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몬스터 웨이브(9)
순간 끔찍한 통증이 로칸에게 전해지며 고통스러워하였다.
“크아아아아아악!”
콰아아아앙────!
그대로 몸이 터져버리며 산산조각이 난 로칸의 몸뚱이. 그 모습을 본 칼슨은 씁쓸한 얼굴을 하며 나지막이 말하였다.
“쳇, 이놈도 재료로는 쓸 만해 보였는데….”
상대하기 까다로워 단숨에 처치하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 칼슨은 전장을 마무리하기 위해 아군과 함께 남은 몬스터들을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로칸이 죽자 나머지 구심점을 잃은 나머지 몬스터들은 일방적으로 드레이크의 병사들에게 학살당하였다.
사람들을 공포로 물들게 한 몬스터들이지만 이미 몇 번의 경험이 있는 그들에게는 그저 손쉬운 먹잇감일 뿐.
“죽어라! 이 괴물들아!”
“죽어! 죽어! 개 같은 놈들!”
푸욱─! 푹! 푸욱! 푹─!
“케에에엑!”
“꾸웍!”
대열을 맞춰 한쪽으로 밀면서 계속해서 찔러대는 병사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몬스터들이 서로 뭉쳐지며 정갈하게 정리가 되어갔다. 그렇게 몬스터 사체가 쌓인 곳은 처리반이 달려 나가 삽시간에 해체. 최대한 많은 부산물들을 채취하였다.
‘정말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상황이야?’
분명 이곳은 전장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대규모 도축장이랑 다름없는 모습. 그것을 두 눈으로 보고 있던 엘리시아는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이제까지 이 몬스터들로 인해 그렇게 고생을 하였는데 눈앞의 모습을 보니 허탈하기 그지없는 심정이다.
그렇게 멍하니 그것을 구경하고 있을 때 칼슨이 그녀에게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괜찮으십니까. 엘리시아 왕녀님?”
“아, 네. 괜찮아요. 드레이크 백작님. 저희를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하하, 아닙니다. 어차피 그냥 하는 것도 아니고 다 계약한 대로 하는 것인데요.”
“네, 당연히 그렇긴 하지요 하지만 목숨을 구원받았다는 것 또한 사실이지요. 정말이지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진중한 모습으로 자신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자 칼슨은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비록 그가 나타나 위기에서 구해내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녀의 병력 또한 필사적으로 자신들을 도왔다.
어떻게 보면 그 노고를 공으로 취한 것이나 다름없는 격. 조금 양심이 찔렸지만 어찌 됐든 그녀의 말 또한 사실이니 담담하게 그녀의 감사를 받아들였다.
“예, 왕녀님의 마음은 잘 알겠습니다.”
선을 긋는 태도에 그녀가 조금 아쉬운 표정을 하였다.
뭐라도 해주고 싶은데 거절당한 사람의 얼굴이랄까? 물론 칼슨이 이것을 빌미로 무엇을 요구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것은 하수나 하는 법. 이대로 마음의 짐을 주어 차후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게 더 이득일 것이다.
그렇게 그녀와 대화를 하고 있을 때 우터가 자신에게 다가오며 말을 하였다.
“영주님, 몬스터들을 모두 처리하였습니다.”
“그래, 모두 수고하였다. 그나저나 처리반들의 일이 상당히 많겠어?”
“예, 아무래도 몬스터들의 숫자가 많다 보니 그럴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그렇긴 하지.”
우터의 말에 칼슨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그의 말대로 이곳에서 처치한 몬스터의 숫자만 3만이 넘어간다. 고작 1천 명 정도의 처리반으로 그 많은 사체들을 처리하기엔 버거울 것이었다.
“그럼 병사들에게 말해 처리반의 일을 돕도록 해. 그래도 단순히 힘만 쓰는 일들은 할 수 있지 않겠어?”
“예, 알겠습니다. 그리하라 명하겠습니다.”
칼슨의 말에 고개를 숙인 우터는 지시를 내리기 위해 곧바로 등을 돌렸다. 그리고 곧 모든 인원이 몬스터 처리에 매달리기 시작. 무척이나 많은 양이었지만 다행히 해가 지기 전까지 마무리가 되었다.
“이제 어쩌실 건가요? 드레이크 백작님.”
“흠, 글쎄요.”
엘리시아의 물음에 칼슨은 머리를 매만지며 생각한다.
아직 서북부 지역이 남아있었으나 소식에 따르면 그곳은 아직 잘 막아내고 있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병력들은 여기까지 급히 오고 거기다 치열한 전투까지 벌이느라 많이 지쳐있었다. 때문에 오늘 밤은 이곳에서 휴식을 취해야할 것 같았다.
“아무래도 오늘밤은 이곳에서 쉬어야겠습니다.”
“네, 그러세요.”
칼슨의 답에 엘리시아는 살짝 미소를 보인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드레이크의 병력들은 서둘러 서북부 지역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엘리시아는 아쉬운 마음을 간직한 채 그들이 사라질 때까지 시선을 때지 못하였다.
* * *
서북부에 도착한 칼슨은 라델리안 공작과 대치하고 있던 몬스터 무리들을 단숨에 처리하였다. 그동안 자신이 애를 먹고 있던 놈들을 그가 와서 순식간에 정리하자 라델리안 공작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허허, 이럴 수가! 직접 눈으로 봐도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군.”
특히 칼슨이 보여준 엄청난 무용. 그것은 소드 마스터를 넘어선 절대자의 모습이었다. 라델리안 공작은 그 같은 모습을 젊었을 때 아크레프 제국에서 본 적이 있었다.
검왕 리로이 이베르센.
현재 아크레프 제국의 백작이었다.
그는 백작가의 장자로 어린 시절부터 검술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고작 스무 살의 젊은 나이에 소드 마스터가 되며 그 명성을 높였다.
그때 당시 그의 검술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라델리안 공작은 아직도 그 모습이 기억에 선명하였다.
당시에 같은 소드 마스터와 대련을 하고 있었는데 그는 상대를 압도하며 순식간에 제압해 버렸다.
그야말로 일방적인 승리.
그리고 그 승리가 당연하듯이 고고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의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하였다.
그때 그는 처음으로 소드 마스터들도 그들끼리 차이가 많이 난다는 걸 알았다. 가히 절대자라 할 만한 경지.
지금의 칼슨에게서 그 당시 이베르센 백작이 연상되었던 것.
“드레이크 백작은 벤투스 왕국에서 단연 최고의 검수이다!”
그가 그렇게 공언하자 칼슨의 명성은 다시 한번 튀어 올랐다. 몬스터 웨이브를 단독 세력으로 막아낸 영웅에 왕국 최고의 강자에게서 공인된 최강자의 칭호.
이제 그의 이름은 벤투스 왕국뿐 아니라 다른 왕국에까지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 * *
제법 어두운 공간.
하지만 그곳은 꽤나 널찍하였다.
햇빛 하나 들지 않는 곳이었지만 여기저기 조명이 있어 시야가 갇혀있지는 않았다.
그곳 중앙에 큰 원형 테이블이 있다.
테이블에는 총 12명의 사람이 앉아있었다.
한 명은 붉은색, 나머지 인원들은 모두 검은색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중 붉은색 후드를 쓴 자가 말문을 열었다.
“이번 몬스터 웨이브는 대부분 성공리에 끝난 거 같군. 하지만 몇 곳이 계획이랑 달리 별 피해 없이 지나갔더군.”
제법 톤이 굵은 사내의 목소리. 나지막한 말투였지만 엄연히 누군가를 문책하는 내용. 그 말에 한 명이 급히 고개를 조아리며 말을 하였다.
“죄송합니다, 마스터. 한 애송이가 끼어드는 바람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후,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하는가? 고작 한 영지의 영주 때문에 일을 망쳤다고?”
톤이 일정한 나른한 어조. 하지만 그 끝에서 미세한 변화가 느껴졌다. 그것을 눈치챈 상대는 더 이상 항변을 그만두고 바짝 머리를 숙였다.
“아, 아닙니다. 이 모든 건 제 불찰입니다. 용서해주십시오. 마스터!”
“쯧, 능력이 부족해서 일을 못 했으면 잘못했다 시인을 하고 고쳐야지. 변명이나 해대고 말이야…. 그런데 다른 이들은 왜 가만히 있나?”
“…….”
주변을 흘겨보며 묻자 이윽고 그에 답을 하는 두 명.
“용서해주십시오. 마스터.”
“마스터, 죄송합니다. 제발 자비를 베풀어주시기를….”
그들 또한 마찬가지로 바짝 허리를 숙이며 용서를 빈다.
이에 붉은 후드를 쓴 남성은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렇다면 지금 일을 그르친 곳이 벤투스 왕국과 로스토프, 그리고 노스다르 왕국. 이 세군데 인가?”
느릿한 말로 묻자 바로 옆에 있는 이가 대답하였다.
“송구하지만, 그렇습니다. 마스터.”
“쳇, 어쩔 수 없지. 그런다고 딱히 대업이 크게 틀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다행히 이번엔 그냥 넘어가는 느낌이라 모두들 안도하는 분위기. 허나 그는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허나 다음에 실패하면 이후 기회는 없을 것이야. 나는 기회를 많이 주지는 않거든.”
“…….”
“그러니 다음부터는 조금 더 필사적으로 하기를 바란다.”
“예, 마스터!”
그의 말에 일제히 답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그들을 지켜보는 마스터. 그는 알 수 없는 표정을 한 채 다음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 * *
칼슨이 몬스터 웨이브를 해결한 지 다시 석 달이 지났다.
드레이크 영지가 몬스터 사냥을 통해 얻은 몬스터 부산물의 양은 상상이상으로 많았다. 거기다 추가로 막대한 양의 보상금까지 받았으니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기.
칼슨이 얻은 이득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몬스터들에게 파괴된 영지들의 재건 사업 또한 그가 맡게 되었다. 이미 대규모 건축 경험이 많은 ‘드레이크 건설이’기에 많은 영지들이 그곳에 발주를 넣었다.
게다가 당장 돈이 부족한 영지도 상관없었다. 그런 그들을 위한 특별 대출 상품 또한 마련하였기에 대다수 영지들의 재건사업을 드레이크 건설에서 도맡게 되었다.
* * *
드레이크 영지 내 마법 제작소.
마법 단장인 아르모를 중심으로 각종 마법 물품을 만들어 내는 이곳. 평소에도 바쁜 곳이었지만 최근에는 눈코 뜰 새 없이 여유가 없어졌다.
그 이유는 바로 다량으로 얻은 몬스터 부산물 때문.
몬스터 웨이브 때 얻은 부산물로 많은 물품들을 만들 수 있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포션.
풍부한 재료 덕분에 이곳에서는 매일 수백 개가 넘는 포션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만큼 마법사들이 죽어라 고생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영지 마법사도 더욱 늘었다.
아르모가 6서클 마법사가 되면서 그 위상이 높아졌기 때문. 물론 풍부한 마법 재료들 또한 그들에게 좋은 미끼가 되었다. 아무튼 그렇게 새로 들인 영지 마법사의 수가 이제는 50이 다되어 간다. 물론 칼슨이 직접 그들의 목적과 사심을 검증한 것은 당연한 수순.
어쨌거나 일도 많고 사람도 많아진 마법 제작소는 무척이나 분주해진 상황. 그런 그곳에 오랜만에 칼슨이 찾아왔다.
“영주님, 오셨습니까.”
그가 들어서자마자 선임 마법사인 예레반이 인사를 하였다. 그는 4서클 마법사로 영입 초반에 이곳에 들어온 멤버 중 하나였다.
“그래, 아르모는 어디 있나?”
“예, 마법 단장님은 안쪽에 계십니다.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래, 앞장서라.”
그렇게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간 칼슨. 한참을 가자 어느 커다란 공간에 다다르게 되었다. 그곳에는 거대한 인간의 모습을 한 석상이 있었는데 그 모습이 예전에 봤던 골렘과 모습이 흡사하였다. 그 석상 아래에 아르모가 다른 남성이랑 의견을 주고받으며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몇 번을 말해요!”
“하지만 마법 단장님. 이쪽에 마법 각인을 새길 공간이 도저히 안 나옵니다.”
“그래서 제가 크기를 더 줄이라고 했잖아요. 에휴, 정말이지 이렇게 말을 안 들어서야….”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진저리를 치는 그녀. 이내 칼슨이 온 것을 눈치채고 웃는 얼굴로 다가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