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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지가 제일 강함-94화 (94/162)

93화 연회(2)

‘얘는 왜 또 와서 이러는 건데?’

갑작스런 황녀의 접근에 표정이 굳어진 칼슨. 가뜩이나 엘리시아 때문에 잔뜩 신경이 곤두세워져 있었는데 나이아가 나타나니 머리가 더 아파왔다.

“과찬이십니다, 황녀님. 부족한 재주를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후훗, 겸손이 지나치시군요. 그 정도면 가히 훌륭한 솜씨라고 보입니다. 전혀 과찬이 아니에요.”

“하하, 그렇습니까?”

그녀가 칭찬을 해주며 말문을 트자 칼슨 또한 멋쩍은 표정을 하며 대답해주었다. 그렇게 몇 마디 말을 더 나누며 대화를 이어 나가던 그때, 다시 연주의 템포가 바뀌며 춤을 추는 시간이 돌아왔다. 그러자 음악 소리에 맞춰서 하나둘씩 춤을 추기 시작하는 사람들. 그것을 본 나이아가 칼슨을 향해 말을 한다.

“아, 다시 춤을 추기 시작했군요. 어때요? 저와도 한 번 추지 않으시겠어요?”

“예에?”

대뜸 자신에게 춤을 청하자 칼슨은 매우 당황스러워하였다. 보통 춤을 청하는 것은 여자가 아닌 남자가 하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아는 자신에게 춤을 신청하였다.

이걸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와중 그는 슬쩍 주변을 보았다. 라델리안 공작은 물론 카텔로 후작이나 바스테르 후작 또한 흥미진진한 표정을 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다만 엘리시아는 심기가 불편한지 미간을 찌푸리며 이쪽을 보고 있었다.

“어서요, 계속 그렇게 가만히 계실 건가요? 저 지금 좀 민망해지려고 하거든요?”

“아, 죄송합니다. 잠시 좀 놀래서 그랬습니다.”

“그럼, 어서 가요. 우리.”

그 말을 하며 자신의 손을 덥석 잡는 그녀. 그때 아까 퇴짜를 맞았던 라노프가 엘리시아를 향해 다가가며 손을 내밀고 있었다.

“엘리시아 왕녀님, 저와 춤을 추지 않으시겠습니까?”

재차 춤을 신청하는 그를 보며 엘리시아는 심히 당황스런 표정을 한다. 그러면서 칼슨을 흘깃 보더니 입을 굳게 다물며 그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네, 황자님. 저희 같이 춤춰요.”

“후후,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그 말과 동시에 라노프는 능숙한 동작으로 그녀를 데리고 나갔다. 그러면서 칼슨을 향해 비릿한 미소를 짓는다.

그것을 본 칼슨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명백히 자신에게 날린 비웃음이었지만 그는 정작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가 하는 짓이 귀엽게 보일 정도였다.

애도 아니고 저렇게 유치한 도발이라니 아무리 젊다고 하지만 생각이 너무 얕아 보였다. 하지만 지금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어서요, 다들 춤추러 가잖아요. 네?”

자수정 같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나이아.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입가가 조금 실룩거리는 것이 심기가 안 좋아 보인다. 하긴 여기서 대놓고 거절한다면 그녀의 위신이 말이 아닐 터.

“예, 그렇게 하지요.”

“네, 그럼…. 아앗!”

나이아의 손을 꽉 잡고 무대를 향해 걸어갔다. 칼슨의 손에 잡힌 그녀는 끌려오듯이 몸을 움직였다. 그 거친 행동에 다소 화가 날 법도 하지만 그렇게 할 새도 없이 칼슨은 그녀의 허리를 움켜쥐며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어어, 드레이크 백작님?”

허리가 뒤로 젖혀지며 놀란 눈을 하고 있는 나이아. 하지만 칼슨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방금 전 라노프의 태도에 담담하게 반응했지만, 그것은 머리로만 그랬던 것뿐. 그의 몸과 마음은 아직 20대 청년이었다. 그 젊은 혈기는 자신을 향한 비웃음에 그렇게 관대하지 못하였다. 그는 몸속에 오러를 일으키며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호오 어떻게 저런 움직임이….”

“어머 세상에…!”

구경하는 이들이 칼슨과 나이아가 추는 것을 보며 탄성을 지른다. 그들이 다른 이들과 다른 춤을 추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느낌은 천지 차이였다. 구체적으로 설명할 순 없었지만 유독 시선을 가게 하였고 그 움직임 하나하나에 감정이 느껴졌다.

“허억, 드, 드레이크 백작님…. 저 너무 힘들어요.”

“괜찮습니다. 제가 리드할 테니. 조금 더 힘을 빼셔도 됩니다.”

“아아, 네. 그럼 부탁드릴게요.”

그의 말대로 힘을 빼고 몸을 맡기니 좀 더 몸이 편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니 몸이 붕 뜨는 것이 몽롱해지는 기분마저 들었다. 마치 꿈을 꾸는 듯한 그런 느낌.

탁─ 타악 휘이익 탁─!

스텝을 밟을 때마다 아름다운 선이 그려졌다. 육체적으로 완성된 그의 몸놀림은 야수와 같이 위협적이면서도 아비의 품처럼 든든하였고, 폭군처럼 난폭하면서도 연인같이 다정하였다. 그 매혹적인 춤에 모두들 시선을 빼앗기며 빠져들기 시작하였다.

‘뭐, 뭐야? 저놈은?’

엘리시아와 춤을 추고 있던 라노프 또한 그 모습을 보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였다. 아까 처음에 췄을 때도 제법 봐줄 만 하였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멋들어진 느낌. 그렇게 멍하니 쳐다보다가 그만 스텝이 꼬여 엘리시아의 발을 밟고 말았다.

“아앗!”

“헉, 미, 미안합니다. 왕녀님.”

발에서 느껴지는 통증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인지 잔뜩 인상을 쓰며 입술을 깨무는 엘리시아. 그녀 또한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칼슨과 나이아의 춤을 보고 있었다.

자신과 출 때는 저렇지 않았는데 왜 지금은 이러는지, 알 수 없는 감정이 그녀의 마음을 찌르며 괴롭게 만들었다.

그렇게 음악이 절정에 다다르며 칼슨과 나이아의 춤도 더욱더 격정적으로 변해갔다.

이제는 모든 이들이 춤추는 것조차 잊은 채 그들만을 바라보았다. 사교춤을 추던 귀족들이 지금은 모두 멋진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으로 변하였다.

그 끝날 것 같지 않던 공연.

그것은 하염없이 이어지더니 연주가 끝남과 동시에 피날레를 장식하며 마무리를 하였다.

“허어억, 허억…….”

“하아… 하아…….”

정적 속에 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만 들려왔다.

온몸에 오러를 극한까지 끌어 써서 춤을 췄다. 그로 인해 몰려오는 피로감이 장난이 아니지만 그래도 그 만족감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컸다. 나이아 또한 칼슨에게 몸을 맡겼지만 춤추는 중간에도 몇 번이나 실신할 뻔하였다. 정신이 아득해질 때마다 이를 악물고 버티며 결국 그와 함께 춤을 마쳤다.

짝 짝 짝

누군가로부터 시작된 박수 소리. 그것을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온다. 그것이 중첩되기 시작되며 그 소리는 우레와 같이 커졌다.

짝짝짝짝짝짝짝짝─────!

“와아아아아아!”

“꺄아아아아!”

“이야아아! 멋지다!”

박수와 함께 튀어나오는 환호성.

그곳에 있던 이들은 모두 흥분하며 함성을 질러대었다.

그리고 여기저기 쏟아져 나오는 감탄들.

“정말 멋진 춤이지 않아? 마치 하나의 공연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니까.”

“아, 저는 보는 내내 얼마나 가슴이 저렸는지 몰라요. 어쩜 저런 춤을 출수 있었는지….”

“으아, 이거 정말 최고야. 그러고 보니 저 사람은 아까 전 수여식 때 하사를 받은 드레이크 백작이 아닌가?”

“세상에, 듣자 하니 소드 마스터라고 하던데, 젊은 나이에 벌써 그런 경지에 오르다니 정말 대단하구먼!”

자신을 향한 찬사가 이곳저곳에서 들려오자 조금 쑥스러워진 칼슨. 서둘러 다시 자리로 들어왔다.

그곳에 가자 일행들은 모두 입이 찢어져라 웃으며 자신을 반기었다.

“드레이크 백작, 언제 그런 춤 실력을 익혔는가? 정말이지 내 좋은 구경을 하였네.”

“정말이지 한 쌍의…. 아니 내가 또 주책을…. 아무튼 굉장한 솜씨였네. 근래 내 이리 흥분한 적이 없었다네.”

“아, 정말 우리 딸은 생각이 없는 건가? 다시 한번 생각해주길 바라네.”

팔불출처럼 칭찬을 해대는 그들. 마치 자기 자식이 큰일을 해낸 듯이 해맑게 웃으며 기뻐하고 있었다. 그때 라노프와 함께 춤을 추고 온 엘리시아도 돌아와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는 그녀의 눈빛.

좋은 건지 싫은 건지 알 수 없는 오묘한 표정에 더해지며 본인조차 모르겠는 그런 복잡한 심정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좋은 마음을 가지고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려던 찰나 활기찬 음성이 그녀가 말할 기회를 막아서듯 들려왔다.

“어쩜 파트너를 놔두고 그대로 들어가시다니, 정말 너무하신 거 아닌가요? 드레이크 백작님?”

그녀는 바로 나이아였다.

방금 전까지 칼슨과 춤을 추고 있었던 그녀. 춤을 마치고 정신없던 틈에 칼슨이 사라진 것을 알자 부리나케 그가 있는 곳을 향해 다가왔다.

씩씩거리면서 오는 것을 보니 화가 아주 단단히 나있어 보였다.

“아, 죄송합니다. 황녀님. 저도 경황이 없어서 그만….”

“흥, 됐어요. 아무리 그래도 깜빡할 게 따로 있지 어떻게 같이 춤을 춘 파트너까지 잊어먹어요?”

“그거에 대해 할 말은 없습니다. 아무튼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황녀님.”

거듭 사과를 하자 그제야 기분이 나아진 나이아는 다시 표정이 풀리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니 제 넓은 아량으로 넘어가도록 하지요. 그건 그렇고 정말 대단한 춤 솜씨였어요. 어떻게 그런…….”

“아, 네 그것은…….”

그렇게 둘이 대화를 이어가자 그 모습을 본 엘리시아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는 슬며시 몸을 돌리며 자리를 떠났다. 그런 그녀를 칼슨 또한 봤지만 황녀인 나이아가 계속해서 말을 걸어오기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거기다 다른 왕국의 귀족들이 몰려와 끊임없이 말을 거는 바람에 더더욱 정신이 혼란스러운 상황. 일단 그녀에 대한 생각을 접어둘 수밖에 없었다.

* * *

수여식을 마친 다음날.

오늘은 야외의 큰 공터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대략적으로만 봐도 그 수가 무려 수천이 넘어가 보인다.

사절단 인원뿐 아니라 그들과 함께 온 수행원과 제국의 사람들까지 와있었기에 그 수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오늘 이렇게 밖에 사람들이 모인 이유는 다름 아닌 오늘의 일정 때문이었다.

오늘의 일정은 바로 궁술 대회.

사절단 행사에는 검술 대회와 더불어 마법과 궁술대회가 있었는데 이것은 사절단뿐만 아니라 그들이 데려온 수행원들 또한 참가할 수 있었다.

물론 본 대회에 앞서 예선을 거쳐야 하기에 많은 참가자들이 따로 마련된 심사장에서 시험을 보고 있었다.

시험은 당연히 화살을 과녁에 맞히는 것.

300보 앞에 있는 과녁에 10발을 쏘아 7발을 맞추면 통과였다.

휘이익──

“짐 테이몬 탈락!”

“아아아아! 이럴 수가.”

방금 막 과녁을 빗맞힌 자가 탈락 통보를 받고 좌절하였다. 이곳에는 10개가 넘는 과녁이 있었고 각 과녁마다 심사관이 있었기에 예선 진행은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여기저기 탈락과 통과가 번갈아 들리지만 역시 통과보다는 탈락 소리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 모습을 단상 위에서 지켜보고 있던 두 명의 남성.

고급스러운 복장에 위풍당당한 풍채가 영락없이 귀족이었다. 지그시 눈을 뜨며 구경하고 있는 그들. 그중 적발의 사내가 입을 열며 말하였다.

“하암, 이번에도 결국 우승은 미레프 왕국의 카말란 백작이겠군요. 하바트 경.”

따분하다는 듯이 하품을 하며 말하는 남성. 이에 옆에 있던 갈색 머리의 남성. 하바트 경이라고 불리는 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였다.

“뭐, 아무래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갈로르 남작님. 그래도 혹시 뛰어난 이가 나와 줬으면 합니다. 지난 대회 때는 너무 일방적이라 좀 시시했거든요.”

“그건 나도 바라는 바요. 하지만 뭐 그게 우리 맘대로 되겠소? 하하하.”

“뭐, 저도 그냥 제 바람일 뿐입니다, 갈로르 남작님. 하하.”

그렇게 그들이 허심탄회하게 웃으며 이야기 하고 있을 때 사람들이 웅성 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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