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화 궁술 대회(3)
신궁 루인 카말란.
미레프 왕국의 백작.
5년 전에 열린 지난 대회 우승자이며 명실상부한 최강의 궁수이다. 높이 나는 새도 바로 맞춰 떨어뜨린다는 그의 궁술은 가히 신이 내린 솜씨라 해도 무방하였다.
그는 이번 대회에 별 큰 기대 없이 참가를 하였다. 그런데 이번 대회에 그의 눈길을 끄는 이가 있었다. 전에 자신과 제법 공방을 벌였던 명궁이라 불리는 사내를 손쉽게 제압한 자. 바로 귀궁이라 불리는 신예였다.
우터 하인츠라는 이름의 사내.
대륙 동쪽 끝에 붙어있는 벤투스라는 왕국에 사람으로 이번에 처음으로 대회에 출전했다고 하였다.
그가 명궁과 싸웠을 때 카말란 백작은 그의 모습을 보며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이며 등줄기에 쏟아지는 소름과 함께 전율마저 느꼈다.
그의 실력은 당연히 뛰어났다.
그가 날린 화살의 궤적과 속도 또한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나 무엇보다 카말란 백작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어떠한 영향에도 변하지 않는 그의 표정과 오직 목표만을 향하는 냉혹한 눈이었다. 그것은 마치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의 눈과 같았다. 한 번 노린 먹잇감을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로 충만한 그런 눈 말이다.
64명이 승부를 겨뤘던 2차전이 끝나고 이제 32명이 승자가 우열을 가리는 3차전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도 우터는 콜드게임으로 상대에게 압승하였다.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10점. 그와 경기한 상대방은 그의 위세에 눌려 본 기량조차 펼치지 못하였다.
루인 카말란 또한 강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도 우터와 같이 초장부터 계속해서 10점을 쏘아 상대의 전의를 무참히 꺾어버렸다. 비록 우터 보다 1발을 더 쏘긴 하였지만 역시 그 결과는 콜드 게임 승.
분명 이전 1, 2차전에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는데 이번부터 우터를 의식해서인지 무자비한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4차전 역시 마찬가지로 이전과 비슷한 양상을 보여주었는데 이번에는 우터의 상대가 조금 더 잘해서 루인이 한 발 더 빨리 콜드 게임 승을 올렸다.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니 자연스레 둘이 경쟁하는 구도가 그려졌고 그들이 딱히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관중들은 그런 퍼포먼스에 열광하였다. 5년 만에 열린 궁술 대회는 이 둘의 활약으로 인해 역대급으로 성황을 이루게 되었다.
* * *
본선 4차전이 끝나고 하루 일정이 마무리가 되었다. 총 16명이 대결을 벌이는 5차전은 사흘 뒤에 시작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내일부터는 검술 대회 본선이 시작되었다.
벤투스 왕국의 숙소.
오늘은 숙소에서 벤투스 왕국 사람들만의 조촐한 파티가 열렸다.
파티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우터.
오늘 궁술 대회에서의 활약으로 그는 떠오르는 신성이 되었다.
“정말 대단하군, 하인츠 경. 내가 살아오면서 여태껏 그런 솜씨는 보지 못했네. 정말이지 경이로울 지경이야.”
“감사합니다, 라델리안 공작님.”
라델리안 공작의 칭찬에 가볍게 미소 지으며 감사를 표하는 우터. 그를 보며 바스테르 후작 또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나도 익히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을 몰랐네, 정말이지 보는 내내 소름이 돋더군.”
“과찬이십니다, 바스테르 후작님. 그저 제 주군에게 누가 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따름입니다.”
“아, 그렇지. 자넨 드레이크 백작의 가신이라는 것을 깜빡했구먼. 정말이지 자네 같은 인재를 품고 있는 드레이크 백작이 참으로 부럽구먼.”
그 말과 함께 넌지시 칼슨을 바라보는 바스테르 후작. 그의 시선을 받은 칼슨은 겸연쩍은 태도를 취하며 입을 연다.
“저도 우터가 나의 가신이라는 것이 참으로 자랑스럽습니다. 이렇게 충성스럽고 능력 있는 자가 나의 곁에 있다는 것이 크나큰 행운이지요.”
“아닙니다, 영주님. 저야말로 영주님을 모실 수 있어 무한한 영광입니다.”
칼슨의 너스레에 우터는 단호한 말로 답하였다. 그 모습을 본 라델리안 공작과 바스테르 후작은 오히려 그의 충직한 모습에 한층 더 깊은 호감을 표하였다.
“그나저나 내일부터 검술 대회가 시작되는데, 그래 다들 잘 준비는 잘되어 가고 있는가?”
라델리안 공작이 언급하자 바스테르 후작이 입을 열었다.
“예, 라델리안 공작님. 저는 물론이고 드레이크 백작과 페이런 경 또한 소드 마스터입니다. 그러니 크게 준비할 것도 없습니다. 하하하.”
“하긴, 그래도 본선 2차부터는 만만찮을 걸세. 그때부터는 대부분 같은 소드 마스터를 상대해야 할 테니까.”
“예, 알고 있습니다. 어찌 됐든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자신감 넘치는 그의 모습에 라델리안 공작은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해하였다. 그리고 에드를 보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래, 바스테르 후작 자네가 알아서 잘하겠지. 그러고 보니 페이런 경이라고 했나? 최근에 소드 마스터가 된….”
“예, 라델리안 공작님.”
“그렇군, 하인츠 경에 이어 소드 마스터인 페이런 경까지 과연 바스테르 후작이 자네를 부러워할 만하구먼, 드레이크 백작.”
그가 칼슨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하자 멋쩍은 웃음을 짓는 칼슨. 쑥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하였다.
“하하, 칭찬 감사합니다. 라델리안 공작님. 저도 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주군이 되겠습니다.”
“아닙니다. 영주님은 이미 훌륭하신 주군입니다.”
칼슨의 겸손한 자세에 에드가 고개를 저으며 말하였다.
그렇게 서로 위하는 모습이 라델리안 공작의 눈에 들어오자 그의 입가에 미소가 절로 생겨났다.
“허허, 이거 참 보기 좋은 광경이구먼. 이렇게나 서로 생각해주는 주군과 가신이라니. 참 보기 좋아. 하하하.”
기분 좋은 듯 라델리안 공작은 웃음소리를 내며 말하였다.
그렇게 파티가 한창 무르익어가고 있을 때 엘리시아는 수심이 깊은 표정을 하며 창가에 있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많아 보이는 얼굴. 그녀는 눈을 감고 한숨을 쉬며 손에 쥔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그때 그녀의 곁으로 칼슨이 다가가 물었다.
“혹시 모래 있을 마법 대회 때문에 그렇습니까?”
“아, 드레이크 백작님….”
그가 다가오자 상념에서 깨어난 엘리시아. 그리고 문득 시선을 흘리며 말을 하였다.
“아, 아니에요. 단지 좀 생각할 게 많아서요.”
“……그러시군요.”
그녀가 저러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마 전에 연회에서 있었던 일 때문이겠지. 그 기분을 알 것 같기에 칼슨은 섣불리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어설프게 위로를 해봤자 오히려 화만 키울 테니까. 이럴 때는 그냥 옆에서 지켜봐 주는 것이 제일 좋다. 그리 생각한 칼슨은 그녀에게 가볍게 말을 하였다.
“그래도, 모처럼 연 파티이니 왕녀님께서도 부디 좋은 마음으로 즐기시길 바랍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 예….”
그렇게 인사만 하고 칼슨은 다시 발걸음을 옮겨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의 뒷모습을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엘리시아.
짝짝
그녀는 이내 볼을 몇 번 치더니 다시 평소의 맑은 눈빛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그가 있는 곳을 향해 나아갔다.
* * *
다음 날.
오늘은 검술대회 본선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본선을 치루는 인원은 총 128명.
그 중 소드 마스터가 67명이었으며 나머지 인원은 예선에서 충당하였다.
경기 방식은 궁술 대회와 마찬가지로 토너먼트 형식이었으며 오늘은 4차까지 진행. 이후 사흘 후에 다시 진행하며 결승까지 치루 게 된다.
승부 방식은 두 명이 검술 대결을 하여 승패를 가르는 방식. 전투 불능, 혹은 경기장 밖으로 나가거나 항복 의사를 밝히면 패배하게 된다. 그리고 또 상대방을 죽이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며 만약 고의로 행했을 시 제국에서 그를 직접 엄벌하도록 하였다.
게다가 참가자는 모두 오러 구속 팔찌를 끼고 대련에 임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자신이 쓸 수 있는 오러가 제한된다. 그렇다고 아예 못 쓰는 것도 아니었지만 오러 블레이드를 쓸 정도는 안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소드 마스터가 아니어도 충분히 맞서 싸울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소드 마스터가 이길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긴 하였지만.
치이이익── 타앙!
“으어어어억!”
상대의 공격에 쓰러진 기사. 비록 소드 마스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나 선전하면서 버티었다. 하지만 역시 기량에 밀려 그만 무릎을 꿇고 말았다.
“승자 케이슨 엔빌!”
“우아아아아! 이겼다!”
“와아아아아아아!”
심사관의 외침에 사람들은 환호하였다. 승자가 된 기사는 검을 들며 그들의 환호에 화답을 해주었다.
그렇게 몇 번의 시합이 끝난 후 바스테르 후작의 차례가 왔다. 그의 상대는 검은 머리의 중년 기사였는데 아직 소드 마스터는 아니었다.
“벤투스 왕국의 바스테르 후작이다. 잘 부탁한다.”
“루텐하임 왕국의 로첼리 백작입니다.”
둘은 서로의 이름을 밝히며 인사를 하였다. 그리고 검을 들고 한 번 예를 표한 뒤 대련을 시작하였다.
먼저 몸을 움직인 것은 로첼리 백작이었다. 제법 기민한 움직임으로 바스테르 후작에게 다가가 크게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바스테르 후작은 조금의 움직임으로 그의 검을 가볍게 피하였다. 그리고 그로 인한 빈틈을 정확히 찔러 들어갔다.
치이익── 깡!
“으으으윽!”
가벼운 공격이었지만 제대로 방어하지 못한 로첼리 백작은 꽤나 타격을 받은 듯 인상을 쓰며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다시 몸을 가다듬으며 자세를 잡으려 했지만 바스테르 후작은 그것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치이이이익─── 콰직!
“크어어어억!”
바스테르 후작의 일격에 어깨 갑옷이 우그러지자 고통스러워하는 로첼리 백작. 자세가 무너졌지만 검에 손을 놓지 않은 채 필사적으로 몸을 굴렀다. 그렇게 거리를 벌린 그는 이를 악물며 일어섰다. 하지만 곧 다가온 바스테르 후작의 검. 오러가 먹은 그의 검은 상대의 검을 쳐내어 버렸다.
캉! 휘리리리릭── 땡그렁!
저편으로 날아가 버린 로첼리 백작의 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것을 쳐다본 그의 목에 어느덧 바스테르 후작의 검이 놓여있었다.
“크윽, 졌습니다.”
그는 분해하며 패배를 인정하였다. 그 말을 들은 바스테르 후작은 검을 검집에 집어넣고 말한다.
“좋은 승부였네.”
“승자 데반 바스테르!”
심사관의 외침에 관객들은 환호성을 터트린다.
“와아아아아아아!”
그렇게 승리를 한 바스테르 후작은 경기장을 내려온 후 대기실로 내려온다. 그곳에 있던 칼슨과 에드가 그를 반겨주었다.
“이기셨군요. 승리를 축하드립니다, 바스테르 후작님.”
“고맙네, 다행히 상대가 쉬운 편이었네.”
“그래도 이긴 것은 이긴 것이지요. 수고하셨습니다.”
“그래, 조금 있으면 페이런 경의 차례인가?”
에드를 바라보며 말하는 바스테르 후작. 에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예, 그렇습니다.”
그렇게 말하기가 무섭게 곧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에드 페이런님! 다음 순서이니 어서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알겠소.”
안내자의 말에 투구를 쓴 그는 칼슨을 향해 말을 하였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영주님.”
“그래, 너무 무리하지 말고.”
“예!”
그렇게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나는 에드. 안내원의 말에 따라 걸어 나갔다. 그리고 곧 경기장으로 들어섰다.
그곳에는 이미 한 명의 기사가 자리를 잡고 서있었다.
“벤투스 왕국의 에드 페이런이오! 잘 부탁드리오.”
정중한 자세로 검을 쥐며 예를 표하는 에드. 이에 상대방 또한 자세를 취하며 예를 표한다. 그리고는 비릿한 웃음을 보이며 말을 하였다.
“크큭, 난 로스토프 왕국의 트롬베인 후작이다. 부디 잘 버텨내길 바란다.”
익히 들어본 이름.
그는 바로 칼슨과 함께 상을 수여 받았던 소드 마스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