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반역이 아닌 구국 (8)
우르르르릉─── 콰쾅! 콰과광! 쾅!
수많은 굵은 벼락들이 흑색 마족을 내리꽂자 그것은 파르르 떨며 온몸에서 수증기를 뿜었다.
“%#뎐$#*샇%$%브레!”
알 수 없는 언어를 내뱉은 그 마족은 이내 미소를 띤 채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곧장 엘리시아를 향해 손을 뻗었다.
화르르르르르────
손에서 검은 기운이 서리더니 녹황색 불덩이 십여 개가 쏟아져 나왔다. 그것은 뭐든지 들러붙어 태워버리는 지옥의 유황불. 엘리시아는 방어를 위해 남겨두었던 하나의 주문을 발현하였다.
《수호 방벽》
퍼엉! 퍽! 퍼억! 퍼엉!
7서클의 강한 보호막이 형성되며 다가오는 불길들을 완벽하게 막아내었다. 상대가 손쉽게 자신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을 보자 흑색 마족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하지만 자신의 공격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어느새 검은색 기운을 모으는 녀석. 그것은 검은 구체로 변화하더니 이윽고 뾰족뾰족한 가시가 달린 형태로 변화하였다. 얼핏 보면 커다란 성게 같은 모습이었는데 녀석은 그것을 그대로 전방에 날렸다.
투사체라고 하기엔 매우 천천히 날아가는 가시 구체. 그렇게 날아간 그것은 어느 순간 멈춰 섰다. 그리고 사방에 솟아난 가시가 분출되며 일제히 엘리시아를 향해 날아갔다.
타앙! 탕! 타앙! 탕! 탕! 탕!
시커먼 가시가 수호 방벽을 사정없이 때린다.
하지만 그것은 7서클의 방어 마법.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아무런 타격도 없었다.
허나 지금 그 검은 가시의 수가 너무나도 많았다.
100? 200? 아니 못해도 수천은 돼 보이는 검은 가시들.
그것들이 쉴 새 없이 보호막을 때리자 아무리 7서클의 마법인 수호 방벽이라도 점점 균열이 가기 시작하였다.
방어막을 유지하기 위해 엘리시아는 있는 힘껏 마력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미친 듯이 가격하는 검은 가시들로 인해 점점 힘에 부치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그녀가 고전을 하고 있을 때였다.
스윽── 서걱! 서걱! 서걱!
라델리안 공작이 나타나 흑색 마족을 사정없이 베어버렸다. 강맹한 오러 블레이드로 인해 단숨에 8조각이 나버린 마족. 허나 검은 실들이 뿜어져 나오며 조각난 몸들이 이어 붙기 시작했다.
“허, 이럴 수가! 도대체 이건?”
눈앞에 말도 안 되는 장면을 목격한 그는 혀를 차며 놀라고 만다. 그리고 그 순간 온몸에 구멍이 뚫렸던 백색 마족이 어느새 몸을 회복한 상태로 라델리안 공작에게 검격을 날렸다.
치이이익─── 스걱!
“크윽!”
놈의 공격이 옆구리에 스치며 침음을 삼키는 라델리안 공작. 깊은 상처는 아니었지만 느껴지는 통증과 더불어 머리가 띵한 것이 무언가 이상하였다.
‘서, 설마 독?’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점점 숨이 막혀오고 몸이 둔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눈꺼풀이 무거워지며 침침해지기 시작하였다. 의식이 저편으로 날아가기 직전인 그때.
“이야아아아압!”
서걱! 서걱! 서걱! 서걱!
어느새 나타난 에드가 백색 마족을 갈기갈기 베어버렸다.
하지만 이내 재생하기 시작하는 마족.
그것을 확실히 제거하기 위해 에드는 다시 한번 비전 검술을 사용하였다.
거뭇해진 그의 오러 블레이드가 날카로운 이빨로 변하고 그것이 수십의 아귀로 변해 마족의 신체를 게걸스럽게 뜯어먹었다.
삽시간에 분해되어버린 마족의 신체 조각들. 그렇게 되자 더 이상 재생되지 못하며 그대로 사라지고 말았다.
동료가 당하는 것을 목격한 흑색 마족. 놈 또한 어느새 신체를 복구했는데 그의 얼굴은 분노에 휩싸인 채 잔뜩 구겨져 있었다. 놈은 그것을 표출하며 곧장 에드를 향해 마법을 쓰려고 하였다. 하지만 이미 엘리시아의 주문은 완성되어 있었다.
《절대 속박》
《극염》
푸른빛의 고리가 흑색 마족의 몸을 휘감으며 꼼짝 못 하게 하였다. 그리고 이내 그에게 쏘아진 백색의 화염구.
어떤 것이든 재로 만들어 버리는 초고온의 화염 마법이 백색 마족에게 그대로 적중하였다.
콰아아앙! 화르르르르르─────
“$$%돈$%#뤽$#$!!”
화염에 휩싸인 마족은 끔찍한 소리를 내지르며 괴로워하였다. 비록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녀석이 고통이 절로 느껴질 정도로 처절한 음성이었다.
그렇게 화염에 집어삼켜진 백색 마족은 그대로 타들어 가며 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막 3마리의 마족이 처치될 동안 2마리의 마족을 홀로 상대하고 있던 이가 있었다.
바로 에밀리였다.
그녀는 군주급 정령인 스카디엘라와 바람의 상급 정령인 실레스틴을 소환하여 마족들과 싸우게 하였다.
상급의 마족이면 모를까 고작 하급에 불과했던 둘은 스카디엘라와 실레스틴을 도저히 당해낼 수 없었다. 결국 일방적으로 공격당하며 끝내 소멸되고 말았다.
마족들을 처리한 그녀는 곧장 아르모를 도와주었다.
아직 6서클에 불과한 그녀가 단독으로 마족을 상대하기에는 꽤나 역부족이었다. 이중 영창을 사용하며 필사적으로 마족에게 대항하였지만 그다지 타격을 입히지 못하였다. 물론 마족 또한 아르모의 방어 마법으로 인해 큰 타격을 주지 못하고 있던 것은 마찬가지. 그렇게 아르모가 마족을 상대로 가까스로 버티어내고 있을 때 에밀리의 난입으로 상황은 역전되었다.
휘이이이이잉──
파드득 파득─!
스카디엘라의 서릿발 같은 냉기에 순식간에 얼어붙고 마는 마족. 그리고 뒤이어 이어진 실레스틴의 막강한 위력.
파아앗! 파악! 파사사사삭!
뭐든지 갈아버리는 매서운 회오리바람에 얼어붙어 있던 마족이 삼켜지면서 녀석은 핏빛 얼음알갱이로 산화되고 말았다.
우터 또한 하급의 마족과 혈전을 벌이고 있었다.
활을 이용해 적을 제압하는 우터와 끊임없이 재생하는 마족과의 상성은 사실 그다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우터의 화살 공격은 마족의 핵을 정확히 집어내었다. 자신의 핵이 계속해서 타격을 입자 마족은 당혹스러워하였다.
다른 마족도 모르는 자신의 핵을 어떻게 알고 이렇게 귀신같이 맞추는지. 놈은 이를 악물며 우터를 향해 공격을 하였지만 바람과도 같은 그의 몸놀림에 번번이 헛방만 날리고 말았다.
콰과과광! 콰과광!
마족의 파괴적인 공격으로 인해 주변 건물들이 부서지며 가루가 흩날렸다. 먼지가 비산하며 주변의 시야를 가렸지만 우터의 기감에 놈이 어디에 또 어떻게 하는지 실시간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집중.
화살에 마력을 불어넣어 놈의 중심핵을 정확히 겨냥하였다.
쉬이이이이이익─────
퍼어억!
“%#%#뒬%#권%#&^!!”
정확히 왼쪽 가슴 바로 아랫부분에 깊숙이 파고든 화살. 마족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지며 단말마를 토해내었다.
그리고는 곧 온몸이 서서히 녹아내리며 붕괴되고 말았다.
결국 홀로 남게 된 대장 마족.
비록 하급에 불과하였지만 엄연히 마족이었던 자신의 부하들이 인간 놈들에게 일방적으로 당하자 그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였다. 게다가 눈앞의 인간 놈 또한 만만찮았다.
중급 마족인 자신을 상대로 한 치도 물러서지 않으며 대등하게 맞서는 인간. 아니 인간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며 자신을 위협하였다.
“이제 너 혼자 남았다. 이 새끼야! 그러니 이만 죽어!”
칼슨의 욕을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느낌상 자신을 모욕한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고작 인간 놈 따위에게 이런 치욕을 당하다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마족은 칼슨을 죽이려고 필사적으로 싸웠다.
권능을 이용해 그를 찢어발기려 하였지만 칼슨은 절묘하게 피하며 마족의 몸에 지속적으로 상처를 주었다.
간혹 자신의 공격을 피하지 못할 때는 이상한 칠흑 같은 기운으로 모든 것을 흡수해버렸다.
마족으로서는 정말이지 답답해 미쳐버릴 지경.
칼슨 또한 답답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계속해서 상처를 주고 있지만 놈의 재생력은 터무니없었다. 아무리 베어내도 끊임없이 들러붙는 까닭에 칼슨은 진저리를 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계속해서 이런 소모전을 벌일 순 없었다. 그래서 칼슨은 끝장을 보기 위해 스킬 ‘극의’를 사용하였다.
몸속에 있던 오러가 급격하게 돌아가며 신체 능력을 대폭으로 끌어올렸다. 끊임없이 재생하는 놈을 확실하게 끝장내기 위해서는 몸 전체를 단숨에 소멸시켜버려야 했다.
그러기 위해 강화 스킬인 ‘극의’를 발동시켰다.
모든 스킬의 피해가 3배 강해지지만 지속 시간은 단지 5분.
단숨에 놈을 없애기 위해 칼슨은 오러를 모아 즉시 비전 검술을 사용하려 하였다. 허나 비전 검술을 쓰기 위한 틈이 잘 생기지 않았다. 그때 칼슨의 의도를 눈치챈 우터가 놈의 중심핵에 화살을 날렸다.
파직!
중심핵에 살짝 손상을 입으며 놈의 인상이 구겨졌다. 통증 때문인지 움직임 또한 둔해진 상태. 이 절호의 기회를 칼슨은 놓치지 않았다.
샤아아아아아────
새하얀 오러가 검어지면서 칠흑같이 변하였다. 그것은 넓게 퍼지면서 점점 영역을 넓혀갔다. 그렇게 거대해진 칠흑의 오러를 마족에게 휘두른 칼슨. 놈은 피하려 하였지만 시커먼 오러는 놈을 놓치지 않고 쫓아갔다. 그리고는 단숨에 삼켜버리고 말았다.
슈우우우우─
마족을 삼킨 칠흑의 오러는 서서히 줄어들더니 어느덧 종적을 감추었다.
비틀─
“으윽!”
순식간에 오러가 빠지면서 현기증이 돌았다. ‘극의’는 정말 좋은 스킬이지만 안 그래도 심한 전설 등급의 비전 검술. 거기에 극의 스킬이 더해지면서 오러 소모를 더욱 가속화시켰다.
그로 인해 지금처럼 일시적 탈진 현상을 일으키고 말았던 것.
만약 이 기술을 쓰고 상대를 쓰러트리지 못한다면 굉장히 위험한 상황에 노출될 터였다.
“휴우…….”
이내 크게 숨을 들이쉰 칼슨은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는다. 그러자 조금 창백했던 얼굴이 이제 서서히 혈색이 돌았다.
“영주님! 괜찮으십니까?”
“괜찮으세요, 영주님?”
상황이 마무리되자 칼슨에게 모여든 그의 가신들. 걱정스런 얼굴을 하며 자신을 바라보았다. 칼슨은 이내 웃음을 보이며 그들을 안심시켰다.
“나는 괜찮아. 큰 기술을 써서 잠시 어지러웠을 뿐이야.”
손을 들며 괜찮다고 하자 그제야 다들 표정이 밝아졌다.
상황이 정리된 것 같아 주변을 둘러본 칼슨. 그런데 라델리안 공작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칼슨이 다가가 그의 상태를 살피며 말을 걸었다.
“괜찮으십니까, 라델리안 공작님?”
“크윽, 드레이크 백작이로군. 보시다시피 조금 다쳤다네. 이거 나이가 드니 몸이 둔해진 것 같아.”
“…….”
살짝 인상을 쓰며 너스레를 떠는 라델리안 공작. 하지만 그의 상처를 본 칼슨의 표정이 굳어졌다.
거무튀튀하게 부어올라 있는 상처. 필시 이것은 독으로 추정되었다. 칼슨은 우터를 향해 말을 하였다.
“우터, 어서 해독제를….”
“예, 영주님.”
우터는 품에 있던 해독제를 꺼내었다.
극독을 만들면서 따로 만들어낸 해독제. 어지간한 맹독도 이 해독제로 단숨에 치료될 수 있었다. 해독제 중 절반은 라델리안 공작의 상처에 뿌리고 나머지는 마시게 하였다.
그러고 조금 시간이 지난 후. 라델리안 공작의 안색이 한결 나아졌다. 거기다 상처 또한 원래 색을 되찾으며 확실히 해독된 게 보였다.
“으윽, 이제 좀 살 것 같구먼. 정말이지 또 신세를 지게 되었네, 드레이크 백작.”
“아닙니다. 해독은 되었지만 당분간 쉬셔야 할 것 같습니다. 큰 독은 해독되었지만 자그마한 독 기운이 전신에 퍼져있어서 그것까지 회복하려면 충분한 휴식이 필요할 것입니다.”
“크흠, 그렇군. 알겠네.”
칼슨의 권유에 그대로 수긍한 라델리안 공작. 자신도 알았다. 지금 이 몸 상태로는 도움은커녕 민폐만 끼치게 될 거라는 것을. 그는 병사들의 부축을 받은 채 편히 치료받을 수 있는 곳으로 옮겨졌다.
라델리안 공작이 빠졌지만 그래도 아직 많은 실력자들이 남아있었다. 칼슨은 병력들에게 주변의 정리를 맡겼다. 그리고 기사와 마법사들을 대동한 채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왕성을 향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