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아크레프 제국의 위기 (2)
섬뜩.
마르코스의 눈빛에서 에르시오는 전신의 털이 삐쭉 서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포식자가 먹잇감을 보는 듯한 시선.
자신을 해하려는 살의가 가득 전해지며 순간 심장이 멈출 것만 같았다.
비릿한 피 냄새가 코끝에 맴돌았다.
그로 인해 잠시 잊었던 생존의 의지가 샘솟았다.
에르시오는 곧장 기사들과 병사들에게 명하였다.
당장 저 반역자를 벌하라고.
국왕 폐하를 시해한 저 대역죄인을 처단하라고.
목이 잠겼는지 거친 쇳소리를 내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처절한 주군의 명이 그들의 망설임을 순식간에 없애버렸다.
한때 황족이자 황태자 후보였던 눈앞의 죄인.
그것에 품었던 일말의 존경과 숭배를 단숨에 쳐내었다.
이제는 경멸과 함께 적의를 키워갔다.
분노한 기사들은 검을 들었다.
증오로 가득한 병사들은 창을 꽉 쥐었다.
철천지원수와도 같은 상대를 향해 노도와 같이 달려들었다.
상대는 고작 피투성이 외팔이였다.
비록 흑마법사라고 하지만 그 몰골은 비루하기 짝이 없었다. 그 모습이 만만해 보였던지 달려드는 이들에게서 두려움을 찾을 수 없었다.
마치 용사가 악당을 처치하는 것처럼, 그렇게 당연하듯 용감하게 달려들 뿐이었다.
“으아아아압!”
“죽어라! 이 악마 같은 놈!”
고함을 치며 호기롭게 다가가는 그들.
병장기로 무장한 수십 명이 접근하였지만 마르코스의 웃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도리어 그의 입꼬리는 더욱 찢어지며 하얀 이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휘익─
그는 손에 들고 있던 황제의 머리를 던졌다.
억울함이 가득한 지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 얼굴.
그것을 본 기사들의 움직임이 순간 멈칫하였다.
그리고 그 틈에 마르코스의 손에서 흑마법이 발현되었다.
《생명력 흡수》
검은 기운이 뿜어져 나오며 기사들의 목을 감쌌다.
오러를 끌어올리며 저항해보지만 막강한 마력에 의해 이겨내지 못하며 그대로 생명력을 착취당하였다.
“끄르르르륵….”
순식간에 생기를 빼앗겨버리는 기사. 탄탄했던 피부가 쪼그라들면서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그렇게 선두의 기사들이 무기력하게 당해버리자 뒤따르던 병사들 또한 섬뜩 놀라며 주춤거리며 걸음을 늦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대는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어느덧 마르코스의 손에서 시커먼 기운이 분출되면서 그들의 몸을 에워싸기 시작하였다.
“으허어어억!”
좀 전에 기사들의 생기를 흡수했던 것과는 다른 종류의 흑마법. 검은 기운이 병사들의 몸으로 흡수가 되더니 서서히 그것에 잠식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잠시.
투두둑! 투둑!
순식간에 몸이 부풀면서 갑옷 일부가 떨어져 나갔다.
근육이 비정상적으로 커지면서 뒤틀린 몸으로 변하였다.
거기다 그들의 얼굴은 이전과는 달랐다.
피부가 거뭇거뭇하게 변하면서 눈에서는 광기가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입 또한 크게 벌어지면서 침이 뚝뚝 떨어졌다.
딱딱!
어느새 커지고 날카로워진 이빨을 부딪치며 기괴함을 표출하였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의 동료를 향한 광기 어린 눈빛. 그것은 울부짖는 소리를 내며 게걸스럽게 달려들었다.
“허억! 뭐야, 데이브!”
갑작스런 동료의 공격에 깜짝 놀라는 병사들.
그들을 이끌던 기사들 또한 당혹스럽긴 마찬가지였다.
방금 전까지 등을 맞대던 전우에서 적으로 변해 달려드니 그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 하지만 잠시 머뭇거렸던 대가는 매우 참혹하였다.
콰드득! 콰직!
말도 안 되는 괴력으로 투구를 움켜쥐자 병사의 머리가 우그러졌다. 마치 기름을 짜듯 붉은 뇌수가 뿜어지며 몸을 따라 흘러내렸다.
단말마조차 지르지 못한 채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는 병사.
그 모습을 본 주위 동료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모두 정신 차려라! 저것은 더 이상 우리 동료가 아니다!”
한 기사의 외침에 정신이 번쩍 드는 병사들.
동요하던 눈을 바로 잡으며 이를 악물었다.
손에 든 창을 바로 잡았다. 그리고 놈을 향해 힘껏 찔렀다.
푹! 푹! 푹! 푹!
다섯 개의 창이 괴물을 향해 찔러 들어갔지만 생각한 것만큼 깊게 파고들지 못하였다. 놈은 자신을 찌른 병사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광기가 가득한 눈으로 바라본다.
실핏줄이 들어서며 붉게 충혈된 안구.
그 속에서 보이는 살의에 병사들은 두려움을 느꼈다.
“허억! 사, 살려줘!”
한 병사가 겁에 질리며 손에 쥔 창을 놓았다.
그리고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 그로 인해 주변의 사기가 바닥을 치기 시작하였다.
서걱─
데구르르.
도망치는 병사의 목이 바닥에 굴렀다.
그들을 지휘하는 기사가 병사의 목을 쳤다. 아무리 겁을 먹었지만 주군을 지켜야 하는 상황에 적에게 등을 보이기에 즉각 처분을 하였다. 병사를 처단한 기사는 소리쳤다.
“도망치는 놈들은 내 손에 죽는다! 어서 저 괴물을 막아라! 어서!”
그 말과 동시에 앞으로 나서며 괴물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검을 휘둘렀다.
오러가 진득하게 피어오르는 검. 그것은 적을 단숨에 절단하며 양분하였다.
차아아아악───
반으로 나뉜 괴물의 몸에서 피가 분수처럼 퍼져나갔다.
그러고는 힘없이 바닥에 널브러지고 말았다.
잠시 퍼덕거렸지만 이내 그 움직임이 멈추었다.
더 이상 움직임이 없는 것을 보니 확실히 죽은 것 같았다.
으득.
괴물을 처치해서 사기가 올라야 함에도 불구하고 기사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앞을 보니 괴물로 된 병사가 하나가 아니었다.
하나, 둘, 셋…, 아홉.
온몸이 부풀며 뒤틀린 형체들이 아홉이나 보였다.
놈들은 기사를 발견하더니 광기 어린 모습으로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기사도 혼자는 아니었다.
자신을 포함한 다섯 명의 근위 기사.
그들은 모두 각오를 다졌다.
여기서 물러서면 뒤에 있는 자신의 주군이 위험해진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내야만 했다.
검에 오러를 극한까지 집중시켰다.
어느새 진해지던 오러가 강하게 압축되면서 선명한 형태를 띠게 되었다.
오러 블레이드.
각자 오러에 따라 다양한 색의 오러 블레이드가 뿜어지면서 주변의 눈을 아프게 하였다. 그리고 그 빛은 서서히 움직였다. 아름다운 선을 그리면서.
무엇이든 베어버리는 가공할 검날이 일시에 적을 향해 쏟아졌다.
서걱─ 서걱─ 서걱─ 서걱─
기사들의 오러 블레이드에 토막이 나버리는 괴물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괴물들이었지만 압도적인 절삭력을 가진 빛의 검에는 푸딩처럼 잘려 나갔다.
불과 적들의 반절에 불과한 숫자였지만 단숨에 적을 추살한 근위 기사들. 기세를 몰아 눈앞에 있던 마르코스마저 끝장내려 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만의 바램이었다.
쿠웅! 쿠웅! 쿠웅!
어느새 주변에 커다란 마수들이 나타났다.
4족 보행의 괴물들.
놈들의 진한 보랏빛 피부는 상당히 매끄러워 보였는데 점액질이 잔뜩 묻어서인지 심하게 반들반들하였다.
거기다 눈이 없고 대신 머리 대부분을 차지하는 커다란 입이 눈에 띄었는데 그 안에는 날카로운 이빨들이 빼곡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들은 배가 고픈지 침을 뚝뚝 흘리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니 침이 아니었다. 붉은색을 보아하니 그것은 피였다.
이미 어느 정도 식사를 마친 듯한 놈들이었지만 아직도 허기를 느끼듯이 턱을 움직이며 이빨을 탁탁 부딪친다.
그 마수들을 본 적이 있던 에르시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저들은 오러 블레이드를 포함한 어떤 물리적 공격도 통하지 않는다. 지금 근위 기사들이 저들이랑 맞붙는다면 어떤 결과가 날지 뻔하였다.
다급해진 그는 서둘러 말하였다.
“저 마수들은 검이 통하지 않는다! 어서 물러서라! 일단 이 자리에서 벗어난다!”
에르시오의 말을 들은 기사들은 공격을 하려다 멈칫하였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자신들은 괴물의 먹이로 자처하는 꼴이었다. 그들은 곧장 방향을 틀어, 뒤로 물러서기 시작하였다.
빠드득.
눈앞의 반역자를 두고 도망쳐야 하는 심정에 에르시오는 이를 갈았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이대로 있다간 놈을 처단하기는커녕 자신의 목숨조차 보전할 수 없었다.
당장이라도 놈을 죽여 버리고 싶었지만 그의 선택은 이성에 따랐다. 무익한 분노를 가라앉히고 차가운 판단에 따라 발걸음을 돌렸다. 어찌됐든 지금은 살아남아야 했다. 그래야 후일을 기약할 수 있었다.
에르시오를 비롯한 기사들이 자신에게 다가오지 않고 도망가자 마르코스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저 눈엣가시인 동생 놈을 없애버리나 했는데 저리 가버리니 심기가 뒤틀렸다.
황제를 처리하는데 마력을 많이 써서 아끼고 있었는데 이렇게 된 이상 그럴 필요가 없었다.
거리가 멀고 호위 기사들이 많기에 직접적인 공격은 효과가 없어 보였다. 그래서 잠시 어찌할까 고민하였다. 그리고 이내 입꼬리를 올리며 사악하게 웃었다.
콰직.
자신의 손가락을 깨물었다.
피부가 찢어지며 피가 뚝뚝 떨어졌다. 통증이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그는 곧장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흘러내리던 피가 공중에 떠오르더니 하나의 문양을 만들었다.
섬뜩한 느낌을 주는 기하학적인 문양.
그것은 곧 은은한 빛을 내더니 그대로 전방으로 퍼져나갔다.
그것의 목표는 바로 에르시오.
소리도 없었다. 기척 또한 느낄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를 호위하던 기사들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였다.
치이익─
“크으윽!”
에르시오가 갑자기 신음 소리를 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무언가 타는 소리와 함께 가슴 쪽에 통증이 느껴졌기 때문. 호위하던 기사들은 몇이 주변을 경계하였고 나머지는 에르시오의 안위를 살폈다.
그의 얼굴에서 식은땀을 흘리면서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일그러진 표정을 보니 꽤나 고통스러운 듯 보였다.
기사들이 양해를 구하며 통증이 나는 곳을 들춰보았다.
그러자 그곳을 본 기사들의 눈에서 동요가 일어났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에르시오 가슴부위가 시커멓게 변해가며 타들어 가고 있었기 때문. 당혹스러워한 기사는 곧장 자신의 품에서 최상급 포션을 꺼내 그곳에 뿌렸다.
그러자 일순간 회복되며 통증이 줄어들었다.
상태가 호전되자 기사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에르시오도 괜찮아져서인지 몸을 일으키며 일어섰다.
그리고 곧장 발걸음을 옮기며 그곳을 벗어났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상처가 아니었다.
그것은 저주였다.
그것도 아주 지독한 저주.
황궁을 빠져나오기 전에 십수 명의 기사들이 합류하였다. 혼란 속에서 살아남은 근위 기사들이었는데 그들은 말을 구해 에르시오와 함께 황성을 빠져나왔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그런데 에르시오는 다시 고통에 허덕였다. 타오르는 듯한 끔찍한 통증. 다행히 최상급 포션은 몇 개 더 있었다.
그것을 사용하자 곧장 가라앉으며 회복하는 듯 보였지만 하루가 지나자 다시 재발하였다.
그제야 그들도 이것이 통상적인 상처가 아닌 것을 알았다.
정보를 담당하는 에르시오는 이것이 저주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당장이라도 고위 마법사에게 해주를 받아야 했지만 상황이 여의찮다. 놈들은 어느새 제국을 장악하여 자신들에게 수배령을 내렸다. 왕을 시해한 자는 마르코스였지만 오히려 그 죄를 에르시오에게 뒤집어씌웠다.
게다가 그 말도 안 되는 말을 많은 영주들이 믿으며 자신들을 추적하였다. 아니 말보다는 마르코스가 제시한 보상에 눈이 어두워졌기 때문이었다. 에르시오는 그들의 추적을 피해 제국을 벗어나려 하였다. 집요한 추적에 목숨을 위태로울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몇몇 호위 기사들의 희생으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도주하다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 * *
“후우….”
현재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자 에르시오는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었다. 하루빨리 이곳을 벗어나서 제국의 실태를 자세히 알려야만 하였다.
어느덧 짐은 다 정리가 되었고 일행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후에 여관에서 준비한 저녁 식사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