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던전 탐사(7)
한시가 급한데 출구가 막히다니.
칼슨은 다급히 외쳤다.
“이런! 모두 물러서! 내가 길을 열겠다!”
새롭게 얻은 비전 검술인 일섬.
그는 급격히 오러 블레이드를 끌어 올리며 뭉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점점 그 농도가 더욱 농밀해지며 빛이 퍼져나가기 시작. 그것은 곧 엄청난 속도로 회전을 하였다.
키이이이이익────!
마치 비명을 지르는 것 같은 날카로운 파열음.
오러 블레이드로 만들어진 소용돌이는 주변의 모든 걸 빨아들일 듯한 풍압을 일으켰다. 그렇게 회전이 극한까지 끓어오르는 순간 칼슨은 전방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그러자 몸에서 엄청난 오러가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지며 새하얀 선이 바위를 향해 쭉 뻗어나갔다.
틱─!
가벼운 소음과 함께 바위에 새하얀 점이 생겼다.
그리고 1초 후. 그 점은 점점 퍼져나가며 바위 전신을 뒤덮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앙─! 쾅! 콰광! 쾅!
폭발음과 함께 가루가 되어 흩어져버리는 바위.
이제 그들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눈앞에서 생성된 메시지.
[던전 붕괴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1분입니다. 서둘러 탈출하십시오.]
[59초]
[58초]
[57초]
[…]
이제 정말 촉각을 다투어야 할 시간.
그들은 필사적으로 발을 놀리며 이동하였다.
처음에 들어온 동굴에 들어서자 어느새 해골병사들이 새롭게 생성되어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이에 칼슨은 지체할 것 없이 바로 비전검술 ‘어둠’을 사용하였다.
콰앙! 퍼억! 쾅! 퍼억! 퍽! 푹!
수십 개의 오러 블레이드가 해골 병사들을 갈아버리며 그대로 길을 만들었다. 이제 남은 시간은 불과 30초.
일행들은 곧장 발걸음을 내딛는다.
“헉 헉!”
[10초]
눈앞에 빛이 보인다. 저것은 필시 던전의 출구. 다리 근육이 비명을 질렀지만 그들은 쉴 새 없이 발을 놀렸다.
투두둑── 와르르르르─ 콰앙! 콰과광! 콰아앙──!
[5초]
바로 뒤까지 무너져 내리며 그로인해 들리는 굉음은 일행들을 위협하였다.
“이제 다 왔어! 조그만 힘을 내!”
[3초]
그들을 북돋게 하는 칼슨의 외침. 그때 동굴 천정이 내려앉는 게 보였다.
와르르르──
“시발!”
그는 욕을 하며 천정을 향해 즉시 ‘어둠’을 사용하였다.
콰앙! 쾅! 콰광! 퍼억! 쾅!
투두둑─ 투둑─!
[1초]
오러 블레이드로 인해 잘게 분쇄된 돌덩이들. 그렇게 잘게 빻아진 돌가루들이 일행들 위에 뿌려졌다. 하지만 그런 거에 개의칠 여유는 없었다. 오로지 있는 힘을 다해서 뛸 뿐. 이제 밖이 코앞이었다.
콰아앙──! 와르르르르르──
큰 진동과 함께 무너져 버린 던전의 출입구. 그 여파에 비산하는 흙먼지들이 주변의 시야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하아아아!”
무사히 그곳에서 빠져나온 칼슨은 그동안 멈추었던 호흡을 단숨에 들이마셨다. 그렇게 호흡을 가다듬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커어억, 허억 헉….”
“콜록! 케헤엑! 켁!”
“하아아….
다행히 일행들 모두 그곳을 빠져나왔다. 모두 호흡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흙먼지를 들이마셔서인지 연신 기침을 하며 헛구역질을 하였다.
“다들 괜찮아?”
“아, 네, 영주님.”
“예, 괜찮습니다.”
“쿨럭, 네. 영주님.”
안부를 묻자 일제히 대답하는 일행들. 다행히 크게 상한 이는 없어 보였다. 그렇게 무사히 던전 탐사를 마친 그들.
잠깐의 휴식을 취한 뒤 모두 근처 마을로 이동하였다.
* * *
던전 탐사한 지 어느덧 두 달이 지났다.
위험천만한 일이 많았지만 그래도 그곳에서 매우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었다.
그 중 첫 번째는 단연 에드와 에밀리의 성장.
에드는 소드 마스터가 되었고. 에밀리는 ‘스카디엘라’라는 정령과 계약을 하였다. 특히 상급 정령인 줄 알았던 스카디엘라가 다름 아닌 군주급 정령이라고 하였다.
군주급 정령.
자신의 세력이 크지 않아 정령왕의 힘에 미치지 못하였지만 존재로서의 격 자체는 왕과 동일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자아를 가지고 의사를 전달 할 수 있었던 것.
아무튼 그녀와의 계약으로 인해 에밀리의 정령 친화력 또한 대폭 성장하였다. 이제 바람 정령 말고도 다른 계열들까지 중급 정령과 계약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특히 에렐리안의 가호로 인해 바람의 정령은 상급까지 계약이 가능하게 되었다.
땅의 중급 정령인 노에스.
그것은 노옴보다 덩치가 훨씬 큰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형태가 뭉그러진 노옴과 달리 그것은 더 분명한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몸매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물의 중급 정령 엔다이론.
운디네가 어린아이의 느낌이라 한다면 이것은 어느 정도 자란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모습 또한 운디네처럼 투명한 것이 아니라 조금 더 반투명한 느낌이라 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바람의 상급 정령인 실레스틴.
기본적으로 정령왕인 에렐리안의 외관이랑 비슷한 느낌이었지만 그 크기가 2미터에 불과했고 외모나 기타 디테일한 부분에서 차이가 많이 났다.
순식간에 엄청난 성장을 하게 된 에밀리. 이제 그녀는 드레이크 영지 내에서 둘도 없는 귀중한 인재가 되었다.
던전에서 얻은 수확 중 두 번째로는 많은 무구들과 포션들이었다. 이거 말고도 다른 금은보화들도 많이 얻었지만 전자에 비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특히 리치의 방에서 죽은 이들이 가지고 있던 무구들은 그 가치가 측정이 불가능해 보였다.
그 중 오르하르콘으로 만든 스태프는 정말 대단하였는데 아르모가 그것을 가지고 실험을 한 결과 마법의 위력을 무려 3배나 올려주었다. 거기다 주변의 마나를 흡수하여 마력으로 치환. 지속적으로 소유자에게 마력을 공급해주기까지 하였다. 한마디로 말해 사기템 그 자체였던 것.
그리고 그 정체를 알 수 없었던 짙은 보랏빛의 검. 칼슨은 그것을 야금장인 반라르에게 가져가 물어보았다. 칼슨에게 검을 받아 든 반라르. 그는 보자마자 검의 재질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것은 바로 아다만다이트였다.
아다만타이트.
이 세계가 아닌 다른 차원의 금속.
마력을 무효화하는 것이 주요 특징 중의 하나였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그 강도였다.
어떠한 것으로도 이것을 파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일반적인 이들은 절대 이것을 다룰 수 없고 오직 드워프만이 제대로 다룰 수 있다고 하였다.
이 외에도 아공간 주머니와 마법의 목걸이, 반지 등 여러 물품들이 있었다. 물론 그것들도 엄청난 물건이긴 하였지만 위에 두 무구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쳐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다량의 마나석과 골렘, 그리고 데스나이트의 제작법이 있었다. 그중 제작법 같은 경우 비록 고대어로 적혀있기는 하였지만 그것은 천천히 시간을 두고 해독하면 되었다. 그것을 위해 칼슨은 고대어를 잘 아는 이들을 찾기 위해 수소문도 해두었다.
만약 해석이 잘되어 제작법만 알아낸다면 영지에 큰 보탬이 될 것이 분명하였다.
마나석 또한 그 쓰임새가 무궁무진하였기에 따로 보관하여 아르모가 마법 물품을 만드는 데 사용하기로 하였다.
많은 자원을 확보한 드레이크 영지는 던전에서 얻은 산물을 동력 삼아 다시 한번 발전해가기 시작하였다.
* * *
벤투스 왕국의 서쪽을 가로지르고 있는 바로프 산맥.
이웃 왕국인 슬로페 왕국에서 그 줄기가 시작되어 벤투스 왕국 중앙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이 거대한 산맥은 매우 거칠고 척박하기 그지없었다.
게다가 간간이 출몰하는 몬스터들로 인해 그 출입이 매우 제한된 상태. 그렇게 인적이 드문 그곳에 5명의 사람들이 지나고 있었다.
“이봐 자이르! 정말 이곳에서 사슴 무리를 본 게 확실한가?”
“하아, 이거 몇 시간 째 이곳에서 헤매는 거야. 자이르, 정말 여기 맞아?”
“아 글쎄, 여기가 맞는 거 같은데….”
지금 이곳에 있는 젊은이들은 모두 헤르단 마을의 청년들이다. 헤르단 마을은 카포니아 자작령 북쪽에 위치한 마을로 바로프 산맥 인근에 위치해 있었다. 그곳에 살던 그들은 친구인 자이르가 사슴 무리를 발견했다는 이야기에 산 중턱까지 올라왔다. 딱히 집에서 할 일도 없고 혈기 왕성한 청년들이었기에 사슴을 잡아 한 몫 챙기려고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오니 사슴은커녕 그 흔한 토끼 한 마리도 보이지가 않았다. 그렇게 산을 타며 갖은 고생을 한 그들. 이제 사슴이고 뭐고 다 포기하고 마을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런데 그때 앞장서서 길을 안내하던 자이르가 걸음을 멈추며 그들을 향해 손짓을 한다. 그리고 조용히 말을 하였다.
“저기, 사슴이 있어. 소리 낮추고 이리로 와봐.”
“뭐, 진짜? 알았어. 모두 조심히 저쪽으로 가자.”
“알았어, 고딘.”
그들은 청년들의 대장 격인 고딘을 따라 자이르가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사슴이 눈치챌까 봐 조심조심 오느라 진땀을 뺀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그들. 바위 뒤에 숨어 앞을 바라보니 자이르의 말대로 사슴 무리가 그곳에 있었다.
-정말 사슴이 있잖아? 와,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니고 말이야.
-자이르 녀석,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진짜였네? 저기서 한두 마리만 잡아도 돈 좀 만지겠는데?
-야, 진정해. 아직 잡지도 않았는데 뭐 이리 호들갑이야? 모두 이리와. 작전을 한번 짜보자고.
-알았어, 고딘. 어디 어떻게 할 건지 말해봐.
-그래, 내 작전은 말이야….
고딘의 작전은 이랬다.
사슴을 무리의 주변에 각자 위치한다. 그리고 도망가지 못하게 한쪽으로 서서히 몰아간다. 그때 그곳에 대기하고 있던 고딘과 잭슨이 몽둥이로 사슴을 공격해 때려잡는다.
무언가 엉성하고 빈틈이 많아 보이는 작전이었지만 청년들은 좋은 작전 같다고 맞장구치며 호응을 하였다.
그렇게 작전대로 흩어지는 마을 청년들.
몰래 움직여 각자 자리를 잡기 시작하자 고딘이 휘파람 소리를 내며 신호를 보냈다.
휘이익─
그 소리에 마을 청년들은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사슴 무리에 접근해 간다.
“와아아아아아!”
갑작스레 나타난 사람들에 깜짝 놀란 사슴들은 그들을 피해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그 속도가 무척이나 빨랐기에 그들이 따라잡기는 벅찼지만 괜찮다. 사슴을 잡을 사람은 따로 있었기 때문에.
“으아아아압!”
바위 뒤에 숨어 있다가 사슴이 다가오자 단숨에 몽둥이를 내려치는 고딘. 평소 힘이 좋고 운동신경이 뛰어난 그였기에 무리 없이 사슴의 목을 가격하였다.
퍼억!
둔탁한 소리가 크게 퍼지며 그대로 중심을 잃고 쓰러지는 사슴. 갑자기 나타나 자신들의 동료를 죽인 사람을 보자 사슴들은 겁을 먹고 방향을 틀기 시작하였다. 그때.
“이야아압!”
빠각─!
그쪽에서도 숨어 있는 청년이 나와 사슴의 몸을 힘껏 내리쳤다. 이에 울음소리를 지르며 꼬꾸라지는 사슴. 그 틈을 놓치지 않으며 다시 한번 몽둥이를 휘두른다.
퍼억!
머리에 정통으로 맞은 사슴. 그대로 머리가 깨지며 뻗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동료들이 사람들에게 죽어가던 틈에 나머지 다른 사슴들은 부리나케 도망갔다. 그 속도가 너무 빨랐기에 도저히 잡을 수 없었던 마을 청년들. 그렇게 그들의 사슴 사냥은 고작 2마리에 그치고 말았다.
그래도 전문적인 활도 없이 사냥한 것치고 매우 성공적인 성과였다. 그들은 한껏 고무되어 사슴을 챙기기 시작하였다. 긴 막대기에 매달아 묶어 한 마리당 2명씩 어깨에 짊어지고 갔다.
사슴이 꽤나 무거웠지만 큰 수확에 그들은 절로 힘이 났다.
콧노래까지 부르며 마을로 내려가던 그때.
휘이익─ 푸욱!
“아아악!”
맨 뒤에 있던 바빈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이에 깜짝 놀란 그들. 뒤를 돌아보니 웬 난쟁이들 수십 마리가 그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이런 젠장! 고블린들이다! 모두 도망쳐!”
“허억! 살려줘!”
들고 있던 사슴을 그대로 놓고 도망가는 그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놓고 간 사슴만을 챙기며 돌아갔을 법하였지만 고블린들은 끝까지 그들을 향해 쫓아갔다. 마치 그들 자체가 목적인 것처럼. 수십 마리의 고블린들이 그 아래로 내려간 뒤에 그보다 몇 배, 아니 몇십 배나 되는 무리들이 그 뒤를 따라갔다. 게다가 고블린뿐만이 아니었다.
“크워어어어어!”
“우어어어어!”
괴성을 지르며 포효하는 대형 몬스터. 바로 트롤 또한 그 대열에 합류하기 시작. 그 뒤로 다양한 종류의 몬스터들이 무리를 이루며 산을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바로 엘리시아가 말했던 몬스터 웨이브.
하지만 그녀의 말과는 달리 그 시작은 하라달리아 숲이 아닌 바로 이곳. 바로프 산맥에서부터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