가까인 다가간 칼슨은 호흡을 가다듬은 후 단숨에 그곳으로 튀어 나갔다.
순식간에 눈앞에 다가온 칼슨을 보자 그들은 깜짝 놀라며 소리를 지르려 하였다.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이미 그들의 머리와 몸은 분리되어버렸기 때문에.
털썩─
동시에 4개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들은 자신이 죽은 것조차 인식하지 못한 듯 눈을 부릅뜬 채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병사들을 처리하자 이윽고 에드가 다가왔다.
순찰하던 인원을 처리한 것이었다.
칼슨은 그에게 손짓을 하며 성문을 열라고 하였다.
명을 받은 에드는 곧장 내려가 문에 걸린 걸쇠를 열어젖힌 후 내성 문을 열었다.
드르르르륵───
문이 열리는 것을 확인한 다르칸트 공작은 병사들을 이끌고 내성으로 진입하였다.
5천이나 되는 병사들이 한꺼번에 들어가기에 굉장히 혼잡할 거라 생각했지만, 그들은 대열을 잘 유지한 채 차근차근 내성 안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마지막 병사가 막 들어왔을 때였다.
콰아아앙!
어디선가 폭음이 들려왔다.
소리가 크게 들리지 않는 것을 보아 꽤나 멀리서 발생한 것 같았다.
아마도 2군단이나 혹은 3군단이 적이랑 맞붙은 것 같았다.
그렇다면 서둘러야 했다.
놈들이 정비를 하여 대응할 수 있기 전에.
칼슨을 비롯해 그의 일행들은 속도를 높여 성안으로 진입하려 하였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 쪽에 제법 많은 수의 병사들이 지키고 있었다.
얼핏 봐도 수백 명은 되어 보였다.
게다가 여기저기서 횃불들이 켜지고 병장기를 부딪치는 소리와 고함 소리가 나면서 상당히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하였다.
분명 성에 있던 병력들이 깨어나며 이곳으로 모여들고 있는 것이 확실하였다.
‘젠장!’
기습이 실패한 듯 보이자 칼슨은 짜증이 올라왔다.
하지만 그래봤자 기운만 소비될 뿐이었다.
마음을 가다듬은 그는 이내 집중을 하며 전방을 향해 달려 나갔다. 그리고 검을 휘둘렀다.
스으으윽──── 서걱!
일순간에 뿜어지는 오러 블레이드가 전방에 있던 병사들을 모조리 베어내 버렸다. 그 압도적인 위력에 단숨에 무너져버리는 적의 대열. 무너져가는 적들을 향해 그의 일행들이 들어오며 공격을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