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화 베이도스에서 생긴 일(1)
퍼억! 퍽! 퍽!
“아아악! 아악! 으아아악!”
연달아 들어오는 타격에 상당히 고통스러웠는지 자지러지며 비명을 질러대는 루겐. 얼핏 보면 단순히 때리는 듯 보이지만 칼슨 또한 나름 혼신이 힘을 다해 구타하고 있었다.
최대한 고통스럽게, 하지만 죽지는 않게. 아주 세심하게 조절을 하며 정성스럽게 밟아주고 있었다.
‘캬~ 정말이지 기분 최고네.’
때릴 때마다 뭔가 속이 확 뚫리는 듯한 개운함이 밀려 들어왔다. 꽤나 참혹한 광경이라 주변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리긴 했지만 어느 하나 말리는 이가 없었다. 이미 그에 대한 동정심 따윈 한 줌도 남아있지 않았던 것.
퍽! 퍼억! 퍽! 퍽! 퍽!
“으아아악! 사, 살려…!”
고통 속에 자비를 구하려 하지만 칼슨은 들은 체도 하지 않으며 계속해서 밟아주었다. 이 정도 충격이면 기절할 법도 한데 칼슨의 섬세한 발길질은 놈의 정신을 아주 또렷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이어진 칼슨의 구타. 결국 놈은 개거품을 물며 그대로 실신해버렸다. 놈의 몰골이 누더기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생명이 위험할 정도의 심한 상처는 한 군데도 없었다.
결국 루겐은 만신창이가 되어 치료를 받게 되었다. 치료사들도 그의 몰골을 보고 난감해했지만 의외로 멀쩡해 상당히 놀라워했다. 결국 간단한 처치만으로 그는 금방 회복되었다.
그렇게 자신의 왕국 사람이 봉변을 당하였지만 어느 누구도 칼슨을 질책하는 이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를 좋게 보며 친해지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였다.
카텔로 후작 또한 그 일의 전말을 듣고서는 오히려 잘했다면서 칼슨을 치켜세워줬다. 그리고 다쳐서 몸져누워있던 루겐을 심하게 다그치며 질책하였다. 그렇게 목적지에 도착하기 며칠 동안 루겐의 입지는 점점 줄어들었으며 칼슨을 좋게 보는 이들이 늘어났다.
상황이 그렇게 되자 루겐은 칼슨을 더더욱 원망하였지만 정작 칼슨을 보기만 해도 자지러질 정도로 강력한 트라우마가 생겨버려 오히려 그를 피해 다니기 바빴다.
팍스갠더를 떠난 지 닷새째. 드디어 사절단은 제국의 수도인 베이도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 여기가 제국의 수도인 베이도스인가? 완전 다른 세상이로군.”
“과연 제국의 수도답게 모든 게 대단하군요.”
베이도스에 도착한 사절단은 도시의 웅장함을 보며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도시를 둘러싼 커다란 성벽 안에 들어서자마자 거대한 도로가 눈에 들어왔다. 마치 광장으로 착각할 만큼 널찍한 도로. 바닥에 깔린 석재는 틈이 거의 없어 매우 견고한 느낌이다. 그 위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수많은 인파들. 거기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수십 대의 마차들은 이곳이 얼마나 번화한 곳인가를 잘 알려주었다.
그 널찍한 도로 옆으로는 높은 건물들이 가지런히 배열되어 정갈한 느낌을 주었다. 그중 몇몇 건물들은 벤투스 왕국에서 볼 수 없었던 10층이 넘는 고층 건물들. 그런 것이 무려 수십 개는 넘어 보였다. 확실히 이곳의 건축 기술은 벤투스 왕국보다 뛰어난 것 같았다.
그렇다는 것은 곧 이곳에 높은 기술을 가진 건축가들이 있다는 말. 추후에 시간이 난다면 좀 알아봐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며 지나가던 와중 낯선 사람들이 그들에게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총 3명이었는데 그중 제일 앞에 서 있던 이가 진중한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저 혹시 벤투스와 슬로페 왕국에서 온 사절단이십니까?”
짙은 갈색 머리에 제법 훤칠해 보이는 그 남성. 그의 말에 라델리안 공작이 앞으로 나오며 입을 열었다.
“그렇소, 그대들이 우리를 안내해주러 온 사람들인가?”
“그렇습니다. 저는 사절단들의 안내 업무를 맡고 있는 엔티라고 합니다. 혹시 라델리안 공작님 맞으십니까?”
“그래, 내가 바로 벤투스 왕국의 라델리안이라네.”
“베이도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라델리안 공작님. 그럼 다른 분들 또한 확인을 마치고 안내를 도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라델리안 공작을 시작으로 사절단의 인원들을 하나하나 체크하며 서류에 적는 엔티. 그렇게 한참 진행을 한 후 일을 마친 그는 적어놓은 서류를 가방에 고이 집어넣고 말하였다.
“먼 이곳까지 오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다들 많이 지치신 것 같으니 먼저 숙소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앞장서서 걸어가는 엔티. 그의 안내에 따라 두 왕국의 사절단 또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따라가기를 한참. 어느덧 그들에게 배정된 숙소에 도착하게 되었다.
“여기가 바로 벤투스 왕국 사절단이 묵으실 곳입니다. 들어가시면 관리인들이 나와 여러분들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곳은 높은 담이 길게 펼쳐져 있었고 대문 안에는 넓은 정원이 보였다. 정원 뒤편에 커다란 저택이 보였는데 딱 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것이 귀빈들을 위해 준비해둔 듯하였다.
“벤투스 왕국의 사절단들은 이곳에 들어가시면 되고 슬로페 왕국의 사절단들은 다시 저를 따라와 주시면 됩니다.”
그렇게 슬로페 왕국의 사절단들을 데리고 사라진 안내자. 그들을 뒤로한 채 벤투스 왕국의 사절단은 대문으로 향하였다. 그러자 관리인으로 보이는 이들이 허겁지겁 달려와 안쪽에서 문을 열어주었다.
“환영합니다, 벤투스 왕국의 사절단 여러분. 어서 들어오시길 바랍니다.”
정돈된 콧수염을 가진 푸근한 인상의 중년 사내가 그들을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그의 안내에 따라 안으로 들어가는 벤투스 왕국의 사절단. 안쪽에 아름답게 꾸며진 정원을 보며 모두 감탄을 하였다.
“와, 여기 좀 보세요. 이곳에서 물이 뿜어져 나와요!”
“우와! 이것은 무슨 식물이지?”
처음 보는 것들에 모두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며 걸어갔다. 칼슨 또한 그것을 보며 놀랐는데 그의 관점은 남들과는 좀 달랐다.
‘허, 도시 안으로 들어설 때부터 느꼈는데 이 정도면 아예 문명 수준이 다르잖아?’
자신들의 왕국인 벤투스 왕국, 거기다 슬로페 왕국까지.
그곳들의 문명 수준이 중세 수준이라면 이곳은 거의 근세 시대에 가까웠다. 아무리 대륙에서 제일 발달한 제국이라고 하지만 정도 차이가 너무 심하였다.
그렇게 생각하며 걸어가고 있던 와중 어느덧 저택에 다다랐다. 멀리서 봤을 때도 그랬지만 가까이서 와보니 더 웅장하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저택. 정문에 있는 두 기둥에 정교하고도 섬세한 부조들이 조화롭게 새겨져 있었다.
“흠, 30년 전에 왔을 때랑 많이 바뀌었구먼.”
전에도 사절단으로 왔었던 라델리안 공작이 옛 생각을 하며 말하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때 당시에는 지금처럼 높은 건물도 많이 없었고 이런 저택 또한 없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그사이에 지어졌다는 건데. 고작 30년 사이에 이렇게 많은 변화가 있다는 것에 그는 놀라워했다.
저택 안으로 들어서자 멋들어진 인테리어가 바로 눈에 들어왔다. 바닥은 매끈한 대리석으로 만들어졌고 주변의 기둥이나 벽면 또한 대리석으로 마감이 되어 고급스러움을 연출하였다.
“병사들과 하인들이 묵는 곳은 저쪽으로 가시면 되고, 귀족분들과 수행원은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관리인의 안내에 인원들은 각자 묵을 곳으로 이동하였다. 병사들과 하인들은 안내원의 인솔로 1층으로 이동. 나머지는 관리인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칼슨의 방은 넓고 쾌적한 곳이었는데 햇살이 잘 드는 것이 제법 따뜻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수행원인 우터와 에드의 방은 그의 방 양옆에 두었으며 언제라도 그의 부름에 응할 수 있도록 초인종이 비치되어 있었다.
호기심이 든 칼슨은 그것을 한 번 시험해보았다.
띠링─
청량한 소리가 난 후 곧바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우터입니다, 영주님. 혹시 부르셨습니까?”
“그래, 들어와.”
칼슨의 말에 우터는 바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영주님.”
“우터, 네가 해줘야 할 일이 있다.”
“예, 분부만 내리십시오.”
해야 할 일이 있다는 말에 의욕을 보이는 우터. 그런 그를 보며 살짝 미소를 띤 칼슨은 말을 이어 나갔다.
“정보 길드에 가서 사람 좀 물색해줘.”
“정보 길드 말입니까? 어떤 이를 알아보면 됩니까?”
“뛰어난 건축 기술자 혹은 대장장이도 괜찮아. 어쨌든 유능한 기술자에 대해 최대한 많이 알아봐.”
“건축 기술자라…. 예, 알겠습니다. 영주님.”
고개를 숙인 우터는 그대로 등을 돌리며 방문을 나섰다.
우터가 떠나고 방에 홀로 남은 칼슨은 사절단의 일정을 다시 한번 확인한 후 생각에 잠기었다.
* * *
사절단을 위한 행사는 사흘 후에 열리기로 하였다. 대략 닷새 동안 진행되는데 칼슨에게 상을 주는 수여식은 행사가 시작되고 이틀 뒤에 예정되어 있었다.
그 말은 곧 그동안 시간이 남는다는 이야기. 그 시간 동안 칼슨은 우터가 알아 온 정보를 토대로 몇몇 인물들을 만나보기로 하였다.
정보 길드를 통해 알아 온 인물은 총 15명. 그중 제국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는 제외하고 남은 인원은 총 3명이었다. 바로 그들을 포섭하기 위해 찾아 나선 것.
우터와 에드를 대동한 채 거리로 나선 칼슨. 그가 첫 번째로 찾은 곳은 바로 이 허름한 뒷골목에 있는 어느 한 건물이었다.
〘알바레스 건축 사무소〙
건물은 매우 낡아 보였지만 간판만큼은 꽤나 신경 쓴 듯 매우 깔끔하게 관리되어 있었다.
딸랑─
문을 여니 문 위에 있던 작은 종이 울리며 손님이 왔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 소리에 안에 있던 한 여성이 칼슨을 보며 반갑게 맞이하였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 어떻게 오셨습니까?”
붉은 머리에 얼굴엔 주근깨가 가득한 그녀가 해맑은 표정으로 물어보자 칼슨은 살며시 입을 열며 말하였다.
“혹시 여기에 스테파노라는 사람이 있소?”
“아, 저희 아빠이신데 도대체 무슨 일이신가요?”
자신의 친부를 찾는 낯선 남성들을 보며 조금 경계심을 보이는 그녀. 그것을 느낀 칼슨이 미소 띤 얼굴로 부드럽게 이야기했다.
“아, 그에게 해코지를 하러 온 것은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만나보고 할 말이 있어서 왔소.”
“그러신가요?”
햇살같이 밝은 그 미소에 그녀의 경계심이 조금 옅어졌다. 잠시 생각한 그녀는 손짓을 하며 말하였다.
“저를 따라오세요.”
안 그래도 좁았던 1층의 공간. 그녀는 구석에 붙은 협소한 계단을 오르며 일행들을 안내하였다.
2층으로 올라가니 1층보다 훨씬 넓은 공간이 나왔다. 얼핏 봐도 1층의 서너 배는 되어 보이는 크기. 한쪽 벽에 있는 푸른색 문이 눈에 띄었다.
“아빠~ 손님들이 아빠를 찾아왔어요.”
안내하던 여성이 낭랑한 목소리로 말하자 그 문이 열리더니 추레한 모습을 한 남성이 나왔다.
“흐음, 손님이라고?”
며칠 동안 감지 않은 듯한 떡이 진 머리를 긁적이며 물끄러미 쳐다보는 스테파노. 자신의 딸이랑 같은 붉은 머리를 한 그는 퉁명스런 표정을 한 채 말문을 열었다.
“거, 나한테 무슨 볼일이라도 있소? 보아하니 귀족 나리들 같은데 쓸데없는 일 하지 마시고 조용히 가시기 바라오.”
“뭐? 이런 건방진 놈! 감히 영주님께…!”
그의 무례한 말투에 우터가 발끈했지만 칼슨이 손으로 막으며 제지하였다. 그리고 그를 향해 말을 하였다.
“나는 벤투스 왕국의 드레이크 백작이다.”
“네, 그러셨구려. 그런데 내겐 무슨 일로 오셨냐니까?”
“스테파노 알바레스, 네가 하고자 하는 일을 내가 도와주겠다.”
“뭐? 나를 도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뜬금없는 그 말에 스테파노는 화를 내었다. 난데없이 찾아와 자신의 일을 도와주겠다니. 하지만 칼슨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네가 여기저기서 퇴짜 맞은 그 설계. 그걸 내가 할 수 있게 해주겠다, 이 말이다.”
“…….”
갑자기 말이 없어지는 스테파노. 그리고 곧 그의 표정이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