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영지가 제일 강함-138화 (138/162)

137화 소식

칼슨이 북방을 정벌한 지 어느덧 두 달이 지났다.

아직 전쟁의 상처가 씻겨지지 않은 벤투스 왕국. 왕실의 요청에 의해 그 복구 사업을 드레이크 건설에서 맡기로 하였다.

하지만 그곳의 영주들은 복구 비용을 지불할 만한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의 영지를 담보로 칼슨이 연 3할의 이율로 비용을 대주었다. 상환기간은 정확히 3년. 그 안에 이자를 포함한 비용을 지불하지 못한다면 자신의 영지를 고스란히 칼슨에게 넘겨주어야만 했다.

그것이 굉장히 불합리한 일인 것인지는 알았다. 하지만 폐허가 된 영지를 재건할 여력을 없던 그들이 기댈 곳이라곤 오직 드레이크 영지뿐이었기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지 않는다면 그냥 망한 영지라는 애물단지만 들고 있을 뿐이었으니까.

도시 및 영지 재건을 위한 공사 기간은 얼추 1년을 잡았다. 이제 막 영지의 신도시 사업도 끝났기에 그 안에 끝마치는 것은 문제없었다. 게다가 자신의 영지처럼 고층으로 건물을 올릴 것도 아니고 보급형으로 정비만 해도 충분하였기에 단기간에 공사가 가능하였다.

어차피 드레이크 영지에서는 인력과 돈은 남아돌았다. 오히려 지금 같은 상황에 그것을 놀리지 않고 활용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니 도리어 기뻐해야 할 상황.

그렇게 영지의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 * *

네트비아의 신시가지가 완공되자마자 그곳으로 입주 신청을 하는 이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었다. 그들 대부분이 구시가지의 귀족들과 지역 유지들이었지만 몇몇 신흥 부호들 또한 입주를 희망하였다. 거기다 다른 영지의 귀족들도 이곳에 들어오기 위해 찾아왔으니 그야말로 이곳은 사람으로 가득하여 발 디딜 틈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크게 걱정할 것 없었다. 신시가지는 그들 모두를 수용하고도 남을 만큼 크게 또 많은 주거지를 만들었으니 말이다. 다만 선호도에 따라 경쟁이 붙기는 했지만 그것은 그들이 지불하는 돈에 의해 결정되었으니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적극적으로 권해야 할 일이었다.

입주의 방식은 각자 원하는 곳을 신청한 후 신청한 사람끼리 경매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였다.

한 호실당 경매 시작가는 5천 금화부터 진행이 되었다. 비싼 건축비와 인건비 등을 제외하고도 8할 이상은 남는 금액.

하지만 낙찰가는 시작가의 보통 두세 배, 아니 선호도에 따라 인기가 있는 것은 열 배 이상도 뛰었다.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금액이었지만 난생처음 보는 고층 건물들과 마력석으로 움직이는 승강기 및 내부 인프라들을 그들에게 신세계나 다름이 없었다. 그리고 높은 건물에서 내려다보는 도시의 풍경은 그들의 구매 욕구에 한껏 불을 지폈다.

특히 각 건물의 최고층의 경쟁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치열하였다. 그중 중심부에 가까운 곳 건물의 최상층은 무려 시작가에 30배가 넘는 액수에 낙찰되었으니까 말이다.

어지간한 대영주나 부호가 아니면 엄두도 내지 못할 금액.

이미 네트비아에는 그런 부호들이 여기저기 널려있을 만큼 부유한 도시가 되었다.

* * *

넓은 대로를 중심으로 가지런히 지어진 고층 건물들. 그 아래에는 많은 인파들이 북적거리며 지나다니고 있었다.

도로와 인도를 정비하여 통행에는 지장이 없게 하였으며 교차로나 각 건널목에는 골렘 연구에서 파생된 기술로 만들어진 신호등이 설치되었다. 그 규칙은 칼슨이 이전에 있던 곳이랑 동일하게 적용하였다.

초록과 적색의 불빛으로 말이다.

만약 신호를 어기다 각 구간을 도는 경비대원들에게 발견될 시 벌금을 물리거나 처벌을 당하였다. 그 처벌 수위가 제법 높았기 때문에 마차를 끄는 마부들은 필수적으로 이곳의 교통 규칙에 대해 숙지할 수밖에 없었다.

각 건물 1~3층은 크고 작은 점포로 이루어졌다. 그곳에서는 영지에서 임대료를 받고 영업을 하도록 하였다. 위치나 층에 따라 정해진 임대료는 달랐으며 2년마다 계약을 새로 쓰게 하였다.

거기다 각 구역마다 따로 할 수 있는 업종들이 정해져 있었다. 이를테면 어떤 곳은 식당만을 해야 했고, 어떤 곳은 식료품만을 파는 곳으로만 영업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구역이 정해지고 규칙들이 정해지니 처음에는 불만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서 오히려 거리가 정돈이 되면서 손님들이 붐비기 시작하였다.

시가지 곳곳에는 소극장들도 들어섰다. 도시 중심부 근처에는 대형 공연장이 생겨서 언제든지 멋진 공연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쾌적한 도시에 먹을거리와 놀거리가 풍부해지자 사람들의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였다. 특히 왕국 귀족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렇게 소문이 퍼지면서 이제는 벤투스 왕국 말고도 다른 왕국에서도 찾는 관광도시가 되고 말았다.

* * *

신 네트비아 도시중심에 세워진 최고층 건물.

무려 30층에 달하는 높이의 이 건물은 네트비아 어디에서든 볼 수 있을 정도로 높았다.

완공된 지 얼마 안 된 이곳의 최상층을 칼슨은 자신의 집무실로 쓰기로 하였다. 영주 관저를 통째로 이곳으로 옮겨 갈 계획이긴 하였지만 워낙 가져갈 게 많은지라 일단 집무실 정도만 먼저 옮겨왔다.

창가를 내다보니 네트비아의 신시가지와 구시가지가 한눈에 바로 보였다. 예전에 제국에서 봤던 것에 비해 전혀 뒤지지 않는 도시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칼슨은 문득 옛 생각이 났다. 자신이 조합장으로 있던 재개발. 그때 못다 이룬 것을 여기서 일부 해소한 것 같아 감회가 조금 남달랐다.

멋지게 지어진 도시의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창가를 지그시 내려다보던 칼슨.

이윽고 고개를 저으며 잠깐이었던 감상을 끝냈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며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똑똑.

“영주님, 레인입니다.”

“그래,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온 레인이 손에 쥔 서찰을 칼슨에게 건네면서 말하였다.

“시종장이 영주님께 온 서찰이라고 전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에드윈이?”

“예, 자신이 직접 와 저에게 전달해주고 곧장 관저로 돌아갔습니다.”

“그렇겠지, 그쪽에는 아직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으니까 말이야.”

신시가지가 완공되자 칼슨은 영주 관저를 이 건물로 옮기고자 하였다. 하지만 워낙 챙겨야 할 것이 많은지라 아직 집무실만 이동한 상황. 에드윈은 이전 관저에서 잡다한 일을 마무리해야 해서 당분간 그곳에서 머물고 있었다. 정신없이 일하고 있는 와중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와서 전한 서찰이라면 꽤나 중요한 서찰임이 틀림이 없었다.

서찰을 건네받은 칼슨은 봉투에 적혀있는 글씨를 읽어보았다.

-섀도우즈로부터

그것을 본 칼슨의 눈매가 좁아졌다.

섀도우즈.

전에 자신을 찾아왔던 아드리안이 속해있던 비밀 단체였다. 이전에 협력을 약속하고 나서 그 뒤로 쭉 소식이 끊겨 잊고 있었는데 이렇게 서찰이 올 줄이야.

칼슨은 조심스레 봉투를 열어 서찰을 확인해보았다.

서찰을 펼친 그는 천천히 눈을 돌리며 그것을 읽어보았다.

꽤나 진지하게 그것을 보고 있기에 그를 지켜보던 레인은 서찰의 내용이 궁금하였지만 칼슨이 입을 열기 전까지 그저 묵묵히 서 있을 따름이었다.

이윽고 서찰을 다 읽었는지 고개를 든 칼슨은 레인을 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중요한 손님이 온다고 하는군.”

“예? 영주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중요한 손님이라니요?”

레인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묻자 칼슨은 미소 띤 얼굴로 대답을 해 주었다.

“에르미온님이 방문하신다고 하네. 그것도 이번 주 내로 말이야.”

“에르미온님이라니요? 그게 누구신지….”

레인은 그런 이름을 가진 귀족이 왕국에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지만 당장 떠오르는 이가 없었다. 한참 생각하고 있는 그를 본 칼슨이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하하, 현자 에르미온님 말이야. 레인, 정말 모르는 거야?”

그제야 뭔가 알았다는 듯한 얼굴을 하는 레인. 두 눈을 크게 뜨며 놀라워하였다.

“허억! 서, 설마 그 현자 에르미온을 말하시는 겁니까?”

“그래, 맞아. 현자 에르미온.”

“세, 세상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한 그를 보며 칼슨은 다시 말을 하였다.

“그러니 시종장에게도 잘 일러두라고. 귀한 손님을 모시는데 차질이 있으면 안 되니까 말이야.”

“예, 알겠습니다. 영주님.”

칼슨의 말에 레인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한다. 그러고는 곧장 나가 자신의 해야 할 일을 하러 갔다.

현자 에르미온.

그는 칼슨이 서찰을 받은 후로부터 정확히 닷새 만에 드레이크 영지를 방문하였다.

* * *

한낮의 햇볕이 강렬하게 내리쬐는 초여름의 날씨.

제법 더운 날씨에도 네트비아 신시가지의 거리는 사람들로 인해 가득 메어졌다.

그곳에 두 명의 사람이 있었다.

둘의 복장은 비슷하였다.

짙은 색채의 후드를 쓰고 몸에는 로브를 두르고 있었다. 한 손에는 자신의 키만 한 떡갈나무 지팡이를 들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마치 마법사를 연상케 하였다.

서로의 복식은 비슷하였지만 둘은 전혀 달랐다.

한 명은 남성 다른 한 명은 여성.

게다가 남성은 나이가 있는지 얼굴에 주름과 새하얀 수염이 가득하였다. 반면에 여성은 젊다 못해 무척이나 앳된 모습. 그렇게 상반된 두 명이 주변을 둘러보며 신기하듯 쳐다보고 있었다.

“스승님! 저기 저 건물 좀 보세요! 다른 건물들도 높은데 저 건물은 특히 더 높은 거 같아요!”

적갈색 머리가 유난히 눈에 띄는 그녀가 30층 건물에 손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그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며 남성은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그래, 정말 높은 건물이구나. 저런 건물은 아크레프 제국의 수도 베이도스에서도 보지 못했는데 말이다. 설마 이런 변방 왕국에서 보게 될 줄이야…….”

“우와, 정말이요? 베이도스에서도 볼 수 없을 만큼 높은 건물이라니. 이곳의 건축 기술이 제국보다 높은가 봐요?”

“흐음, 아마 그럴지도 모르지.”

남성은 눈이 가늘게 뜨며 말하였다.

건축에 대해서도 제법 조예가 깊은 그였다.

저렇게 높은 건물을 제국에서 짓지 못해서 못 짓는 게 아니었다.

건물을 저렇게 높이 지으면 건축 난이도가 높아지며 비용이 오르는 점도 있었지만 더욱 큰 문제는 저렇게 지어놔도 그곳에서 사람이 지내기가 무척이나 힘이 든다는 것이다.

당장 10층 이상만 해도 계단을 오르고 내려오는 게 보통 일이 아닌데 저것은 눈짐작으로만 봐도 30층은 돼 보인다. 모르긴 몰라도 저 꼭대기에서 지내려면 무척이나 고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여기 주변에는 큰 건물들이 많은 것 같아요. 사람들도 많고요. 흐음~ 이건 무슨 냄새지?”

코를 킁킁대며 주변을 살피는 여성. 냄새를 따라 시선을 옮기니 그곳에서는 꼬치구이를 팔고 있었다. 닭고기와 야채를 번갈아 꼬치에 꽂아 숯불에 굽고 있었는데 그 냄새가 참 기가 막혔다.

냄새 때문인지 그 점포에 줄 서 있는 이들이 많았는데 당장 볼일이 없었으면 곧장 그 뒤로 가서 줄을 섰을 것이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그곳을 지나친 두 사람.

하지만 음식을 파는 곳은 그곳뿐이 아니었다.

저쪽은 고기구이. 이쪽은 특제 스튜 전문점. 또 저곳은 훈제된 생선요리……. 맛있는 냄새가 이곳을 온통 뒤덮어버렸다.

아무래도 이 근방에 있는 점포들은 모두 음식점인 듯하였다.

꿀꺽.

마침 시간도 점심시간에 가까운지라 여성의 입에는 침이 잔뜩 고였다. 그 모습을 본 남성은 피식 웃으며 그녀에게 말을 하였다.

“레이나, 네가 배가 많이 고픈가 보구나. 그럼 볼일을 보기 전에 우리 식사부터 하자꾸나.”

“정말이요? 스승님, 감사해요.”

스승의 말에 그녀는 좋아서 활짝 웃었다.

둘은 근처에 고기구이 파는 음식점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