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영지가 제일 강함-130화 (130/162)

129화 북벌 (1)

브라운을 죽인 여성.

누더기 같은 가죽옷과 더불어 붉은 안광이 흘러나오는 눈을 보아하니 북방의 야만인이 분명하였다. 그들이 침입했다는 사실을 안 잭은 즉각 소리를 질러 주변에 알리려 하였다.

“저, 적이…. 커헉!”

푹!

하지만 어느새 가슴을 뚫고 들어온 굵고 조잡한 검. 그 거친 쇠붙이가 자신의 폐를 헤집고 들어와 숨을 멎게 하였다.

“쿠르르르륵…….”

목구멍에 피가 차오르오며 끝내 말을 하지 못하며 죽어간 잭. 그에게 검을 꽂은 남성이 다시 검을 뽑자 잭의 시신이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털썩──!

검을 뽑는 동시에 피가 튀면서 남성의 얼굴을 적셨다. 그는 손으로 피를 닦으며 혀로 핥았다. 비릿한 향이 코를 찌르자 그자는 기분이 좋아진 듯 하얀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는다. 그런 그를 지그시 쳐다보는 여성은 비릿한 미소를 보이며 요새 안쪽으로 뛰어내린다. 남성 또한 그녀의 뒤를 따르며 성벽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그리고 잠시 시간이 지난 후 요새 문이 열리면서 수많은 야만인들이 요새 안쪽으로 밀려 들어왔다.

광기 가득한 야만인들.

그들은 그곳을 지키고 있던 병사들을 사정없이 죽여 버렸다. 그곳을 지키던 기사들도 제법 있었지만 그들 또한 병사들의 처지랑 별 차이가 없었다. 오러를 쓰며 필사적으로 대항하였지만 수많은 야만인들이 한꺼번에 덮치자 대응하지 못하면서 무참히 찢겨버리고 말았다.

그날 국경 요새를 지키던 병력들 중 살아남은 이는 열 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들은 그곳에서 빠져나와 후방에 있는 아군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려 하였다. 야만인들이 이들을 잡으려 하였지만 동료들이 목숨을 걸고 막아섰다. 그들의 희생을 뒤로한 채 살아남은 이들은 이를 악물며 그 지옥 같은 곳에서 빠져나왔다.

그렇게 무사히 그곳을 벗어난 이들은 야만인들의 침입과 국경 요새가 점령당했다는 소식을 알렸다. 그로 인해 벤투스 왕국은 뒤집히고 말았다. 그동안 놈들의 침입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단시간 내에 국경 요새가 점령당했던 적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왕실은 급하게 병력들을 소집하였다.

국경 요새가 뚫린 이상 놈들이 남하하여 왕국을 유린하는 것은 시간문제였기에 주변 영지에 협조 공문까지 보냈다.

허나 북방 야만인들의 진격은 생각 이상으로 빨랐다. 국경 요새가 점령당한 이후로 파죽지세로 남하하며 수많은 곳들이 유린당하였다.

물론 그곳을 지키고 있던 병력들도 있었지만 쳐들어오는 야만인들의 수가 어마어마하였기에 오래 버티지 못하며 하나둘씩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북부 중앙까지 진출한 북방 야만인들. 놈들에 대항하기 위해 결성된 각 영지에서 차출된 연합 병력들은 요새가 점령당한 후 며칠 만에 놈들과 조우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모인 병력은 총 5천여 명. 게다가 기사 또한 500에 달하는 대규모 병력들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방의 야만인들의 수와 비교하니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였다.

“설마 저것이 다 북방 야만인이란 말이오? 총사령관.”

“예, 맞아요. 아주 지독한 놈들이지요. 비에른 백작님.”

연합 병력의 총사령관을 맡게 된 세리나. 흑마법사들의 혈사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왕실 기사단이었기에 왕실 기사단장직을 그녀가 맡게 되었다.

아직 소드 마스터에 이르지 못한 그녀였지만 이제 거의 그 목전에 두고 있었다. 게다가 새로 들어온 왕실 기사 중에 그녀보다 우위에 있는 기사가 없었기 때문에 그녀가 기사단장이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바나텔로 경은 어떻게 된 것이지?’

흑마법사들을 처단하고 다시 왕실을 차지하던 그때. 노긴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살아있는 것은 고사하고 시체조차 못 찾았기에 그에게 목숨을 빚졌던 그녀로서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다 차후에 알아봐야 할 일.

지금 이 순간은 눈앞의 놈들부터 막아내야 했다.

한눈에 봐도 많은 수의 야만인들.

대략 몇만은 될 법한 그 숫자. 그 수도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야만족 그 자체였다. 그녀는 예전에 그들과 반년간 싸워본 적이 있었다.

일반인과는 차원이 다른 육체적 능력은 둘째치더라도 본인의 목숨을 도외시하며 상대를 물어뜯는 그 독기는 정말 상상을 초월하였다.

그때 당시에 상대했던 놈들의 수는 기껏해야 수천에 불과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숨이 위태롭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열 배나 되는 야만인들을 상대해야 했다.

심지어 성벽을 끼고 막는 것이 아닌 평지에서의 전투. 과연 이 병력을 가지고 싸워서 승산이 있을지 의문만이 가득하였다.

그렇다고 도망칠 수도 없었다.

이곳에서 물러선다면 여러 영지들이 초토화되는 것은 물론이고 수도인 로버데인까지 물밀듯이 밀려오고 말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되면 로버데인에 있는 수십만의 사람들이 저 괴물 같은 야만인 놈들에게 몰살당할 것이다.

그것들은 자신의 적들을 살려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저 빼앗고 죽이는 것만이 목적일 뿐. 말 그대로 몬스터와 하등 다를 바 없는 놈들이었다.

세리나가 그리 생각하고 있는 와중 야만족 놈들이 어느덧 지척까지 다가왔다. 그것을 본 세리나는 즉시 명을 내렸다.

“지금이다! 어서 화살을 날려라!”

사거리에 들었으니 화살을 날리는 거야 당연. 하지만 그래봐야 수천 발에 불과한 화살이었다. 광기에 가득한 수만 명의 야만인들을 잠재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숫자.

그러나 곧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화르르르르르─────

병사들이 쏜 화살은 불화살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것이 쏘아진 곳에는 이미 기름이 흠뻑 적셔진 상태. 건조한 날씨 때문인지 바싹 마른 건초들이 기름을 잔뜩 먹었으니 순식간에 그곳은 불이 번지고 말았다.

“크아아아아악!”

“캬아아아악!”

죽음을 도외시하는 악귀 같은 야만족들이었지만 맹렬히 타오르는 불길에는 속수무책으로 타들어가니 고통 속에서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화염에 강한 내성이 있던 놈들은 몸이 불타는 것을 감수한 채 그곳을 해치며 다가온다. 그 모습이 마치 지옥 불구덩이에서 뛰쳐나온 악마들 같았다.

이에 병사들의 눈에는 두려움이 밀려들었지만 세리나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털썩─ 털썩─

화염을 해치며 기세 좋게 다가온 그놈들이 하나둘씩 바닥에 쓰러졌다. 불길마저 버텨내던 그것들이 쓰러진 이유는 단 한 가지.

바로 질식이었다.

이런 대규모 화재에서 불길보다 치명적인 것은 바로 호흡이 힘들다는 것이다. 게다가 기름과 건초들이 타면서 독한 연기까지 품고 있었으니 그대로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숙련된 기사가 오러로 화염을 몰아내면서 숨을 참고 빠져나올 순 있었다. 허나 저들은 아니다.

신체능력은 확실히 뛰어났지만 수준 자체는 그리 높지 않았다. 게다가 지능 또한 확실히 떨어졌다. 그러니 저 독한 연기를 아무 생각 없이 들이마시며 저렇게 쓰러지는 것일 터.

그렇게 거대한 화마가 놈들을 잡아먹고 있을 때 불길이 퍼지지 않은 우측 구릉 쪽으로 이동하는 야만인 무리들이 보였다. 일부에 불과한 병력이었지만 그래도 그 수가 어림짐작 몇천은 돼 보였다.

거기다 접근하는 속도가 심상치 않았다. 분명 사람이 뛰어오고 있는데 말이 달려오는 것만큼이나 빠르게 느껴졌다.

그것을 본 세리나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젠장! 모두 진영을 갖추어라! 저기 놈들이 다가온다!”

그녀의 말에 부산스럽게 움직이며 대형을 갖추는 병사들.

창병들이 전방에서 날카로운 장창을 앞세우며 자세를 잡았다. 1열 2열 3열이 각각 반보씩 교차하며 창을 들이밀고 있으니 마치 커다랗고 긴 고슴도치 같은 모습이 되었다.

그렇게 선두 대열이 자리 잡는 동안 후미에는 궁수들이 활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그리고 놈들이 사거리에 다다르자 세리나가 소리쳤다.

“지금이다! 궁수들은 화살을 날려라!”

휙─ 휙─ 휙─ 휙─ 휙─ 휙─

그녀의 명에 일제히 날아가는 화살비. 아름다운 곡사를 그리며 날아가는 화살들은 바람을 타며 하늘 위로 솟구쳤다가 다시 바닥으로 내리꽂기 시작하였다.

푹! 푹! 푹! 푹! 푹! 푹!

천여 발이 넘는 화살이 쏟아지면서 선두에 있던 야만인들에게 사정없이 박혀 들어갔다.

철판 갑옷을 입은 병사와 달리 그들의 복장은 그냥 일반 가죽을 여기저기 엮어 만든 누더기. 그렇기 때문에 여과 없이 화살이 꽂히며 대부분이 고슴도치처럼 변해버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러진 자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머리나 심장에 꽂혀 절명한 이들이야 그대로 쓰러졌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은 몇 발을 맞던 아랑곳하지 않으며 득달같이 달려온다.

특히 선두에 있던 붉은 머리의 여성이 눈에 띄었는데 그녀는 화살이 빗발치는 사선에서도 환하게 웃으며 이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광기 가득한 그 모습에서 섬뜩함이 느껴졌지만 애써 무시한 채 다가올 전투에 세리나는 만전을 기하였다. 그리고 곧 그들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푹! 푹! 푹! 푹! 푹!

앞세웠던 장창에 의해 꼬치가 되어버린 야만인들. 하지만 그러면서도 멈추지 않고 달려들기에 어느새 앞 대열이 조금씩 밀려나기 시작하였다.

“선두의 병사들은 전열을 유지하라! 궁수들은 다시 화살을 날려라!”

세리나의 명에 장창병들은 창대를 꽉 잡으며 필사적으로 버티었다. 그리고 곧이어 뒤에서 쏟아지는 화살 세례.

푹! 푹! 푹! 푹! 푹! 푹!

아군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전방이 아닌 적의 중심부를 노리고 쏘았다. 게다가 아까와는 달리 교착 상태에서 날린 화살. 뭉쳐진 적들에게 쏘아졌기에 그 피해가 제법 커졌다.

그렇게 되니 달려드는 기세가 한층 누그러진 야만인들.

그렇게 적들을 막아내는 듯 보였지만 한 야만인에 의해 그 균형이 깨지고 말았다.

“꺄하하하하하!”

서컹! 서컹!

미친 듯이 웃으며 창병들을 도륙하는 붉은 머리 여인.

그 완력이 어찌나 강한지 철판 갑옷을 입은 병사들을 단숨에 두 동강 내버렸다.

그녀의 난입으로 인해 순식간에 무너지는 한쪽 대열.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수많은 야만인들이 그곳을 향해 비집고 들어왔다.

서컹! 퍼억! 스걱!

“크아아아악!”

“아아악! 살려줘!”

무자비하게 병사들을 깨부수며 들어오는 야만인들. 병사들이 창칼로 그들을 쑤셔대었지만 놈들은 동료들의 시체를 뛰어넘으며 계속해서 들어왔다.

그것을 본 세리나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기사들 300여 명에게 놈들의 측면을 공격하라 하였다. 그리고 200여 명의 기사들과 함께 저기 뚫린 곳을 막아서기 위해 나섰다.

서걱! 서걱! 서걱!

기사들이 들이닥치자 야만인들의 기세가 한풀 꺾여 들어갔다. 하지만 여전히 광기를 잃지 않는 놈들. 죽음을 도외시하며 끊임없이 달려들기에 진형을 완전히 밀어내지 못하였다.

거기다 대장으로 보이는 적발의 여성도 설쳐대는 바람에 오히려 이쪽이 위험해지려는 느낌. 그때 세리나가 그녀에게 다가가 검격을 날렸다.

카앙! 카앙! 타앙!

검에 오러를 일으키며 연속적으로 내리쳤지만 적발의 여인은 본능적으로 그것을 막아내었다. 상대가 자신의 공격을 손쉽게 막아내자 눈이 커진 세리나. 분명 조잡한 철검인데도 불구하고 오러가 실린 자신의 검이 막히자 의아함이 들 수밖에 없었다. 허나 세리나는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미친, 이게 무슨 검이야?”

대충 팔뚝 두께만큼이나 두꺼운 검신. 게다가 재질이 거뭇거뭇한 것을 보니 무거운 주철이 틀림없었다. 어쩐지 오러도 없는 검인데 한번 부딪칠 때마다 손이 저릿한 느낌이 났던 게 다 저 무거운 검 때문이었다. 아니 저 정도면 검이라기보다는 둔기라고 봐야 했다. 그것을 마치 검같이 휘두르다니.

“씨발! 괴물 같은 년!”

그 무식한 괴력에 세리나는 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