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제국에서 날아온 초청장
“어, 영주님? 여기에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
방금 전까지 잔뜩 짜증 나 있던 그녀가 순식간에 밝아지며 톤까지 올라가자 같이 대화했던 마법사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하였다.
그녀가 인사하자 칼슨은 화답하며 말을 이어갔다.
“골렘에 대한 연구가 잘 되어가나 보러 왔지. 그래, 그동안 진전은 있었어?”
“저, 그것이….”
자신의 질문에 잠시 말을 흐리는 그녀.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칼슨의 표정이 심상치 않게 변해갔다.
* * *
“뭐? 그럼 7서클 마법사가 필요하다는 거야?”
아르모의 말에 놀란 칼슨이 되물었다.
그녀의 말은 이러했다.
책의 내용은 대부분 파악이 되어 진행을 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다만 몇몇 부분의 마법 각인의 수준이 높기에 최소 7서클은 돼야 가능하다는 것. 즉 현재 자신의 경지로는 불가능하다는 말이었다.
7서클.
고작 6서클과는 한 단계 차이지만 그 갭은 어마어마하였다. 7서클 이후부터 쓸 수 있는 마법의 급이 확연히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만큼 그 경지에 다다르기도 어렵고 그만큼 수도 적었다.
그리고 그런 이가 자신의 영지 마법사로 올 리도 만무.
칼슨이 머리를 매만지며 골치 아파하고 있을 때 아르모가 입을 열었다.
“네, 영주님. 그래도 전혀 성과가 없던 것은 아닙니다. 단순하거나 간단한 움직임은 구현이 가능합니다. 이를 테면 물건을 집는다거나 한 방향으로 계속해서 움직이는 정도 말입니다.”
“뭐? 그게…. 아!”
그녀의 말에 머릿속에서 뭔가가 번뜩이며 떠올랐다. 그가 생각한 것은 바로 동력장치. 즉 모터였다.
그것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은 많았다.
각종 기계장비부터 설비와 여러 인프라들. 거기에 자동차와 같은 이동 수단까지 무궁무진하게 쓰이는 것이 그것.
이와 같은 생각에 칼슨의 얼굴에서 점점 미소가 번진다. 그의 모습을 본 아르모가 무슨 영문인지 궁금해할 때 칼슨이 갑자기 소리치며 말한다.
“반라르! 어서 반라르에게 가자고. 아르모!”
“아, 네 영주님.”
그렇게 그녀를 데리고 야금 장인 반라르에게 간 칼슨. 그에게 모터에 대해 이야기 하였다. 역시 제작에 조예가 있어서인지 구조나 원리에 대해 어려워하지 않고 잘 이해하였다.
“예, 가능할 것 같습니다. 영주님.”
반라르가 진중한 표정으로 답하였다. 그 말에 칼슨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그는 잔뜩 흥분하며 이것저것 말하기 시작하였다. 그때마다 반라르와 아르모는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그것에 대해 큰 흥미를 보였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대화를 하고 있는 와중 어디선가 칼슨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영주님! 어디 계십니까?”
그 소리에 시선을 돌려보니 레인이 다급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리며 자신을 찾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칼슨은 손을 들며 레인을 부른다.
“레인, 나 여기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그리 호들갑이야?”
“아, 영주님! 여기 계셨군요.”
자신을 보며 달려오는 레인. 그의 손에 편지가 들려있었다.
그는 그것을 내밀며 말하였다.
“왕궁에서 서찰이 왔습니다.”
“응? 서찰?”
칼슨이 의문을 표하며 서찰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는 곧장 그것을 읽어 내려갔다. 그것을 읽어가는 동안 칼슨의 표정이 점점 심각 해져갔다. 그 모습을 보던 아르모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그에게 물어보았다.
“영주님,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그녀의 질문에 서찰을 접은 칼슨. 크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갔다.
“후, 이번에 제국 사절단으로 내가 뽑혔다는군.”
“예에? 사절단이요? 그것도 제국 말입니까?”
“그래, 제국. 바로 아크레프 제국 말이야.”
“어찌 그런….”
벤투스 왕국이 비록 아크레프 제국의 신하국은 아니지만 제국은 그들의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대부분의 왕국에 초청장을 보낸다. 그것을 받은 나라들 또한 제국과의 관계가 나빠지는 것을 원치 않기에 어지간한 사유가 아니면 사절단을 보내었다. 또한 대륙에서 제일 발달한 제국이니만큼 식견을 넓히기 위해 명문 귀족들이 자청해서 가는 경우도 많았다.
“일단 왕궁으로 가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봐야 되겠군.”
현재 드레이크 영지가 바쁘다. 건설도 해야 하고 마법 물품도 만들고 골렘 연구도 해야 했다. 당연히 영주인 칼슨이 살펴봐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렇게 할 일이 많은 자신에게 난데없이 제국에 사절단으로 가라고 하다니 그의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을 수밖에.
하지만 현재 왕궁은 자신에게 매우 우호적이다.
특히 실권자 중에 한 명인 엘리시아는 대표적인 자신의 조력자. 그녀가 아무런 이유 없이 자신에게 해가 될 일을 할 리가 없었다.
그러기에 왕궁으로 가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봐야 했다.
“레인, 어서 왕성으로 갈 채비를 해라. 오늘 안으로 출발하도록 하겠다.”
“예? 오늘 말씀이십니까? 오늘은 쉬시고 내일 날이 밝으신 다음에 가시는 것이….”
늦은 오후이기에 레인이 머뭇거렸다. 하지만 칼슨은 다시 한번 분명히 말하였다.
“아니, 지금 당장 준비해라. 어차피 해야 할 일. 빨리 처리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그러시다면야…. 알겠습니다, 영주님. 지금 당장 갈 채비를 하겠습니다.”
“그래, 수고하도록. 레인.”
“예, 영주님.”
고개를 숙인 후 그대로 자리를 떠나는 레인. 칼슨은 아르모랑 반라르와 남은 이야기를 마저 하였다.
* * *
준마를 타고 부지런히 간 칼슨은 사흘 후에 왕성에 도착하였다. 그곳에 도착한 그는 곧장 엘리시아를 대면하였다.
그의 요청을 받자마자 엘리시아 또한 그를 맞이하며 지체 없이 자리를 마련하였다.
왕궁 귀빈실.
두 명의 남녀가 테이블에 앉아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둘은 바로 엘리시아와 칼슨. 차를 한 모금 마신 칼슨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거두절미하고 묻겠습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엘리시아 왕녀님. 제가 사절단에 들어가게 된 이유를 제대로 설명해주셔야 할겁니다.”
톤의 변화가 없이 차분하게 말한 듯 보였지만 엘리시아는 그가 매우 화가 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후, 네. 말씀드리지요.”
잠시 한숨을 쉬며 대답을 하는 그녀. 그 태도를 보아선 그가 사절단에 들어가게 된 것이 악의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뒤이어 이어진 엘리시아의 말.
“사실 드레이크 백작님을 사절단에 넣은 것은 왕궁의 의사가 아니었어요.”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분명 서찰에 자신을 사절단에 임명한 것이 왕국이었는데. 칼슨은 의구심이 가득한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그의 시선에 부담을 느끼는지 고개를 숙이는 그녀.
“왕궁의 의사가 아니라니요? 그럼 대체 누구의 의사란 말입니까?”
“…제국의 요청이 있었어요.”
“예에? 그게 무슨….”
엘리시아의 말에 칼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제국이라니요…. 설마?”
“예, 초청장을 보낸 아크레프 제국에서 백작님을 직접 지목하였어요.”
“에에? 그게 사실입니까?”
“네, 사실이에요.”
“허, 그런….”
제국에서 자신을 거론했다는 말에 칼슨은 황당하였다. 제국에서 왜 자신을 이야기 한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혹시 왕녀님은 제국이 왜 그런지 아십니까?”
“아니요, 전혀요. 제국이 이러는 경우는 저도 처음 봤습니다.”
칼슨의 질문에 엘리시아는 고개를 저으며 답하였다.
이런 적이 처음이라면 그들에게 뭔가 의도가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어떤 일이든 아무 이유 없이 벌어지는 경우는 없다. 게다가 제국에서 하는 일이라면 필시 뭔가가 있을 것이다.
“흠, 혹시 제국의 요청을 거부할 수 있습니까?”
“아, 그럴 수는 있는데 사유가 정당하지 않으면 아마 제국에서 자신들을 무시한다고 생각할 거예요. 만약 그렇게 된다면 매우 곤란한 상황에 처 할 수도 있고요.”
하긴 그런 대국한테 괜히 트집을 잡히면 곤란하였다. 힘이 있는 자에게 뭔가 빌미를 제공한다는 것만큼 위험한 시도는 없다. 물론 상대가 어쩌지 못할 힘을 가지고 있다면 상관없겠지만 현재 아크레프 제국과 벤투스 왕국과의 국력 차이는 몇십 배나 차이가 난다.
이 정도 차이면 직접적인 침략이 아닌 다른 방법만으로도 왕국을 망하게 할 수도 있었다. 예를 들면 주변 다른 왕국들을 압박해 벤투스 왕국을 공격하게 만든다든지, 아니면 상단이나 여러 업체 쪽에 압박해 차단시키는 일을 벌여도 벤투스 왕국은 상당히 힘들어질 것이다.
칼슨이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이어진 엘리시아의 말에 그는 크게 놀라고 말았다.
“게다가 제국에서 백작님에게 상을 내린다고도 하였어요.”
“예? 상이라고요? 갑자기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제국이 자신에게 상을 내린다? 도대체 왜? 의도가 있다고는 하지만 정말이지 뜬금없었다. 그가 그렇게 어이없어하고 있는 와중에도 엘리시아는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이번 몬스터 토벌에 큰 공을 세워서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아니, 제가 몬스터를 토벌한 곳은 벤투스 왕국인데 왜 제국에서 상을 줍니까?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네, 저 또한 그게 이해가 되지 않아요. 사실 제국에서 그럴 이유는 전혀 없지요. 그냥 백작님에게 상을 주는 게 목적으로 그런 이유를 붙인 것 같아요.”
“그런….”
오히려 대놓고 호의적으로 나오니 제국으로 가는 것은 더욱 꺼림칙하였다. 물론 사절단을 직접적으로 건드리지는 않겠지만 상까지 준다는 핑계로 자신을 불러들인다는 것이 뭔가 목적이 있다는 것인데, 칼슨은 그 목적을 도저히 종잡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그들의 장단에 따라줘야 하겠군요. 섣불리 거절했다가는 오히려 일을 더 키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네, 제 생각도 마찬가지예요.”
이럴 때는 어쭙잖은 짓을 하다 괜한 트집을 잡히는 것보다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이 늘 좋은 결과를 주었다. 아무래도 직접 만나 저들의 의도를 파악하고 대처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그렇다면 일정은 언제쯤입니까? 또 사절단 명단은 저 말고 또 누가 가게 되는 겁니까?”
“출발은 일주일 뒤에 할 거예요. 그리고 드레이크 백작님 외 다른 사절단은 저랑 라델리안 공작님, 그리고 바스테르 후작님이 가게 될 거예요.”
“라델리안 공작님과 바스테르 후작님 말입니까? 이거 왕녀님을 제외하면 전부 소드 마스터들이군요.”
“네, 혹시나 불상사가 벌어지면 안 되기에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요.”
“예, 왕녀님 말씀이 맞습니다.”
엘리시아의 말대로 그곳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몰랐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벤투스 왕국에서 최대한 강한 이로 구성한 것 같았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지만 사실 아무 일도 없을 지도 모른다. 아니 오히려 그럴 확률이 더 높았다. 그러나 보험을 들어두어서 나쁠 것은 없으니 이 조합으로 사절단을 꾸리는 것이 칼슨은 괜찮아 보였다.
“혹시 인원은 몇 명까지 가능합니까?”
“주요 인원 외 수행원은 한 명당 3명까지 그 외 병사와 수발들 하인들은 스무 명 까지 가능해요.”
“그러타면 총 인원은 대략 100명이 조금 안되겠습니다.”
“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왕국에서는 그 정도의 수로 꾸리니까요.”
“예, 그렇군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칼슨. 처음에는 그다지 내키지 않았지만 지금은 마음가짐을 달리 먹었다. 어차피 벌을 받으러 가는 것도 아니고 상을 준다고 하지 않는가. 못 갈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렇다면 저는 이제 같이 갈 인원들을 추슬러야겠습니다.”
“네, 드레이크 백작님.”
대화를 마친 둘은 그렇게 각자 사절단의 인원을 구성하기 위해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일주일 뒤.
100여 명으로 꾸려진 벤투스 왕국의 사절단이 아크레프 제국으로 출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