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영지가 제일 강함-121화 (121/162)

120화 반역이 아닌 구국 (9)

저벅 저벅 저벅.

마족들을 물리치고 왕성으로 다가가는 사람들.

그들은 모두 평범한 이들이 아니었다.

대부분 마법사와 기사들이었으며 그중 7명은 특히나 강한 이들이었다.

공교롭게도 이들 중 엘리시아를 제외한 나머지가 드레이크 영지의 사람들. 한 영지에 이만한 인재들이 있는 것을 본 엘리시아 또한 제법 놀란 눈치였다.

우터와 에드야 이전에 봐서 알고 있었고 아르모는 지난 전투에서 그 실력을 확실히 체감하였다. 그러나 정령사인 에밀리의 실력을 직접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말로만 듣던 정령사의 위력.

그것은 충격 그 자체였다.

자신과 라델리안 공작이 그토록 애를 먹었던 마족을 혼자서 둘, 아니 셋을 단숨에 처리할 정도로 막강하였다.

특히 그녀가 부리는 서리의 정령은 보기만 해도 몸서리가 쳐질 정도로 강한 기운이 느껴졌다.

모르긴 몰라도 저 정령사가 확실히 자신보다 강하였다. 그 사실을 엘리시아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동안 일행들은 어느덧 왕성에 다다르게 되었다.

* * *

벤투스 왕국의 왕성.

예전에 많은 인원들이 오가며 꽤나 부산스러웠던 이곳.

이제는 사람을 보기가 힘들 정도로 적막만이 가득하였다.

어전에 홀로 있는 남성이 보였다.

금발의 그 남성은 뭔가가 불안한 듯 가만히 있지 못하며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움찔거렸다.

그는 겁먹은 표정을 하며 혼잣말을 지껄이기 시작했다.

“흐으으으, 이 나라의 국왕은 나야! 누구도 이 자리를 가져가지 못해!

하하하! 그래, 그래서 모두 죽였어! 왕위를 위협하는 놈들을 모조리 말이야! 하하하하! 그런데…….

드레이크 백작! 그놈은 왜 나에게 칼을 들이미는 거지, 응? 빌어먹을 그렇게나 챙겨줬는데 왜 나한테 그러는 거냐고!!

아, 설마 엘리시아를 앞세워 내 자리를 위협하는 건가? 시발, 이 개새끼들. 감히 그따위 수작을 부리다니. 반역자 놈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겠어. 하하하하!”

미친 사람처럼 혼잣말을 하며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데로스. 얼굴이 창백하고 눈에 그늘이 진 것이 상당히 초췌해 보였다. 그가 그렇게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발소리가 들려왔다.

“거, 거기 누구냐! 서, 설마 나를 죽이러 온 것이냐!!”

누군가의 갑작스런 접근에 데로스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쳤다. 이윽고 어둠이 걷어지며 다가오는 한 남성. 그는 바로 궁내부 장관인 세르보였다. 그는 차가운 미소를 띤 채 데로스에게 말을 하였다.

“폐하, 신 궁내부 장관입니다.”

“아, 체스터 백작이로군. 그래, 그놈들! 반역자 놈들은 어찌 되었는가? 나의 용감한 병사들이 그 불충한 것들을 처단하였겠지?”

세르보를 본 데로스는 반색하며 동정을 묻는다. 기대와 걱정이 섞인 질문. 그에 세르보는 싱긋 웃으며 그에게 대답을 해주었다.

“이제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폐하.”

“오오, 그런가? 그렇단 말이지. 하하하하! 역시 나의 병사들이…. 커헉!”

그의 대답에 안도한 데로스는 순간 말을 이어가지 못하였다. 검은색 기운이 그의 목을 조르고 있었기 때문.

그 사이한 기운에 점점 생기가 빨려 들어가는 데로스는 결국 눈깔이 뒤집히며 죽어버렸다.

국왕을 처리한 후 점점 무표정에 가까워지는 세르보의 얼굴. 곧 그의 입에서 자조적인 목소리가 나왔다.

“…이제 당신은 아무 쓸모가 없어졌으니까 말입니다.”

그는 차가운 시선을 한 채 죽은 데로스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그의 말대로 이제 국왕은 이제 그 쓰임이 다하였다. 놈의 정신을 지배해 벤투스 왕국을 집어삼키려 했지만 모든 것이 틀어져 버렸다.

방금 전 소환한 마족들의 기운이 모조리 끊어져 버렸다.

그 말은 곧 밖에 있는 적들에 의해 처리되었다는 것.

아무리 소드 마스터라고 하지만 변형체들과 마수들, 심지어 마족마저 쓰러트릴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예상 밖의 상황이 벌어지자 세르보의 심기가 불편해졌다. 제법 오랜 기간 준비했던 계획에 큰 차질이 생겨버렸다.

게다가 곧 놈들이 이곳에 들이닥칠 것이고 심지어 자신의 목숨마저 위험할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전에 제국에 돌아왔을 때 무리를 해서라도 놈들을 제거했어야 했는데, 아니 이후 엘리시아 왕녀라도 확실히 없애버렸어야 했었다. 하지만 아직 준비가 덜 되어 뜸을 들이다 그만 놓쳐버리고 말았다.

어쨌든 이제 와서 과거를 후회해봤자 아무 의미가 없었다.

이제 곧 놈들이 이곳으로 들이닥칠 것이다. 모든 게 틀어진 이상 이대로 도망쳐야 되겠지만, 만약 그런다면 조직에서 자신을 가만히 놔둘 리가 없었다.

최소한 강등. 심하면 그 책임을 죽음으로 물을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그렇게 될 확률이 높다.

세르보가 머리를 아파하며 고민을 하고 있던 그때 누군가가 그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흑색 후드를 쓴 남성.

인상은 어둠에 가려져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하관에 드러난 피부를 보건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하였다.

마치 시체 같은 느낌과 함께 한기마저 들 정도.

그렇게 기이한 자가 다가서자 세르보의 미간이 좁혀지며 표정이 굳어졌다. 그리고 마치 그자를 잘 아는 듯 감정을 드러내며 입을 열었다.

“네 놈이 여기는 무슨 일로 왔느냐?”

짜증이 섞인 세르보의 말에 그 남성은 차갑게 웃었다. 그리고 조용히 말을 하였다.

“일이 많이 틀어졌나 보군.”

그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세르보의 인상이 구겨졌다. 이것은 명백한 조롱.

상대의 비웃음에 기분이 더러워진 세르보는 퉁명스런 태도로 그에게 소리쳤다.

“그게 네놈이랑 무슨 상관이냐? 그래, 여기엔 무슨 일로 왔느냐? 설마 이런 내 꼴을 비웃으러 온 것은 아닐 테고 말이야.”

“크큭, 물론 그렇지. 내가 여기에 온 것은 자네에게 한 가지 도움을 주기 위해서야.”

“도움? 그게 대체 무슨 말이냐?”

상대방이 뜻 모를 이야기를 하자 세르보의 눈매가 좁아졌다. 그 모습을 본 남성은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는 손을 내밀며 말하였다.

“자, 이것을 받게. 이거면 놈들을 없애는 데 꽤 도움이 될 것이야.”

“아니, 이것은 설마…?”

그의 손에 들린 것은 하얀색의 조각상이었다.

재질을 보아하니 뼛조각으로 만든 것 같았는데 뿔 달린 괴물 형상이 제법 섬뜩한 느낌을 자아내었다.

그것을 본 세르보의 두 눈이 커지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무엇인지 아는 눈치.

다시 눈매가 가늘어지며 차가운 어조로 묻는다.

“이것을 왜 나에게 주는 것이냐? 혹시 원하는 거라도 있는 것이더냐?”

“크큭, 원하는 것이라…….”

의심이 가득한 세르보의 말에 그는 잠시 말을 끊으며 시선을 돌렸다. 그러면서 어전을 지탱하고 있는 큰 기둥에 손을 대며 말을 이어갔다.

“원하는 것이야 물론 있지.”

아름답게 조각된 기둥의 부조를 어루만지며 읊조리는 남성.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그 미소가 무언가 섬뜩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게 대체 뭣이냐 말이다!”

상대가 뜸을 들이자 세르보는 다소 신경질적인 어조로 말을 내뱉었다. 그런 그를 보며 오히려 그 반응을 음미하듯 즐기는 상대. 다시 시선을 돌려 세르보를 바라보며 답을 해주었다.

“그냥….”

“뭐?”

알 수 없는 그 말에 세르보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반문하였다. 그는 이를 드러낸 채 웃으며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냥 이곳이 무너지기를 원할 뿐이다.”

“그게 대체 무슨 말이야?”

상대의 영문 모를 말에 세르보는 어처구니없어하며 물었다. 원래부터 괴짜라는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이상한 놈일 줄이야. 녀석은 알아듣지 못한 세르보를 위해 조금 더 길게 말을 덧붙여주었다.

“그 말대로야. 여기 왕성을, 아니 벤투스 왕국이 무너지는 걸 바란다.”

“미친 새끼!”

더 이상 말을 엮기 싫은지 세르보는 욕을 토해내며 대화를 끊었다. 이유야 어찌 됐든 상관없다. 눈앞의 상대가 준 이것은 침입자들을 처치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그 사실 하나면 충분하였다.

“그럼 건투를 빌지.”

“…….”

그 말을 끝으로 상대의 몸은 어둠에 물들더니 그대로 사라지고 말았다. 이제 어전에 홀로 남게 된 세르보. 찝찝한 마음을 뒤로한 채 그에게 받은 조각을 어루만진다.

그때 밖에서 부산스런 소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곧 큰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이윽고 어전으로 들어서는 수십 명의 인원들.

아무래도 기다리던 손님이 온 것 같다.

* * *

성안으로 들어간 드레이크의 정예들은 사람 하나 없는 적막한 왕궁의 모습에 조금 경계심을 드러냈다. 그래서 주변을 살피며 조심스레 이곳저곳을 수색하였다.

그러던 중 한 기사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외쳤다.

“여, 여기 시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기사. 그의 소리를 듣고 찾아온 칼슨이 그곳을 보았다. 그리고 곧 두 눈을 부릅뜨며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이 개 같은 새끼들….”

칼슨은 절로 욕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는 어린아이들의 주검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피골이 상접해 바짝 마른 모습을 보니 영락없이 생명력을 흡수당해 죽은 모습이었다. 확실히 이것은 흑마법사의 소행이 분명하였다.

그 참혹한 모습에 칼슨의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겁을 먹은 것이 아니다.

이것은 분노였다.

최소한 인간이라면 이러면 안 되는 거였다. 그런데 눈앞의 광경은 그 최소한의 선마저도 넘어버렸다.

인간 아니 짐승만도 못한 놈들이 벌인 살육의 현장이었다.

대체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하였는지 치가 떨릴 지경.

대충 짐작은 갔다.

아마 자신들과 싸웠던 마수들과 마족들을 소환하기 위해 그랬을 것이다.

본인의 목적을 위해 어떠한 수단이라도 가리지 않는 놈들.

그래도 일말의 인간성이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놈들은 도저히 인간이 아니었다. 악마 그 자체였다.

그 짐승만도 못한 놈들을 추살하기 위해 다시 왕성 여기저기를 뒤지기 시작했다.

“커어억!”

기사 중 하나가 흑마법사의 기습으로 생명력을 갈취당하였다. 순식간에 축 늘어져 버리며 생을 마감한 젊은 기사. 그것을 본 동료들은 복수심에 불타며 그 흑마법사에게 일제히 검을 휘둘렀다. 허나 놈은 최후의 발악이라도 하는 듯 방어 마법을 사용하였다.

검은 장막이 생기면서 기사들의 공격을 잠시나마 버티어낸다. 그리고 그 틈을 탄 흑마법사는 모든 생명력을 소모해 마수를 소환. 시커먼 구가 생기면서 십여 마리의 작은 마수들이 나타났다.

어린아이 크기에 눈과 코가 퇴화된 그것들은 커다란 머리에 큰 입을 가지고 있었다. 머리의 절반이 입인 놈들은 마치 강철 같은 이빨을 드러낸 채 기사들에게 달려들었다.

“크윽! 이 더러운 마수들아! 죽어라!!”

“씨발! 씨발! 으아아아!”

분노를 욕으로 뱉어내며 놈들과 맞서는 기사들. 오러 섞인 검이 그 작은 마수들을 사정없이 썰어나갔다.

다행히 기사들의 공격이 통하였다. 그 모습은 매우 흉측하였지만 크기가 작은 만큼 이전 놈들보다 확연히 떨어지는 녀석이었다.

마수들을 몽땅 처리한 기사들은 그것을 소환한 흑마법사도 처리하려 했지만 놈은 이미 생명력을 모조리 써서 이미 절명해버렸다.

분노로 가득한 기사들은 성이 차지 않아서인지 놈의 시체를 사정없이 난도질하며 그 분을 풀었다.

그렇게 몇 군데에서 조금씩 발견된 흑마법사들.

그들 역시 한껏 저항하였지만 별 피해를 주지 못한 채 추살되고 말았다.

흑마법사들을 차례차례 처치한 인원들은 결국 어전까지 다다르게 되었다.

분노로 가득 차 있던 칼슨이 한껏 문을 걷어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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