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영지가 제일 강함-113화 (113/162)

112화 반역이 아닌 구국 (1)

국왕과의 전쟁을 말하는 칼슨.

크지는 않지만 제법 또렷한 목소리였다. 그의 말에 그곳에 있던 모든 이들이 일제히 대답하였다.

“예, 영주님!”

내성 안에서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는 소리.

국왕과의 전쟁 선포.

이것은 절대 반역이 아니다.

흑마법사들에게 유린당한 벤투스 왕국을 구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현재 그것을 할 수 있는 이는 칼슨 본인밖에 없었다.

“결국 이렇게 되어버리고 마는군요….”

어느새 그곳에 나타난 엘리시아가 씁쓸한 표정을 한 채 말을 하였다. 회귀를 한 후 역사를 바꿔보려 했지만 결국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였다.

분명 이것은 자신의 잘못이다. 더 자세히 알아보지 않고 단순히 자신의 오라버니가 문제였다고 판단하였으니까. 그런데 왜 그때는 흑마법사들이 정체를 숨겼는데 왜 지금은 이렇게 대놓고 드러내는 것인지 조금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와 달리 뭔가 달라진 점이 또 없나 차분히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전 생에서는 분명 이번처럼 황궁의 참사는 벌어지지 않았었다. 그때 당시에는 사절단 참가를 하지 않았지만 그런 큰 사건이 일어났다면 분명 자신도 알고 있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대해서 들은 소문이나 이야기가 아무것도 없었다.

이것은 분명 애초에 그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거나 아니면 일이 벌어지고도 누군가 그것을 대대적으로 은폐를 한 것일 거다.

만약 그랬다고 가정한다면 누가 그런 것일까? 왜 무슨 목적으로?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으로 인해 머리가 아파 온다.

아직 확실한 것은 없지만 분명한 건 이전 생애와 달라진 변수가 한 가지 있었다.

‘드레이크 백작…….’

그녀는 눈앞에 있던 그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칼슨 드레이크.

드레이크 백작의 장남으로 무능한 겁쟁이에 가문의 수치.

본래라면 부친을 살해한 죄로 지하 감옥에서 평생을 보냈어야 할 그였다. 하지만 본인 스스로 전말을 밝혀 혐의에서 벗어났고 그로 인해 엘리시아는 자신과 같은 회귀자라고 여겨 그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고 도움을 받았다.

솔직히 그가 없었다면 왕위 계승전에서도 승리할 수 없었을 테고 이후 몬스터 웨이브 때에도 그 피해가 참혹했을 터.

분명 그는 자신의 든든한 조력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놓친 게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불현듯 휩싸이기 시작했다. 그것이 도대체 뭔가하고 고민하고 있을 무렵, 눈앞에 있던 칼슨이 자신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말을 하였다.

“엘리시아 왕녀님, 왕녀님께서는 이제부터 저희와 함께 해주셔야겠습니다. 괜찮겠습니까?”

“아, 네…. 그렇게 하겠어요. 당연히 그래야지요.”

그의 말에 머릿속을 헤집고 있던 상념에서 깨어났다.

칼슨은 그녀가 그래도 국왕과 남매사이였기에 혹시 괜찮을까 의중을 물은 것이었지만 그녀는 조금 다르게 받아들였다. 이 고난을 함께 이겨나가자는 의도로 말이다.

어차피 서로 생각하는 것쯤이야 좀 달라도 상관없었다. 어떻게 받아들이든 간에 당장 하고자 하는 목표는 같았으니까 말이다.

* * *

결국 국왕인 데로스는 칼슨에게 반역죄를 씌우고 그를 잡아들이라 명을 하였다. 각 영지에 왕명이 담긴 서찰을 보내 칼슨을 잡아 오라 하였고 상황이 안 되면 죽여도 좋다고 하였다.

만약 그렇게 하는 자에겐 공작의 작위와 함께 서북부의 영지를 하사하겠다고 하였다. 바로 칼슨의 영지를 말이었다.

공작의 작위와 광대한 알짜배기 영지.

파격적인 보상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동조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많은 영주들이 그에게 호의적인 것도 있었지만 주된 이유는 그의 세력이 만만찮기 때문.

게다가 그가 제국과 긴밀한 사이라는 소문도 퍼져나갔기에 칼슨을 적대한다는 것은 리스크가 매우 큰 도박이었다. 비록 그것이 왕명이어도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칼슨 또한 여기저기 서찰을 보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현재 왕성은 흑마법사들에게 점령당한 상태이며 현 국왕 데로스 또한 그들의 주구가 되어버렸다고 하였다.

그 사실은 안 자신은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몸소 나서서 그들을 척결하겠노라고 선포하였다.

그는 이것은 절대 반역이 아니라고 하였다.

이것은 바로 벤투스 왕국을 구하기 위한 구국의 행동이라 말하였다. 그리고 자신과 함께 나라를 구하자 하였다.

또한 자신을 돕지 않아도 그것에 관해 아무 문제 삼지 않을 것이라 하였으며 다만 국왕 측에 붙어 자신과 싸운다면 철저하게 멸할 것이라 하였다.

각 영주들의 계산은 빨랐다.

명분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물론 중요하긴 했지만 그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아닌가?

중요한 것은 힘이었다.

그러면 답은 한 가지.

힘 있는 자에게 붙는 것이 제일 현명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왕 편에 붙어 칼슨과 대적하는 영지들도 있었다.

바로 루보스 레바레스 공작과 그를 따르는 중소 영지.

로버데인 협상 이후 충격을 먹고 재상을 그만둔 후 계속해서 칼슨에게 이를 갈고 있던 루보스.

국왕이 반역죄로 그를 벌하라 서찰을 받았을 때 그는 이를 절호의 기회라 여겼다.

물론 칼슨이 만만찮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그래봐야 일개 영지가 아닌가? 국왕과 함께 공작인 자신이 돕는다면 충분히 일을 도모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세력이 갈려 전장이 되어버린 벤투스 왕국.

왕위 계승전 이후로 또 한 번의 큰 전쟁이 시작되고 말았다.

* * *

전쟁이 선포되자 벤투스 왕국은 정확히 두 개의 세력으로 갈라져서 싸우게 되었다.

대부분은 중립을 지켰지만 왕국 남서부의 바스테르 후작과 북서쪽의 라델리안 공작은 칼슨의 편에 섰다.

반면에 국왕 쪽에 붙은 영지들도 있었는데 그 대표적인 곳이 바로 남쪽의 레바레스 영지. 바로 루보스였다.

그는 오랫동안 모은 재산을 풀어 용병과 병사들을 끌어모았다. 인생의 마지막 도박이라는 심정으로 수많은 영지민들을 징집병으로 뽑았고 많은 곡물들을 수탈하여 군량미로 삼았다.

그렇게 긁어모은 병력이 물경 1만 명. 물론 절반 이상이 용병들과 징집병이라 정규 병력에 비해 손색은 있지만 편제를 섞어 통제를 받게 하니 제법 군율이 잡힌 병력이 되었다.

그렇게 모은 병력을 한 곳에 모아놓고 그 모습을 보니 가히 일국을 도모해도 충분할 것 같았다.

병사들을 보며 자신감이 충만해진 루보스. 그의 입가가 절로 올라가며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그것도 며칠.

그의 병력은 전투에서 대패하고 말았다.

그것도 드레이크가 아닌 바스테르 후작에게 말이다.

분명 자신의 병력이 3배 정도 많음에도 불구하고 패배하고 말았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말이다.

상대의 병력은 고작 3~4천가량. 바스테르 후작을 비롯한 서북부 영지들이 모은 병력치고는 제법 많았지만 그래도 숫자로만 보면 자신의 병력에 비하면 현저하게 열세였다.

하지만 전투는 그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전투 초반에는 레바레스의 병력이 수적 우세를 앞세워 상대 병력을 밀어붙이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은 상대의 유인책이었다.

바스테르 후작은 상대방의 편제가 뒤죽박죽으로 섞여 있다는 것을 단숨에 파악하였다.

그래서 맞붙는 척하다 일부러 뒤로 물리면서 그들을 끌어들였다. 그 의도도 모르고 기세가 오른 그들은 멋모르며 달려들었고 결국 전열이 앞으로 길게 늘어지면서 엉성해지기 시작. 그 틈을, 매복하고 있던 바스테르 후작의 기마대가 그대로 들이닥쳤다.

바스테르 후작과 그의 용맹한 기사단이 앞장서서 적의 중심부를 갈라버렸다. 특히 소드 마스터인 바스테르 후작의 위용은 독보적. 오러 블레이드를 휘두르며 전장을 활보하니 그 기세에 적들은 전의를 상실하며 겁을 집어먹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적은 혼란에 빠져버렸고 그 틈을 바스테르 후작군이 놓치지 않고 공격. 전열이 붕괴되면서 일방적인 학살이 시작되었다.

만약 루보스의 군대가 모두 정예병이었으면 이렇게 금세 망가질 리 없었겠지만 아쉽게도 징집병과 용병들이 혼재된 일종의 잡병. 그나마 승기를 잡았을 때라면 큰 도움이 되겠지만 지금처럼 혼란스러울 때는 차라리 없는 것이 나았다.

극도로 두려움에 빠지며 겁을 먹는 그들 때문에 정규 병사들 또한 당황하며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하였다. 그들을 지휘하던 기사들의 목소리도 공포에 휩쓸린 그들의 비명 소리에 묻혀버렸다. 명령이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아 이미 군대라고 할 수 없는 상태. 레바레스군은 급속도로 무너지고 말았다.

“이, 이럴 수는 없어!”

눈앞에 상황을 본 루보스는 두 눈을 부릅뜨며 절규하였다.

분명 개전할 때만 하더라도 승리만을 생각하고 있던 그였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현실은 그의 예상과는 달리 끔찍할 따름. 아무리 소드 마스터라고 하지만 이렇게까지 위력을 발휘할 줄이야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물론 그가 병법에 대해 많이 무지했던 탓이 더 컸지만 말이다.

그렇게 1만의 레바레스군은 그들의 반절도 안 되는 적에게 일방적으로 패배하고 말았다.

사망자만 대략 3, 4천가량. 나머지는 사로잡히거나 모두 뿔뿔이 흩어지며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게 되었다.

일방적으로 패배한 루보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나려 하였다. 하지만 그를 추적한 기사들에 의해 결국 사로잡히고 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 * *

왕국 남쪽의 전투가 반국왕군이 승리하고 있을 무렵 서북부에서는 라델리안 공작을 중심으로 모인 병력과 국왕군이 대치하고 있었다.

대략 5천 가량의 라델리안 공작 측의 병력은 제법 완만한 구릉 위쪽에서 주둔하고 있었다. 그들 중 라델리안 공작과 노스데일 백작이 선두에 서서 적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라델리안 공작님, 저들이 정말 드레이크 백작의 말대로 흑마법사들의 주구라고 생각하십니까?”

“글쎄, 겉으로 보기엔 그저 평범하기 짝이 없군. 허나 흑마법사가 나 흑마법사요 하고 막 정체를 밝히겠나? 아마 대부분 아무것도 모르고 이용당하는 이들이 대다수일 테지.”

노스데일 백작의 물음에 라델리안 공작이 대답하였다. 그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노스데일 백작.

“하긴, 그렇겠군요. 그런데 제가 드레이크 백작을 못 믿는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어쨌든 그래도 정확히 확인해 보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자네 말도 일리는 있네. 하지만 제국에서 흑마법사들을 주살한 드레이크 백작일세. 그가 확언을 한 것 보면 뭔가 있는 게 확실하겠지.”

“예, 알겠습니다. 흠, 저기 놈들이 움직이는군요.”

전방의 적들을 바라보자 노스데일 백작이 말대로 국왕군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을 본 라델리안 공작은 병력들을 향해 명을 내리려 하였다. 그런데 선두에 있는 적군이 뭔가를 매달고 있었다. 호기심에 안력을 키워 그것을 본 라델리안 공작. 그의 눈이 점점 커지더니 표정마저 일그러졌다.

“이, 씹어 먹을 놈들이 감히…….”

“왜, 왜 그러십니까? 공작님?”

갑작스럽게 분노하는 그의 모습에 노스데일 백작이 당황하며 물었다. 그러면서 자신 또한 전방의 그것을 지그시 보았다. 그리고는 경악하고 말았다.

“세, 세상에 저럴 수가 서, 설마 저것은….”

말을 잊지 못하는 노스데일 백작.

그도 그럴 것이 적군이 매달고 있는 것은 사람의 머리였다. 그것도 상당히 익숙한 사람.

그 머리의 주인은 프란 라델리안.

바로 라델리안 공작의 차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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