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반역이 아닌 구국 (2)
보름 전 로버데인 왕성.
요즘 뭔가 이상하였다.
왕실 기사단의 일원이었던 세리나는 최근 왕성에 이상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중 제일 이상한 것은 국왕인 데로스였다.
왕을 지켜야할 그녀가 이런 생각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심한 불충이라 볼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국왕의 행보는 정말 이상하리만큼 기행적이었다.
그냥 통상적인 대신들의 업무보고에도 날카롭게 반응하였고 오히려 엄중히 다뤄야 할 사안에 대해서는 의아할 정도로 시큰둥하였다. 물론 그 정도에 그쳤다면 그냥 단순한 심경의 변화 정도로만 여겼을 것이다.
문제는 그 예측 못할 반응만큼이나 행동력이 과격해졌다는 것이다.
며칠 사이에 10명이 넘는 궁정 대신들이 처형당하였다.
그들이 말한 것은 단순한 정책에 대한 간언. 국왕은 그것을 듣고 그들을 반역죄라 말하며 처형하고 말았다.
거기에 그들과 친분이 있어 발언에 동조하였던 스무 명 정도는 감옥에 투옥되었고 말이다.
그리고 더 웃긴 것은 이렇게 신하들을 보내버린 후 거짓말같이 그 자리를 처음 보는 이들로 채워졌다는 것이다.
그들 대부분 지방 귀족들의 젊은 자제들이었다.
이름도 생소한 그들이 국왕의 명에 의해 왕국의 요직을 하나하나씩 차지하였다.
이쯤 되니 왕실 기사단들 또한 굉장히 동요하기 시작하였다. 정치에 거의 관심 없고 오직 충성에 목맨 자들이었지만 최근 국왕의 행보는 파격 그 이상의 기행이었다.
당연히 사람인 이상 의구심과 걱정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새로이 기사단장이 된 리단 또한 그들과 같은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가 기사단을 대표해 국왕을 알현하여 이렇게 하는 연유를 물으러 갔다.
그리고 한참 후 한바탕 소란이 일어나며 피투성이가 된 리단이 돌아왔다.
사색이 된 그의 표정.
그는 처절한 목소리로 단원들에게 소리쳤다.
“크윽! 모두 도망쳐라! 어서…! 커허어억!”
푸우욱!
미처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단말마를 지르며 피를 토하는 리단. 그의 뒤에서 시커먼 손이 가슴을 꿰뚫고 올라왔다.
그 모습을 본 왕실 기사단들은 경악하며 리단을 향해 다가왔다.
“단장님!!”
“리단 단장님!!”
철퍼덕!
그대로 바닥에 처박히는 리단의 주검. 그리고 그곳에는 기이하게 생긴 이족 보행의 괴물이 서 있었다.
시커먼 몸에 길쭉한 팔. 크고 날카로운 손톱.
거기다 이목구비가 없는 얼굴은 한층 그것을 더 기괴한 느낌을 주게 만들었다.
그것을 본 기사단원들은 기이함을 느끼는 동시에 분노하였다. 그리고 모두 검을 뽑아 오러를 한껏 피워 올렸다.
그 이상한 괴생명체는 리단을 죽인 후 전방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곧장 왕실 기사단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닌 수십 마리가 말이다.
“이것들이 감히 단장님을? 죽어라! 이 괴물들아!”
“으아아아아! 이 새끼들아!”
당혹스러워하면서도 죽은 단장을 본 그들은 분노에 가득 찬 상태로 그 것들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되었다. 그때 나단의 말대로 바로 도망쳤어야 했다.
치지지직─── 스걱! 스걱!
오러를 품은 검이 호기롭게 그들을 베어나갔다. 거죽이 두꺼워서인지 생각보다 깊은 상처를 주지 못하였다.
하지만 문제는 놈들은 아무런 고통을 느끼지 않는 듯 태연하게 기사들을 공격. 날카롭고 뾰족한 손톱이 그대로 기사들의 갑옷을 꿰뚫었다.
푸욱!
“커허어억!”
놈들의 일격에 절명해버리는 기사들. 한순간에 달려들었던 모든 기사들이 싸늘한 시체가 되어버렸다.
“허억! 마, 말도 안 돼!”
“어, 어떻게 이런 일이! 이건 꿈이야!”
자신의 동료들이 무력하게 죽어 나가자 그들 또한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허나 이미 놈들의 강철 같은 손톱이 그들의 눈앞에 내리치고 있었다.
치이이이익─── 퍼어억!
“커허어억!”
“꺄아아아아악!”
끔찍한 학살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왕실의 내로라하는 기사들이었지만 그 무자비한 괴물들 앞에서는 무력하기 짝이 없었다. 뒤늦게 상황을 깨달은 다른 기사들은 죽어 나가는 동료들을 뒤로한 채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세리나는 그 대열의 선두에 있었는데 그녀는 리단이 도망치라고 했을 때부터 진작 몸을 피해있었다. 왠지 모를 불길함을 그전부터 느꼈던 터라 본능적으로 도주하여 다행히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허나 놈들의 걸음은 빨랐다.
기사들의 움직임도 범인에 비해 월등히 빨랐지만 이들은 그보다 더 민첩해 보였다. 그 엄청난 속도에 뒤에 있는 동료들이 하나둘씩 따라 잡혔다.
푸욱!
퍼억!
차아아아악!
“크아아아아악!”
“크허억!”
“끼야아악!”
뒤를 보진 않았지만 차례차례 들려오는 그들의 비명 소리가 참혹한 광경을 머릿속에 그려주었다. 귀가에 하나둘씩 들려오는 단말마들. 세리나는 어느새 놈들이 목전에 다다랐다는 것이 느껴졌다.
눈을 질끈 감으며 이제는 죽겠다고 생각할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숙여라!”
“허억?”
그 말을 듣고 무의식적으로 몸을 숙인 세리나.
그 위를 지나간 어떤 이가 그들을 향해 검을 휘둘러 모조리 토막을 내어 버렸다.
지이이이이잉──── 서걱! 서걱! 서걱!
순식간에 해체된 괴물 한 마리.
무심코 그곳에 시선을 돌리니 익숙한 이가 그곳에 있었다.
“단장님…? 여긴 어떻게?”
“내가 단장직을 그만둔 지가 언제인데 아직까지 그렇게 부르는가?”
큰 덩치에 무뚝뚝해 보이는 남성. 그는 바로 전대 왕실 기사단장이었던 노긴 바나텔로였다. 선명하고도 굵은 오러 블레이드가 그의 검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는 평소 같이 무표정을 하며 다가오는 괴물들을 주시하였다.
왕실 기사단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을 보니 보통 놈들이 아니었다. 비록 팔이 하나밖에 없지만 그는 숙련된 소드 마스터. 다시 이쪽으로 다가오는 놈들을 단숨에 베어 버렸다.
스윽─ 서걱─! 서걱─!
순식간에 잘려 나간 놈들.
하지만 잘려 나간 놈들은 이내 몸이 들러붙기 시작 다시 되살아나며 노긴에게 달려들었다. 그것을 본 노긴은 놀란 표정을 하였다. 하지만 처음에 쓰러트린 놈을 상기하고 놈들의 약점을 파악한 그는 더욱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스윽── 서걱─! 서걱─! 서걱─! 서걱─! 서걱─!
그렇게 노긴의 검에 토막이 나버린 괴물들은 더 이상 재생하지 못한 채 꿈틀거릴 뿐 움직이지 못하였다.
잠시 여유가 생기자 노긴은 세리나에게 말하였다.
“이곳은 내가 막을 테니 너는 어서 도망가도록 해라!”
“네? 아니, 바나텔로 경은 어쩌시려고요?”
“나는 소드 마스터다. 이 정도쯤이야 나 혼자서 충분히 몸을 지킬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 오히려 네가 있으면 방해만 될 뿐이다. 그러니 신경 쓰게 하지 말고 어서 빨리 도망쳐라!”
그의 일갈에 뭐라 말을 이어가려던 세리나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대로 몸을 피하였다. 그녀가 그곳을 떠나자마자 곧 장 다가오는 괴물 무리. 노긴은 그것들을 보며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오러 블레이드를 한껏 끌어 올리며 맞선다.
“어서 와라! 이 괴물들아!”
* * *
“헉! 헉!”
정신없이 달려 어느새 마굿간에 도착한 세리나. 그곳엔 프란이 있었다.
“어, 세리나? 네가 여긴 무슨 일이야?”
“헉, 헉…. 선배님이야 말로 여기에 어쩐….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지금 여기서 당장 도망쳐야 합니다.”
“뭐?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도망쳐야 한다니?”
“길게 설명할 시간이 없습니다. 지금 바나텔로 경께서 시간을 벌고 있습니다만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습니다.”
“뭐? 바나텔로 경께서 시간을 번다니? 그게 무슨…. 허억!”
그와 실랑이할 시간이 없었던 세리나는 대화를 중단하고 곧장 자신의 말이 있는 곳을 향하였다.
다행히 안장이랑 고삐가 걸쳐있어 바로 타고 갈 수 있었다. 그녀는 재빨리 그 위에 올라타 박차를 가하였다.
“그렇게 멍하니 있지 말고 빨리 도망쳐요! 이럇~!”
히이이이이잉~
그녀의 애마는 깜짝 놀라며 득달같이 튀어 나갔다. 그렇게 급히 달아나는 그녀를 보며 프란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어디선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그의 앞에 떨어졌다.
쿠우웅!
커다란 검은 물체. 아니 마치 사람의 상체와도 비슷해 보였다. 긴장한 채로 그것을 자세히 바라보는 프란. 그 순간 갑자기 그것의 팔이 움직이더니 그대로 프란을 공격하였다.
치이이익───! 캉!
“크으으윽!”
가까스로 검으로 막은 그는 침음을 삼켰다. 말도 안 되는 위력과 강도에 드레이크 산 미스릴 검에 금이 가버렸다.
그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지만 오러를 잔뜩 끌어올리며 놈의 양 팔을 잘라내었다.
그것은 매우 질긴 피부를 가지고 있었지만 놈은 상체뿐이었기에 상당히 허점이 많아진 상태. 해체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양팔이 잘려 나가자 공격수단이 없어진 괴물. 그러자 놈의 얼굴에 잠시 작은 구멍이 생기더니 그곳에서 기괴한 소리가 들려왔다.
“키에에에에에엑!”
거슬리는 소음에 프란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갑자기 그것이 이상한 행동을 하자 뭔가 기시감이 들었지만 그는 이내 놈의 머리 부분을 잘라버리며 끝장을 내었다.
하지만 곧 수많은 기척들이 그의 머리 위에서 느껴졌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한 프란은 재빨리 몸을 피하였다.
쿵! 쿵! 쿵! 쿵!
“허, 이것 또 뭐야…?”
아까 상체만 있던 놈과는 달리 온전한 괴물 4마리가 그곳에 떨어졌다. 놈들은 프란을 발견하더니 동시에 달려든다.
당황한 프란은 검을 들어 대항해보았지만 놈들의 수가 많았다. 동시에 날아드는 8개의 손날.
스걱─
“케헤엑!”
순식간에 절반 정도 베어진 그의 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치솟았다. 그로 인해 숨이 막히며 말조차도 나오지 않는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이 느껴지며 그대로 쓰러져버린 프란.
쿵!
그렇게 쓰러진 프란 위로 다시 놈들은 손톱으로 그를 무참하게 찍어버렸다.
푹! 푹! 푹! 푹! 푹!
이미 의식을 잃었던 프란은 그대로 절명해버리고 말았다.
왕실 기사단이자 라델리안 공작의 차남인 그는 그렇게 허무한 최후를 맞게 되었다.
* * *
프란의 목을 효수한 국왕군. 그것을 본 라델리안 공작의 눈에서 실핏줄이 터지며 피눈물이 흘러나온다.
그가 가진 세 명의 아들 중 유독 검술의 재능이 있던 아이였던지라 남다른 애착을 가졌었다. 그런데 그 재능을 꽃피우기도 전에 저리 비참한 꼴을 당할 줄이야.
라델리안 공작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자식의 죽음에 분노한 그는 악귀 같은 표정을 하며 소리쳤다.
“모두 저 악마 새끼들을 죽여 버려라!”
그 말과 함께 말을 타고 튀어 나가는 라델리안 공작. 그와 함께 그의 기사단들 또한 달려 나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노스데일 백작이 병사들을 이끌고 곧장 그 뒤를 따랐다.
두두두두두두────
약 500여 명의 기마가 적들을 향해 돌진하였다.
게다가 기마들 뒤로 몇천의 병사들이 뒤따르니 그 기세가 가히 폭풍과도 같아 보였다.
매서운 그 기세에 상대측 병력이 위태로워 보일 지경.
하지만 적 지휘관으로 보이는 이가 비릿한 웃음을 보이며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모두 저놈들을 먹어 치워라!”
그 말과 동시에 놈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몸이 부풀어 오르고 덩치가 커진 모습. 눈에서는 광기가 흘러넘쳤다.
그리고 병사들 또한 몸집이 커지며 광기가 번뜩이는 모습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