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검술 대회(2)
재빨리 일어나 자세를 잡았지만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여서인지 얼굴이 뜨거워져 있었다. 아마 투구를 벗은 모습을 보였더라면 참으로 가관이었을 터.
“이런, 젠장!”
다시 이를 악물며 검에 오러를 주입하였다. 그리고는 연속적으로 찔러대기 시작. 그 모습이 마치 네댓 개의 검이 한꺼번에 들어오는 듯해 보였다. 제법 매서운 공격이었지만 칼슨의 반응속도는 이미 소드 마스터를 초월하였다.
칭! 팅! 탕! 칭! 칭!
단 한 번의 휘두름으로 상대의 검을 모두 쳐내어 버린다. 허나 상대는 계속해서 공격을 시도. 이번에는 몸을 틀며 검을 크게 휘두른다.
부우우우웅────!
마치 태산과도 같은 무게감이 느껴지는 공격. 그 일격은 칼슨의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만 같은 위압을 보여주었지만 이미 그런 공격, 아니 그보다 더한 것 또한 여러 번 겪어보았기에 아무런 동요도 일어나지 않았다. 가만히 그것을 보던 칼슨은 검에 오러를 주입하며 그대로 휘둘렀다.
치이이이잉! 콰지직─ 콰앙!
있는 힘을 다해 내리쳤던 검이지만 칼슨이 절묘하게 상대의 검면을 때리며 그대로 방향이 틀어지고 말았다.
그렇게 모나스의 검은 칼슨의 발로 발 옆 바닥에 깊숙이 박혀버리고 말았다. 빗맞은 걸 인지한 그는 재빠르게 다시 검을 거두려 하였지만 그 틈을 놓칠 칼슨이 아니었다.
퍼어억!
그대로 검신을 돌려 상대의 손목을 칼등으로 내리쳤다.
그러자 손에 힘이 확 빠져버린 모나스는 그만 검을 놓치고 만다. 그리고 이어진 칼슨의 검 놀림.
마치 물이 흐르듯 부드럽고 우아한 동작이었다.
그 한 동작에 칼슨의 검이 순식간에 모나스의 눈앞에 나타났다.
스윽─
“크으윽!”
상대가 목덜미 부근에 검을 들이대자 모나스는 침음이 절로 나왔다. 인정하기는 죽어도 싫었지만 영락없는 자신의 패배였다.
“…졌습니다.”
상대방의 패배선언에 칼슨은 곧장 검을 거두었다. 그와 동시에 심사관이 판정이 내려졌다.
“승자 칼슨 드레이크!”
“와아아아아아!”
“드레이크! 드레이크! 드레이크!”
승리가 확정되자 사람들의 환호성이 쏟아졌다. 그 속에서 칼슨은 모나스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며 입을 열었다.
“좋은 승부였다.”
“…….”
자신에게 손을 내밀자 조금 당황한 모나스. 하지만 이내 그 손을 잡으며 대답을 하였다.
“감사하오, 드레이크 백작. 내 많이 배웠소.”
승자가 패자를 위로하고 패자는 그런 승자를 인정하는 아름다움 모습. 그 모습에 관중들은 박수갈채를 치며 환호하였다. 똑같은 승리였지만 에드 때와는 천차만별인 반응이었다.
* * *
64명의 패자가 탈락하고 다시 64명의 승자끼리 싸우는 2차전이 시작되었다.
거의 대부분의 승자가 소드 마스터였기에 이제부터 시합이 전반적으로 굉장히 치열해질 전망이었다.
순서가 가장 앞서 있었던 바스테르 후작의 상대는 그로즈니 백작이라는 소드 마스터였다.
그는 제국 남쪽에 위치한 루파할리 왕국의 사람이었는데 1차전 때 비 소드 마스터인 상대와 치열한 혈투 끝에 승리해 올라왔다.
굉장히 수월하게 올라온 바스테르 후작과는 달리 힘겹게 올라왔기에 상대적으로 실력이 처질 것 같았지만 바스테르 후작은 방심할 수 없었다. 어쨌든 그는 소드 마스터. 자신과 동급의 경지에 오른 이였다.
둘은 서로 검을 들며 예를 취한 후 곧장 싸움에 임하였다.
구속 팔찌로 인해 오러 블레이드를 발현할 수 없었지만 둘 다 검에 대해 어느 정도 정통해 있었기에 제법 치열한 공방이 이어졌다.
그렇게 몇 십번의 검을 주고받은 후 마침내 그 팽팽하던 추가 기울어졌는데, 승기를 잡은 것은 바로 바스테르 후작.
제법 긴 싸움으로 인해 상대의 집중력이 흐트러진 것을 바스테르 후작이 놓치지 않았다.
그 순간 바스테르 후작은 자신의 비전 검술인 벼락을 사용하였고 그것을 직격으로 맞은 상대는 그대로 기절해버리면서 승부가 나버렸다.
그다음 순서였던 에드.
그가 경기장에 서자마자 여기저기서 야유소리가 들려왔다.
악마 같은 놈이라느니 아니면 희대의 개 쓰레기라느니….
그 매몰찬 비난에 조금 신경이 쓰였지만 그래도 흘려들으며 상대에게 집중하였다.
그의 상대는 노스다르 왕국의 오라드 공작이었다.
그는 전의 상대였던 트롬베인 후작과 더불어 몬스터 웨이브로부터 조국을 구한 영웅. 에드는 왠지 모를 불안감이 느껴졌다.
서둘러 시합을 끝내야겠다, 마음먹은 그는 검을 들어 예를 표하자마자 상대에게 달려들어 일격을 먹였다.
갑작스런 공격에 당황한 오라드 공작은 서둘러 자세를 잡고 방어했지만 에드의 공격은 상상 이상으로 음습하고 매서웠다. 결국 그의 검을 쳐내지도 못한 채 그대로 일격을 허용. 검에 가슴이 꿰뚫리고 말았다.
“크어어어억!”
다행히 심장에 비껴 맞아 즉사는 면하였지만 엄연한 치명상이었다. 그 모습을 본 관중들은 그의 비겁하고도 잔악한 행동에 멸시의 시선을 보내며 한껏 비난하였다.
아직 준비가 채 안 된 상대에게 기습은 물론이고 살수까지 썼다는 오해를 받았다. 엄연히 벌어진 사실이었지만 그럴 의도는 없던 에드는 너무나도 억울하였다.
그래도 그대로 경기가 끝나며 전과 같은 처절한 사투(?)는 치르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여기저기서 욕을 얻어먹으면서 경기장을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비열한 에드. 새로 생긴 그의 악명이었다.
뒤이어 이어진 칼슨의 차례.
상대가 소드 마스터였지만 1차전과 비슷하게 압도적인 실력으로 이겨버렸다. 상대는 초반부터 비전 검술을 쓰며 칼슨을 위협하였지만 그에게는 아무런 피해를 입힐 수 없었다. 이미 이보다 더 높은 수준의 검술을 상대해 본 적이 있기에 일반적인 비전 검술로는 칼슨에게 무의미하였다.
결국 가볍게 상대를 꺾고 승자가 된 칼슨. 1차전과 비슷하게 상대를 위로하였고 그에 감명받은 상대 또한 칼슨을 우러러보았다. 악명으로 가득한 에드와는 달리 칼슨은 좋은 이미지로 명성이 높아졌다.
이어진 3차전 또한 무난히 흘러갔다.
셋 다 모두 이겼는데 역시 에드의 악명은 더욱 올라갔다.
칼슨의 조언을 얻어 상대를 제압한 후 위로를 하였지만 이미 악당의 이미지가 굳혀져서 상대는 그것을 조롱으로 여겨버렸다.
4차전에서는 3차전과 조금 양상이 달라졌다.
그것은 바로 바스테르 후작의 탈락.
상대는 제국의 기사단장이었는데 칼슨과 마찬가지로 상을 받았던 자였다.
그의 정체는 바로 토날리 자작.
검은 용 기사단의 수장으로 상당히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고강한 자를 상대로 바스테르 후작 또한 꽤나 선전을 하였지만 역시나 그 실력 차를 넘지 못하며 아쉽게 패배하고 말았다.
“하하하, 이거 먼저 탈락하게 되어서 면목이 없구먼. 자네들은 부디 잘해서 통과하길 바라네.”
머리를 긁적이며 껄껄 웃는 바스테르 후작.
이에 칼슨과 에드는 미소 지으며 위로해주었지만 가슴 한편으로는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어찌 됐든 이제까지 함께했던 같은 왕국 출신이 탈락했기에 그런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곧 이어진 에드의 차례.
에드의 상대 또한 토날리 자작이랑 같이 상을 받았던 제국의 기사단장이었다. 이미 바스테르 후작이 탈락했던 터라 가라앉아 있었던 에드의 마음. 저번이랑 마찬가지로 여기저기서 야유가 날아왔지만 제법 차분한 상태로 경기에 임하였다.
“벤투스 왕국의 기사 에드 페이런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황금 사자 기사단장 하켄바워 자작이다! 그동안의 너의 악행도 오늘 마지막이 될 것이다.”
그렇게 검을 들고 예를 표하는 두 사람.
그러자마자 먼저 몸을 움직인 것은 하켄바워 자작이었다.
에드의 악행을 들었던 그가 이를 갈며 벼르고 있었기 때문. 그는 오러를 끌어모으며 바로 그의 비전 검술을 시전 하였다.
순간 그의 검에서 서릿발 같은 냉기가 흘러넘친다.
그 냉기는 마치 사신의 낫같이 변하며 사방에서부터 에드를 덮쳤다. 도저히 피할 공간이 보이지 않는 그의 공격. 허나 에드는 그 뛰어난 몸놀림으로 절묘하게 피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그는 자신의 비전 검술을 사용하였다. 그것은 바로 예전 던전에서 싸웠던 죽음의 기사가 쓴 것이랑 흡사한 모습.
샤아아아아아악─────!
“허억! 이것은 도대체…?”
하켄바워 자작의 동공이 심하게 흔들렸다.
오러에서 솟구쳐 나오는 수백 개의 이빨, 그것은 다시 수십의 아귀들처럼 변하더니 그대로 하켄바워 자작을 집어삼켜 버렸다.
탕! 칭! 타당! 콰직! 칭! 콰직! 탕! 콰지직!
“크아아아아악!”
검을 휘두르며 필사적으로 막아보지만 무수히 들어오는 일격을 모두 막을 수는 없었다. 몇 몇 공격이 그의 갑옷을 직격하며 사정없이 물어뜯어버렸다.
다행히 오러 블레이드가 아닌 일반적인 오러여서 그 파괴력이 강하지 않았기에 치명상을 입히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갑옷 대부분이 손상되고 상처를 입게 되어 피투성이가 되어버렸다.
“허어억! 저런 끔찍한 공격을 하다니 역시 비열한….”
“세상에, 오 신이시여…….”
“어, 어떻게 저리 잔인한….”
치명적인 공격이 들어가지 않아 죽지는 않았지만 워낙 상처가 여기저기 생겨서 끔찍한 몰골이 되어버렸다. 너무나도 무서운 모습 때문에 다들 두려워하며 기도할 뿐이었다.
비록 치명상을 입지 않았지만 그래도 피를 많이 흘려 현기증이 나는 하켄바워 자작. 몸을 비틀대는 그는 정신을 잃을 것 같았지만 입술을 깨물며 버텼다.
그 꺾이지 않는 모습에 관중들은 마음을 졸이며 그를 응원하기 시작한다.
다시 전형적인 악당이 되어버린 에드.
그는 이런 상황이 이제 익숙한 듯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상대의 다리를 걸어 중심을 무너뜨렸다.
그리고 곧장 그의 목에 칼을 들이댔다.
“승부는 났소. 어서 패배를 인정하시오.”
“…….”
그의 말에도 미동조차 없는 상대.
이상하게 여긴 심사관이 하켄바워 자작의 투구를 벗겨보았다.
“큭, 이런….”
그 얼굴을 본 심사관의 표정이 구겨졌다. 상대는 이미 기절해 있었다. 아마도 넘어졌을 때의 충격 때문인 것 같았다. 그는 씁쓸한 표정을 한 채 말을 이어나갔다.
“승자, 에드 페이런!”
승리를 확정짓자 아무 말 없이 대기실로 돌아간 에드. 이전 같았으면 그를 야유하는 소리가 여기저기 빗발쳤겠지만 그의 압도적인 모습을 보고는 모두 조용하였다.
이제 그를 보고 비열한 에드라고 부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 * *
4차전까지 마무리된 검술 대회.
이제 남은 인원은 궁술 대회와 마찬가지로 8명.
칼슨과 에드는 이 인원에 들었지만 바스테르 후작은 안타깝게도 제국의 기사단장을 만나 패배하고 말았다.
칼슨의 상대는 제국의 불사조 기사단장인 리누스 자작이었다. 그는 이전 상대와는 다르게 꽤나 실력이 좋았다. 그러나 칼슨의 상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 결국 분전하였지만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어찌 됐든 최종 8명 중에 벤투스 왕국은 무려 두 명이 포함되었다. 게다가 그 두 명은 드레이크 영지의 소속.
그 때문에 드레이크 영지는 사람들에게 꽤나 유명한 곳이 되었다. 한 왕국에서 이렇게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쉽지 않은데 한 영지에서 두 명이나 8강에 들었으니까.
또 이야기를 들어보니 궁술 대회에서 큰 활약을 보인 귀궁 우터 또한 이 영지 출신이라고 하였다.
그러니 세간에 이목이 쏠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
여기저기서 드레이크 영지의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