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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지가 제일 강함-129화 (129/162)

128화 섀도우즈의 제안

“하하하, 그리 이야기하시니 참으로 낯부끄럽습니다. 그런데 무슨 연유로 저를 찾으신 건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칼슨이 곧장 용건을 묻자 아드리안의 표정이 살짝 굳어지는 게 보였다. 심각한 얼굴을 한 그는 이내 표정을 풀더니 부드러운 어조로 대답을 하였다.

“허허, 젊은 친구가 상당히 급한 성격을 가지고 있군. 하긴 사전에 연락도 없이 갑작스럽게 찾아왔으니 궁금할 만도 하지. 자네 혹시 섀도우즈 라는 단체를 아는가?”

스킬로 그가 그 단체에 속해있다는 것을 알고 있긴 했지만 그게 정확히 어떤 단체인지는 알지 못하였다. 칼슨은 고개를 저으며 말하였다.

“전혀요. 처음 들어봅니다.”

“그럴 테지. 세상에 정체를 드러내고 활동하는 단체는 아니니까.”

“그런데 갑자기 왜 그것을 물으시는 겁니까?”

“아, 다름이 아니라 내가 그 단체에 속해있다네.”

“예에? 그게 대체 무슨…….”

다 알고 있었지만 칼슨은 일부러 놀란 듯 반응해주었다. 이에 아드리안은 은은한 미소를 비치며 말을 이어갔다.

“섀도우즈, 우리 단체는 상당히 오래전부터 대륙에 존재해 있었다네. 그리고 크고 작은 위기로부터 대륙을 지켜왔고 말이야.”

“…….”

“그리고 오늘 난 섀도우즈를 대표해서 자네를 찾아온 것이고.”

“그게, 무슨 뜻입니까? 그래서요?”

길어지는 서문에 칼슨은 찾아온 용건을 직접적으로 물었다. 그러자 아드리안은 진지한 얼굴로 대답하였다.

“우리 섀도우즈에 들어오게나. 함께 대륙의 평화를 지키는 걸세.”

“예? 지금 그게 무슨 소립니까?”

난데없는 영입제안에 칼슨의 표정이 구겨졌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은 아드리안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말 그대로라네. 이미 자네는 흑마법사들이랑 싸우고 있지 않나? 우리 또한 마찬가지라네. 그러니 어찌 보면 우리는 한 편이라 할 수 있지. 그래서 우리 단체에 들어오라고 하는 걸세.”

“흠, 그렇다고 해도 이건 너무 갑작스럽군요.”

“하하, 이해하네. 하지만 요즘 그들의 움직임이 심상치가 않아서 말이지. 한 명이라도 좋은 인재가 절실하지. 그래서 말인데 꼭 자네가 우리를 도와주었으면 한다네.”

부드럽고도 간곡한 그의 어조가 꽤나 진실 되어 보였지만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가이다.

솔직히 말해서 전혀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지만 이건 섣불리 결정할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매몰차게 거절하는 것도 그래서 완곡하게 표현하였다. 상대 또한 칼슨의 의중을 어느 정도 눈치챈 듯 씁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알겠네. 자네 생각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이해할 수 있네. 짊어진 것이 많으니까 말이야.”

“그리 생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꼭 우리 단체에 들어오지 않아도 되네. 대신 흑마법사들을 척결하는데 도움을 줄 순 있겠는가?”

이제 영입은 포기하고 협력을 이야기하는 아드리안. 칼슨은 기꺼웠지만 무작정 수락하기엔 조금 아쉬웠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뭔가를 물어보았다.

“나쁘지 않은 이야기군요.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궁금한 게 있다고? 그게 뭔가?”

“혹시 현자 에르미온 님의 행방을 아십니까?”

“에, 에르미온 님이라고?”

같은 시기에 활동한 마법사이고 오래전부터 같이 대륙 10강이었기에 혹시나 아는가 싶어서 던진 질문. 이에 아드리안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하였다. 그리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왜 그분의 행방을 묻는 것인가?”

마치 경계하는 듯한 그의 말투에 조금 의아함이 들었지만 그가 악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칼슨은 순순히 그 이유를 알려주었다.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스릉─

칼슨은 검집에서 자신의 검을 뽑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짙고 어두운 보랏빛의 검신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것을 본 아드리안의 눈에서 이채가 흘러나왔다.

“이건 아다만타이트로 만든 검이로군.”

바로 검의 재질을 알아보는 아드리안. 하지만 그뿐 이검에 대한 비밀을 알지는 못하는 듯하였다. 이윽고 칼슨이 입을 열었다.

“이 검에 봉인이 걸려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풀 수 있는 실마리를 현자 에르미온 님이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흐음, 봉인이 걸려있다고?”

칼슨의 말에 그는 지그시 검을 살핀다. 그리고는 흠칫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헛, 정말이로군! 자네 말대로 여기에 봉인된 흔적이 있어. 허나 어떤 원리로 봉인이 된 건지는 잘 모르겠군. 나로선 도저히 알 도리가 없네. 하지만…….”

다시 칼슨을 바라보며 진중한 눈빛으로 말을 이어갔다.

“…에르미온 님이라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아니 확실히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하네. 평소에 이런 쪽으로 해박하셨으니 말이야.”

그리고는 한참을 생각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에르미온 님의 행방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네. 가끔씩 나를 찾아오시기는 하는데 늘 자신의 행적을 밝히지 않는다네. 차후에 만나게 된다면 꼭 이 이야기를 해주겠네.”

“예, 감사합니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칼슨이 감사를 표하자 아드리안은 슬며시 웃는다. 그리고는 다시 진지한 얼굴로 말을 하였다.

“그런데 자네 혹시 지금 흑마법사들의 목적이 뭔지는 아는가?”

“네? 그게 무슨…….”

난데없는 질문에 칼슨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놈들에게 목적 따위가 있었나? 그냥 단순히 살육에 미친놈들 아니었나?

칼슨이 그런 질문을 왜 하냐는 표정을 하자 아드리안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한다.

“바로 마왕 강림일세.”

“예? 마왕 말입니까? 설마…….”

분명 이전에 세르보가 소환했었던 그 존재를 말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미 소환을 했었는데 그게 목적이라니 뭔가 이상하였다.

칼슨이 아리송한 표정을 하자 그의 생각을 눈치챈 아드리안이 설명을 덧붙이며 말하였다.

“소환이랑 강림은 엄연히 다르다네.”

“…….”

다르다니?

말 자체는 다르긴 한데 어차피 불러내는 것은 똑같은 거 아닌가? 칼슨이 이해를 못 하는 모습을 보이자 아드리안이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소환은 일정한 목적을 가지고 개체의 형상을 일시적으로 불러내는 거라고 한다면 강림은 그 존재 자체를 이쪽 세계로 불러들이는 걸세.”

“아…….”

요약하자면 소환은 일회성에다 불완전한 복제품이고 강림은 오리지널이 완전한 상태로 넘어온다는 것. 대충 그의 말을 이해한 칼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알아듣는 듯 하자 아드리안이 다시 설명을 이어갔다.

“물론 마왕을 소환하는 것도 여러 문제를 일으키지만 엄밀히 말한다면 그것은 그저 일시적인 사고에 불과하네. 허나 강림은 이야기가 다르다네. 마왕이 온전한 상태로 이쪽 세계로 넘어오는 것이니까.”

“그렇겠군요.”

하긴 잠시나마 소환된 마왕을 마주했을 당시 그 시선만으로도 칼슨을 비롯한 수많은 강자들이 꼼짝을 못 하였는데 그런 놈이 만약 온전한 상태로 이곳에 나타난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아드리안에 말에 칼슨은 더욱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마왕의 영향력으로 인해 마계와 이곳의 연결통로까지 생긴다네. 때문에 수많은 마수와 마족이 이곳으로 넘어올 수 있게 되지. 한마디로 이곳에 지옥문이 열린다고 봐도 무방하다네.”

“예? 그게 정말입니까?”

그 말은 즉 그 무시무시한 마족과 마수들이 끊임없이 이곳에 나타나게 된다는 이야기. 마족과 마수가 어떤 놈들인지 보지 않았으면 잘 몰랐겠지만 그것들을 몇 번 상대해 본 칼슨으로서는 그 심각성이 더욱더 체감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 만일 저들의 뜻대로 마왕이 강림하게 된다면 정말 상상할 수조차 없는 끔찍한 사태가 발생하게 되겠지.”

“하아….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파오는 것 같습니다.”

정말 두통이라도 오는 듯 머리를 매만지며 한숨을 쉬는 칼슨. 그 모습을 본 아드리안이 이해한다는 듯 씁쓸한 얼굴로 말을 하였다.

“그래, 그야말로 골치 아픈 상황이지. 그렇기 때문에 우리 섀도우즈도 놈들을 박멸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며 찾아다니고 있다네.

하지만 놈들의 흔적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네. 가끔씩 일으키는 몇몇 혈사를 제외하고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거든. 물론 대륙은 넓으니 우리도 모르는 일을 벌였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믿고 일을 맡길 사람은 늘 부족하지. 거기다 쓸 만한 인재는 더더욱 희귀하고 말이야. 바로 자네 같은 사람 말일세.”

칼슨의 가입 거절을 은근히 섭섭해하는 어조. 이에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이미 한 거절에 대해 번복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흑마법사들이야 죽일 놈들이지만 그렇다고 저 의문스런 단체에 들어가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칼슨은 최대한 유감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그래도 최대한 협력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이게 최선이었다.

어차피 공동의 목표가 있으니 괜한 척을 질 필요는 없었다. 아드리안도 칼슨의 의사를 확실히 알아듣고는 더 이상 영입에 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흑마법사들의 척결을 위해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고 도움을 주는 선에서 약조를 하였다. 물론 현자 에르미온에게 말을 전해주는 부탁 또한 여기에 포함되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마친 후 아드리안은 떠났다. 이후에 연락은 서찰을 통해 주고 받기로 하였다. 그가 떠난 후 칼슨은 앞으로의 일을 계획하기 위해 가신들을 소집하였다.

* * *

칼슨이 아드리안을 만난 후 몇 개월 뒤 추운 계절이 돌아왔다.

벤투스 왕국 북부 국경지역 요새.

“하암~”

요새 성벽을 지키고 있던 말단 병사 브라운은 피곤한지 눈을 연신 비비며 하품을 하였다. 어제 오랜만에 비번이어서 진탕 마시고 밤새 놀았더니 아직까지 피곤이 가지 않은 듯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다.

그런 그를 본 동료 병사 척이 한심하다는 표정을 하며 말을 내뱉었다.

“그러길래 작작 좀 마시지 그랬냐? 하여간 어째 너는 시간만 났다 하면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그러냐. 응?”

“야, 왜 또 잔소리야? 잭, 네가 내 마누라라도 되냐? 시벌.”

“새꺄, 그럼 근무나 똑바로 쓰던가? 아오! 네가 자꾸 꾸벅꾸벅 졸고 있으니까 하는 소리 아니냐고, 임마!”

“하아……. 알았으니까 제발 좀 닥쳐줘라. 아까부터 귀가 앵앵거리니 속이 더 울렁댄다. 우욱!”

계속되는 입씨름에 속이 불편한지 연신 헛구역질을 하는 브라운. 그런 그를 보며 오만상을 찌푸린 잭은 질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하였다.

“하오, 알았다. 이제 그만 할 테니까 제발 저번처럼 토나 하지 마라. 시벌!”

“우욱, 짜식 고맙다. 그럼 난 잠시 좀 쉴게. 십부장 오면 바로 깨워줘야 해?”

“하, 시벌~ 이 새끼가 술에 꼴아가지고 바라는 건 존나 많네? 아주 대놓고 뺑끼 부려라 부려! 미친 새끼.”

“잭, 우리 사이에 왜 이래? 부탁 좀 하자. 응? 우욱!”

“아으, 더러운 새끼! 알았어! 이 새꺄! 어제 얼마나 처먹었으면 술 냄새가 여기까지 진동을 하네. 알겠으니까 이쪽으로 오지 말고 거기서 얌전히 쉬고나 있어. 괜히 저번처럼 여기저기 토하지 말고. 이 더러운 새끼야!”

연신 욕을 하며 브라운의 부탁을 들어주는 잭. 그런 그를 보며 희미한 미소를 보인 브라운은 벽에 몸을 기대며 눈을 감는다.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저은 잭은 홀로 주변 경계를 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전방보다는 후방, 순찰하는 간부가 오는지를 중점적으로 말이다. 그리고 잠시 후 브라운의 소리가 들려왔다.

“우워어억! 케에엑! 켁!”

후드득! 후득!

구역질 소리와 함께 걸쭉한 무언가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그 소리에 잭은 표정을 잔뜩 구긴 채 소리치며 돌아본다.

“야 이 개새끼야! 또 더럽게 토를…. 어?”

욕지거리를 박고 화를 내려던 잭이 차마 말을 이어가지 못하였다. 한참 토악질을 하고 있어야 할 브라운이 토사물 대신 핏물을 잔뜩 쏟아내고 있었으니까.

“꾸르르르륵…….”

털썩.

그가 쓰러지자 뒤에서 낯선 이가 보였다. 풍성한 적발이 양 갈래로 매듭지어져진 여성. 짐승의 털가죽을 여기저기 덧댄 옷을 입고 있었는데 노출이 많아서인지 일반적인 복장이랑은 상당히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광기로 가득한 붉은 눈빛. 잭은 저 눈빛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북방 야만인의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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