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새로운 국면 (2)
“아르모, 이것은 대체…?”
눈앞에 있는 것은 마치 두꺼운 갑옷을 입은 거대한 인간, 아니 인간형의 모습이었다. 신장은 대략 4미터가량 되었고 손에는 그 크기만큼 거대한 검이 들려있었다.
“이거 설마 골렘이야? 혹시 완성된 거야? 진짜?”
칼슨의 질문에 아르모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슬며시 입을 열며 말하였다.
“아니에요. 아직 자율적으로 움직이지는 못해요. 그것을 하기 위해서는 자동 제어 장치가 완성되어야 하는데 그 부분은 최소한 7서클, 원활하게 작동시키려면 8서클은 되야 가능해 보여요. 게다가 완급 조절 부분에서도 아직 불안정하고요.”
“뭐? 그렇다면 이건 아직 미완성이라는 이야기잖아?”
칼슨이 조금 실망한 기색을 내비치자 아르모는 미소를 보이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음, 미완성이라…. 따지고 보면 그렇긴 하지요. 이것을 골렘이라고 하면요.”
“뭐? 그럼 아니야? 그렇다면 이게 대체 뭔데?”
영문 모를 아르모의 말에 칼슨이 의문을 표하자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답을 해주었다.
“골렘처럼 자율적으로 움직이지는 않지만 기사가 탑승해서 움직이는 것은 가능해요. 자 여기 이곳이 탑승하는 곳이에요.”
그녀가 근처에 있는 기판의 버튼을 누르자 갑옷 거인의 몸 중심부가 열리기 시작하며 그곳에 빈 공간이 생겨났다.
딱 성인 남성 한 명이 겨우 들어갈 정도의 크기.
그것을 본 칼슨은 순간 뭔가가 번뜩 떠올랐다.
‘이거 혹시 슈트 아니야? 영화 아이언맨에서 보던 그거?’
예전 SF 영화에서 봤던 그거랑 비슷해 보였다. 사실 그것보다 이것의 덩치가 훨씬 크긴 하였다. 굳이 따지자면 슈트보다는 탑승 로봇에 가까웠다.
칼슨이 흥미를 보이자 아르모는 손을 가리키며 넌지시 이야기한다.
“한번 타보시겠어요?”
“응? 그래도 돼?”
“예, 구동 테스트는 끝났고 마지막으로 시범 테스트만 남았는데, 이게 구동하기 위해 엄청난 마력을 잡아먹거든요. 아, 물론 변환 장치를 해서 이제 오러도 연동이 가능해요. 헌데 소모되는 양이 엄청나서 아무래도 일반 기사들로는 테스트가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오러가 넘쳐나는 내가 해야 된다는 말이네?”
칼슨이 아르모의 말을 끊으며 대신 말해주었다. 이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예, 면목이 없지만 영주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살짝 칼슨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부탁하는 아르모. 이에 칼슨은 괜찮다는 손짓을 하며 흔쾌히 수락하였다.
이미 구동 테스트는 마무리된 상태고 시범만 하면 되는 거니 별문제는 없을 것이다. 거기다 자신만이 가능하다고 하니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내심 저것을 타보고 싶었던 마음도 어느 정도 있었고 말이다. 거대 로봇을 타보는 것은 남자들 대부분의 로망이지 않은가?
아르모의 안내에 따라 칼슨은 빈 공간에 몸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갑옷이 닫히더니 시야가 어두워졌다.
하지만 이내 밝아지면서 주변의 시야가 보였다.
“시야 공유 마법을 사용했기에 처음에는 좀 생소할 수도 있어요. 그래도 사각지대가 생기는 것보다는 나아서 그렇게 했으니 익숙해지셔야 할 거예요.”
“흐음, 그래. 알았어.”
그녀의 말대로 통상적인 시야가 아니라서 조금 낯선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크기가 커진 만큼 탑승자의 시야로 가동하다가는 여러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특히 발밑 쪽은 시야가 닫지 않기에 이런 조치를 취한 듯하였다.
“그럼 어디 움직여 볼까? 응? 잠깐, 이거 어떻게 움직이지?”
“오러를 몸에 두르면 탑승자랑 연결이 될 거예요. 그런 다음 움직이시면 돼요.”
“그래, 알았어.”
우우우우우우웅─
오러를 몸에 두르기 시작하자 마력각인들이 발동이 되면서 기이한 소리가 나기 시작. 그리고 그녀의 말처럼 몸을 움직이니 거대한 철갑 또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부우웅 쿵!
한 걸음을 떼자 바닥이 울리며 큰소리가 났다. 무게가 상당했기 때문에 칼슨은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다.
쿵! 쿠웅! 쿠웅!
다시 몇 걸음을 내디뎠다. 여전히 육중한 무게 때문에 주변이 흔들렸지만 그래도 움직임은 매우 자연스러웠다.
그때 소리를 듣고 이곳에 들어온 레인이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갑자기 큰 소리가 나길래 무슨 일인가 하고 들어왔는데 눈앞에 웬 거대한 철갑 거인이 움직이고 있었으니 황당하기 그지없던 것. 그는 당황하며 철갑 거인을 손가락으로 가리킨 채 아르모에게 묻는다.
“허억, 마법단장! 저것은 대체 무엇입니까! 게다가 영주님은 또 어디에 계시는…?”
“이봐 레인. 호들갑 좀 떨지 말고 구경이나 해.”
당황하며 소리치는 레인에게 칼슨이 한 소리 하자 레인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핀다. 그리고 곧 철갑 거인을 향해 소리 낮춰 말하였다.
“여, 영주님? 혹시 지금 그 안에 계신 겁니까?”
“그래, 그러니까 소리 지르지 말고 얌전히 좀 있으라고.”
“아, 네! 알겠습니다.”
칼슨이 그 안에 타고 있다는 것을 알자 레인은 안도하며 대답하였다. 그 옆에 반라르도 함께 있었는데 그는 레인의 반응을 보며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입꼬리를 올린 채 즐거워하고 있었다.
지이이이잉 쿠웅! 지이이잉 쿠웅!
이제 걷는 것이 제법 자연스러워졌다.
하지만 이 이상 더 움직임을 시험해보려면 이곳에서는 어려울 것 같았다.
“아르모, 여기 말고 좀 더 넓은 곳에서 테스트를 해봐야겠는데?”
“네, 제 생각에도 그래야 될 것 같아요. 마침 근처에 공터가 있는데 그곳에서 하는 게 어떨까요?”
“좋아, 그럼 그쪽으로 가자.”
“예, 영주님.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그렇게 칼슨은 아르모를 따라 이동하였다. 그리고 그 뒤를 레인과 반라르가 따라갔다.
쿠웅! 쿠웅! 쿠웅!
조심스럽게 이동하였지만 큰 소리와 함께 진동이 느껴지니 몇몇 이들이 호기심에 그것을 쳐다본다.
그렇게 이동한 칼슨은 어느덧 아르모가 말한 공터에 도착하였다. 그녀가 말 한대로 그곳은 이 철갑 거인을 맘껏 운용하기에 아무 문제 없을 정도로 넓었다.
그곳에 도착한 칼슨은 간단하게 검 휘두르기부터 해보았다.
부우우웅─── 부우우우웅────
대략 3미터 정도 되는 큰 검이 휘둘러지자 풍압이 생기며 주변에 바람을 날리게 만들었다.
압도적인 무게로 인해 그 파괴력이 강하다는 것은 알겠지만 그래도 이것만으로는 진정한 위력을 체감하기는 어려웠다. 단순히 위력만을 따지고 봤을 때 솔직히 대포가 더 파괴력이 강하였다.
그때 아르모가 칼슨에게 말을 하였다.
“영주님, 검에다가 오러를 불어넣어 보세요.”
“아, 그게 가능해?”
“네, 이론상 가능해요. 대신 엄청나게 많은 오러가 소모되긴 하지만요.”
“그렇단 말이지. 알았어.”
그녀의 말에 따라 칼슨은 검 쪽으로 자신의 오러를 불어넣었다. 한껏 불어넣었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래서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무렵 검 끝에 미세한 오러가 흘러나오는 게 보였다.
그래서 칼슨은 정신을 가다듬으며 더욱 오러를 집중시키자 마침내 검 전신을 뒤덮는 오러가 생성되었다.
“오오오오!”
“우와!”
거대한 검이 하얗게 빛이 나자 구경하던 이들이 저마다 감탄사를 터트렸다.
겉모습은 그럴싸했지만 과연 위력까지 좋을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칼슨은 위력 테스트를 위해 전방에 있는 커다란 바위를 힘껏 내리쳤다.
콰아아앙───! 쩌어어억!
집채만 한 바위가 단숨에 갈라지고 말았다.
“오오오오! 저럴 수가!”
“정말이지 엄청난 위력입니다!”
레인과 반라르가 눈을 빛내며 탄성을 지른다.
아르모 또한 예상보다 강한 위력에 눈을 크게 뜨며 놀라워하였다. 하지만 칼슨의 눈에는 아직 만족스럽지 못하였다.
이 정도는 자신의 비전 검술인 일섬과 비교했을 때 그다지 큰 차이를 못 느꼈다.
소모 오러는 일섬보다 조금 적게 들긴 하지만 그래도 로봇을 타고 있는데 이정도의 위력은 조금 실망스러웠다.
그러다 문득 이 상태로 비전 검술을 쓰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후우…….”
칼슨은 깊은 숨으로 내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생각 외로 오러가 많이 사용되었기에 고도의 집중이 필요하였다. 그는 있는 힘껏 오러를 끌어모았다. 그리고 단숨에 검에 밀어 넣었다. 그러자 어느덧 검에 서려있던 오러가 부풀면서 압축되어 갔다. 그리고 이내 그것은 선명한 오러 블레이드로 변해갔다.
“크으으윽!”
“으윽! 이 엄청난 위력은 도대체!!”
거대한 검에서 오러 블레이드가 만들어지니 그 여파에 주변에 있던 이들의 피부가 따가울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오러 블레이드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참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준비가 된 칼슨은 비전 검술을 사용해 보았다. 표적은 바로 저 편에 있는 작은 동산. 거대한 대검을 감싸고 있던 오러 블레이드가 고속으로 회전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그 풍압으로 인해 거센 돌풍이 불었다. 어찌나 강하던지 꽤나 멀찌감치 떨어져있는 이들의 머리카락이 휘날릴 정도였다.
회전이 속도가 극한에 이르자 칼슨은 힘껏 검을 앞으로 내질렀다. 그러자 회전하고 있던 오러 블레이드가 맹렬한 기세로 뻗어나갔다.
쿠웅!
가벼운 충격음이 들려왔다. 하지만 그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엄청난 위용에도 불구하고 별 반응이 없자. 그것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내 그곳에서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러더니 그물처럼 퍼져나가기 시작. 산 전체가 새하얗게 물들더니 순간 번뜩이는 섬광과 함께 엄청난 굉음이 들려왔다.
우르르르르릉 콰과과과광─────!
우레보다 몇 배는 큰 폭음에 모두 귀를 틀어막았다.
칼슨 또한 오러를 이용해 귀를 보호해야할 정도였으니 그 충격이 얼마나 되는지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쿠웅! 쿠웅 쾅! 쾅! 쾅!
웬 바윗덩어리들이 이곳까지 와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그런 상황이 되자 모두 사색이 되며 몸을 움직인다. 그들은 살기 위해 정신없이 도망 다녔다. 주변에 바위들이 포탄처럼 떨어지면서 파편이 튀었지만 다행히도 그 난리 통 속에서 크게 다치거나 죽은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한창 아비규환이 펼쳐지더니 곧 주변이 잠잠해졌다.
그리고 잠시 후 비산했던 먼지가 걷히며 사람들이 하나 둘 일어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더니 어느 한 곳에 시선이 고정되며 경악스러운 표정을 짓고 말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까 칼슨이 표적으로 삼았던 산이 사라져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산등성이 윗부분이 날아가 버리면서 그곳이 평지가 되고 말았다.
“저, 저기 산이…! 산이 없어졌잖아!”
“허억! 세상에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런 일이….”
모두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을 하며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하하하, 이거 참 물건이네, 진짜.”
당사자인 칼슨 또한 그것을 보며 놀라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자신의 비전 검술이 막강하다고 하지만 산 하나를 통째로 날려버리다니.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파괴력이었다.
* * *
철갑 거인의 위력시범을 보인 지 석 달 후.
그 동안 몇 가지 시험운행을 거친 다음 보완을 하여 좀 더 안정적으로 사용이 가능해졌다. 그것을 제대로 운영을 하기 위해 최소한 소드 마스터 이상의 오러가 필요했으며 스킬이나 오러 블레이드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경지에 다다라야 하였다.
그리고 그것의 명칭 또한 새롭게 정하였다.
그것은 바로 기간테스.
고대 거인의 이름에서 따온 명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