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영지가 제일 강함-96화 (96/162)

95화 궁술 대회(2)

‘이건 말도 안 돼….’

상대가 10점을 맞추자 하워드는 당혹감에 휩싸였다.

자신조차 신경을 곤두세워 쏜다고 해도 10점을 맞추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이 당연한 게 과녁 자체도 점으로 보이는 마당에 그 안에 고작 1인치도 안 되는 붉은 점에 맞춘다는 것은 어느 정도 요행을 바라야 했다.

그렇다 요행. 바로 운이 따라줘야 한다는 것이다.

눈앞에 이놈 또한 그런 운이 따라줘서 10점을 맞춘 것이 분명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마음을 가다듬은 하워드.

다시 한번 심호흡을 하며 온 신경을 과녁에 집중하였다.

휘이이이익───── 푹!

분명 화살이 박힌 것 같은데 확인자의 외침이 들리지 않는다.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하고 있을 때 확인자 또한 머리를 긁적이며 어찌 판단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왜냐하면 그의 화살은 7점과 10점 사이 경계에 있었기 때문.

거의 7점에 가까웠지만 종이 한 장만큼이라도 10점에 걸쳐있었기에 그는 그리 판단하고 입을 열었다.

“적색 명중! 10점!”

그 소리에 관중들은 잔뜩 흥분하며 함성을 지른다.

“와아아아아아! 역시 하워드야!”

“이거 정말 흥미진진해지는걸!”

그렇게 자신을 향한 환호가 쏟아지자 다시 의기양양해지는 하워드. 이런 분위기라면 분명 상대의 마음도 흔들릴 것이다. 그렇게 상대가 무너지길 기대하며 느긋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건 그의 희망 사항일 뿐이었다.

쉬이이이이이익────── 푸우욱!

“적색 명중! 10점!”

또 붉은 점을 맞히며 10점을 따내고야 마는 상대방. 이런 부담스런 상황에도 기어코 10점을 따내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건지…. 하워드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

‘그래, 이번에도 운일 거야. 암. 그렇고말고.’

그렇게 생각한, 아니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하워드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시 한번 부여잡으며 과녁에 집중하였다.

연속해서 10점을 맞췄다고 하지만 상대는 이번에 처음 대회에 참가하는 초짜. 놈이 할 수 있는 것을 자신이 못할 리가 없었다.

“흐으으읍….”

호흡을 멈추고 몸의 들썩임을 멈추었다. 그리고 최대한 힘을 빼며 천천히 활시위를 당겼다.

휘이이이이이이익───── 푸욱!

“청색 명중! 5점, 5점입니다!”

“뭐!”

확인자의 소리에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크게 치켜든 하워드.

‘왜, 5점이지? 설마 당기는 힘이 좀 약했나? 시발,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거야!’

이렇게 되면 상대가 아직 화살을 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고작 자신이 2점만 앞섰다. 그 말은 상대가 과녁에 3점 이상만 맞힌다면 자신을 앞선다는 말. 불길한 예감이 엄습하면서 식은땀이 흐른다.

그가 그렇게 불안에 떨고 있을 때 우터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자연스럽게 자신의 활시위를 당겼다. 그리고 조용히 손을 놓았다.

쉬이이이이이익────── 푸우욱!

파공성과 함께 날아간 화살. 과녁에 꽂히는 소리까지 이곳까지 들릴 정도로 강하게 박혔다.

“적색 명중! 10점입니다! 10점!”

“뭐라고!”

3연속 10점이라니! 하워드는 눈앞의 현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신궁 카말란이면 모를까, 고작 첫 출전인 신인이 이렇게 할 수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말이 안 되었다. 그의 부정은 의심으로 변해갔고 더 나아가 적의로 변해버렸다.

그는 우터를 노려보며 한 가지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다.

‘그래, 이 새끼가 확인자를 매수했구나! 그러니 저렇게 된 거야!’

그렇다면 더 이상 경기를 할 필요가 없었다. 하워드는 손을 높이 들며 큰 소리로 외쳤다.

“이건 뭐가 잘못되었습니다! 잠시 과녁을 확인해봐도 되겠습니까?”

그의 외침에 관중들이 웅성웅성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하워드가 방금 전 한 말은 곧 부정행위가 있는 것 같으니 확인을 해보자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하워드는 꽤 명성 있는 궁수였다. 그렇기에 심사관은 그가 문제를 제기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 그의 요청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흔쾌히 수락하였다. 그러자 하워드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그려졌다.

이제 당장 저 부정한 놈을 처리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마치 개선장군처럼 자신감 넘치는 걸음으로 표적으로 향해 나아가는 하워드. 그런데 걸음을 걸을수록 그의 표정이 점점 변해갔다. 확신에서 의문, 의문에서 불안, 그리고 마지막으로 경악.

“어……?”

여기저기 난잡하게 꽂혀있는 자신의 과녁과는 달리 붉은 점에 가지런히 꽂혀있는 상대방의 화살. 심지어 그것들은 붉은 점에서도 중앙에 몰려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눈앞의 상황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그가 그렇게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때 멀리서 심사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떤가? 무슨 문제라도 있는가?”

“아 그게….”

예상하지 못한 결과에 머뭇거리는 하워드.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심사관은 좀 더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도대체 말을 안 하고 뭐 하는 건가? 정말 문제가 있는가!”

마치 다그치는 듯한 그 소리에 하워드는 움찔거리며 사색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법. 목소리에 힘을 주고 큰 소리로 말을 하였다.

“아무 문제 없습니다! 제가 그만 착각했나 봅니다.”

“뭐라고? 지금 자네 나랑 장난하자는 건가?”

“죄송합니다. 심사관님!”

그가 고개를 숙이며 깊게 사죄하자 심사관도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크흠, 어쨌든 아무 문제 없으니 다시 경기를 시작하도록 하지! 그대도 괜한 의심하지 말고 신중히 생각하도록.”

“예, 명심하겠습니다! 심사관님!”

그렇게 해서 다시 시합이 재개되었다.

방금 전 우터가 쏘았으니 이제는 하워드의 차례.

그런 호들갑을 떨고 막상 자신의 차례가 되자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으로 파고든다.

생각지도 못한 상대방의 실력. 자신의 오판. 그로 인해 추락할 자신의 명성까지….

그는 화살을 당기는 순간까지 수많은 잡념에 사로잡히고 만다. 그리고 그것은 결과로 보여주었다.

쉬이이이이익───── 푹!

“백색 명중! 3점!”

“아…….”

상대방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흔들리고 말았다.

점수를 따라잡아야 하는데 이제 더 벌어지게 생겼다.

이럴 때일수록 냉정해져야 하는데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도 이를 악물며 진정시키려 하였지만 그것도 잠시.

쉬이이이이익───── 푸욱!

“저, 적색 명중! 10점입니다!”

또다시 붉은 점에 명중시켜버리는 우터.

이제 그의 점수는 40점. 그에 비해 자신은 고작 25점에 불과하였다.

상황이 그렇게 되어버리자 하워드의 정신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궁술에 있어 제일 중요한 평정심이 사라진 지 오래.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다시 한번 활시위를 당겼다 놓는다.

휘이이이익────

“빗맞았습니다!”

“크으으윽!”

평소라면 그래도 맞혔을 과녁이었지만 지금은 어떻게 해야 할지, 감조차도 잡히지 않았다. 혼이 빠질 것 같다는 심정이 딱 지금을 말하는 듯하였다. 그렇게 하워드가 넋이 나가이었을 때 우터가 다시 한번 화살을 날렸다.

쉬이이이이익──── 푸욱!

“적색 명중! 10점!”

그걸로 이제 50점의 점수를 확보하게 되는 상대. 아직 25점에 불과한 자신과는 두 배나 차이가 났다. 이제 도저히 이길 것 같은 느낌조차 들지 않는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10발 다 쏘기도 전에 콜드게임이 될 수도 있었다.

가끔 초심자들과 상대할 때나 생기는 콜드 게임. 자신이 승자가 되는 것은 환영이지만 그런 상황의 희생자가 되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그는 무너지는 마음을 다시 부여잡았다. 이제 승리한다는 생각 따윈 버렸다. 단지 한 발 한 발 쏘는 거에만 집중하도록 하였다.

휘이이이익──── 푸욱!

“황색 명중! 7점!”

하워드의 입가에 어느덧 희미한 미소가 떠오른다.

잠시 잃었던 감각이 다시 돌아왔다. 이제 총점수는 32점. 상대방과의 차이는 18점이었다.

쉬이이이익─── 푸우욱!

“적색 명중! 10점!”

아니 차이는 다시 28점으로 벌어졌다.

이제까지 우터가 10점을 놓치지 않고 쏘아대자 관중들 또한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되었다. 당연히 실력자인 하워드가 승리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오히려 신인인 그가 압도적인 실력으로 이기고 있었다. 아니 이미 이긴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 그 말도 안 되는 현실이 지금 눈앞에 일어나고 있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동요하고 있는 와중에도 경기는 계속 진행되었다.

휘이이이이익──── 푸욱!

“적색 명중! 10점!”

쉬이이이이익───── 푸우욱!

“적색 명중! 10점!

서로 표적을 맞추는 것은 동일했지만 점수차이는 좁혀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하워드는 동요하지 않으며 최선을 다해 화살을 날렸다.

휘이이익──── 푸욱!

“적색 명중! 10점입니다!”

다시 좋은 점수를 올리며 상대를 따라잡는 느낌을 주었지만 우터의 표정에는 여전히 변화가 없었다. 아무런 동요 없이 그저 묵묵히 화살을 날릴 뿐이었다.

쉬이이익───── 푸우욱!

“적색 명중! 10점입니다!

그렇게 공방이 이어지며 하워드가 마지막까지 선전을 하였지만 우터의 이번 화살로 경기는 끝나버리고 말았다.

결과는 80대 52.

나머지 2발을 우터가 모조리 놓치고 하워드가 다 10점을 맞춘다고 해도 뒤집을 수가 없는 점수 차이.

결국 하워드의 불안은 현실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콜드 게임! 승자는 우터 하인츠!”

심사관의 말에 관중들은 모두 얼어 붙어버리고 말았다.

처음 등장한 신예에 유력한 우승 후보자인 하워드가 패하고 말았다. 그것도 그냥 진 것이 아닌 콜드 게임 패.

그야말로 압도적인 실력 차로 지고 말았던 것이다.

“어, 어떻게 하워드 경이 질수가 있지? 이게 말이 돼?”

“그건 그렇다 치고 저게 정말 가능한 거야? 저 자, 처음부터 계속 10점을 쐈잖아.”

“그러고 보니 저자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던 거 같아! 변방 어디 왕국 출신인데 그 머라더라, 그래! 귀궁! 귀신같이 활을 잘 쏜다고 귀궁이라 하더라고!”

생각지도 못한 큰 이변이 벌어지자 주변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하였다. 지난 시합 때 신궁 카말란 백작과 좋은 대결을 펼쳤던 명궁 하워드가 새로운 자에게 완패를 당했으니까. 그것도 10발 다 쏘기도 전에 끝난 콜드 게임으로 말이다.

그 승리를 시작으로 귀궁 우터의 이름이 제국에도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명궁을 압도적인 실력으로 꺾은 귀궁.

오늘 그가 보인 모습은 당연하게도 그와 신궁과의 대결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본선 1차 시합이 마무리되었다.

총 64개의 시합이 모두 끝나며 각각 승자와 패자로 갈라졌다. 이제 그 승자끼리 붙게 되는 2차 경기가 시작되었다.

우터의 경기는 그중 21번째였는데 그의 상대는 제국에서 제법 이름 있는 기사였다. 그의 이름은 알딘 아그리한. 불사조 기사단의 유망한 기대주였다.

하지만 그런 배경에도 불구하고 그는 상대에게 위축되고 말았다. 그는 보았다. 그전 시합에서 그가 명궁 하워드를 압도적인 실력으로 제압했던 것을.

그때 그가 보여준 활 솜씨는 가히 신기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

이번 시합에도 그 모습을 보여준다면 자신에게 승산은 0에 수렴한다고 봐도 되었다. 그래도 그는 포기할 수 없었다.

제국의 기사로서 지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였다. 하지만 그 결과는 처참하였다.

“콜드 게임! 승자 우터 하인츠!”

점수는 60 대 18.

고작 6발의 화살에 승부가 갈려버렸다.

“우와아아아아아!”

“우터! 우터! 우터! 우터!”

“귀궁! 귀궁! 귀궁!”

모두가 그를 환호하는 가운데 그를 유심히 지켜보는 한 사람이 있었다.

푸른 눈을 한 백발 머리의 중년 남성.

깊어 보이는 눈매와 더불어 제법 날카로워 보이는 콧대와 고집스럽게 보이는 굳게 다문 입.

잘 정돈된 수염은 굉장히 중후한 느낌을 주었다.

그는 바로 전 대회의 우승자인 루인 카말란. 바로 신궁이라 불리는 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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