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반역이 아닌 구국 (3)
“크하아아아아아!”
“키하아아악!”
이미 이성이 사라진 듯한 모습. 마치 괴물처럼 변해버린 놈들을 보자 라델리안 공작은 순간 당황하였다.
하지만 이내 이를 악물며 말에 박차를 가하였다.
그리고 외쳤다.
“저 끔찍한 모습을 보았느냐? 놈들은 사악한 악마들이다! 그러니 인정사정 봐주지 말고 철저히 부숴버려라!”
“예, 공작님!”
우렁찬 기사들의 대답. 그 모습에 흡족한 라델리안 공작은 오러 블레이드를 뿜어내며 놈들에게 달려 나갔다.
그렇게 맞붙은 두 병력.
끔찍한 모습의 괴물들이었지만 라델리안 공작은 자신의 오러 블레이드에 그들이 단숨에 썰려 나갈 거라는 것을 의심치 않았다.
치이이이이익───── 스걱!
“크윽!”
생각보다 질긴 놈들의 거죽.
단숨에 절단되기는 했지만 손목이 저릿할 정도로 반동이 일었다. 그로 인해 표정이 굳어버린 라델리안 공작.
곧 그의 뒤를 따르던 기사들이 그들을 향해 오러를 먹인 검으로 공격을 시작하였다.
지이이이익─── 스걱!
부아아아악───퍼억!
“허어억? 어찌 이런!”
“헉! 마, 말도 안 돼!”
분명 오러를 먹인 검이었건만 놈들의 질긴 피부를 깊게 베어내지 못하며 생채기 정도만 내었다. 그들의 일격이라면 강철 갑옷 또한 어렵지 않게 잘라낼 수 있건만 눈앞의 것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방어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상처를 입은 놈들은 몸이 주춤거리며 비명을 질러대었다. 그것은 어느 정도 타격이 먹었다는 말. 허나 이내 고통은 분노로 변하며 그것은 자신들에게 상처를 입힌 자들에게 향하였다.
바로 기사들에게 말이다.
“쿠워어어어어!”
“크아아아아!”
마치 짐승과도 같은 소리를 내며 달려드는 그들.
손에 무기를 쥐며 공격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건 전문적인 움직임이라기보단 야만인의 몸놀림에 가까웠다.
무식하고 거침없는 단순한 휘두름.
허나 그것을 받아내는 기사들에게는 상상 이상의 타격이 전해졌다.
퍼어억! 콰아앙! 타앙! 캉!
“크으윽! 이 무슨 힘이 이렇게…….”
“허억! 이게 말이 돼?”
“이거 사람 맞아? 완전 몬스터가 따로 없네!”
무자비한 그들의 맹공에 순식간에 수세에 몰린 기사단들.
처음 그들의 돌격은 어느새 멈춰버리고 서서히 뒤로 밀려나고 말았다.
퍼억!
히이이이잉──
그것들이 들고 있는 창이 말의 머리를 부수자 그대로 땅에 처박히는 기마. 다행히 숙련된 기사는 그에 휩쓸리지 않고 중심을 잡으며 무사히 착지하였다. 하지만 그렇게 한두 마리씩 기마들이 무너지니 라델리안 공작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런, 이들은 사람이 아니라 몬스터 같구나! 그것도 중형급 이상의 몬스터…. 이대로 가다간 전열은 순식간에 무너질 것이야.’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 그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오러를 한껏 끌어모았다.
푸르스름한 오러 블레이드가 솟구쳐 오르기 시작하였다. 점점 퍼져나가며 강대한 파도를 이루었다. 그리고 곧 그 파도는 적들을 덮쳤다.
샤아아아아아아악────
파악! 퍼억! 콰직! 콰지직!
“키에에에엑!”
“꿰에에엑!”
파도 같은 푸른 오러 블레이드에 노출된 놈들은 모두 바스러지고 뭉개지며 찢어졌다.
놈들의 역겨운 단말마가 여기저기 들려온다.
허나 그것은 일부.
아직 놈들의 태반은 건재하였다.
그렇지만 일순간 여유가 생기며 라델리안의 병력들은 바로 전열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라델리안 공작은 기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모두 대열을 유지하며 뒤로 물러선다! 병사들 또한 전열을 유지하도록 해라!”
그의 말에 기사들은 정신을 차리며 다시 대열을 맞춰나갔다. 그러자 혼란스럽던 라델리안 군은 어느덧 안정적으로 변해갔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황이 유리해진 것은 아니었다.
아직 괴물들의 수는 많았고 그것들의 기세가 꺾인 것은 아니었으니까.
다시 득달같이 달려드는 국왕군의 괴물들.
이에 기사들을 필두로 라델리안의 병력들은 필사적으로 막아내었다.
콰앙 쿵! 퍼억! 콰앙!
“으으읏! 이 괴물 놈들!”
“커헉! 이 미친 위력은 도대체 뭐야!!”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놈들과 맞서지만, 적들의 광기에 점차 기세가 밀려버렸다. 그러는 와중 한쪽 전열을 버티고 있었던 기사가 놈들의 공격에 당하고 말았다.
푸욱!
“커허억! 이, 이럴…!”
콰직!
끝내 말을 잊지 못한 채 투구가 우그러지며 절명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동료가 처참하게 죽어버리자 주변 기사들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본능을 자극하는 죽음의 공포가 등골을 타고 전신으로 퍼져갔다. 그 어두운 감정은 머릿속을 헤집으며 온몸을 굳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가는 눈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참혹하였다.
콰앙!
콰직!
우드득!
“케엑!”
“커헉!”
“으아아아아아!”
이미 이성을 상실한 놈들은 이제 무기를 내팽개쳐버리며 맨손으로 상대의 갑옷을 우그러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오히려 무기를 쓸 때 보다 더 위력적이었다. 상대를 죽이고자 하는 본능만이 남은 괴물들. 그 모습에 아군의 전의는 급속도로 상실되고 말았다.
그렇게 한쪽 전열이 무너지자 라델리안 공작의 병력 전체가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다간 전멸은 시간문제였다.
“으아아아아아! 죽어라 이 괴물들아!”
서걱! 서걱! 서걱! 서걱!
어느새 무너지고 있던 그곳에 라델리안 공작이 나타났다.
밀려 들어오는 놈들을 무참히 썰어버렸다.
매우 질긴 거죽을 가지고 있는 놈들이었지만 소드 마스터의 완성된 오러 블레이드를 버텨낼 수는 없었다.
그렇게 어렵사리 그곳을 막아내자 다시 안정을 찾는 라델리안 군. 그 모습을 바라본 상대편 지휘관은 비릿한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는 한쪽에 모여 있는 이들을 바라보며 입을 연다.
“저기 저자를 상대해라!”
그의 말을 들은 그들. 흡사 기사처럼 보이는 그들은 그 말을 듣자마자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화르르르
투구의 틈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녹황색의 불꽃.
기이한 소리를 내는 그들은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라델리안 공작에게 다가갔다.
“뭐야? 저것들은!”
눈앞의 괴물들 말고도 특이해 보이는 놈들이 자신에게 달려드니 잠시 놀란 라델리안 공작. 딱 봐도 범상치 않게 생긴 놈들이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자 그는 자세를 가다듬으며 놈들을 맞이하였다.
콰앙! 콰아앙! 콰직 콰광! 퍼억!
일제히 들어오는 다섯의 검격. 무척이나 빠른 검이었지만 소드 마스터인 라델리안 공작은 가까스로 그것을 막아내었다. 일반적인 기사의 공격이라면 여유롭게 상대하겠지만 놈들의 공격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다섯이란 수도 그렇지만 한 놈 한 놈의 속도가 미칠 듯이 빨랐다. 거기다 놈들의 오러는 어찌나 단단한지 오러 블레드랑 부딪혀도 그 기세가 사그라지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놈들이!”
아직까지 잘 막아내고 있는 라델리안 공작. 그렇다고 해도 놈들에게 반격할 여유는 나지 않았다. 주변의 기사들이 라델리안 공작을 도와주면 좋았겠지만 그들조차 여유가 없어 보였다. 그들 또한 눈앞의 괴물들을 상대로 버티기 급급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양측의 힘겨루기가 한동안 지속되었다.
하지만 점점 체력이 떨어져 가는 라델리안 공작 측과는 달리 국왕 측의 괴물들은 더더욱 광폭해져 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균형이 깨지며 라델리안 공작의 진영이 순식간에 붕괴되었다.
“키에에에엑!”
“쿠아아아아악!”
콰직! 콰앙! 퍼억! 으드득!
“허어억! 사, 살려줘!”
“아아아악! 내 팔! 내 팔이!”
“크으윽! 저리 가! 이 괴물아! 아악!”
팽팽하게 당겨진 줄이 끊어지듯 급속도로 무너져버린 라델리안 군의 전열. 국왕군의 괴물들이 병사들은 물론 기사들마저 물어뜯으며 하나둘씩 잡아먹혔다.
그 상황을 보고 있던 라델리안 공작은 분통이 터졌지만 현재 자신 또한 몸을 빼기가 급급한 상태. 이대로 병력이 무너지는 것을 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절망적인 순간. 어디선가 갑작스런 돌풍이 불어왔다.
위이이이이이이잉─────!
돌풍은 점점 거세어지더니 회오리가 되었고 그것은 더더욱 커지며 거대한 토네이도를 만들었다.
콰지지직! 콰직! 우드드득! 우드득!
“키에에에엑!”
“꿔어어어억!”
“캬하아악!”
국왕군의 괴물들이 사정없이 찢어발겨지며 단말마를 내지른다. 단숨에 수백의 괴물들이 분쇄되면서 그 피로 인해 토네이도의 색도 붉어졌다. 하지만 붉은 폭풍은 거기서 만족하지 못하며 국왕군의 나머지 괴물들을 갈아버린다.
우르르르르르르───
“저, 저건 도대체 뭐야!”
갑작스럽게 생긴 자연재해에 눈이 커지고 마는 라델리안 공작.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순간 검을 놓칠 뻔하였다.
놀란 이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국왕 측 괴물들 또한 생존본능 때문인지 두려움에 몸서리치며 비명을 지른다.
결국 국왕군의 절반 정도를 갈아버린 토네이도. 그것은 어느새 잠잠해지며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사라지고 말았다.
“이, 이럴 수가!”
지휘관으로 보인 이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경악하고 말았다. 재해에 가까운 폭풍이 불어 닥친 것도 믿을 수 없는데 그것이 자신들의 병력만을 씹어 먹어버렸다.
그로 인해 남은 병력은 고작 3천이 조금 못 되는 수. 하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아군의 사기가 급격히 꺾여나갔다는 것이다.
인성을 상실하여 어지간해서는 두려움을 모르는 놈들이 지금 잔뜩 겁을 집어먹은 채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이 상황에 그는 이를 바득 갈며 포효하였다.
“고작 이런 거에 겁먹지 마라! 어차피 놈들은 우리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당장 눈앞의 놈들을 찢어버려라!”
우렁찬 그 소리에 국왕 측 괴물들이 퍼뜩 정신을 차린다.
그리고 다시 흉포한 기세를 뿜어내며 재차 달려들었다.
허나 이미 전열을 다시 굳힌 라델리안 공작의 병력은 무리 없이 그것을 버텨냈다. 게다가.
“죽어라 이것들아! 으아아아아아!”
“공작님! 제가 돕겠습니다! 하아아압!”
카아앙! 콰앙! 따앙!
여유가 생기며 라델리안 공작을 도울 수 있게 된 기사들. 그로 인해 라델리안 공작은 놈들에게 일격을 먹일 시간이 생기게 되었다.
“고맙다! 으아아아압!”
다시 한번 그의 검에서 비전 검술을 발동. 푸른 파도 같은 오러 블레이드가 놈들을 덮쳐버렸다.
콰직! 와드드득! 콰아앙! 콰득!
순식간에 바스러지는 녹황색 불의 기사들. 아무리 단단한 강도를 가지고 있는 그들이지만 오러 블레이드가 사방에 덮쳐오니 이겨내지 못하고 그대로 분쇄되어버렸다.
그렇게 무게 추가 다시 맞춰지고 있던 그 순간.
갑자기 매서운 한파가 몰아쳤다.
휘이이이잉───
쩌어억─ 쩌어억─ 쩌억─
뼛속까지 얼어붙는 냉기에 수백의 괴물들이 단숨에 얼음이 되어버렸다. 다시 또 일어난 재해로 인해 사고가 마비되어 버린 국왕군 지휘관. 이번에도 그 재해가 자신들 쪽만 가해지자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였다. 만약 그런 거라면 누군가 의도적으로 이런 재해를 만들었다는 것.
‘분명 이건 마법일 것이다! 그렇다면 시전자는 어디에 있지?’
그는 시전자를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한쪽 구릉에서 자신들을 보고 있는 일단의 무리를 발견하였다.
대략 500여 명 정도 돼 보이는 그들. 전부 말을 타고 있었기에 기사들로 착각을 했지만 복장을 보니 그것은 또 아니었다.
대부분 갑옷이 아닌 가벼운 복장을 하고 있었기에 그들이 누구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중 제일 선두에 한 여성이 보였다.
청록색 머리가 유난히 눈에 띄는 그녀. 차가운 미소를 띤 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