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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지가 제일 강함-91화 (91/162)

90화 베이도스에서 생긴 일(3)

‘왜 제국의 황녀가 여기에 있는 거야?’

그는 눈앞의 상황을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다. 황궁에 있어야 할 황녀가 왜 이런 도시 골목에 나타난 건지. 어쨌든 그녀는 제국의 황녀였다. 그리고 이곳은 제국의 한복판. 괜히 그녀와 척을 져봤자 좋을 것이 하나 없었다.

칼슨은 정중한 자세를 취하며 조심스레 그녀에게 말을 하였다.

“흐음, 피차 오해가 있는 듯한데, 우리는 벤투스 왕국에서 온 사절단이오. 정보 길드에서 기술자들의 정보를 구한 것은 그저 그들에게 몇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그렇소. 그리고 아직까지 제국에 소속된 이와는 접촉한 적이 없으니 이만 오해를 풀기 바라오.”

“뭐? 벤투스 왕국의 사절단이라고?”

그러고 보니 들어본 것 같았다. 사절단 중 벤투스 왕국에서 온 이들을 보면 되도록 충돌을 일으키지 말라는 말. 특히 그 중 칼슨 드레이크라는 인물과는 절대로 부딪치면 안 된다는 특명까지 내려왔었다.

“호, 혹시 당신이 드레이크 백작인가요?”

“음? 그것을 어떻게…? 맞소, 내가 바로 벤투스 왕국의 드레이크 백작이라오.”

그 말에 나이아는 가슴이 철렁하였다.

하필 타국의 스파이로 추정되는 놈들이 위에서 유의 주시하고 있는 인물이었다니. 게다가 최대한 충돌을 피하라고 하였는데 되레 싸움판을 벌였다. 뭐 무참히 깨진 것은 자신들이었지만 말이다.

어찌 됐든 간에 그들과 거하게 한판 싸웠다는 것은 사실. 이 일을 자신의 배다른 오라비가 알면 큰 문책이 들어올지도 모른다.

“크흠, 맞아요. 피차 오해가 있었나 보네요.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큰 소란을 피워서 죄송해요. 다행히 죽은 이들도 없고 크게 다친 사람도 없으니 이쯤에서 그만두는 게 좋지 않겠어요?”

갑자기 저자세를 취하는 그녀의 모습에 칼슨은 알 수 없는 기시감이 들었다. 분명 제국의 황녀인데 자신의 정체를 알자마자 손바닥 뒤집듯 태도가 바뀐다? 그렇다면 답은 한가지였다.

‘나와의 마찰을 원하지 않는군. 만약 그렇게 되면 곤란한 상황이 생긴다거나.’

그렇게 생각하니 이대로 끝내는 것이 조금 아쉽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그녀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뭐, 오해를 풀었다니 다행이오. 그러면 남은 것은 잘못한 것에 대한 책임인데….”

칼슨이 땅에 쓰러진 이들을 보며 말하자 그녀는 손사래를 치며 말하였다.

“아, 아니에요. 저들이 다친 것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되요.”

저들을 상하게 한 것에 대해 괜찮다는 이야기. 그러나 칼슨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것이 아니었다.

“아니, 저들이 다친 것은 당연하지 않소? 우리를 공격했기에 저리된 것인데. 나는 그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오. 그대들이 우리를 공격했던 것을 이야기 한 것이오.”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오해로 인해 우리를 해하려 하지 않았소? 다행히 아무도 다치지 않아서 망정이지. 만약 우리의 실력이 미천하여 누구 하나 죽었다면 어찌 됐을 거라 보오? 그런데도 아무 책임이 없다고 할 셈이오?”

“그, 그건….”

칼슨의 말에 더 이상 말문이 막힌 나이아.

상대의 말이 맞다.

비록 자신들만 다치긴 했지만 굳이 잘잘못을 따지자면 멋대로 오해해 일을 벌인 자신들이 잘못이 컸다. 게다가 몇몇이 피를 보긴 했지만 상대는 누구 하나 죽이지 않고 제압만 하였다.

이런 상황에 어떻게 상대에게 책임이 있다 할 수 있겠는가.

“당신의 말이 맞아요. 그럼 우리가 책임을 지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순순히 잘못을 인정하는 그녀.

만약 모르쇠로 일관하며 강경하게 나왔다 해도 딱히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는데 다행히 그렇지는 않았다. 그런데 막상 그녀가 이야기하자 칼슨은 당장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머리를 긁적이며 고민한 그는 손을 저으며 말을 하였다.

“그것에 대해서는 나중에 알려드리겠습니다. 일단 지금은 쉬고 싶군요.”

“아, 네. 그러세요. 대신 오늘 일은 다른 곳에 말하지 말고 함구해 주시길 바라요.”

그건 자신도 원하는 바다. 칼슨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에는 좋은 일로 뵙길 바랍니다.”

“예, 살펴 가세요. 오늘 일은 다시 한번 사과드릴게요.”

“아닙니다. 아무튼 조만간 또 뵙지요. 그럼 안녕히.”

그렇게 서로 인사를 마치며 헤어진 그들. 나이아는 멀어져가는 칼슨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 * *

용무를 마치고 돌아온 칼슨.

하늘을 보니 벌써 날이 깜깜해졌다.

저녁 식사를 하기 전에 몸을 먼저 씻으러 가는 순간 누군가 그의 방문을 두드렸다.

똑똑.

“혹시 안에 계신가요? 드레이크 백작님?”

익숙한 여성의 목소리. 바로 엘리시아였다.

그것을 들은 칼슨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을 하였다.

“네, 들어오십시오. 왕녀님….”

그의 말에 문이 열리며 엘리시아가 들어왔다.

오늘 다른 왕국 사절단들과 몇 차례 모임을 가졌다고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제법 화려하게 꾸몄다.

평소에 앳된 모습을 자주 봐서 그런지 이렇게 한껏 꾸민 모습을 보니 좀 달리 보이긴 했다.

가만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자 그녀는 어색함을 느꼈는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리고 만다. 칼슨 또한 민망했는지 시선을 돌리며 헛기침을 하였다.

“흐음,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아, 네.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이야기하러 왔어요.”

“음, 그렇습니까?”

“네, 일단 공식적인 일정은 사흘 후부터 시작돼요. 그리고….”

그렇게 일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엘리시아. 칼슨은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의 말을 듣고 있었다.

이전에 들었던 일정이랑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다만 칼슨의 수여식이 이전보다 하루 앞당겨졌다는 것. 그 이유를 물어보니 그냥 위에 누군가 입김이 들어간 거 같다고 하였다.

칼슨의 입장에선 어차피 내일 당장 할 것도 아니니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와중 엘리시아가 자신에게 뭔가를 내밀었다.

“흐음, 이건 도대체 뭔가요?”

“한 번 읽어보시는 게 좋으실 거예요.”

“네, 알겠습니다.”

그것은 서류였다.

그녀는 일정 외에 제국과 각 왕국에서 보내온 사절단 중 주요 인물에 대한 정보를 서류로 만들어서 건네주었다. 대략 열댓 장쯤 되었는데 글씨가 빼곡해서인지 내용이 꽤나 많았다.

“이걸 다 살펴봐야 합니까?”

“가능하면요. 특히 황족에 대한 것은 꼭 봐두세요. 알아두시면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몇 마디 대화를 이어간 후 이야기가 끝나자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로 인사를 한 뒤 방문을 나서려던 그때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 그 모습을 보며 칼슨이 의문을 표하며 말을 걸었다.

“왜 그러십니까? 왕녀님, 무슨 문제라도….”

“아, 아니에요. 아무것도. 그럼 편히 쉬세요. 드레이크 백작님.”

“예, 왕녀님도 편히 쉬시기 바랍니다.”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그대로 문을 열고 나갔다. 엘리시아가 나가고 홀로 남게 된 칼슨. 그녀의 태도가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저녁 식사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식사를 하기 전에 몸을 씻기 위해 그는 서둘러 몸을 움직였다.

* * *

사흘이 지나 사절단을 위한 행사가 시작되었다.

행사의 시작은 성에 있는 대형 회장에서 이루어졌다.

회장의 크기는 어마어마하여 수백 명이나 되는 각국의 사절단을 수용하여도 매우 넉넉한 공간이 남았다.

처음에는 사절단들을 한데 모아놓고 제국의 역사 같은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하지만 사절단 대부분 그걸 흘려들은 채 준비된 다과를 먹으며 조용히 잡담을 나눈다.

형식적인 절차여서 그런지 제국 측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 그렇게 두어 시간을 보낸 뒤 이제 본격적인 행사가 진행되었다.

그건 바로 수여식.

“황제 폐하께서 납십니다.”

궁정 내관이 외치자 모든 이들이 잡담을 멈추고 그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을 보니 한 노인을 필두로 십수 명의 사람들이 기품 있는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하얗게 센 머리에 주름이 잔뜩 있는 쭈글쭈글한 얼굴. 키는 작지 않았지만 허리가 굽어 좀 왜소해 보이는 그 노인이 바로 아크레프 제국의 황제인 빈센트 베라 칸 아크레프였다.

황제가 단상 위에 있는 화려한 의자에 앉고 그 양옆에 중년의 남성과 노년의 여성이 앉았다. 인상착의를 보아하니 그들은 1 황자와 왕비인 것 같아 보였다. 그들이 그렇게 자리를 잡자 사회자는 형식적인 절차 몇 가지를 진행한 다음 곧바로 수여식을 진행하였다.

대륙 곳곳에서 벌어진 몬스터 웨이브를 막아내 위기를 구한 이들에게 상을 수여했는데 칼슨을 포함한 7명이 이에 해당이 되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중 4명이 제국의 인물들이었다.

그것으로 칼슨은 제국이 자신에게 상을 주려 한 목적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호의가 아니었다. 다른 왕국들을 이용해 자신들을 띄어주기 위한 일종의 퍼포먼스였던 것.

칼슨과 나머지 두 왕국의 인물은 그들을 띄어주기 위한 들러리에 불과하였다. 그리 생각하니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안 이상 다른 한 편으로는 안심이 된 것도 사실이었다.

목적이 확실한 이상 딱히 다른 술수를 걱정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예상대로 수여식의 순서는 왕국의 인물들부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중 첫 번째는 칼슨이었다.

“벤투스 왕국의 드레이크 백작은 단상 위로 올라서시오.”

사회자의 말에 칼슨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제법 넓은 단상이었다.

대충 봐도 50보는 넘어 보이는 넓이.

그곳에 올라온 칼슨은 사절단들이 모여 있는 곳을 넌지시 바라보았다. 각 왕국에서 온 수백 명의 사람들. 분명 본인들 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인물들일 텐데 이렇게 모여 놓고 보니 그저 평범한 귀족으로 보일 뿐이었다.

마치 제국의 신하처럼 보이는 구도. 아무리 자신들의 영향력을 과시하는 자리라고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모양새를 만드니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깽판을 칠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칼슨은 순순히 사회자의 말에 따랐다.

황제 앞 열 걸음쯤 뒤에서 멈춰 서서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다음 인물들이 호명되기 시작하였다.

“로스토프 왕국의 트롬베인 후작은 단상 위로 올라오시오.”

“노스다르 왕국의 오라드 공작은 단상 위로 올라오시오.”

벤투스 왕국 외 이번에 피해가 적었던 두 왕국의 인물들이었다. 엘리시아가 준 서류에서도 분명 저들이 언급되어 있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소드 마스터였으며 몬스터 웨이브 때 대단한 활약을 하여 자신들의 나라를 구한 이들.

그들이 호명된 이후 제국의 인물들이 불렸다.

“불사조 기사단장 리누스 자작은 단상 위로 올라오시오.”

“황금 사자 기사단장 하켄바워 자작은 단상 위로 올라오시오.”

“검은 용 기사단장 토날리 자작은 단상 위로 올라오시오.”

연달아 3명이 호명되며 칼슨의 주변에 앉아 경건한 자세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인물.

“흰 독수리 기사단장 이베르센 백작님은 단상 위로 올라오시기 바랍니다.”

그 말과 함께 단상 위로 올라서는 건장한 체구의 남성. 그는 서른 중후반쯤 돼 보이는 사내로 옅은 푸른빛이 도는 머릿결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이목구비는 선이 굵고 반듯한 미형의 얼굴. 정돈된 수염이 그를 한층 더 중후한 느낌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그가 올라서자 갑자기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그 유명한 대륙 10강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대륙 10강.

말 그대로 대륙에서 제일 강한 10명이라는 뜻이다.

그 또한 엘리시아가 나눠준 서류에 나와 있어서 칼슨도 알고 있었다. 소드 마스터를 넘어선 괴물 같은 실력의 보유자. 세간에는 그를 검왕이라 부르고 있었다.

자신 또한 소드 마스터의 경지를 넘어서서인지 괜한 호승심이 생기는 칼슨.

그래서 스킬을 써서 그의 능력을 확인해 보았다.

띠링─

[인물정보 열람]

…….

‘헉, 도대체 뭐야 이건!’

상태창을 본 칼슨의 눈이 점점 커지기 시작. 생각지도 못한 그의 능력에 칼슨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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