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북벌 (4)
전투를 마치고 다시 전열을 정비한 후 요새 안으로 들어갔다. 요새 안으로 들어오니 더욱더 끔찍한 모습이었다.
‘이런, 정말이지 지독하기 짝이 없군!’
칼슨은 인상이 절로 구겨졌다.
주변을 보니 수많은 병사들의 유해들이 조각난 고깃덩이처럼 바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아니 솔직히 이제는 뼈밖에 없다고 봐도 무방하였다. 썩어 문드러진 그것들을 밟을 때 바스러지는 느낌이 상당히 역겨웠다.
파다다다닥──
병력들이 다가가자 만찬을 벌이고 있던 까마귀와 쥐들이 사방으로 도망친다. 이미 상당히 뜯겨서인지 온전한 형체를 지닌 시체는 존재하지 않았다.
썩어가는 유골만이 가득한 기분 나쁜 적막 속에서 묵묵히 걸음을 걷는 병사들. 이윽고 요새 중앙에 모든 인원들이 집결하였다.
“일단 주변을 살펴보도록 해라! 혹시나 적들이 올지 모르니 긴장을 늦추지 마라!”
세리나가 소리치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기사들과 병사들. 일정한 조를 나눠서 요새 주변을 샅샅이 수색하였다.
생존자는 없었다.
다만 살아있는 야만인들이 산발적으로 숨어있었는데 기사들과 병사들은 놈들을 발견하자마자 즉각 처리하였다.
그렇게 한참을 수색. 더 이상 살아있는 놈들이 보이지 않자 칼슨은 요새를 정리하도록 하였다.
아무래도 주변에 썩어가는 주검들이 넘쳐났기에 그대로 방치할 순 없었다.
그래도 1만이나 되는 병력이 있었기에 그것을 처리하는 일 자체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다만 코를 찌를 듯한 악취와 썩어 문드러진 유해를 직접 만져야 하는 병사들에게는 꽤나 고역이었을 뿐.
그렇게 요새 안 곳곳에 있는 시체와 유해들을 요새 밖으로 옮겨 한 군데에 모아놓았다. 솔직히 유족들에게 유품이라도 챙겨주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도 없을뿐더러 상태들이 매우 안 좋았기에 그대로 불을 지펴 화장을 하였다.
썩은 사체가 불길에 타면서 매캐한 냄새가 퍼져나갔다. 허나 습기가 많아서인지 불길이 생각만큼 잘 붙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이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화공에 쓸 기름 일부를 그곳에 부어 더욱, 불길을 살려내었다.
타닥. 타다닥. 타닥.
기름을 먹이 삼아 몸집을 키운 화염이 유골들을 집어삼켰다. 수분을 날려버리며 이내 마른 장작처럼 부서지며 타들어 가는 유골들. 그 모습을 보던 병사들의 눈길이 제법 착잡해졌다.
그렇게 요새 정리를 마치고 성문과 요새의 여러 부분을 수리하기 시작하였다. 병사들 일부를 차출해 그동안 적들이 오는지 경계도 하였지만 적들의 침입은 없었다.
요새의 수리마저 마무리가 되어가자 어느덧 해가 기울기 시작하였다.
칼슨은 병사들에게 명을 해 이곳에서 하루 묵을 채비를 하였다.
다행히 이곳은 상당히 큰 요새. 병사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 많이 구비되어 있었다.
순번을 정해서 불침번을 세우게 하고 병력들에게 휴식을 주었다.
칼슨과 세리나 등 지휘관들은 차후 진행에 관하여 회의를 하였다. 북방으로 나가서 야만인들을 정벌하고 오느냐 아니면 북방 경계를 더욱 강화하여 더 이상 침입을 못 하게 하느냐. 그리고 만약 북방에 진출하게 되면 그에 대한 향후 자세한 정보를 어떻게 얻고 계획을 하는지에 대해서.
그렇게 그들의 회의는 늦은 밤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어느덧 마무리가 되었는지 건물 안의 불빛이 모두 꺼졌다.
그날은 마침 달빛도 없는 칠흑 같은 밤이었다.
여기저기 피어놓은 화톳불에 의지해야만 시야가 확보되었기에 경계를 맡은 기사들과 병사들은 신경을 곤두세우며 주변을 살폈다.
저 멀리 황야에서 그들을 보는 눈들이 있다. 붉은 안광이 가득한 광기 어린 눈들. 바로 야만인들이었다.
수만이나 되는 그 눈빛들은 숨을 죽인 채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수많은 이들이 움직이면 자연스레 소리가 나기 마련이지만 이들은 희한하게도 바람결 스치는 소리만 들릴 뿐 아무런 소음이 나지 않았다.
아마도 야만인 특유의 몸놀림 때문인 듯하지만 그런 걸 생각한다 해도 지나치게 조용하였다.
그들의 선두엔 덩치 큰 근육질의 흉터가 가득한 사내와 붉은 머리를 양 갈래로 땋은 여인이 있었다.
그 둘은 바로 이전에 오러 블레이드를 썼던 두 야만인이었다. 야만인들의 우두머리인 그들의 옆에 한 사내가 있었다.
흑색 후드를 깊게 눌러써서 인상이 가렸지만 드러나는 피부를 보건대 굉장히 창백하였다. 마치 마법사와 같이 로브를 입고 있었는데 로브에는 꽤 특이한 자수가 새겨져 있었다. 뼈마디와 해골들이 엮여있는 기괴한 느낌의 자수.
그가 손에 들고 있는 지팡이 역시 일반적인 나무가 아닌 뼈로 만들어졌고 제일 상단에는 두 개의 뿔이 달린 알 수 없는 짐승의 두개골이 달려 있었는데 그 이마에 짙은 자줏빛 보석이 박혀 있었다. 그 지팡이에서 음습한 기운이 퍼져나가며 야만인들의 발소리를 죽였다. 아무래도 마법 같았는데 일반적인 마법과는 그 결이 달라 보였다.
어느덧 요새 지척까지 도착하자 그는 슬며시 입을 열며 조용히 말하였다.
“이전과 같이 기습을 해서 놈들을 없애버려라. 마법으로 기척을 죽였으니 들키지 않을 것이다.”
그가 이야기하자 놀랍게도 두 야만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알았다. 강한 놈들 있지만 문제없다. 너가 도와주면 놈들 없앨 수 있다.”
“우리 말고도 빛나는 검을 가진 이가 백이 넘는다. 그들과 함께 일제히 덮치면 문제없다.”
다소 어눌한 말투이지만 그 마법사로 보이는 자와 의사소통을 하였다. 야만인들이 말을 못 한다는 기존의 상식을 깨는 놀라운 장면이었다. 물론 다른 야만인은 말을 못 하였지만 그래도 의사소통이 가능한 이가 둘이나 있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임이 분명하였다.
어찌 됐든 이야기를 마친 둘은 후방의 야만인들을 향해 손짓을 하였다. 그리고 곧장 요새의 벽을 타고 올라갔다.
무려 5미터는 넘어 보이는 높이였지만 그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요새 위로 올라온 둘은 예전에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경계를 선 병사들을 단숨에 처리하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곧 시선을 멈춘 야만인 남성은 화톳불 근처에 있는 병사 둘을 발견하였다.
동시에 그 둘을 제압하기 위해 적발의 여성에게 각자 한 명씩 맡자고 손짓을 하였다. 그걸 알아들은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화톳불이 닿지 않는 그림자를 타고 서서히 다가가니 누구도 그들을 알아채지 못하였다. 이윽고 병사들 뒤로 다가간 두 사람. 단숨에 끝내기 위해 그대로 검을 찔렀다.
팅! 탕!
“!!”
예상과는 다른 청량한 금속음에 그들은 깜짝 놀랐다.
놀랍게도 그 병사들은 자신들의 기습공격을 막아내었던 것이었다. 예상 못 한 상황에 당황한 둘은 빨리 그들을 제압하기 위해 재차 공격을 가하였다. 그러나 상대는 만만치 않았다.
챙! 타앙!
자신들의 공격을 또다시 막아내는 병사들. 아니 막아낼 뿐만 아니라 자신들을 향해 매서운 공격을 가하였다.
스윽! 파앗!
“크으윽!”
“으읏!”
갑작스런 상대의 공격에 각각 팔과 가슴에 긴 자상이 생긴 두 사람. 순간 그들은 깨달을 수 있었다. 이들은 절대 일반 병사들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대치하고 있던 와중 그들 앞에 있던 한 병사가 소리쳤다.
“적들의 기습이다! 어서 준비한 대로 전투를 시작하라!”
어둠을 또렷이 관통하는 우렁찬 목소리. 그 소리가 요새 곳곳에 퍼져나가며 주변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곧 그에 반응하듯 병사들의 함성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와아아아아아아! 적들이 왔다! 공격하라!”
“모두 적들을 상대하라! 화살을 날려라!”
이미 준비되어있던 듯이 순식간에 성벽에 자리를 잡아가는 병사들. 그 모습을 본 두 야만인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였다.
그때 그들에게 맞선 병사 하나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하였다.
“이 야만인 새끼들아! 우리가 이런 뻔한 기습에 대비를 안 했을 거 같냐?”
욕을 박고 말하는 그자는 투구를 벗었다. 그러자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백금발이 돋보이고 얼굴선이 매끄러운 미남. 그는 정체는 다름 아닌 칼슨이었다.
“영주님, 그래도 저 남성은 꽤나 강합니다. 조심하십시오.”
“그건 나도 알아, 에드.”
칼슨과 함께 있던 이는 바로 에드였다. 이들은 이전에 야만인들이 기습을 했던 정보를 토대로 대비를 하였다.
그래서 가장 강한 칼슨과 에드가 성문 근처에 경계를 서는 병사로 위장하여 놈들을 맞이했던 것이었다.
칼슨은 그자를 제압하기 위해 단숨에 오러 블레이드를 뿜어내며 재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이에 상대 또한 오러 블레이드를 발현하며 막아내었지만 예상외의 충격으로 침음을 삼켰다.
그 옆에 있던 붉은 머리 여성도 그를 도와 검을 휘둘렀지만 그녀 앞에는 에드가 막아섰다.
‘하, 이것들 정말 야만인들 맞아? 무슨 오러가 이렇게 강해?’
직접 남성과 검을 맞닿은 칼슨은 조금 놀랐다.
그의 검에서 느껴지는 오러 블레이드의 강도가 이전에 상대하였던 이베르센 백작만큼이나 강하였다는 것. 아마도 SS급의 오러가 분명하였다.
문득 호기심이 동한 칼슨은 그 남성을 향해 정보열람 스킬을 사용하였다.
[정보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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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베르한
나이 : 29세
클래스 : 그랜드 마스터
힘 SS(39) 민첩성 S(38) 지능 C(5) 체력 S(20) 정신력 A(15) 오러 SS(36)
성향
[투쟁] [명예] [멸시] [패도]
상태
당황
관계
적대(-46)
스킬
대지의 축복(전설/패시브)
무골(에픽/패시브)
칭호
달인
북방의 왕.
북방 야만인들의 우두머리.
네크로맨서 루지오의 도움을 받아 북방 야만인을 발아래로 둘 수 있었다.
그때 맺은 약조로 인해 현재 그의 지시에 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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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의 축복(전설/패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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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적으로 강한 회복력을 가지고 태어났다.
어떠한 상처라도 죽지만 않으면 회복한다.
상처가 심할수록 회복 시간이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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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골(에픽/패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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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적으로 타고난 골격으로 인해 강인한 육체를 갖게 된다. 근력과 민첩성의 성장 속도가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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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호]북방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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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 야만인들에게 그 강함을 인정받아 군림하게 되었다.
북방 야만인은 그의 말에 절대복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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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이 녀석 또한 소드 마스터를 넘어선 그랜드 마스터.
어떻게 야만인이 이 경지에 오를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상태창에서 본 정보에는 확실히 그렇게 적혀있었다.
게다가 비전 검술 같은 전투 스킬은 없었지만 패시브 스킬이 상당히 좋았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네크로맨서 루지오의 도움을 받아 북방 야만인을 발아래로 둘 수 있었다.
‘네크로맨서라고?’
흑마법사와 비슷한 족속인 그들. 내용을 보면 북방 야만인들의 배후에 네크로맨서가 있었다는 이야기.
칼슨의 눈이 한층 가늘어졌다.
휘이이이익── 콰아아앙!
하지만 이내 상대의 공격에 다시 생각을 접었다. 어쨌든 눈앞의 놈을 먼저 처리하는 게 먼저였다.
오러의 수준은 자신이 더 높았기 때문에 그를 제압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칼슨이 다소 여유롭게 그를 상대하려던 찰나 갑자기 놈이 몸을 뒤로 빼더니 그대로 요새 벽 아래로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에드를 상대했던 적발의 여성도 같이 도망쳤다. 아마도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을 느꼈기에 그리 행동하였던 것.
놈을 좇아 요새 아래를 보았지만 그곳에는 이미 수많은 야만인들이 몰려 있었다. 비록 화톳불에 비춰 일부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들려오는 그들의 괴성과 기척을 느껴보니 그 수가 어마어마할 거라 여겨진다.
칼슨은 일단 놈에 대한 추적을 접었다.
이제는 병력들을 이끌어야 할 때였기 때문.
이미 아군 궁수들이 야만인들을 향해 화살을 연신 쏘아대고 있었다. 준비된 대포들 또한 성벽 곳곳에 자리를 잡아 갔다.
여기저기서 고함 소리와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서로가 죽고 죽이는 전투.
그, 잔인한 싸움이 이제 막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