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결선(1)
다음 날 열린 마법 대회에서 엘리시아 또한 최종 8명에 들었다. 이로써 벤투스 왕국에서 결선에 오른 이가 총 4명이나 나왔다.
변방의 한 왕국에서 이렇게 좋은 성적을 올리는 모습에 제국에서도 한층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특히 아직 작위가 없는 우터와 에드에게 작위를 줄 테니 제국의 신하가 되라는 회유까지 들어왔다.
“뭐요! 지금 나보고 주군을 배신하라는 것이오! 당장 꺼지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 추잡한 말을 내뱉은 입에 당장 화살을 박아 넣을 테니까!”
“긴말하지 않겠소, 나 에드 페이런에겐 두 명의 주군이란 있을 수 없소. 그러니 그만 물러가시오!”
제국의 요청을 매몰차게 거절한 두 사람.
그 강경한 태도에 회유를 하러 한 자는 당혹스러워하였다.
그래도 제국의 작위는 일반 왕국의 작위와 그 격이 달랐다. 제국의 하급 작위인 남작과 자작은 왕국의 대영주로 칭해지는 백작, 후작, 공작과 거의 같은 위신이었다. 아니 오히려 실질적인 위세는 제국의 하급 작위가 더 높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마다하다니, 참으로 대단한 충성심이 아닐 수 없었다.
제국의 회유가 있었다는 사실을 안 벤투스 왕국 측은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특히 엘리시아와 라델리안 공작은 상당히 분개하여 제국에 따졌는데 제국 측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모르쇠로 일관하였다.
따지고 보면 회유 시도는 있었지만 무산되었기에 그저 억지 주장하지 말라는 통보만 받을 뿐.
그 뻔뻔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어찌할 방법이 없었던 엘리시아와 라델리안 공작. 그들은 그렇게 약소국의 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였던 칼슨은 담담하였다.
어차피 그는 상태 창으로 우터와 에드의 충성심을 알기 때문이었다.
특히 우터의 충성심은 한도를 초과한 상태.
어떠한 회유도 통하지 않을 거라는 건 안 봐도 뻔하였다.
다만 제국의 뻔뻔한 태도는 다소 괘씸하다는 생각은 들었다. 그렇다고 그들과 전쟁이라도 벌일 것이 아닌 이상 괜한 소란을 일으켜 저들에게 빌미를 줄 필요는 없었다.
그나마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복수는 제국의 쟁쟁한 이들을 꺾고 우승하는 것.
우승 상품이 무려 제국의 아티펙트였기에 그것을 타국이 가져간다면 속 꽤나 썩을 것이었다.
거기다 제국의 명성이 깎이면서 벤투스 왕국의 위세가 오르는 것은 덤이었고 말이다.
* * *
결선의 날이 다가왔다.
이제부터는 그전과는 달리 경기의 양상이 많이 달라졌다.
궁술 같은 경우는 과녁을 쏴서 승부하는 것이 아닌 그때마다 과제가 주어진다. 그 말은 곧 사람마다 유불리가 갈린다는 것. 어떻게 보면 실력보다 운이 더 따라줘야 한다고 봐야 했다.
우터의 상대는 헤밀턴 카라치라는 제국의 기사였다.
그 또한 궁술에 대해 조예가 깊었지만 우터의 상대는 아니었다. 원래의 경기대로 승부를 치렀다면 반드시 필패했을 터.
그러나 그 과제가 참 괴이하였다.
그것은 고블린 사냥.
똑같은 공간에서 더 많은 수의 고블린을 처치하는 자가 이기는 경기였다.
대신 무기는 활과 화살만 허용되었으며 위급할시 대기 중인 기사들이 난입하도록 하였다.
경기를 하는 곳은 원형 경기장이었는데 그 폭이 그리 크지 않았다. 대략 반경 100보 정도의 크기.
그곳을 둘러싼 벽의 높이는 대략 5미터.
양 끝 쪽에 철창으로 된 출입구가 있었는데 그중 한쪽이 열리며 두 사람이 나왔다.
둘은 바로 우터와 헤밀턴.
쿵!
그들이 나서자 뒤에 있던 철창이 굳게 닫혔다.
그리고 반대편 쪽 철창이 열리며 뭔가가 나오기 시작하였다.
“키이이이익!”
“케에에에엑!”
녹색피부에 작은 체구의 인간형 몬스터.
바로 고블린이였다.
그 수는 대략 백여 마리 정도였는데 놈들은 앞의 두 사람을 발견하자마자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그때 심사관이 그들에게 외쳤다.
“경기를 시작하도록 한다!”
시작을 알리는 심사관.
하지만 그들은 심사관이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준비를 마쳤다.
휘이익──── 푹!
“꿰에에엑!”
휘이이익──── 푹!
“끼야아아악!”
헤밀턴이 재빠르게 화살을 연속적으로 날렸다.
그는 시합 전에 이미 이런 과제가 나올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윗선에서 미리 알려주었기 때문.
윗선에서 그 팁도 알려주었는데 이전이랑 다르게 이번에 중요한 것은 정확도보다는 속도. 게다가 숫자가 많은 지금이 최대한 머릿수를 높일 수 있는 기회였다.
그것을 상기한 헤밀턴이 빠르게 속사를 날리고 있었을 때.
쉬이이이익──── 푹! 푸욱! 퍼억!
3발의 화살이 각각 고블린의 머리에 명중되며 그대로 쓰러져버렸다. 그 모습에 깜짝 놀라 옆을 보니 상대는 한번에 3개의 화살을 시위에 당기고 있었다.
“허억! 저게 뭐야!”
그것을 본 헤밀턴은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물론 자신도 저런 식으로 당길 순 있었지만 저렇게 정확히 표적을 맞출 순 없었다. 그야말로 신기에 가까운 활 솜씨.
그렇다고 그 속도가 느린 것도 아니었다.
자신의 속사보다 조금 느린, 아니 거의 비슷한 속도였다.
“이런 시발!”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당면하게 되자 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그래도 이를 악물며 최대한 고블린들을 쓰러트렸다. 많은 수가 있었지만 놈들은 이곳으로 달려오기도 전에 족족 쓰러졌다. 본래라면 위험한 순간이 몇 번 생기는 게 정상이었건만 그런 상황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단지 일방적인 사냥, 아니 학살만이 있을 뿐이었다.
1분이 지났다.
그동안에 이미 상대는 자신의 배가 넘는 수를 쓰러트렸다. 게다가 슬슬 숫자가 줄어들어 자신의 속사가 빗맞는 경우가 늘었다. 그에 비해 상대의 정확도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크아아아아아!”
괴성을 지르며 화살을 날렸지만 더 이상 서있는 고블린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시합 종료.
처치한 수를 헤아려 승패를 가려야 했지만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확인자들이 심사관에게 채점표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결과가 나왔다.
“75 대 33! 승자 우터 하인츠!”
압도적인 차이.
심사관의 판정에 구경하던 관중들은 일제히 함성을 지른다.
“와아아아아아!”
“역시 귀궁이 이겼어! 정말 대단해!”
“몬스터가 저렇게 많은데 어떻게 순식간에 끝낼 수 있는 거지? 정말 엄청난 솜씨야!”
“저거 봤어? 한 번에 3개의 화살을 쏘는 거. 어떻게 저런 것이 가능한 거야?”
경기는 진작 끝났지만 여운이 아직 사라지지 않은 듯 다들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경기 내용을 상기하며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그렇게 우터는 준결승에 오르게 되었다.
* * *
궁술 대회가 그렇게 진행되고 있는 한편 다른 곳에서는 검술 대회 본선이 벌어지고 있었다.
검술 대회 역시 이전과 룰이 바뀌었다.
가장 큰 변화는 더 이상 구속 팔찌를 차지 않았다. 그 말은 곧 오러 제한이 없어진다는 것이고 오러 블레이드 또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살인은 여전히 금지되었고 고의로 한 게 밝혀진다면 엄벌에 처해지는 것 또한 마찬가지였다.
첫 번째 경기를 하게 된 에드.
그의 상대는 바스테르 후작을 꺾고 올라온 토날리 자작이었다. 그는 이전에 에드에게 패한 하켄바워 자작과 절친했던 사이. 그가 당한 것에 대해 복수를 해줄 심산으로 이를 갈며 나왔다.
“토날리 자작이다!”
“에드 페이런이오!”
검을 들며 예를 취한 후 자세를 잡는 두 사람.
구속 팔찌가 없어져서 인지 순식간에 오러가 치밀어 오르며 오러 블레이드가 생성되었다.
청록빛이 감도는 에드와 검붉은 빛의 토날리 자작의 오러 블레이드. 둘은 대치하며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그렇게 몇 초가 지났다.
그리고 먼저 움직이는 이는 바로 토날리 자작.
그런데 상대의 안위 따윈 상관없다는 듯이 그대로 머리위로 내려치는 그의 검격. 다행히 에드는 그것을 손쉽게 쳐내며 그로인해 허점이 드러난 그의 하반신에 검을 휘둘렀다.
스걱!
“으으윽!”
다리 갑옷 부위를 찢어버리며 허벅지에 자상이 생겼다. 못 걸을 정도의 치명상은 아니지만 움직임을 둔화시키기엔 충분한 상처였다.
순식간에 반격을 당하자 토날리 자작은 당혹감이 밀려왔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유려한 공격.
마치 방어와 공격이 자연스럽게 한 번의 동작으로 이어졌다. 정말이지 그 타고난 감각에 감탄이 절로 일어났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와중에도 에드의 공격은 끝나지 않았다.
치이이이익──── 콰아앙!
“으읏!”
오러 블레이드끼리 부딪히며 터지자 그 반탄력에 침음을 내는 토날리 자작.
옆구리로 들어온 놈의 검을 간신히 막아내었다. 속도도 속도지만 검이 들어오는 궤적이 말도 안 되게 까다롭다.
뭔가 감이 안 잡힌다고 할까?
그렇기에 대처하려면 온 신경을 집중해야만 하였다.
끼이이이익────콰앙!
“크으윽!”
놈이 노린 곳은 어깨였다!
이번에도 역시 감을 잡지 못했다.
막기는 했지만 자세가 좋지 않아 무리하게 몸을 튼다고 근육에 부담이 갔다.
계속해서 상대에게 밀리자 토날리 자작은 고민에 빠졌다.
이대로 가다간 꼼짝없이 질 것이 분명.
그는 독하게 마음을 먹고 비전 검술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오러 블레이드가 갑자기 휘몰아치기 시작하였다. 마치 붉은 물결 같은 오러 블레이드가 급격히 회전하더니 모든 것을 태워버릴 것 같은 불꽃으로 변해버렸다.
그 열기에 에드의 몸이 타들어 갈 것 같았지만 그는 오러를 몸에 두르며 그것을 막아내었다.
그것은 바로 오러 바디. 예전 오크 로드 로칸이 썼던 그 기술을 그가 재현하였다.
오러 바디가 몸을 감싼 이상 직접적으로 닿지 않으면 별 피해를 주지 못하였다. 그렇게 되자 상당히 초조해지기 시작한 토날리 자작. 방금 자신이 쓴 비전 검술은 오러의 소모가 제법 나가는 기술이었다. 그렇기에 오랫동안 쓰면 오히려 자신이 위험하였다. 서둘러 놈을 끝장내기 위해 열심히 검을 휘두르지만 상대는 매끄럽게 피하며 오히려 반격. 자신의 팔뚝에 상처를 입히고 만다.
치이이익── 서걱!
“으허어어억!”
다행히 왼쪽 팔이 당해 검을 놓치지는 않았다. 하지만 상체의 중심이 흔들리며 더 큰 허점을 드러내고 만다.
그리고 에드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치이이익── 푸욱!
허벅지에 깊숙이 들어간 에드의 검.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히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오러 블레이드를 줄여 피해를 줄였지만 그래도 움직임을 멈추기엔 충분하였다.
다리에 힘이 빠지며 그대로 무릎을 꿇고 마는 토날리 자작. 이를 악물며 다시 일어서려 하였지만 어느덧 그의 눈앞에 청록빛의 오러 블레이드가 보였다.
싸늘한 눈빛으로 자신을 보는 상대방.
그 푸른 눈을 보며 토날리 자작은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계속하시겠소?”
자신을 내려다보며 정중히 말하자. 토날리 자작은 침음을 삼키며 울분을 터트렸다.
“크으윽! 젠장! 젠장! 아아아아악! 시발!”
어찌나 분하였는지 연신 땅을 치며 울부짖는다. 그러더니 검을 땅에 떨어트리고는 힘없이 말한다.
“졌다. 그래, 내가졌어. 이 개같은 놈아!”
에드에게 한껏 욕을 퍼부으며 패배를 시인하였다.
그리고 그의 말을 들은 심사관. 굳은 표정을 하며 그대로 경기를 중지시켰다.
“승자, 에드 페이런!”
승리가 확정되자 곧장 검을 집어넣는 에드. 그리고 조용히 그 자리에서 벗어나 대기실로 걸어갔다.
그가 사라진 후 사람들은 뭔가에 홀린 듯 멍하니 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처음에는 악당 같은 이미지였지만 지금은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연달아 강자들을 꺾은 에드.
그는 더 이상 무명의 기사가 아니었다.
이제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새로운 강자의 탄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