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북벌 (2)
지이이이이잉────!
어쩔 수 없이 세리나는 무리하게 오러를 끌어올려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어내었다. 비록 불완전한 상태이고 그로 인해 몸의 부하가 심하게 걸린다지만 일반적인 오러로는 상대를 제압하기 힘들다고 판단되었기에 어쩔 수 없이 끌어올렸다. 그로 인해 머리가 어질하고 속이 울렁거렸지만 꾹 참고 버텨내는 수밖에 없었다.
세리나의 붉은색의 오러 블레이드가 솟구치며 그 위용을 뽐내었다. 아무리 두꺼운 주철이라고 하지만 오러도 없는 검 따윈 단순에 절단할 수 있을 것이다.
치이이이이익! 파아앗!
붉게 타오르는 세리나의 오러 블레이드. 그게 위험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낀 상대는 순간적으로 몸을 틀어 그것을 피하였다. 하지만 완전히 피하지 못하고 어깨를 살짝 스치면서 피부가 찢어지고 말았다. 치명상은 아니었지만 오러가 파고들면서 불에 타는 듯한 통증이 전해졌다. 허나 고통 속에 인상을 쓰기는커녕 오히려 흥분하며 입꼬리를 잔뜩 올렸다. 그리고 혀로 입술을 핥고 다시 공세를 이어 나갔다.
세리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분명 방금 공격으로 인해 확실히 오러 블레이드의 위력을 느꼈을 텐데 겁을 먹지 않고 오히려 달려들다니. 하지만 상대가 야만인이라 생각하자 그 광기가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오히려 잘 됐다. 도망치면서 몸을 사리는 것보다는 이렇게 달려드는 게 백배 나으니까. 세리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음 공격을 이어 나갔다. 허나 이내 그녀는 상대의 검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뭐야? 너?”
어느새 그녀의 검에서 피어오르는 오러.
마치 칠흑과도 같은 검은빛의 오러였는데 얼핏 청록빛이 간간히 비치는 것을 보아 굉장히 특이한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걸로 그치지 않았다.
지이이이이이잉─────
끊임없이 올라오던 오러는 점점 커지더니 고도로 압축. 이내 선명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바로 오러 블레이드.
그것도 세리나와 다르게 완전한 형태의 오러 블레이드였다.
“이런 개 같은!”
세리나의 얼굴이 심하게 구겨졌다.
그와 반대로 상대는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동그랗게 뜬 눈에서 광기가 느껴졌다.
이런 미친년이 어떻게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던 세리나. 허나 곧바로 이어진 상대의 공격에 황급히 검을 들어 방어를 하였다.
치지지지지직─── 콰아아앙!
“크으윽!”
무거운 검의 무게와 더불어 오러 블레이드까지 얹히자 무시무시한 충격이 손에 전해졌다. 그로 인해 하마터면 검을 놓칠 뻔했다. 하지만 필사적으로 그것을 참아냈고 다시 들어오는 상대의 일격을 가까스로 막아내었다.
콰아아앙! 콰앙! 콰아앙!
오러 블레이드끼리 부딪히며 만들어진 충격파가 퍼져나가며 주변에 있던 이들을 날려버렸다. 세리나는 쓰러진 병사와 기사들이 신경 쓰였지만 지금 그들을 챙겨줄 여력이 없었다.
지금 당장 눈앞에 공세를 막아내기조차 버거웠으니 말이다.
“꺄하하하하하하!”
두 눈을 희번덕거리며 미친 듯이 웃는 그녀의 모습에 세리나는 불쾌함과 모멸감 그리고 두려움을 느꼈다. 압도적인 강함에 더불어 원초적인 광기가 그녀의 심장을 쿡쿡 찌르며 굳건했던 마음의 벽에 구멍을 내기 시작하였다.
세리나는 필사적으로 그것을 부여잡으며 저항하였지만 상대방은 무자비하게 몰아쳤다. 오러 블레이드가 부딪칠 때마다 내부가 진탕되었지만 이를 악물며 버티어냈다. 하지만 그것도 곧 한계에 다다랐다. 어느새 그녀의 오러 블레이드가 옅어지는 것이 보였다. 무리하게 끌어 썼기에 이내 오러가 바닥이 나버린 것. 그에 비해 상대의 오러 블레이드는 더더욱 진해지며 더욱더 위력을 뿜어내었다.
“이런 빌어먹을!”
내부가 진탕되었는지 세리나의 입가에서 피를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지만 여기서 자신이 버텨내지 못하면 이곳의 진형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무너져 내릴 것이다. 그러면 패배로 직결될 터.
그렇기 때문에 세리나는 흐릿해져 가는 정신을 부여잡으며 필사적으로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었다. 그러나 정신력만으로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없었다.
콰아아아앙!
“꺄아아아아악!”
마침내 세리나의 오러 블레이드가 사그라지면서 상대의 공격에 그대로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쿨럭! 쿨럭! 우웨에에엑!”
바닥에 쓰러진 채 구역질을 하며 피를 토하는 세리나. 정신을 잃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싸울 여력은 없어 보였다.
세리나를 쓰러트린 적발의 야만인 여성은 그녀를 마저 끝장내기 위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광기로 점철된 그녀의 미소가 섬뜩하게 느껴졌다.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지만 세리나는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때 그녀를 따라온 기사들이 붉은 머리의 여성에게 달려들었다.
몇 몇 기사들이 오러가 깃든 검을 그녀에게 휘두르지만 강맹한 오러 블레이드 앞에서는 무용지물. 접근하자마자 오러 블레이드에 휩쓸리며 그대로 토막이 나버렸다.
“안 돼!!!”
자신을 지키려다 죽어버린 기사들을 보자 세리나는 울분을 토해냈다. 당장이라도 저 괴물 같은 야만인을 도륙내고 싶었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 못하는 자신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더 이상 접근하는 기사들이 없자 목을 까딱거리며 몸을 푸는 야만인 여성.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살육을 마저 끝내기 위해 한 걸음씩 천천히 내디딘다. 마치 맛있는 음식을 천천히 음미하듯이 말이다.
“씨발! 이 미친 괴물 같은 년이…!”
상대의 의도가 읽혀지자 세리나의 표정이 구겨지고 만다.
하지만 그런 모습과는 달리 그녀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진탕 된 몸을 어떻게든 가라앉히려 하였다.
어떻게 보면 상대가 방심한 지금이 유일한 반격의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세리나는 그 짧은 순간 최대한 오러를 안정화시키려 노력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지척에 다가온 야만인 여성. 마무리를 위해 검을 번쩍 들었다.
넘실거리는 검은 오러 블레이드가 세리나의 몸을 절단하기 직전. 그 순간을 기다린 세리나의 눈에서 빛이 났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검에 오러를 끌어올리며 단숨에 상대의 심장에 일격을 가하였다.
그러나 상대는 만만치 않았다.
즉각 그녀의 공격을 눈치챘고 즉각 몸을 틀어 피하였다. 아니 피한 줄 알았다.
서걱!
“…….”
어느새 야만인 여성의 등을 가격한 오러. 바로 세레나의 비전 검술인 갈고리에 당하고 말았다.
제법 통증이 있는지 그동안 웃고 있던 얼굴이 서서히 사라지며 굳어졌다. 그 모습을 보니 분명 공격은 통한 것이 확실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레나의 표정이 좋지 못하였다.
회심의 일격을 먹였지만 생각한 것만큼 치명상을 주지 못했다. 오러가 부족했던 것일까? 아니 그것보다 오러가 변형되는 그 찰나의 순간에 상대는 몸을 피하였다. 아마도 그래서인지 공격이 제대로 닿지 못하였고 얕은 상처만을 준 채 끝나버리고 말았다던 것.
“젠장!”
어느새 자신의 눈앞에 놓여있는 상대의 검. 죽음을 직감한 세리나는 눈을 감았다.
푹!
뭔가가 살을 꿰뚫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눈을 뜬 세리나. 눈앞을 보니 야만인의 오른팔에 화살이 박혀있었다. 강철 같은 근육으로 덮여있던 두꺼운 팔뚝에 깊숙이 박힌 화살. 상당히 고통스러운지 상대의 눈매가 좁아지며 이를 악문다. 그녀는 표독스러운 눈으로 자신에게 화살을 쏜 이를 찾았다.
화살이 날아온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니 저 멀리 들판에 검은 후드를 쓰고 있는 한 남성이 눈에 들어왔다. 대충 가늠해 봐도 천 걸음은 족히 넘어 보이는 거리.
그곳에 서 있는 이는 바로 우터였다.
자신을 공격한 이를 발견한 야만인 여성. 그녀는 우터를 보며 환한 웃음을 보였다. 그리고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곧장 달려 나갔다. 그 걸음이 어찌나 빠른지 천 보나되는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핏!
우터의 화살이 그녀를 향해 날아왔지만 본능과 우월한 신체 능력을 활용해 피하였다. 얼굴에 화살이 스쳐 피가 흘러나왔지만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광기에 번득이는 얼굴로 그저 목표를 향해 갈 뿐. 재차 날아오는 몇 발의 화살 또한 간발의 차로 빗나가며 어느새 우터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꺄하하하하하!”
너무나 즐거운 듯 미친 듯이 웃음소리를 내는 적발의 그녀.
검은 오러 블레이드가 넘실대는 그녀의 굵고 커다란 검이 우터의 머리를 향해 내리쳤다.
콰아아앙!
하지만 어느새 에드가 나타나 그것을 막아내었다.
검푸른 빛의 오러 블레이드가 검은 오러 블레이드와 부딪히며 충격파를 발생. 주변에 광풍이 일었다.
“와! 이 여자 엄청 쎈데?”
상대의 검을 받아친 에드는 제법 놀랐다.
방금 받아낸 검격에 손이 저릿하였다. 그만큼 상대의 공격이 강하다는 것. 제국에서 수많은 강자들을 상대했던 에드였지만 눈앞의 야만인 여성은 그 강자들 못지않은 강자였다.
다시 이어지는 야만인 여성의 공격. 솟구치는 검은 오러 블레이드가 사정없이 에드를 위협해 들어갔다.
하지만 에드 또한 오러 블레이드를 뿜어내며 맞받아친다.
콰아앙! 콰앙! 콰아앙!
두 오러 블레이드가 부딪칠 때마다 터지는 섬광과 충격음에 주변이 흔들린다. 그렇게 둘이 치열하게 맞붙고 있을 때 어디선가 폭발음이 들려왔다.
콰아앙! 콰과광! 콰광!
그 소리와 함께 야만인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 포탄이 떨어졌다. 십수 발의 포탄이 떨어지면서 초토화되어 버리는 그곳. 그 모습을 본 야만인 여성은 기분 나쁜 듯 이를 드러냈다.
“크으으윽….”
하지만 만만찮은 이가 자신을 상대하고 있었기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푹!
“크윽!”
어느새 허벅지에 꽂힌 화살. 분명 아까 활을 쏜 그 자식의 짓이 분명하였다. 당장이라도 박살내고 싶었지만 눈앞의 남성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그때 화염 속을 뚫고 뛰쳐나오는 한 남성이 보였다.
행색을 보아하니 야만인이 분명한데 매우 우람한 덩치에 근육질 몸매가 돋보였다. 거기다 몸 여기저기에 수많은 흉터가 가득한 걸 보니 꽤나 거친 삶을 살아온 듯하였다. 그 야만인 남성은 잔뜩 화가 난 얼굴을 하고서는 에드가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꽤나 강렬한 기세를 느낀 에드는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우터 또한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활시위를 당겼다.
쉬이이이이이익──── 팅!
날카롭게 파고드는 우터의 활을 귀찮듯이 쳐내버리는 사내. 그것을 본 우터의 눈매가 좁아졌다. 하지만 그는 차분히 활시위를 당기며 다시 그를 겨냥하였다.
쉬이이이이익────
탕! 팅! 탕!
3발의 화살이 동시에 들어왔지만 야만인은 손쉽게 막아내었다. 그리고 어느새 에드가 있는 곳까지 다다랐다.
“크아아아아아!”
콰아아앙!
“크으윽! 씨발, 이건 또 뭐야!”
상대의 일격을 막아낸 에드가 인상을 쓰며 욕을 내뱉는다.
검붉은 오러 블레이드가 넘실거리는 상대의 검.
야만인 여성도 강하였지만 눈앞의 사내는 그보다 더 강하였다.
하지만 그는 전투가 아니라 여성을 구하는 것이 목적인 양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지 않는다. 에드와 대치하고 있던 그가 등 뒤에 있던 야만인 여성에게 뭐라고 말한다.
그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방향을 틀며 몸을 움직였다. 그것을 확인한 남성 또한 몸을 뒤로 빼기 시작하더니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멀어져 갔다.
도망치는 그들을 향해 우터가 화살을 날렸지만 야만인 남성이 손쉽게 쳐내는 바람에 모두 무위로 돌아갔다.
에드도 놈들을 쫒으려 하였지만 워낙 빠른 속도로 도망쳤기에 일찌감치 포기하였다.
두 사람이 그렇게 있는 동안 이윽고 그곳에 드레이크의 병력들이 도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