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몬스터 웨이브(3)
그 몬스터는 다름 아닌 오거였다.
그런데 크기가 매우 컸다. 자그마치 5미터가 넘어가는 신장. 다른 오거에 비해 머리 2개만큼이나 큰 놈이었다. 허나 그것은 그리 유별난 특징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놈의 머리는 하나가 아닌 두 개였기 때문. 그때 우터가 입을 열며 말하였다.
“아마도 저것은 ‘투 헤드 오거’ 같습니다.”
“아, 저게 그거야?”
오래전 칼슨이 책에서 봤던 기억에 있었다.
투 헤드 오거.
다른 오거에 비하여 마기의 영향을 진하게 받은 놈들.
육체적으로도 월등히 강했지만, 어느 정도 지능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마법까지 쓸 수 있었다.
완력 자체도 기존 오거에 비해 몇 배로 강한데 거기다 마법까지 사용해서 드래곤을 제외한다면 거의 최상위에 군림하는 몬스터라고 보면 되었다.
‘그럼, 그만큼 좋은 재료가 얻어지겠네?’
겁을 먹기는커녕 오히려 탐욕스런 눈을 하고있는 칼슨. 그는 우터에게 말을 하였다.
“우선 저놈을 잡도록 하겠다. 우터, 너는 어서 아르모에게 가 마법 병단을 데려와라! 나는 에드와 에밀리와 함께 먼저 놈을 상대하겠다.”
“예, 알겠습니다! 영주님.”
주군의 말에 그대로 부복하며 말머리를 돌리는 우터. 그런 그를 등지며 칼슨은 말한다.
“에드, 에밀리! 너희들은 나를 따라 저놈을 상대하기로 한다!”
“예, 영주님.”
“명을 받듭니다!”
무려 두 명의 소드 마스터에 군주급 정령이랑 계약한 정령사의 조합이다. 제아무리 투 헤드 오거라도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고삐를 튼 후 박차를 가해 앞으로 달려 나갔다.
놈에게 가는 길에는 수많은 몬스터들이 가로막고 있었지만 이미 SS급 능력치로 도배된 칼슨에게는 낙엽 같은 존재들.
그의 검이 수십 개로 늘어나며 단숨에 놈들을 썰어버렸다.
스윽─! 서걱! 퍼억! 서걱!
고블린들의 머리가 부서지며 뇌수가 전신에 흩뿌려졌다. 코볼트의 몸은 걸레짝처럼 너덜너덜해지며 그대로 말굽에 짓밟혔다.
오크의 심장은 터져버렸고 놀 또한 사지가 잘려버리며 죽어 나갔다.
그렇게 몬스터들의 피로 물든 붉은 길. 그 길을 따라 쭉 따라가니 어느덧 눈앞에 ‘투 헤드 오거’가 다가오고 있었다.
“쿠아아아아! 저기 강한 놈! 아니 내가 더 강함!”
“케륵 케륵! 맛있나? 그럼 일단 때리고 본다!”
놈의 손에 들린 거대한 나무 기둥이 칼슨을 향해 내리친다.
두 손으로 앉지도 못할 만큼 두꺼운 기둥이 눈앞에 다가왔지만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살짝 고삐를 틀며 종이 한 장 차이로 그것을 피하였다.
콰아아아앙───!
무시무시한 파괴력에 그곳 바닥이 터져나가며 주변으로 파편이 비산하였다. 잔뜩 일렁이는 흙먼지로 인해 주변이 보이지 않자 투 헤드 오거는 마력을 끌어모으며 주문을 발동하였다.
《시체 폭발》
콰앙! 콰광! 콰아앙─! 콰과광─!
주변의 시체들이 부풀어 오르며 그대로 폭발하였다. 그 폭발에 주변의 시야는 더 차단되었지만 그래도 이런 폭발에 살아남을 생명체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여긴 놈은 만족스러운 듯 게걸스럽게 웃어대었다. 그리고 냄새를 맡으며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 그때였다.
“하, 까딱하다가 뒈질 뻔했네. 다들 괜찮아?”
“네, 영주님. 저희야 가까이 가지도 않았어요.”
“전 괜찮습니다. 괜찮으십니까, 영주님?”
“어, 난 괜찮아. 이놈 마법이 위험하니까 너희들은 일단 뒤로 물러나 있어.”
다시 놈 앞에 다가선 칼슨. 주변이 초토화될 정도의 폭발에 타고 있던 말은 죽어버렸지만 그는 먼지만을 뒤집어썼을 뿐 별다른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상대가 무사하다는 것을 인지한 투 헤드 오거가 입을 열었다.
“크르르르, 살았다? 강하다! 모른다!”
“쿠워! 아니다! 죽이면 된다! 약하다!”
두서없이 말을 내뱉으며 다시 칼슨을 공격하였다.
부우우우우우웅────!
거친 풍압을 일으키며 내려치는 통나무. 하지만 에밀리가 손을 내밀자 스카디엘라의 힘이 발휘되면서 그대로 얼어버리고 만다.
“우어어어? 몸 안 움직인다! 춥다!”
“쿠룩, 얼었다. 안 좋다! 시리다!”
갑자기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된 투 헤드 오거는 당황하기 시작하였다. 그 틈을 노린 칼슨. 그는 오러 블레이드를 모아서 압축해 고속으로 회전시켜나갔다.
위이이이이잉────
오러 블레이드가 매섭게 소용돌이친다. 그리고 그 회전이 극에 달하였을 때 칼슨은 놈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쿠러러어억? 공격한다! 인간 놈!”
조그만 인간 놈의 검에서 빛이 나더니 그대로 자신에게 쏘아졌다.
툭!
뭔가가 자신의 가슴을 가볍게 치는 느낌이 들었다.
“쿠어어? 뭐지? 빛난다!”
“케륵! 답답하다! 아프다! 이상하다!”
그곳을 바라보니 하얀빛이 점을 그리고 있었다.
그 점은 줄기를 타며 점점 커지더니 가슴 전체를 뒤덮는다. 그리고는 눈부신 섬광과 함께 폭발이 일어났다.
콰아아아아아왕─────!
투두둑─ 투둑─!
뼈와 살점이 여기저기 날아가며 땅에 떨어졌다.
눈앞을 보니 하반신만 남은 투 헤드 오거.
그 거대한 몸의 상체가 그대로 터지면서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쿠우웅──!
하반신만 남은 놈의 시체가 쓰러지자 땅이 크게 흔들리며
굉음을 내었다. 그 모습을 본 칼슨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였다.
“아, 이런! 다 날려 먹었잖아!”
원래의 목적이었던 몬스터 부산물. 특히 이놈은 매우 좋은 것을 줄 거라 기대하였는데 몸체를 통으로 날려버리고 말았다.
위험해 보여 단숨에 없애려고 비전 검술을 쓴 것이 실수였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깔끔하게 숨통을 끊었어야 했는데.
칼슨은 머리를 긁적이며 아쉬워하였다.
“꿔우어락?”
자신들의 우두머리가 허무하게 죽어버리자 몬스터들의 눈은 이미 공포심에 물들었다. 슬금슬금 뒷걸음치며 도망가는 놈들. 그것을 본 칼슨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몬스터들이 도망치기 시작한다. 어서 놈들을 잡아라! 절대 놓치지 마라!”
“와아아아아아아!”
그의 명에 일제히 몬스터들을 추적하는 기사들. 칼슨 또한 놈들에게 달려가며 하나씩 베어나갔다.
‘이 돈 덩어리들을 놓칠 수 없지!’
푸욱! 서걱─! 퍼억─! 푹! 서걱─!
“쿼어어어억!”
“키에에엑!”
“꺄오오오오오옥!”
마치 농작물을 수확하듯이 태연하게 놈들을 사냥하는 드레이크의 병력들.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익숙한 그 모습에 바스테르 후작은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았다.
“허, 이거 누가 몬스터이고 사람인지 모르겠구먼.”
조금 전까지 자신들을 위협했던 몬스터들이었지만 이제는 조금 불쌍한 느낌마저 든다.
전투병들이 몬스터를 쓰러트리면 뒤이어 일단의 무리들이 그 시체를 해체한다. 일시 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에 이곳이 전장인지 도축장인지 헷갈릴 정도.
칼슨이 데려온 병력은 총 삼천여 명. 그중 천명이 몬스터 처리반이었다. 몬스터가 죽은 뒤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가 떨어지기에 빠른 처리를 해야 했다. 그렇기에 칼슨은 영지 내 몬스터 처리반을 대폭 증원하여 데려왔었다.
그렇게 전장에 몬스터들의 씨가 말랐을 무렵. 어느새 말을 빌려 탄 칼슨이 바스테르 후작에게 다가왔다.
“괜찮으십니까? 바스테르 후작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오랜만이오, 드레이크 백작. 먼 길까지 와서 우리를 구해줘 고맙소.”
“하하하, 고맙기는요. 다 약조대로 하는 것이지요.”
“하하! 그래, 약조. 물론 보상은 당연히 받게 될 것이오. 그것과 별개로 내가 고마워서 그러는 것이지.”
“네, 후작님의 마음 잘 알겠습니다.”
그렇게 이야기가 오가는 중 에드가 이쪽으로 다가오며 말을 하였다.
“영주님, 놈들을 다 잡았습니다. 이제 처리반이 할 일만 남았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그럼 기사들과 병사들을 쉬게 하여라. 몬스터를 잡아야 할 곳이 여기뿐만이 아니니까.”
“예, 영주님.”
힘차게 대답한 에드는 고개를 숙이며 그대로 말머리를 돌려 병사들에게 갔다.
그를 본 바스테르 후작이 눈에 이채를 띠며 묻는다.
“혹시 그가 자네 영지의 기사단장인 페이런 경인가? 영지전 때도 큰 활약을 했다던데 가까이서 보니 범상치 않은 자로군. 아까 몬스터들을 상대할 때도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하는 것 같던데, 혹시?”
“예, 얼마 전에 소드 마스터가 되었습니다.”
“아, 그런…!”
칼슨의 대답에 탄성을 지르는 바스테르 후작. 소드 마스터라면 당장이라도 백작위를 받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그는 칼슨의 충성스러운 가신. 바스테르 후작은 그런 인재를 가진 칼슨이 내심 부러웠다.
그러고 보니 그뿐만이 아니었다. 귀궁이라는 궁술에 능한 자도 드레이크의 소속이었다. 거기다 들리는 소식에 따르면 그의 영지에는 정령사도 있다고 하였다. 아마 좀 전에 칼슨의 옆에 있었던 소녀가 그 정령사일 것이다. 또 최근에는 영지 마법사가 5서클에 다다랐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넓은 영지도 그렇지만 인재까지 그렇게 풍부할 줄이야….’
이제 벤투스 왕국 내에서 드레이크 영지보다 강력한 세력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굳이 따진다면 서북쪽의 패자인 라엘리안 공작 정도가 그와 견줄 만할 것이다.
불과 몇 년 전 만 해도 작은 영지의 자작인 자가 이토록 커졌을 줄이야. 이제는 그가 두려울 지경이었다.
상념을 마친 그는 칼슨에게 말을 이어갔다.
“그래, 그래도 여기까지 오고 큰 전투까지 치르느라 많이 피곤할 터인데 오늘은 우리 성에서 쉬고 가지 않겠나?”
“흐음, 감사한 말씀이지만 지금 다른 곳에서도 지원 요청이 와서 오래 있을 수 없습니다. 병사들의 휴식이 끝나는 대로 곧장 그곳으로 가야 합니다.”
“허어, 그렇구먼. 알겠네. 그렇다면 내 더 이상 권하지는 않겠네.”
“감사합니다. 후작님.”
후작과 대화를 마친 칼슨.
곧장 자신의 병력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 부대를 재정비 하였다.
그렇게 바스테르 후작을 위기에서 구해낸 드레이크의 병력들은 몇 시간 정도의 휴식 후에 곧장 다른 곳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 * *
“음, 이제 이곳은 거의 마무리가 된 것 같군.”
“예, 영주님. 처리반들이 일을 마치면 이제 여기서 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에드의 대답에 칼슨은 고개를 끄덕이며 흡족해하였다.
칼슨이 이끄는 몬스터 토벌군의 활약에 벤투스 왕국 서남부 일대에 발생한 몬스터 웨이브는 일단락으로 처리되었다. 그가 그 지역에서 처치한 몬스터 수만 대략 3만. 실로 어마어마한 숫자가 아닐 수 없었다. 당연히 그만큼 몬스터 부산물의 양 또한 엄청나게 많았다.
만족할 만한 수확을 거뒀지만 칼슨은 아직 배가 고팠다. 아직 지원 요청을 한 곳이 몇 군데 남아있었기 때문.
“다음에 갈 곳은 어디지?”
“로버데인 인근과 서북부 지역입니다.”
“흠, 갈 길이 꽤나 멀겠군.”
지금 칼슨이 있는 곳은 바로 왕국 서남쪽 끝. 로버데인 인근과 서북쪽을 가기 위해서는 베르호프 요새를 지나야 했다. 쉽게 말해 산맥 때문에 막혀 길을 뺑 둘러 가야 한다는 말. 그래도 그게 최선이기에 서둘러 갈 수밖에.
다만 시간이 제법 걸렸기에 그동안 잘 버텨주고 있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 * *
로버데인 남서부 일대 다카르 초원.
이곳에 진을 치고 몬스터들의 침입을 막아내고 있었던 왕국 중앙군. 진영 중앙에 있는 큰 막사 안에 한 여인이 심각한 표정을 하며 전황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탐스러운 금발에 심해를 연상케 하는 푸른 눈. 그녀는 바로 이곳의 지휘를 맡고 있었던 엘리시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