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검술 대회(1)
로스토프 왕국의 트롬베인 후작.
그는 이번 몬스터 웨이브에서 뛰어난 활약을 하며 자신의 나라를 구한 영웅이었다. 그 때문에 제국에서는 그에게 상까지 내렸었다.
굉장히 강한 상대를 만났지만 에드는 긴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강한 호승심으로 인해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제까지 자신이 본 이들 중 가장 강한 사람은 칼슨이었다. 그런데 상대 또한 그와 마찬가지로 몬스터 웨이브 때 활약을 한 영웅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는 것은 그 또한 자신의 주군만큼의 실력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는 것.
만약 그렇다면 그를 상대로 이긴다는 것은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꼬리를 말며 주눅들 수는 없었다. 지더라도 최대한 좋은 승부를 펼쳐야 자신의 주군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마음을 먹은 에드는 최대한 집중을 하며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곧 발걸음을 떼며 그에게 접근하였다.
접근하는 와중에도 상대는 미동조차 없었다. 과연 실력자답게 여유 넘치는 모습. 그렇지만 에드는 동요하지 않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할 뿐이었다.
치이이이익──── 콰지직! 스걱!
“크어어억!”
에드의 공격에 트롬베인 후작의 고어젯(목에 두르는 갑옷)이 뜯어져 나갔다. 상처가 났는지 그 틈으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이 보였다. 갑작스런 공격에 그대로 당한 트롬베인 후작의 눈에 당혹감이 서려 있었다.
다행히 경동맥을 건드리지는 않았지만 오러에 당한 통증이 진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당사자인 그보다 더 당황한 이는 공격을 한 에드였다.
‘시발, 이게 왜 먹혀?’
상대가 여유롭게 막아낼 줄 알았는데 그대로 공격이 들어가 버렸다. 조금만 더 깊었으면 상대의 목숨이 위험했을 것이다. 만약 재수 없게 그가 죽기라도 했다면 몰수 패는 물론이고 제국에 끌려가서 큰 곤욕을 치렀을지도 몰랐다.
에드의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돌며 잠시 동작을 멈추자 그 모습을 보던 트롬베인 후작은 모멸감을 느꼈다.
“감히, 나를 두고 그따위 여유를 부리다니….”
그는 에드가 자신을 농락한다고 생각하였다. 비록 방금 전 놈에게 일격을 당하였지만 그건 자신이 방심해서 그런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그는 화가 잔뜩 난 채 검에 오러를 담으며 에드를 향해 다가갔다. 그 모습에 에드는 당황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상대가 위협적이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허점이 여기저기 보였기에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서였다.
‘설마 일부러 허점을 보여주는 것인가?’
허점인 것처럼 보여 오히려 상대에게 공격을 유도하게 하여 제압하는 수법. 예전에 주군인 칼슨과의 대련 때 몇 번 당해본 경험이 있었던지라 그는 신중히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나마 가장 대처가 쉬운 곳을 향해 공격.
푸욱!
“커어어억!”
그대로 카운터가 돼버리며 상대의 어깨 깊숙이 검이 박혀버리고 만다.
‘아, 시발! 제발 좀 피하라고! 이 자식아!’
안일한 상대의 대처에 오히려 화가 난 에드. 이제는 확실히 알아버렸다. 상대는 자신보다 하수였다. 어떻게 이딴 놈이 소드 마스터인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될 정도.
처음에 생각한 좋은 승부는커녕 이제는 어떻게 해야 안 죽이고 제압할 수 있을까 고민해야 했다.
에드가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을 때 트롬베인 후작은 이를 갈며 그를 노려보았다.
“이 비겁한 놈, 설마 일부러 그런 것이더냐?”
불의의 일격을 당한 그는 상대가 의도적으로 자신을 도발한 거라 생각하였다. 물론 자신이 그런 격장지세에 당한 것이 잘못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시합에서까지 심리전을 쓸 줄이야. 생각한 것 이상으로 아주 영악한 놈이었다.
“비겁?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오?”
상대가 자신을 헐뜯자 이해가 안 돼 물었다. 하지만 그의 태연한 태도가 오히려 상대에게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트롬베인 후작에게 그 말은 이렇게 해석되었기 때문.
-승부의 세계에서 비겁이 어디 있느냐? 이 멍청한 놈아!
“크으윽! 내게 이런 모욕을 주다니! 용서할 수 없다!”
수치심을 느낀 그는 필사의 각오로 덤벼들었다. 상대가 눈에 불을 키고 덤벼들자 에드는 어이가 없었다. 욕을 먹은 것은 자신인데 왜 본인이 흥분해서 난리인지.
여기저기 허점이 보였지만 그는 그나마 치명상이 안갈 곳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치이이이익─── 서걱!
“크아아아악!”
트롬베인 후작의 허벅지에 피가 솟구치며 그대로 주저 앉아버렸다. 고통스러운지 비명을 질렀지만 정작 에드는 돌아버릴 것 같았다.
최대한 죽이지 않기 위해 얇게 들어갔는데 상대가 의욕적으로 다가오는 바람에 꽤나 깊게 베었다. 출혈로 봐서 가만히 놔둔다면 좀 위험해 보인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그는 트롬베인 후작을 향해 말하였다.
“이제 그만하는 게 어떻겠소?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소? 어서 항복하시오.”
제법 정중하게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트롬베인 후작은 분을 토하며 욕을 하였다. 왜냐하면 그에게 그 말은 이렇게 들렸기 때문.
-이제는 알 것 아니냐? 네놈의 실력을. 어서 졌다고 시인이나 해라.
“나를 희롱하는 것이냐! 내 비록 실력이 미천하여 네놈에게 무릎을 꿇었지만 마음만은 꺾지 않겠다. 어서 덤벼라! 어서!”
뭐가 그리 화가 났는지 몰라도 확실히 제압하지 않으며 포기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기에 에드는 그의 오른쪽 팔뚝을 베었다.
서걱─!
“크으윽!”
땡그렁──!
에드가 조절을 해서 팔이 잘리지는 않았지만 손에 힘이 빠지며 검을 놓친다. 허나 필사적으로 왼손을 뻗어 그것을 다시 집어 들었다.
“하악, 하악…. 네놈에게만은 절대로, 절대로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꺾이지 않겠다는 그의 기백이 관객들에게도 전해졌다. 그 모습을 본 몇몇이 눈을 글썽이며 외친다.
“크윽, 결코 포기하지 않는 저 모습! 너무 감동적이야….”
“힘내십시오! 트롬베인 후작님! 당신은 영웅입니다!”
그를 응원하는 관중들. 그리고 반면에
“우우우우, 그만해라! 이 악당아! 상대를 그렇게 가지고 놀면 좋냐!”
“악마 같은 놈! 어떻게 상대를 저리 비참하게 만드는 거지…. 정말 악취미가 따로 없군.”
여기저기서 에드에게 비난의 화살이 날아온다.
그렇게 되자 황당한 에드는 빨리 경기를 끝내야겠다 생각하며 그의 왼쪽 팔도 똑같이 만들어 주었다.
땡그렁───
검이 바닥에 떨어졌다. 이제는 끝나겠지 생각했는데 상대는 입으로 그것을 집었다. 그리고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에게 다가온다. 한쪽 다리를 절뚝이면서 말이다.
“크으윽, 트롬베인 후작님…. 저렇게 되고도 절대 꺾이지 않으시다니! 당신은 진정한 기사입니다!”
“트롬베인! 트롬베인! 트롬베인!”
그 모습에 관중들은 박수를 치며 그를 연호한다.
검을 쥘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그 모습에 크게 감명을 받은 듯하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울고 싶은 것은 에드 본인이었다.
분명 자신은 상대를 최대한 배려했는데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건지. 이젠 진저리가 나기 시작했다. 이 이상한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빨리 상대를 제압할 수밖에.
퍼어억──!
트롬베인 후작의 어설픈 공격을 피하며 그의 뒷목을 칼등으로 후려쳤다. 그러자 결국 정신을 잃어버리며 쓰러지는 트롬베인 후작.
“승자 에드 페이런!”
심사관의 승부를 알리자 그제야 에드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곧 사람들의 찬사가 이어졌다.
“비록 졌지만 그는 용감한 기사이자 진정한 영웅이었소!”
“암, 그의 기개는 정말이지 너무 훌륭했소. 큭!”
“트롬베인! 트롬베인! 트롬베인!”
자신의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도리어.
“우우우우우, 이 악마 같은 놈! 그렇게 이기면 좋냐! 실력이 다가 아냐!”
“상대에 대해 존중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저런 자가 승자라니 정말 씁쓸하구먼.”
자신을 향한 비난만 가득할 뿐이었다.
이해하지 못할 그 상황에 에드가 황당해하고 있자 심사관이 그에게 말하였다.
“어서 나가지 않고 뭐하는 것입니까? 또 뭐, 상대를 욕보일 것이 남았습니까?”
적의가 드러나는 말투. 심사관 또한 트롬베인 후작의 모습에 크게 감명을 받은 것 같았다. 에드는 그에 대해 뭐라 말을 하려 했지만 괜히 몇 마디 더 했다가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것 같아서 그대로 대기실로 들어갔다. 그가 대기실로 들어오자 칼슨과 바스테르 후작이 그를 반기었다.
“에드, 잘 하고 왔어? 어?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 설마 진 거야?”
“흐음, 그 나이에는 패배도 다 좋은 경험일세, 페이런 경. 그대는 아직 젊지 않은가? 좋은 기회는 아직 많이 있다네.”
에드의 어두운 표정을 본 두 사람은 패배한 줄 알고 위로의 말을 건넨다. 이에 에드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힘없이 이야기하였다.
“…시합에서는 이겼습니다. 영주님.”
“아, 그래? 난 죽을 상을 하고 있기에 진 줄 알았는데, 뭔 일이 있던 거야?”
“아, 아닙니다. 그냥 좀 피곤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몸을 그다지 쓰진 않았지만 그 말이 맞긴 하였다. 정신적으로 상당히 고되었으니 말이다.
그의 상태가 안 좋아 보였기에 칼슨 또한 걱정스런 표정을 하며 말을 하였다.
“그래, 어서 쉬도록 해. 좀 있으면 2차전도 준비해야 하니까 말이야.”
“예, 감사합니다. 영주님.”
칼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에드는 대기실 한쪽 의자에 앉아 눈을 감는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였지만 칼슨과 바스테르 후작은 궁금하였지만 분위기를 보니 물어볼 상황은 아닌 듯 했다.
그러게 시간이 좀 흐르자 마침내 칼슨의 차례가 다가왔다.
“칼슨 드레이크님은 다음 순서에 시작하니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안내자의 말에 칼슨은 몸을 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곧 나갈 시간이 되자 안내자를 따라 경기장으로 향하였다.
수천 명의 관중들이 들어선 경기장.
그곳에 칼슨이 들어서자 그를 알아본 사람들이 환호를 하였다.
“저기 드레이크 백작이다!”
“어쩜 저렇게 젊고 잘생긴데다 소드 마스터일 수가 있지? 세상에나.”
“힘내십시오, 백작님! 응원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이 그에게 호의적인 응원을 하였다. 그는 그에 화답하듯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러자 더욱 더 좋아하는 관중들.
하지만 그 모습을 바라보던 상대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사람들이 띄어주니 아주 기고만장해 보이는구나.’
그는 제국 검은 용 기사단의 기사였는데 평소에 저런 겉모습만 번지르르한 놈들을 싫어하였다. 소드 마스터라고 들었지만 어차피 구속 팔찌를 차고 있기 때문에 오러 제한이 걸려있다. 그 말은 소드 마스터의 엄청난 오러는 더 이상 무의미하다는 말. 이번 대련이 저 시건방져 보이는 녀석에게 제국의 검술이 얼마나 높은지 알려 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아크레프 제국의 검은 용 기사단의 모나스 메젠이오. 그대에게 드높은 제국의 검술을 보여주겠소.”
“벤투스 왕국의 드레이크 백작이다. 잘 부탁한다.”
서로 검을 들고 예를 표한 두 사람.
그렇게 대련은 시작되었다.
조금 전부터 벼르고 있던 모나스가 검에 오러를 불어 넣으며 가볍게 접근. 그대로 상대의 우측 가슴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그것은 눈으로 좇기 힘들 정도로 매우 빠른 일격이었다. 그러나 칼슨은 살짝 몸을 틀며 가뿐히 검을 피하였고 동시에 앞으로 내디딘 그의 다리를 툭 걷어찼다.
퍽!
“허걱!”
우당탕탕───!
칼슨의 발차기에 다리가 들려버리자 모나스는 그대로 중심을 잃고 바닥으로 나뒹굴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