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아크레프 제국의 위기 (3)
그윽한 냄새가 숙소 안을 가득 메웠다.
다섯 명의 직원들이 음식을 가져왔는데 그 양이 무척이나 많았다. 숙소에 있던 식사 테이블이 제법 넓었음에도 불구하고 빈 곳을 찾기 힘들 정도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여관에서 준비한 저녁 식사는 꽤나 훌륭하였다.
주메뉴인 돼지 통구이에는 잘 구운 돼지뿐만 아니라 각종 채소와 소스가 곁들여져서 고기의 풍미를 한층 더 끌어내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신선한 과일들이 곳곳에 놓여있었고 인원수에 맞게 따뜻한 스튜와 잘 구워진 빵이 차려져 있었다.
거기다 정성껏 조리한 닭고기 스프와 짭조름하게 조리된 베이컨이 식탁을 더욱더 풍성하게 만들어주었다.
오랜만에 풍성한 상차림에 기사들의 표정이 한결 좋아졌다.
며칠 동안 추적에 시달렸기에 제대로 된 식사는 물론 끼니조차 챙겨 먹기가 힘들었던 그들. 그런 와중에 이렇게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눈앞에 보이니 굶주린 배는 절로 요동칠 수밖에 없었다. 식욕으로 인해 입안에 잔뜩 침이 고인 그들. 하지만 감히 누구 하나 음식에 손을 대지 못하며 에르시오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시선에 에르시오는 쓴 미소를 하면서 입을 열었다.
“다들 어서 식사를 하게나. 나는 상관하지 말고.”
그렇게 말을 하였지만 자신들의 주군이 식사를 하지 않으니 어찌할 바를 모르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때 그들의 선임 기사인 제퍼슨이 조용히 말을 하였다.
“눈치 보지 말고 어서 들어라! 전하의 식사는 내가 따로 챙길 테니까.”
“예, 알겠습니다. 비즐리 경.”
그제야 호위 기사들은 안심하면서 식사를 하기 시작하였다. 일단 누군가 음식에 손을 갖다 대니 무섭게 줄어들기 시작하는 음식들. 그들은 오랜만의 만찬에 정신없이 주린 배를 채워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에르시오의 심정이 복잡하였다.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걸고 고된 일을 하면서도 제대로 된 식사조차 못 한 그들이 고마우면서도 한편 미안하였다.
측은한 눈빛으로 그들을 쳐다보고 있을 때 어느새 제퍼슨이 그에게 다가왔다. 그의 손에는 닭고기 스프가 들려 있었다. 식사를 거른 그에게 따로 먹을 것을 챙겨온 것이었다. 이에 에르시오는 손을 저으며 말하였다.
“고맙지만 되었네. 몸이 안 좋은지 영 식욕이 없군.”
완곡히 거절하였지만 제퍼슨은 물러서지 않고 다시 한 번 간곡히 말을 이어갔다.
“속이 불편하시겠지만 조금이라도 드셔야 합니다.”
제법 단호한 어투. 그의 말이 맞다.
이렇게 몸이 안 좋을수록 더 잘 먹어야 했다. 식욕이 없다고 식사를 거른다면 오히려 나을 병도 심해질 것이다.
그래서 제퍼슨도 결례를 무릅쓰고 자신의 주군에게 식사를 권하였던 것이었다.
그 의지를 느낀 에르시오는 그의 청을 거부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내키지 않았지만 손을 내밀며 스프를 받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한 스푼씩 입에 대기 시작하였다.
“우욱….”
식사를 하던 에르시오는 헛구역질을 하였다.
음식 맛이 나쁘지 않았지만 후각이 예민해져서인지 고기의 잡내가 느껴지면서 위에 경련이 일어났다.
잠시 수저를 멈춘 에르시오. 숨을 고르며 위축되었던 위장을 진정시켰다.
스프 한 숟갈을 먹기조차 쉽지 않았다. 하지만 먹어야만 하였다. 각오를 굳힌 그는 다시 한번 수저를 들었다.
음식이 입안에 들어가자 그 안에서 역겨움이 감돌았다.
하지만 에르시오는 그것을 애써 참아내며 목으로 넘겼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스프에서 닭고기의 누린내가 느껴졌다. 하지만 마음을 비운 채 억지로 집어넣었다.
다행히 몇 번 삼키니까 익숙해져서인지 몸의 거부반응이 잠잠해졌다. 그렇게 힘겹게 식사를 하던 에르시오.
스프의 반절 정도만 먹은 후 제퍼슨에게 그릇을 넘겨주었다.
에르시오가 식사를 마쳤을 때. 그동안 기사들이 식사를 하던 테이블 위에 있던 음식들도 어느덧 비워지고 있었다.
저녁 식사가 끝나자 여관의 일꾼들이 그것을 치웠다.
나온 음식의 양이 많으니 치워야 할 그릇도 많았다.
부산하게 그것을 치운 후 깔끔하게 청소까지 마치자 씻을 물을 가져왔다.
따뜻한 물을 받은 욕조를 여러 개 준비하여서 숙소에 있던 이들이 쓰기에는 부족하지 않았다.
여태까지 추적을 피하느라 며칠 동안 전혀 씻지 못했었다. 그래서인지 따뜻한 물이 가득한 욕조를 보자 벌써부터 개운한 느낌이 들었다.
에르시오의 허락이 떨어지자 그들은 너도나도 옷을 벗어 던졌다. 그리고 짝을 지어 욕조에 들어가 몸을 담갔다. 따뜻한 물이 몸에 스며들자 그동안의 피로가 날아가는 듯했다.
마치 그동안의 노고에 보상이라도 받는 것 같은 느낌.
에르시오 또한 홀로 목욕물에 몸을 담그며 휴식을 취하였다. 상태가 썩 좋지 않았지만 따뜻한 물이 몸에 닿자 한결 나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즐거운 기분으로 목욕을 마치자 일행은 노곤해지기 시작하였다. 모두 지쳤는지 벌써부터 눈이 감기는 이들이 많았다. 그래서 경계를 서는 인원을 제외하고는 취침을 하도록 하였다.
푹신한 침대에 눕자 그대로 곯아떨어져 버리는 기사들. 코까지 고는 그들을 보니 그동안 상당히 힘들었던 것이 전해졌다.
에르시오도 자리에 누우니 이내 잠들고 말았다. 그 또한 저주와 강행으로 인한 피로 때문인지 곧장 수면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모두 한참 잠에 들던 그 시각.
몇 시간이 지났을까?
제퍼슨이 다급한 목소리로 에르시오를 깨웠다.
“전하, 어서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음?, 비즐리 경, 대체 무슨 일인가?”
간만에 숙면을 취했던 에르시오는 잠이 덜 깼는지 잠긴 목소리로 이유를 묻는다.
“아무래도 추격자들이 온 것 같습니다.”
“뭐?”
추격자란 말에 정신이 번쩍 든 에르시오. 상황을 좀 더 이해시키기 위해 제퍼슨은 이어서 설명하였다.
“조용하던 도시가 갑자기 부산스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분명 병력들이 들이닥친 게 확실합니다.”
“……그렇군.”
이런 야심한 시간에 병력들이 도시를 찾은 것은 일반적인 일이 아니었다. 그것이 꼭 추격자들일 거란 법은 없었지만 시기가 시기인 만큼 허투루 생각할 수 없었다.
게다가 왠지 모르게 드는 불길한 느낌은 그 확신을 더욱 굳혀지게 만들어주었다.
에르시오는 곧장 외투를 챙겼다.
취침할 때 이미 복장을 갖추고 있던 상태여서 외투만 걸치면 바로 외출할 수 있는 상태.
주변을 보니 이미 다른 이들은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그들은 모든 것을 마친 후 에르시오를 깨운 것이었다.
왜 먼저 깨우지 않았냐고 하고 싶었지만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마 몸이 좋지 않으니 조금이라도 더 쉬기를 바랐을 것이다. 아직 상황이 조금 여유가 있기도 하고 말이다.
그렇게 그들은 몰래 숙소를 빠져나왔다.
먼저 나온 기사 두 명이 여관에 맡겨뒀던 말을 마구간에서 꺼내와 미리 준비시켜놓았다.
야밤에 움직여서 불만인지 몇몇 말들이 투덕거림을 하였지만 그래도 여물을 쥐여주며 달래주니 이내 조용해졌다.
마침 하늘에 달도 뜨지 않아 그들의 모습이 어둠에 가렸다. 십여 마리의 말들이 움직이면 제법 소리가 났지만 소란스런 도시의 소음에 묻히며 다행히 누구도 그것을 듣지 못하였다.
그렇게 야음을 틈타 그곳을 빠져나가는 에르시오의 일행들. 큰길가로 가면 병사들에게 걸릴 위험이 있기에 골목을 통해 도시를 빠져나가려 하였다.
다행히 어두운 골목은 사람 하나 없이 조용하였다.
그들 또한 어두워 주변을 식별하기 곤란해 보였지만 그들 대부분 오러를 익힌 기사들이었기에 안력을 키워 주변을 살피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그들이 그렇게 여관을 나서고 몇 분 후.
어느새 그들이 머물던 여관 건물에 불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아무래도 병사들이 그곳에 들이닥친 모양이었다.
만약 경계를 섰던 기사들이 발견하지 못하였다면 꼼짝없이 저들에게 들켜서 곤란한 상황이 될 뻔하였다.
아무튼 지금은 무사히 빠져나왔다.
이제 저들에게 들키지 않고 도시를 벗어나기만 하면 되었다.
멈칫.
갑자기 선두에 있던 제퍼슨이 손을 들며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것을 본 후미의 사람들은 따라서 멈추었다.
제퍼슨이 수신호로 상황을 알렸다.
그것은 전방에 병사가 있다는 이야기.
그것을 확인한 사람들은 모두 긴장을 하며 마른침을 삼켰다.
이어진 제퍼슨의 손동작.
그리고 그것을 알아들은 기사 둘이 그와 함께 앞으로 나섰다. 그들은 조용히 말에서 내렸다. 그리고 화톳불을 피해 그림자에 몸을 숨겼다. 그런 다음 기척을 최대한 죽인 채 그곳에 있던 병사들에게 다가갔다.
도시의 출입문을 지키고 서 있던 병사들.
그들의 숫자는 총 다섯이었는데 피곤한지, 제법 졸린 눈을 비비며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어느새 그들 곁에 다가간 두 명의 기사.
병사들의 숫자가 제법 되었지만 그들은 겁나지 않았다. 다만 단숨에 제압하지 못해 소란이 나면 곤란하였으니 기회를 잡기 위해 어둠에 몸을 숨긴 채 상황을 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2명의 병사가 볼일을 보기 위해 자리를 비웠다. 그리고 그 틈을 놓치지 않은 두 기사는 단숨에 그들에게 튀어 나갔다.
“헉!”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기사를 보고 놀란 병사들. 하지만 적이라고 인식하기도 전에 그들의 목이 날아갔다. 공중에 떠오른 두 개의 목. 하나가 남았다.
그는 허공에 떠 있는 동료의 머리를 보며 현실감을 느끼지 못했다. 순간적으로 얼빠진 상태가 되면서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1초 후. 곧 사태를 파악한 그가 소리 지르려 하였을 때.
서걱─
오러가 깃든 기사의 검이 그의 목을 단숨에 베어버렸다.
데구르르
바닥을 구르는 3개의 머리. 그것을 확인한 기사들은 볼일을 보러 간 병사들에게 다가가 그들마저 조용히 처리하였다.
그리고 검을 들어 올리며 성공했다고 신호를 보내었다.
그것을 본 제퍼슨은 다시 일행들에게 신호를 보내 이동을 하였다.
그렇게 무사히 도시 밖으로 빠져나온 에르시오의 일행.
문을 빠져나가자마자 박차를 가하며 속도를 높였다.
다그닥다그닥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었지만 탁 트인 곳이어서 말을 타고 달리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고 있을 때였다.
티이잉──!
선두에서 달리던 말들의 다리에 뭔가가 걸리며 중심을 잃었다.
콰당!
거대한 말의 몸체가 바닥에 처박히며 흙먼지가 튀었다.
다행히 기사들은 말이 중심을 잃기 직전에 몸을 띄어 안전하게 땅에 착지를 하였다. 말 넷이 쓰러지고 그 뒤부터는 고삐를 급하게 잡아 멈추었다.
상황을 알기 위해 제퍼슨이 말에서 내린 기사에게 물었다.
“이것이 대체 어찌된 일이냐?”
그의 말에 기사는 심각한 얼굴로 말을 하였다.
“뭔가가 말의 다리에 걸리며 그대로 중심을 잃고 쓰러졌습니다.”
“뭐라? 그게 뭔지 확인해 봐라!”
“예, 비즐리 경.”
제퍼슨의 명에 기사는 곧장 그곳을 확인해보았다.
어두웠기에 안력을 최대한 집중해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게 무엇인지 찾았다. 그는 놀란 눈을 하며 제퍼슨에게 말을 하였다.
“여, 여기 밧줄이 걸려 있습니다.”
“뭐? 밧줄이라고?”
왜 이런 곳에 밧줄이 있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제퍼슨은 눈썹을 치켜세운 채 표정을 구겼다. 그때 하늘에서 별들이 빛나기 시작했다.
다른 별들보다 유독 밝게 빛나는 별들. 그것은 마치 유성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곧 제퍼슨은 그것이 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젠장! 적이다! 모두 에르시오님을 지켜라!”
푹! 푹! 푹!
주변에 꽂히기 시작하는 불화살들. 그것들은 수풀에 옮겨붙으며 그 주변을 태우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