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결선(4)
“이번 과제는 사과를 맞추는 경기요.”
사과를 맞추라고?
날아가는 새도 맞추는 자들에게 그런 손쉬운 과제를 주다니. 그것도 결승전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 이해할 수 없는 진행에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하며 술렁거리기 시작하였다.
우터와 카말란 백작 또한 마찬가지였으며 특히 카말란 백작은 조금 실망스런 기색마저 비치고 있었다. 그러나 이내 들어온 과녁을 보고 모두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허억, 뭐야? 저것은?”
“서, 설마! 진짜로 저것을 맞히라는 거야?”
사람들이 놀라는 것은 당연하였다.
경기장에 위에는 눈을 가린 사람 둘이 나왔는데 그들을 기둥에 묵어놓고 머리 위에 사과를 올려놓았다.
“이 자들은 제국의 사형수들이다. 특히 반역을 꽤한 악독한 자들이지. 그러니 안심하고 쏴도 된다. 죽어도 책임을 물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도록.”
무미건조한 심사관의 말에 또다시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하였다. 아무리 사형수라고 해도 대회에 나와 저렇게까지 비인간적으로 취급 받아도 되는 것인가 하고.
카말란 백작의 눈에도 그와 같은 광경은 생소하다 못해 치가 떨릴 정도로 경악스러웠다.
그에 비해 우터의 표정은 평온 그 자체. 그저 과녁이 된 대상을 무심하게 쳐다 볼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본 카말란 백작이 의아해하며 묻는다.
“자네는 이런 야만적인 상황에도 태연스럽군. 도대체 무슨 생각이라도 있는 건가?”
“…….”
상대의 질문에도 별 대답이 없는 우터. 아무것도 못 들었다는 듯 그저 활시위를 튕기고 있을 뿐이었다.
그 태도가 마치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아 인상이 구겨진 카말란 백작은 그를 향해 성난 목소리로 말하였다.
“무슨 생각이냐고 묻지 않았는가! 설마 자네, 지금 나를 무시하는 건가!”
그는 그제야 고개를 돌리며 자신을 바라본다. 그리고 대수롭지 않은 듯 말을 하였다.
“그저 과녁일 뿐입니다. 맞히기만 하면 되는 걸, 뭘 그리 화를 내는 겁니까?”
“뭐, 자네 지금 뭐라고 했나? 저기 저들은 사람일세! 살아있는 사람이란 말이네!”
“곧 죽을 사람들이지요. 게다가 과녁인 사과만 맞춘다면 아무 문제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도대체 왜 그리 유난인지 저는 잘 모르겠군요.”
“허어, 자네는 정말….”
그의 태도에 기가 막혀 할 말을 잊은 카말란 백작. 하지만 듣고 보면 그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머리 위에 있는 사과만 맞추면 되는 것. 허나 사람인 이상 실수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실수 한 번에 한 생명이 사라질 수 있었다. 그것도 무방비 상태인 사람이 말이다.
도저히 맨정신으로 할 수 없는 상황. 그는 그대로 경기를 포기하려 하였다. 하지만 그때 우터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하였다.
“설마 두려우신 겁니까?”
“뭐…….”
폐부를 깊숙이 찌르는 그 말.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모를 그 말이 자신의 마음속 깊은 무언가를 건드렸다.
‘내가 두려워한다고? 도대체 무엇을?’
실수로 인해 사람을 죽일까봐? 아니면 상대에게 지는 것을?
둘 다 아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망설임. 바로 흔들리는 자신의 마음이었으니까. 궁수로서 절대 동요하지 말아야할 마음가짐이 이리도 요동치고 있는데 어찌 화살을 제대로 날릴 수 있겠는가.
그에 비해 상대는 자신과 전혀 달랐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아무렇지 않은 그 냉철함이라니. 마치 그것은 악마와 같은 재능이었다.
카말란 백작은 그 사실을 인정하기 두려웠던 것이다.
어쨌든 우터의 말에 그는 다시 경기를 하기로 마음을 돌렸다. 그리고 시작된 시합.
쉬이이이익───── 퍼억!
먼저 시작한 우터. 그의 화살이 머리위에 있는 사과를 관통하였다.
다음은 카말란 백작의 차례.
심호흡을 하고 천천히 활시위를 당겼다. 바들바들 떨고 있는 죄수가 눈에 들어왔지만 그는 애써 외면하며 과녁인 사과에 집중하였다.
티잉─
휘이이이이익───── 퍽!
매끄럽게 날아간 화살은 그대로 사과에 명중. 그것을 본 카말란 백작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승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진행을 도와주는 병사들이 다시 새로운 사과를 죄인들의 머리위에 올려놓았다.
다시 승부는 원점.
과녁이 새롭게 놓이자 우터는 지체 없이 활시위를 당겼다.
쉬이이이익──── 푹!
깔끔하게 사과에 꽂히며 그대로 기둥까지 박혀버린 그의 화살. 어찌나 세게 들어갔는지 화살 깃 부분이 파르르 떨렸다.
꿀꺽.
자신의 차례가 다시 오자 조금 긴장한 듯 마른 침을 삼키는 카말란 백작. 눈을 잠시 감으며 무념의 상태가 된다. 그리고 천천히 호흡을 들이쉬며 활시위를 당기는 그의 손.
파르르르
팽팽하게 당겨져 있는 활시위가 미세하게 흔들렸지만 그래도 안정적인 자세가 유지되었다. 그리고 살며시 놓는 손길.
휘이이이이익──── 티익!
화살이 사과의 끝부분을 맞히며 그 일부가 뜯겨져 나갔다.
툭─ 떼구르르르
깔끔하게 꽂힌 우터의 화살과는 달리 사과는 그대로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 말은 곧 그의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는 증거. 이에 카말란 백작은 미간을 찌푸리며 우터를 바라보았다.
상대가 실수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표정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마치 감정이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는 무미건조한 얼굴이었다. 그 모습을 본 카말란 백작은 그가 정말 사람이 맞는지 그저 혀를 내두를 뿐이었다.
그렇게 다시 우터의 차례가 돌아왔다.
마치 가면같이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그 눈만큼 빛을 내며 표적을 탐하였다. 시선이 그대로 고정한 채 물 흐르듯이 활시위를 당기는 그의 동작.
팽팽하게 당겨진 시위에도 불구하고 그의 몸에는 어떠한 떨림도 느낄 수 없었다.
쉬이이이이이익───── 퍽!
그대로 사과에 관통되며 기둥에 박혀버리는 화살.
언제 활시위를 놓았는지도 알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럽게 쏘아졌다. 마치 평소에 숨을 쉬는 듯이 말이다.
그렇게 되자 카말란 백작의 심장이 고동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애써 다잡은 마음의 성이 바닥부터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입술을 깨물며 그 흔들리는 풍파를 간신히 가라앉혔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다시 호흡을 깊게 들이쉬며 자세를 잡았다. 혀끝에서 느껴지는 비릿한 피맛. 그것이 그의 마음을 어느 정도 차갑게 굳혀주었다.
파앗─
휘이이이이익──── 푹!
활시위를 놓자 매섭게 날아간 화살이 사과를 관통해버리며 기둥에 박혔다.
우터와 같이 매우 깔끔한 사격.
그렇게 서로 두어 발을 더 쏘았지만 어느 누구하나 과녁을 놓치지 않았다. 그래서 심사관은 손짓을 하며 병사들에게 명령하였다.
“죄인을 바꿔라!”
그 말에 기존에 묶여있던 그들은 끌려 나가고 새로운 죄인들로 대체되었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가녀린 여자였다.
이에 조금 동요된 카말란 백작.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내색이 없는 우터를 보며 자신도 질 수 없다는 듯 애써 부동심을 유지하였다.
그리고 둘 다 무리 없이 과녁에 화살을 명중.
애써 변화를 주었지만 또다시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어진 심사관은 다시 병사들에게 명을 해 죄인을 바꾸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죄인을 보자 주변이 술렁이기 시작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병사들이 끌고 나온 이들은 바로 어린 소녀들이었기 때문.
“이들은 반역자들의 딸들이다. 당연히 죽어 마땅할 죄인들이지. 그러니 전혀 꺼릴 낄 필요가 없다.”
그렇게 말을 하였지만 그 또한 목소리가 떨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어, 엄마…. 나 무서워요. 흐흑.”
“여, 여기는 어딘가요? 제발 사, 살려주세요. 흐어엉….”
어찌된 영문인지도 모르며 끌려나온 소녀들은 구슬프게 울면서 기둥에 묶여졌다. 그 모습이 차마 안쓰러워 고개를 돌리는 이들이 제법 보였다.
‘이, 이건 아니야….’
카말란 백작은 절망하였다.
이전까지는 그래도 어떻게든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지금 눈앞의 소녀들을 보니 도저히 맨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아무리 반역자의 자손들이라지만 아직 어린 소녀들이 아닌가? 그것도 자신의 막내딸과 비슷한 나이로 보이니 자연스레 겹쳐지기 시작. 도저히 활시위를 당길 수 없었다.
그는 사색이 된 채 우터를 보았다. 그의 눈에서 잠시의 미동이 보였지만 어느새 굳은 얼굴을 하며 활시위를 당긴다.
거침없이 당기는 그 기세에 카말란 백작은 소름이 돋을 지경.
쉬이이이이익────퍼어억!
머리 위에 있는 사과가 명중하며 그대로 반으로 갈라져 버리고 말았다. 머리 위에 있던 무언가가 소리를 내며 떨어지자 깜짝 놀란 아이가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으아아아아앙! 사, 살려 주세요. 제발요. 잘못했어요. 으아아아앙!”
그 아이가 울음을 터트리니 옆에 묶여있던 소녀 또한 겁을 집어먹고 같이 울어버린다.
“흐어어어엉! 으으윽! 죽이지 말아주세요. 으아아앙!”
그곳이 순식간에 울음바다가 되어버리자 심사관 또한 괴로운 표정을 하며 병사들에게 손짓을 하였다. 그러자 병사들이 다가가 그녀들의 입을 재갈에 물렸다.
“흐으윽! 크흐윽! 으으윽!”
“커윽! 컥 커억! 크르윽….”
그러자 다시 조용해진 경기장. 조금씩 새어나오는 그녀들의 흐느낌이 들렸지만 그래도 최소한 시끄럽지는 않았다.
다시 상황이 진정이 되자 심사관은 경기를 재개하였다.
이제 카말란 백작의 차례.
그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는 게 보였다.
화살을 활시위에 걸치는 동안에도 심하게 몸이 떨고 있었다. 그 또한 알고 있었다. 이런 상태로는 도저히 활을 쏠 수 없다는 것을.
시위를 당기며 우터를 힐끗 쳐다보았다. 여전히 무심하게 전방을 보는 그의 모습. 이 상황에도 아무렇지 않은 저 태도에 카말란 백작은 진저리가 났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저런 냉혈한에게 지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 복잡한 마음을 하며 전방을 바라보았다.
가녀린 소녀가 눈과 입을 가린 채 흐느끼고 있었다.
상당 부분 가려져 있지만 그녀가 공포에 떨고 있는 것은 여기서도 느껴졌다.
그 모습을 보니 다시 그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입술을 깨물고 마음을 다잡는다.
파르르르
이미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
이제 이 손을 놓으면 화살은 사정없이 저리로 날아갈 것이다. 그렇게 손을 놓으려는 찰나 그는 갑자기 몸을 틀었다.
휘이이이익────
허공을 향해 날아가는 그의 화살.
결국 그는 경기를 포기하였다. 아무리 사형수, 반역자의 자식이라고 하지만 겁에 질려 덜덜 떠는 어린 소녀를 향해 활을 쏠 순 없었다.
어찌 되었든 이제 결과는 정해졌다.
그것을 확인한 심사관은 그 즉시 큰 소리로 외쳤다.
“승자, 우터 하인츠!”
“와아아아아아!”
“귀궁! 귀궁! 귀궁! 귀궁!”
“하인츠! 하인츠! 하인츠! 하인츠!”
승리가 확정되자 사람들은 우터를 환호하기 시작하였다.
경기 방식이야 매우 가혹하였지만 어쨌든 신궁을 이기고 우승한 그였다.
신궁을 꺾은 신예 귀궁.
우터의 명성은 이제 대륙 곳곳에 퍼지게 될 것이다.
* * *
우터가 궁술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있을 때 검술 대회 또한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었다.
준결승전이 벌어지고 있던 이곳.
먼저 승리를 차지한 사람은 칼슨이었다.
그는 제국의 소드 마스터를 꺾고 결승에 올랐다.
상대는 꽤나 강하였지만 그전에 만난 휴미스턴 백작에 비해 많이 부족하였다. 게다가 칼슨은 이전 경기로 인해 능력치가 대폭 상승하였기에 그를 상대로 손쉽게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그렇게 칼슨은 준결승전에서 승리하고 결승에 오르게 되자 이제 남은 이는 에드 뿐.
“후우….”
경기장에 선 에드는 실로 오랜만에 긴장하였다.
어지간한 일에도 긴장하지 않는 그였지만 눈앞의 상대를 보니 절로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상대는 다름 아닌 리로이 이베르센.
대륙 10강으로 알려진 제국의 이베르센 백작이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