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아크레프 제국의 위기 (6)
몇 시간 전.
에르시오와 그의 호위 기사들이 글래툰 왕국의 국경선을 타고 슬로페 왕국 국경 근처 숲에 다다를 때였다.
그곳은 글로스 숲이라는 곳이었는데 길이 좋지 않고 가끔씩 몬스터들이 나와서 사람들의 발길이 많지 않은 한적한 곳이었다.
에르시오의 일행들도 국경선을 타다 보니 그 선과 이어진 이곳까지 자연스레 흘러서 들어오게 된 것.
지금같이 위태로운 상황이 아니라면 굳이 이곳까지 올 일은 결단코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곳이라 그런지 여태까지 추적자들의 습격이나 혹은 글래터 왕국의 병사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고블린이나 코볼트 같은 소형 몬스터들만 간간이 마주쳤을 뿐.
물론 그 몬스터들도 무리 지어 달려들면 꽤나 위협이 되었지만 에르시오를 지키는 호위들은 전부 오러를 사용할 수 있는 기사들이다. 특히 그들을 이끌고 있던 리더인 제퍼슨은 소드 마스터.
수백 마리가 떼거리로 몰려오지 않는 이상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그들은 그렇게 무사히 슬로페 왕국에 진입하는 듯했지만 뜻밖의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웬 낯선 무리들이 그들 앞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에.
검은 후드를 뒤집어쓴 십여 명의 무리들.
그들은 가죽으로 덧댄 옷이나 천으로 된 로브를 입고 있었는데 복장이나 모양새를 보니 병사나 기사로는 보이진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제국의 추적자 글래툰 왕국의 병사들은 아니라는 말.
제퍼슨은 그들이 이곳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산적 무리라고 생각하였다. 일반적으로 생각해도 그게 당연하였다.
쓸데없이 놈들을 상대하느라 시간을 끌고 싶지 않았던 그는 기사들에게 명령하였다.
“저 산적 놈들을 당장 치워버려라. 본보기로 몇 놈을 죽인다면 자연스레 도망갈 것이다.”
“예, 비즐리 경!”
제퍼슨의 명을 받은 기사들 셋이 말을 몰며 단숨에 튀어 나갔다. 그의 검에는 어느덧 오러가 서려 빛이 감돌고 있었다. 맹렬한 기세로 다가오는 그들의 모습에도 산적으로 보이는 그들은 아무런 동요가 없었다.
그 모습에 제퍼슨은 순간 위화감을 느꼈다.
아무리 멋모르는 산적들이라고 하지만 오러를 보이며 다가오는 기사 무리를 보며 아무런 기색을 보이지 않다니.
그의 상식선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 놈들 중 몇이 품에서 석궁을 꺼내었다. 이미 볼트가 장전이 되었는지 방아쇠를 당기자 그대로 발사가 되었다.
툭! 툭! 툭!
갑작스레 날아온 볼트에 당황할 법도 하지만 이미 기사들은 그들의 공격에 어느 정도 대비하던 상황. 날아오는 볼트를 단숨에 쳐내었다.
퍽! 팍! 파삭!
오러가 깃든 검에 볼트가 가루가 되어버렸다. 다시 볼트를 석궁에 장전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터. 이제 놈들에게 다가가 응징을 하기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그때 뒤에 있던 한 남성이 어느새 손을 앞으로 내밀고 있었다.
그리고 곧 손에서 검은 기운이 뭉쳐지기 시작하였다.
그것을 본 기사들의 표정이 당황스러웠다.
분명 저것은 마법이 분명하였다.
산적들 중에 마법사라니.
뭔가가 이상하였다.
마법사가 꼭 산적을 하지 말란 법은 없었다. 하지만 마법사는 어디를 가든 고급 인재였다. 그런 고급 인재가 왜 굳이 이런 곳에서 산적질을 한단 말인가?
아무리 봐도 범상치 않은 그 광경에 순간 에르시오의 머리에서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설마, 저것은 흑마법사?’
생각해보니 그게 맞는 거 같았다.
형님, 아니 마르코스 그 개자식이 자신을 죽이기 위해 따로 보낸 흑마법사가 틀림이 없었다. 그렇게 판단한 에르시오가 앞에 나선 기사들에게 소리치며 경고하였다.
“모두, 조심해라! 저들은 흑마법사들이다!”
그의 소리가 기사들의 귀에 꽂혔다.
기사들은 흑마법사라는 말을 듣자마자 긴장하기 시작하였다. 그러고 보니 그 말이 맞는 거 같았다. 하지만 그들이 에르시오의 말을 듣고 대응하기도 전에 이미 흑마법사의 마법이 발현되고 말았다.
《생명력 흡수》
검은 기운이 한 기사의 목을 옭아매며 생명력을 빨아들이기 시작하였다. 기사는 오러로 버텨보지만 조금씩 생기가 사라지면서 힘을 잃어갔다. 그리고 어느새 피골이 상접한 해골처럼 변해버리고 말았다.
자신의 동료가 순식간에 당해버리자 당황하는 동료 기사들. 하지만 흑마법사는 하나가 아니었다. 어느새 그들에게도 흑마법이 다가오고 있었다.
《어둠의 운명》
진득한 흑마법이 꼬여 들어가며 날카로운 화살이 되었다.
그것은 쏜살같이 빠른 속도로 두 기사에게 날아왔다.
이에 기사들은 오러가 깃든 검으로 대응하였다. 하지만.
퍼어억! 콰아앙!
오러와 충돌한 흑마법은 극렬한 반응을 보이며 폭발. 어두운 연기가 생성되면서 기사들을 집어삼켰다.
“크허어어억!”
“케헤엑! 케엑!”
어두운 연기에 기사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들려오는 그들의 비명 소리가 현재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제퍼슨은 생각했다.
자신이 직접 나서서 저자들을 상대할지, 아니면 주군을 지키며 이곳을 피할지 말이다.
짧은 생각에 빠른 판단.
선택은 후자였다.
“모두 말머리를 돌려라! 전하를 지키면서 이동하도록!”
“비즐리 경! 그럼 저들은…?”
아직도 들리는 동료들의 처절한 비명 소리가 기사들을 망설이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내 들리는 제퍼슨의 단호한 목소리.
“오직 전하의 안위만을 생각하라!”
“…크윽! 알겠습니다. 비즐리 경.”
결국 그의 말에 따르며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제퍼슨은 에르시오에게도 서둘러 말을 하였다.
“전하, 여기에 있다가는 위험합니다. 어서 가시지요!”
“…그래, 알겠네.”
에르시오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따랐다.
기사들을 두고 도망치는 것이 편치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에 대한 미련을 끊어버리듯 박차를 가했다.
그 신호에 말은 번뜩이듯 앞으로 튀어 나갔다. 그리고 기사들이 에르시오를 호위하듯 에워싸며 뒤따랐다.
그것을 본 검은 후드의 무리들.
그들 중 대장으로 보이는 이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하였다.
“놈들이 도망친다. 어서, 쫓아라!”
명이 떨어지자 석궁을 든 이들은 물론 흑마법사들까지 일제히 달려 나갔다. 그리고 대장으로 보이는 이 또한 그들의 뒤를 따라가며 에르시오 일행을 쫓기 시작하였다.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거침없이 나아가는 에르시오와 호위 기사들.
나무가 많은 숲속이었지만 숙련된 솜씨로 말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막힘없이 달려 나갔다.
그로 인해 그들보다 기마에 익숙하지 못한 놈들은 거리가 벌어지게 될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나무로 인해 시야가 가려 마법이나 석궁을 쏴서 맞추기도 어려운 상황. 계속 이렇게만 간다면 놈들을 따돌릴 수 있어 보였다.
그렇게 도주하기를 한참.
어느새 나무들이 사라지고 공터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러자 제퍼슨의 인상이 구겨졌다.
이렇게 시야가 트인 공간에서는 놈들의 공격에 그대로 노출된다.
석궁은 물론이고 흑마법까지 쏟아질 게 분명하였다.
그렇다고 방향을 틀 수도 없었다.
그랬다간 급격하게 거리가 줄어들어 놈들에게 따라잡힐 확률이 높았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
속도를 높여 최대한 거리를 벌리는 것이었다.
“이럇! 놈들이 다가온다! 더욱더 속도를 높여라!”
“예!”
그 말과 함께 박차를 가하자 말의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그로 인해 놈들과의 거리가 조금 벌어졌지만 그렇다고 시야에서 벗어날 정도는 아니었다.
이윽고 놈들이 석궁을 쏘아대기 시작하였다.
푹!
후위에 있던 기사의 말에 볼트가 꽂혔다. 둔부에서 느껴지는 끔찍한 통증에 말은 요동치며 날뛰기 시작했다.
“이, 이럇! 어? 어어!”
고삐를 당기며 필사적으로 말을 진정시켜보지만 요지부동이었다. 가히 통제 불능의 상태. 그러다 안장의 끈이 끊어지면서 기사의 몸이 튕겨 나갔다.
“흐어어억!”
말에서 떨어진 기사는 간신히 중심을 잡고 땅에 착지하였다.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지만 일행은 이미 저만치 멀어졌다. 그리고 반대편에서는 적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런 씨팔!”
기사는 욕을 내뱉으며 검을 들었다. 어느새 그의 검에서 오러가 피어올랐다. 비장한 얼굴을 한 그는 다가오는 적을 맞이하였다.
휙! 휙! 휙!
어느새 그에게 볼트들이 쏟아졌다. 그는 필사적으로 검을 휘두르며 쳐내었다. 하지만 뒤이어 그를 덮친 검은 기운. 생명력을 뺏는 흑마법이 그의 목을 감싸며 생기를 빨아들였다.
“커허어어억!”
기사는 오러를 집중해 저항해 보았지만 흑마법에 의해 바싹 말라갔다.
푹! 푹!
그 와중에 뒤이어 쏘아진 볼트가 기사의 가슴을 꿰뚫었다.
안 그래도 힘겹게 흑마법에 저항하고 있던 기사는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한 채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이런, 제길!”
그 모습을 본 제퍼슨은 침음을 삼키며 이를 갈았다. 그렇다고 그를 구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기에 이내 고개를 돌리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지금은 당장 이곳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했다.
에르시오를 지키는 것 외엔 다른 것은 과감히 버려야 했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목숨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힘차게 달렸지만 공터로 나온 이후 좀처럼 거리가 벌어지지 않았다. 이윽고 다시 석궁이 발사되며 볼트가 날아왔다.
퍼억! 퍽!
다행히 대비하고 있던 기사는 그것을 쳐내었다. 그렇지만 그로 인해 속도가 조금 늦어지며 거리가 좁혀졌다.
비록 지금은 무사히 넘어갔지만 계속 이렇게 가다가는 공터가 끝나기 전에 따라잡힐 것이다.
그때 우측 전방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튀어나왔다.
대략 10여 명의 사람들.
남녀가 섞여 있었으며 복장을 보면 기사 차림인 사람과 마법사, 그리고 용병 등.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로 보였다.
그렇기 때문에 제퍼슨은 그들이 누구인지 도저히 파악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자신들을 뒤쫓는 자들처럼 후드를 쓰지 않았기에 저들과 다른 무리일 거라 판단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들이 아군일 거란 보장은 없었다.
제국에서 보낸 추적자일 수도 있고 글래툰 왕국에서 왔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확률은 낮아 보였다.
그들이 오는 방향은 바로 슬로페 왕국 쪽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그들 중 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자신의 주군과 같은 은발 머리의 여성. 익숙한 느낌이 들어 좀 더 확인하고자 안력을 높이려 할 때 에르시오가 먼저 나서며 소리쳤다.
“나, 나이아? 저기 나이아 황녀, 내 딸이 있소! 비즐리 경! 어서 저들과 합류하시오! 어서!”
“예? 예, 알겠습니다. 전하!”
에르시오가 자신의 딸을 단숨에 알아보았다. 그렇다면 저들은 확실한 아군. 방향을 틀어 그들에게 향할 때 흑마법사의 공격이 후위에 있던 기사 둘에게 적중하였다.
“커허어억!”
“어억!”
그것을 본 제퍼슨은 더 이상 넘어가지 않았다. 이제 자신 말고도 주군을 지켜 줄 이들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에르시오에게 말하였다.
“먼저 저들에게 합류하십시오. 전하. 신은 저들을 구하러 가겠습니다.”
“비, 비즐리 경…….”
에르시오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이미 몸을 움직인 제퍼슨. 곧장 말머리를 돌려 기사들을 향해 달려갔다.
오러를 사용해 흑마법을 저항하고 있는 그들에게 다가온 제퍼슨이 자신의 오러를 이용해 흑마법의 기운을 몰아내었다. 일반 오러와는 달리 소드 마스터의 오러는 강맹하였다.
파아아아악───
기사들을 꼼짝 못 하게 옭아맸던 검은 기운이 제퍼슨의 오러에 단숨에 밀려나며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허어억…허억….”
“하아, 하아…….”
방금 전까지 얼굴이 하얗게 질렸던 기사들이 호흡을 가다듬자 점점 혈색이 돌아왔다.
그들이 무사한 것을 확인한 제퍼슨은 다시 놈들을 보았다. 대략 열댓 명으로 보이는 그들.
앞서있는 자들은 석궁을 재차 쏘려고 하고 나머지는 흑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상당히 버거워 보였지만 지금 상황에 뒤돌아 도망칠 수도 없었다. 자신도 몸을 빼기 쉽지 않았지만 만약 자신이 도주한다면 두 기사들은 반드시 위험해 빠지게 될 터.
그 모습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다.
으득.
결사 항전의 각오를 한 제퍼슨은 오러 블레이드를 일으키며 놈들을 맞이하였다. 그렇게 그들과 충돌하기 직전.
붉은빛의 섬광이 놈들을 향해 쏟아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