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북벌 (7)
쿵! 쿵! 쿵!
거대한 오거 해골이 칼슨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하였다.
그 거대한 크기가 무색하리만큼 무척이나 빠른 속도. 순식간에 기간테스의 앞까지 다가왔다.
“이런!”
갑작스레 놈이 다가오자 인상을 쓴 칼슨. 이를 악물며 힘껏 검을 휘둘렀다.
콰아아앙!
단숨에 부서지던 해골 병사와는 달리 놈은 굳건하게 기간테스의 공격을 버티어내었다.
일반적인 오거의 뼈는 그 강도가 매우 뛰어났다. 게다가 이놈은 네크로맨서의 마법으로 재탄생한 몬스터.
그 때문인지 기간테스의 일격을 버티어낸다.
부우우웅──── 콰아앙!
“크으윽!”
거대한 뼈 주먹이 날아와 기간테스를 때렸다. 팔을 들어 그 공격을 막아내었지만, 충격이 만만찮았다.
그렇기에 칼슨은 놈을 상대하기 위해 오러를 집중하였다.
그러자 기간테스의 검에 오러가 피어오르기 시작하였다.
3미터나 되는 검에서 새하얀 오러가 일어나자 주변이 환해졌다.
오러 소모가 많아졌지만 그래도 초기 버전보다는 효율이 좋아졌다. 칼슨은 오러를 먹인 검으로 눈앞의 해골 오거를 단숨에 내리쳤다.
스으으윽─── 파사사삭!
새하얀 빛이 그어지면서 오거의 어깨 쪽이 박살 났다. 그리고 그 한쪽 팔이 떨어져 나가며 놈은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칼슨은 그런 놈에게 다시 한번 검격을 날렸다.
콰과과광! 콰지지직!
반대쪽 어깨부터 사선으로 몸을 갈라버리고 마는 기간테스의 대검. 거대한 해골 오거의 상체가 떨어져 나가며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쿠우우웅! 와르르르르!
바닥에 거대한 뼛조각들이 떨어지며 부서져 버렸다. 아직 남은 하체가 있었지만 칼슨은 그것마저 오러가 깃든 검으로 양단을 해버렸다.
콰지지직!
결국 조각나버린 해골 오거. 그 거대한 형체가 무너지면서 큰 뼛조각들이 땅 위에 수북이 쌓였다.
그렇게 놈을 제압한 칼슨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오러를 안정시켰다. 그리고 네크로맨서를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그때 눈앞에 쌓여있던 뼈에서 심상찮은 기운이 느껴졌다.
“이런 씨발!”
이것은 아까와 같은 폭발이 분명하였다.
크기가 작은 해골 병사들의 폭발도 꽤나 강력하였는데 오거의 뼈라면 그 파괴력이 상상을 초월할 것 분명하였다. 그래서 칼슨은 오러 바디를 쓰는 대신 좀 더 확실한 방어 스킬인 칠흑을 사용하였다.
지이이이이잉────
거대한 검에 서려 있던 새하얀 오러가 순식간에 검어졌다. 그리고 점점 얇게 퍼지기 시작. 넓게 펼쳐진 그것을 칼슨은 전방으로 퍼트렸다. 그리고 그때 오거의 뼈가 폭발하였다.
콰아아아아앙! 콰과과광!
스킬을 쓰는 동시에 일어난 폭발. 예상보다 더 큰 폭발에 주변이 크게 흔들렸다. 하지만 그렇게 큰 폭발에도 불구하고 기간테스는 아무런 타격을 입지 않았다.
칠흑 같은 검은 장막이 폭발의 여파를 모조리 흡수하였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을 본 루지오는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단순히 검을 휘두르는 골렘인 줄 알았는데 오러를 사용하고 이상한 기술도 사용해 자신의 마법을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렸다.
저런 골렘이 있다는 이야기는 이제까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가 준비해둔 것들이 몇 개는 더 있었지만 도저히 저것을 당해낼 수 있어 보이진 않았다. 게다가 그의 본능이 당장 이곳에서 도망쳐야 한다고 재촉하였다.
“젠장! 이런 개 같은 일이…!”
함정을 파고 왕국의 주력을 모조리 없애려고 했던 계획은 이제 실패가 되고 말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다.
이대로 있다가는 자신 또한 세르보처럼 죽을지도 몰랐다. 일단 지금은 목숨을 보전해야 했다.
생각을 마친 루지오는 다시 지팡이에 마력을 부여하였다.
그러자 바닥에 검은 연기가 올라오기 시작하더니 그것은 곧 하나의 형체를 이루었다.
2미터가 좀 넘는 4족 보행의 형태. 마치 말과 닮은 그것은 붉은 눈을 빛내며 루지오의 앞에서 으르렁거렸다.
“그래, 그래. 얌전히 있어라. 옳지.”
루지오가 그것을 진정시키며 다가가려 하였다. 하지만 그때.
쉬이이이이익───── 푸욱!
“커허억!”
등에 뭔가가 꽂힌 통증에 신음 소리를 토하고 말하였다.
정신을 차리고 확인해보니 그것은 화살이었다.
누군가 자신을 노리고 쏜 것이 분명하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몇몇 야만인들을 제외하고는 근처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상당히 먼 거리에서 쐈다는 이야기. 순간 간담이 서늘해진 루지오는 본능적으로 몸을 숙이며 바닥에 바짝 엎드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순간.
쉬이이이이익─────
그의 머리 위로 먼가가 지나가며 공기를 찢어버렸다. 바람이 머리를 스치자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이건 분명 자신을 노린 화살이 확실하였다. 만약 한순간이라도 지체했었다면 머리에 화살이 박혔을지도 몰랐다.
아무튼 그는 무사하였고 낮은 자세를 유지하면서 포복을 하며 자신이 소환한 검은 말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것의 등에 타올라 막 도주하려 하였다. 하지만 그때 누군가가 그에게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서걱───!
순간 다리 쪽에 뜨거운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곧 오른쪽 다리가 잘려 나가며 피가 뿜어져 나왔다.
“크아아아아악!”
아까 화살에 맞은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통증에 비명을 지르고 마는 루지오. 그대로 바닥에 떨어진 그는 고통 속에 정신을 잃을 것 같았지만 간신히 부여잡으며 눈앞을 바라보았다.
“후우, 이자가 바로 영주님이 말한 네크로맨서인가?”
눈앞에 보이는 기사가 자신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갑옷을 입은 것을 보아하니 벤투스 왕국의 기사가 분명한데 야만인들이 가득한 이곳까지 다가와 자신을 베어낸 것을 보면 평범한 놈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듯 그의 검에서 짙은 청색의 오러 블레이드가 솟구치는 게 눈에 들어왔다.
“설마 소드 마스터…….”
왜 소드 마스터가 이곳까지 와서 자신을 베는 건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당장 앞에 있는 그가 자신을 향해 검을 내리치고 있었으니까.
“으아아악!”
치이이익──── 콰아아앙!
팔로 몸을 가리며 비명을 지른 루지오. 하지만 누군가 상대의 검을 막아서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루지오는 지그시 눈을 뜨며 자신을 구한 이를 확인하였다.
온몸에 흉터가 가득한 거구의 근육질 사내. 바로 베르한이었다.
“괜찮나? 상처 빨리 치료해라!”
루지오에게 어눌한 말투로 말한 베르한은 다시 에드를 상대하였다.
콰아앙! 콰지직──! 콰앙!
그의 농밀한 오러 블레이드가 에드의 검이라 부딪히면서 오러 파편이 주변에 흩뿌려졌다.
“빌어먹을! 또 네 놈이냐?”
이번에 3번째 상대인 에드는 지긋지긋하다는 듯 이를 악물며 연신 놈에게 검격을 날렸다. 하지만 상대는 소드 마스터를 뛰어넘은 그랜드 마스터. 그는 에드의 공격을 수월하게 막아내었다.
쉬이이이이익────── 타앙!
“크윽!”
어느 순간 날아온 화살에 검을 틀어 방어하는 베르한. 갑작스런 그 공격에 몸의 중심이 흐트러졌다. 그리고 에드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하아압!”
재빠르게 베르한의 목을 노리는 에드의 오러 블레이드. 우터의 화살에 몸이 틀어져서 미처 대처하지 못했기에 그것에 꿰뚫리기 직전.
키이이이익─── 콰아앙!
그것을 막아내는 또 하나의 오러 블레이드. 예상하지 못한 검격에 몸이 뒤로 젖혀진 에드는 상대가 누구인지 확인하였다. 그리고 예상한 대로 그 상대는 예전에 보았던 붉은 머리 야만인 여성.
“베르한, 괜찮아? 이놈 강해!”
“아테르, 화살 쏘는 놈 있다. 그놈 조심!”
“아, 혹시 저기 저놈? 내가 상대한다!”
그러고는 곧장 우터를 향해 달려가는 아테르. 에드가 막아서려 하였지만 그의 앞에는 어느새 베르한이 다가와 검을 내려친다.
콰아아앙!
“크으으윽!”
에드는 가까스로 막아냈지만 놈의 강맹한 오러 블레이드가 자신의 것을 짓눌렀다. 이를 악물며 버텨 내지만 힘의 차이로 인해 부딪칠 때마다 서서히 밀려났다.
“젠장! 이 개 같은 새끼가!”
상황이 뜻대로 풀리지 않자 절로 욕이 튀어나온다. 그렇지만 이대로 가다간 결국 상대에게 무릎을 꿇게 될 터. 그때 머리 위에서 새하얀 빛이 쏟아지는 게 느껴졌다.
콰지지직!
새하얀 빛을 뿜는 거대한 검이 베르한을 덮치며 그대로 짓뭉개버렸다. 아니 그냥 소멸시켜버렸다는 표현이 더 맞았다. 한순간에 그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버렸으니 말이다.
“이봐, 에드! 괜찮아? 그러기에 내가 놈을 찾기만 하랬잖아. 왜 달려들어서 위험을 자초하고 그래?”
“죄, 죄송합니다, 영주님. 네크로맨서가 도망가려 하기에….”
“그래? 그래도 조심해야지. 놈을 놓친다고 해도 다시 잡으면 되지만 너가 죽으면 안 된다고.”
“여, 영주님….”
기간테스에서 흘러나오는 칼슨의 말에 감격한 에드는 말을 이어가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윽고 뭔가가 생각난 듯 칼슨에게 외쳤다.
“하, 하인츠 경에게도 야만인 소드 마스터가 갔습니다. 그가 위험합니다.”
“아, 붉은 머리 여자 말하는 거지?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내가 오면서 처리했으니까.”
“예?”
칼슨에 말에 놀라워하는 에드. 그리고 그 말을 증명하듯 어느덧 우터가 근처에 다가왔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적발 여성의 목이 들려있었다. 양 갈래로 매듭지은 붉은 머리. 틀림없이 그 야만인 여성이었다.
칼슨이 여기까지 달려오면서 우터에게 달려오는 그녀를 단숨에 검으로 썰어버렸다.
무척이나 빠른 기간테스의 검.
그 가공할 속도와 파괴력에 그녀는 대응조차 못 하며 그대로 몸이 양단되어버렸다. 그리고 그녀의 시체에서 우터가 목을 잘라 챙겨온 것이다. 그녀 또한 야만인들의 우두머리이니 그 머리가 무척이나 쓸모가 있을 것이라 판단하여 그리하였던 것.
다른 놈이 흔적도 없어져 버렸기에 저거라도 있어 다행이었다. 칼슨은 그것을 야만인들에게 보여 놈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라고 우터에게 지시하였다. 그리고 자신은 에드와 함께 네크로맨서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루지오는 아까 베르한에게 구함을 받은 뒤 곧바로 치료에 들어갔었다. 다리가 잘린 고통 속에서도 살기 위해 그는 회복 포션의 반은 삼키고 나머지는 잘린 부위에 뿌렸다.
그러자 상처가 아물어가며 출혈이 서서히 멈추었다. 그렇다고 다리가 재생되는 것은 아니었으니 도망칠 수는 없었다. 단지 죽을 고비만 넘겼을 뿐.
그렇게 상처를 치료하고 심호흡을 하고 있을 때, 어느덧 베르한을 처치한 철갑 골렘과 소드 마스터로 보이는 기사가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겁에 질린 루지오는 이를 바들바들 떨면서 소리 질렀지만 의미 없는 저항에 불과하였다.
“히이이익! 저, 저리 가!”
칼슨과 에드가 다가오자 루지오는 겁에 질린 채 손을 휘저었다. 본래대로라면 소환한 검은 말로 도망쳐야 했지만 다리가 잘리면서 말 또한 타격을 입고 사라지고 말았다.
스윽─
어느새 그의 목에 기사의 검이 겨누어져 있었다. 차가운 금속의 느낌에 등골이 서려왔다. 그리고 이어진 기사의 말.
“영주님, 이놈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기사가 골렘을 보고 의견을 묻는다. 그렇다는 것은 저 골렘이 영주라는 말인가? 지금 눈앞의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던 루지오가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그리고 그때 그 골렘에게서 사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일단 놈을 제압해라. 죽지 않게 치료도 해주고. 이놈에게 이것저것 물어볼 게 많으니까 말이야.”
“예, 알겠습니다. 영주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그 말에 대답을 한 에드가 루지오를 보며 슬쩍 미소를 보인다. 그 미소에서 왠지 모르게 서늘한 느낌을 받은 루지오.
퍽!
하지만 이내 가벼운 충격과 함께 그는 의식을 잃고 말았다.
기절해서 축 늘어진 루지오를 기간테스가 손에 쥐었다. 그리고 그를 바라보며 칼슨은 생각하였다.
어떠한 수단을 써서라도 놈들에 대한 정보를 샅샅이 알아낼 것이라고.
그러고는 몸을 돌려 전장을 바라보았다. 우터가 우두머리의 머리를 들고 적들에게 보여주었는지 활발하였던 야만인들의 움직임이 멈칫하며 동요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드레이크의 병력과 벤투스 왕국의 병사들이 요새 문을 열고 맹공을 가하고 있었다.
칼슨과 에드 또한 곧장 그곳에 합류하며 적들을 추살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피가 튀고 살점이 날아가는 사투가 벌어지고 있기를 한참. 칠흑 같던 밤이 지나며 어느덧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