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북벌 (3)
드레이크의 병력들이 세리나가 있는 곳에 다다르자 그곳에 있던 야만인들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미 대부분이 죽어 나갔으며 남아있는 몇몇 놈들 또한 왕국의 병사들에 의해 처리되고 있었다.
앞서 화공을 썼던 전방 또한 불길이 잦아들며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코를 찌르는 매캐한 탄내. 아직 남아있는 열기가 피부에 전해졌다.
“흐음…….”
그곳을 둘러본 세리나는 미간이 접으며 침음을 삼켰다.
여기저기 불에 탄 시체들이 즐비하였다. 하지만 그 수는 고작 수천에 불과. 상당수의 야만인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후퇴한 것이다.
광기에 휩싸여 살육과 약탈밖에 모르는 그놈들이 도망쳤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현재 상황을 보면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드레이크의 병력들은 세리나가 이끄는 연합 병력에 합류하게 되었다. 각 병력을 이끄는 장으로 재회하게 된 세리나와 칼슨. 세리나가 먼저 반갑게 말을 걸었다.
“잘 지냈어? 칼슨, 아니 이제 공작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됐어. 그냥 예전처럼 불러.”
세리나의 말에 칼슨은 약간 질색하는 표정으로 손을 저으며 말하였다. 그 모습을 본 그녀는 피식 웃고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 칼슨. 아까 전엔 정말 위험했었는데 때마침 도와줘서 살 수 있었어. 정말 고마워.”
“에이~ 됐어. 새삼스레 뭘 그런 거 가지고…. 그나저나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데, 몸은 괜찮아?”
조금 걱정스런 말투로 묻자 세리나는 괜찮다는 듯 손을 저으며 답하였다.
“응, 조금 무리하긴 했는데 이 정도면 쉬면 괜찮아질 거야.”
그녀말대로 크게 잘못된 것 같지는 않았다. 칼슨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크게 다치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네. 그나저나 그것들은 뭐야? 멀리서 보니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하던데?”
“아, 그랬었지. 나도 정말 깜짝 놀랐어. 설마 무식한 야만인들이 오러를 사용할 줄 상상도 못했어. 게다가 심지어 나조차도 제대로 못 다루는 오러 블레이드까지 말이지. 후….”
처진 눈으로 한숨을 쉬며 말하는 세리나. 야만인들에게도 처지는 자신의 실력에 자괴감이라도 드는 것처럼 보였다. 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세리나가 멋쩍은 웃음을 보이며 화제를 돌렸다.
“아, 그런데 야만인 놈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렇게 지독한 놈들이 후퇴를 하다니 믿을 수 없어서. 그것도 그렇게 많은 수를 갖고 있으면서 말이야.”
“그러게, 아마 그들을 이끄는 자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놈들이 그런 지시를 내렸겠지.”
“뭐? 아, 혹시 그 오러 블레이드를 쓰던 년, 놈들 말인가?”
세리나가 그들을 언급하자 칼슨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응, 실력도 실력이지만 머리를 굴리는 것도 다른 야만인들과는 좀 다른 거 같더라고.”
세리나도 그 말에 동의하였다. 붉은 머리의 여성과 그녀를 구하러 온 흉터투성이의 야만인. 오러 블레이드를 다루는 것은 둘째 치고 다른 야만인들 같이 단순 무식하지 않았다.
어쨌든 이번 전투는 많은 의문들을 남겼지만 지금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당장 시급한 사안은 빨리 야만인들에게 유린당한 왕국의 영토를 수복하는 것이었다.
기존 왕국의 병력에 드레이크의 병력 대략 5천이 더해지면서 총병력이 이제 1만에 달하게 되었다. 그 많은 병력들이 진군하기 시작하자 그 기세에 땅이 울렸다. 어찌 됐든 승리한 병사들의 사기는 오르기 마련. 그들의 발걸음에서 알 수 있듯 그들의 어깨에는 잔뜩 힘이 들어갔다.
그렇게 좋은 분위기로 진군하기 시작한 지 하루가 지났다.
저 앞에 야만인들에게 유린당한 도시가 보였다.
처절하게 파괴된 건물들과 수많은 시체들.
살아있는 이들이라고는 그곳에 주둔하고 있던 야만인들뿐이었다. 그 참상을 본 칼슨은 분노하였다. 그리고 명을 내렸다.
“모두 저놈들을 없애버려라!”
그의 명에 모든 병사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그들 역시 놈들의 참혹한 짓에 분노하였기에 너도나도 할 것 없이 그들을 향해 창을 겨눴다.
하지만 상대는 북방의 야만인들. 자신들에 비해 몇 배나 많은 병사들이 그들에게 다가왔지만 겁을 집어먹기는커녕 오히려 광기에 사로잡혀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그 모습에 병사들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숫자도 장비도 이쪽이 훨씬 우위. 그대로 놈들을 창칼로 쑤셔주었다.
푹! 푹! 푹! 푹!
아무리 죽음을 도외시하는 미친놈들이라고 하지만 찔리고 베이면 피를 흘리고 죽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놈들이 게걸스럽게 달려들어도 분노한 병사들의 창칼이 훨씬 더 사나웠고 매서웠다.
일방적으로 놈들을 도륙한 병사들은 곧장 폐허가 된 도시를 수색하였다. 혹시 모를 생존자가 있을지도 몰랐기에 다들 이곳저곳을 샅샅이 뒤졌다.
그러자 몇몇 건물들 안에서 살아있는 이들을 찾을 수 있었다.
“이들이 살아남은 이들의 전부인가?”
“예, 그렇습니다.”
생존자들을 한데 모아놓고 보던 세리나가 말에 담당자인 기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하였다.
규모만 따지면 대략 만 명은 넘게 있을 법한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생존자가 겨우 30여 명뿐이었다. 게다가 그들 모두 어린아이들이었고 말이다. 전부 며칠을 굶은 듯 피골이 상접해 있는 이들이 대다수. 그중 몇은 실신을 해서 치료사들이 치료를 해 주고 먹을 것을 먹여서 기력을 회복시켰다.
그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그들의 부모들이 자신들을 작은 공간에 숨기고 본인들은 야만인들에게 희생당했다고 하였다. 부모가 죽어가는 소리를 듣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며칠을 그곳에서 숨죽이며 지냈다고 하였다. 그동안 겪었을 심적 고통은 도저히 헤아릴 수 없을 정도.
그 가슴 아픈 이야기에 몇몇 병사들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칼슨과 세리나 또한 그 이야기를 듣고는 착잡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구출된 아이들에게는 묽은 스프를 제공해주었다. 오랫동안 식사를 하지 못했기에 거친 음식을 먹으면 오히려 탈이 날 수 있기에 천천히 소화가 될 만한 식사를 하게 하였다. 그리고 어느 정도 기력을 회복시킨 후 기사와 병사 일부를 차출해 드레이크 영지까지 함께 동행 하도록 하였다.
그들을 그렇게 보낸 후 칼슨은 다시 병력을 이끌고 북쪽으로 이동하였다. 진군하는 도중에 그들은 몇몇 마을과 도시를 거치게 되었다.
그곳 또한 처음 본 도시와 마찬가지로 끔찍한 폐허가 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건축물들이 무너져 여기저기 파편들이 거리를 어지럽혔다.
거리엔 수많은 시체들이 널브러져 까마귀들과 쥐 떼들이 갉아먹고 있었고 수백의 야만인들이 그 위를 활보하고 있었다. 그 끔찍한 모습에 역시나 수많은 병사들이 분노하였고 그곳에 있던 야만인들을 무자비하게 도륙하였다.
어느 정도 야만인들이 정리되자 칼슨은 병사들에게 명을 해 생존자들을 찾아 구조하도록 하였다. 하지만 생존자들의 숫자는 고작 몇 명. 이전만큼 많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시간이 지나며 고립된 환경에서 죽어간 이들이 많이 보였다. 구조가 된 이들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기력을 회복시킨 후 병력 일부와 함께 드레이크 영지로 보내졌다.
그렇게 며칠을 계속해서 진군하니 1만의 대군은 어느덧 북부의 요새에 이르게 되었다. 그곳을 바라보며 칼슨이 입을 열었다.
“이제 이곳만 처리하면 벤투스 왕국 내 야만인들은 모두 처리가 되는 건가?”
“그렇지, 단지 왕국 내에 있는 놈들은 말이지…….”
말을 도중에 멈춘 세리나. 칼슨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할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 요새까지 수복한다고 하더라도 다시 또 이렇게 쳐들어온다면 끔찍한 만행은 계속 반복될 것이다.
그걸 끊기 위해서라면 요새를 수복하는 데서 끝내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요새 너머는 야만인들의 영역.
1만이 넘는 대군이라고 하지만 그곳의 사정을 정확히 모르는 한 상당한 위험이 따를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에밀리를 데리고 올 걸 그랬나?’
칼슨은 자신을 제외한 최강 전력인 에밀리를 데리고 오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마법 단장인 아르모 또한 영지에 남겨두었다. 자신이 영지에 없는 동안 혹시라도 흑마법사 놈들이 침입할 수 있기에 그에 대한 대비로 그들을 남겨두었다.
그래도 상관은 없었다. 1만의 병력과 더불어 우터와 에드도 함께 있다. 그리고 자신도 있지 않은가? 다만 조금 걱정되는 것은 그곳의 지형지물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보급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정도.
칼슨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와중 어느덧 요새가 코앞에 보였다.
“허, 말로만 들었지만 정말이지 처참하네.”
성문은 부서져 있고 그 아래 기사들과 병사들의 시체들이 참혹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잔인한 야만인들은 상대를 곱게 죽이지 않았다. 팔다리를 찢어놓은 것은 물론이고 내장까지 꺼내어 여기저기 흩뿌려놓았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썩은 시체 냄새가 진동하였다. 날벌레들이 우글거렸고 쥐들과 새들 또한 그것을 한껏 뜯어먹고 있었다.
몇몇 비위가 약한 병사들이 헛구역질을 하였다.
세리나도 상당히 불쾌한지 연신 인상을 쓴 채 주변을 살폈다.
그때 요새 안에서 야만인들이 기어 나오기 시작하였다.
대략 수천 명가량 되는 숫자. 칼슨은 병사들에게 명령하여 전투 명령을 내렸다.
“야만인 놈들이 온다! 진형을 갖추어라! 병사들은 접전에 대비하고 궁수들은 활을 당기며 대기하라!”
또렷하고도 우렁찬 그의 목소리에 병사들은 신속히 움직였다. 그리고 재차 들려오는 칼슨의 말.
“세리나, 이곳에서 병사들의 지휘를 부탁해.”
“어? 아, 알았어!”
갑작스런 칼슨의 부탁에 세리나는 얼떨떨한 표정을 하며 승낙한다.
“그리고 에드! 우터!”
“예! 영주님!”
그 말에 동시에 대답하는 두 사람. 그런 그들을 보며 칼슨은 다시 말을 이어갔다.
“너희들은 기사들을 이끌고 나를 따른다!”
“예, 알겠습니다!”
“명을 받듭니다! 기사들은 모두 영주님을 따라라!”
곧장 칼슨이 말을 이끌며 튀어 나가자 뒤이어 따라가는 우터와 에드, 그리고 기사들. 갑자기 몇백의 무리가 나와 한쪽으로 이동하자 다가오던 야만인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리고 그 중 절반가량이 칼슨이 있는 곳을 향해 갔다.
절반이라고 하지만 족히 2, 3천은 돼 보이는 숫자. 허나 이곳에는 칼슨을 비롯한 강자들과 정예 기사들이 포진해 있었다.
“이쪽으로 향하는 놈들에게 돌격하라!”
그 말에 순간 방향을 틀어 놈들에게 달려들었다.
선두에 선 칼슨의 검에서 새하얀 오러 블레이드가 뿜어져 나왔다. 그 강렬한 기세에도 불구하고 야만인들은 그저 불나방처럼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처절한 죽음일 뿐이었다.
서걱! 서걱! 서걱! 서걱!
칼슨이 한번 검을 휘두를 때마다 열 명이 넘는 야만인들이 절단되었다. 그런데 한 호흡에 휘두르는 횟수가 열 번이 넘어가니 순식간에 백 명이 넘는 적들이 고깃덩이가 되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에드와 우터.
에드 또한 이미 경지가 상당히 올라 있는 소드 마스터.
그의 검격에 수십의 야만인들이 단숨에 쓸려나갔다.
우터 또한 에드에는 미치지 못하였지만 상당한 경지의 고수. 그의 긴 장검에 마력이 충만해지며 달려드는 놈들을 사정없이 베어내었다. 순식간에 적들의 전위가 무너지자 두려움이라고 모르던 그놈들도 동요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리고 그런 놈들에게 드레이크의 정예 기사들이 들이닥쳤다.
비록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지는 못하였지만 숙련된 오러가 깃든 검이 야만인들을 도륙하였다. 칼슨이 그곳에서 적들을 격파하고 있을 때 세레나가 맡은 병사들 또한 나머지 야만인들과 싸우고 있었다.
“창을 꽉 잡고 전열을 유지하라! 궁수들은 후방에서 지원하라!”
3중 4중으로 가지런히 정렬된 창대에 막혀 사정없이 꼬치가 되어버린 야만인들. 그런 동료의 시체가 하나의 벽이 되어, 뒤에 있던 놈들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쏟아지는 화살 비.
푹! 푹! 푹! 푹! 푹!
몇천 발의 화살이 뭉쳐있던 놈들에게 쏟아져 내리며 빼곡하게 꽂혀 들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살아남은 놈들이 있었다.
“크아아아아!”
“아아아악!”
괴성을 지르며 미친 듯이 헤집고 나오는 야만인들. 그러나 언제 왔는지 수백의 기마가 그들의 뒤에 다가가고 있었다.
퍽! 퍽! 퍽! 퍽!
칼슨이 데리고 간 병력이 이미 적들을 격파하고 돌아와 적의 후미를 쳤다. 앞뒤로 사정없이 공격이 들어오니 야만인들은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내 모든 적들이 전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