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던전 탐사(6)
“도대체 이게 뭐야!”
리치가 나올 줄 알고 있었기에 만반의 준비를 하고 들어왔는데 리치 비슷한 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참혹한 모습의 시체들.
그곳에는 무려 5구의 시체가 놓여있었다.
“크음, 이거 좀 보기가 그러네.”
전부 그런 것은 아니지만 3구의 시체의 상태가 상당히 처참했다. 하나는 온몸이 절단되어 있었고 다른 것은 불에 타 숯검정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납작하게 찌그러져 마치 얇게 펴진 포를 보는 듯하였다.
“우우욱!”
“으윽….”
끔찍한 시체가 익숙하지 않았던 아르모와 에밀리는 인상을 쓰며 고개를 돌렸다. 그나마 상태가 괜찮았던 2구의 시체.
하나는 고급스런 갑옷을 입고 있었는데 왼쪽 가슴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피는 말라 있었고 피부가 미라처럼 바짝 말라 있는 걸 보니 꽤나 오랫동안 이곳에 있었던 것 같았다.
‘이곳에는 사체가 썩지 않는가 보군.’
아마도 부패를 막는 장치라도 되어있는 듯했다. 과연 시체들을 이용해 뭔가를 만드는 곳다웠다.
나머지 하나는 정말 온전하였다. 목 부분에 상처가 나 있었는데 아마도 경동맥을 건드려 출혈로 죽은 것 같았다.
골격이나 의상으로 봐서는 여자로 보이는데 그녀의 손에는 금속으로 된 스태프가 쥐어져 있었다.
마치 황금으로 만들어진 듯 누런빛을 띠고 있는 금속으로 정밀하게 세공되어있으며 그 끝에는 푸른빛을 뿜어내고 있는 보석이 박혀있었다.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스태프. 그것을 집어 든 아르모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며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이, 이것은 설마 오르하르콘?”
“뭐, 오르하르콘? 그게 뭔데, 아르모?”
“아, 영주님. 오르하르콘은 신이 만든 금속이라고 불리는 금속입니다. 마법을 크게 증폭시켜주기에 마법의 금속이라고도 불리지요. 저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라 긴가민가하긴 합니다만, 그래도 기록에 있던 내용이랑 들어맞기에 그리 생각한 겁니다.”
“뭐라고! 그게 정말이야?”
“예, 영주님.
만약 그녀의 추측이 사실이라면 그것을 소유하고 있던 이 시체는 원래 대단한 사람일 수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저기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검 또한 범상치 않아 보였다. 어두운 보랏빛을 한 금속. 칼슨이 들어보니 그 무게가 일반 검에 비해 상당히 무거웠다. 이것에 대해 궁금해진 칼슨은 아르모에게 보여주며 물어보았다.
“흐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으윽!”
“아, 왜 그래? 아르모?”
순간 인상을 쓰며 신음 소리를 내는 그녀를 향해 칼슨이 묻는다. 그에 그녀는 심각한 표정을 하며 입을 열었다.
“이 검에 제 마력을 주입해보았는데 그대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뭐?”
그녀의 말을 들은 칼슨. 도저히 믿지 못하였기에 자신 또한 오러를 주입하여 본다.
지이이이잉────!
순식간에 솟구치는 오러. 다행히 오러가 사라지는 현상은 없었다. 그렇다면 마력만을 사라지게 한다는 이야기인데 그런 금속이 있다는 소리는 듣도 보도 못하였다.
아르모의 태도를 보니 그녀 또한 잘 모르는 눈치.
어찌 됐든 이 검은 범상치 않은 검이 분명하였다.
그러고 보니 한 가지 더 궁금한 점이 생겼다. 이런 물건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라면 분명 평범한 이들이 아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렇게 한자리에서 죽었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한 일. 게다가 이곳은 리치의 방. 원래 있어야 할 리치가 보이지 않고 시체들만 있으니 문득 한 가지 가설이 떠올랐다.
‘설마 이들이 리치랑 싸워 이긴 것인가? 그 과정에 이들 또한 전멸하고.’
만약 그렇다면 리치의 사체가 보여야 하는데 보이지가 않는다. 그때 우터가 뭔가를 발견하며 소리쳤다.
“영주님, 이곳에 뭔가가 있습니다.”
“그래?”
그의 말에 칼슨은 서둘러 그곳을 가보았다.
“여깁니다. 영주님.”
“응? 뭐야 이건?”
우터가 가리킨 곳을 보니 웬 금속 그릇이 부서져 있었다. 아니 자세히 보니 그릇이 아니라 큰 용기가 무언가에 찢긴 것 같았다. 이윽고 다가온 아르모가 그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고 만다.
“헉! 여, 영주님 이것 또한 오르하르콘입니다!”
“뭐? 아르모, 그건 또 뭔 소리야? 오르하르콘으로 왜 용기를 만들어?”
신의 금속이라 불리는 그 귀한 것을 고작 용기로 제작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던 칼슨은 그녀에게 되물었다. 그 말에 그녀는 조심스레 대답을 한다.
“아마도 이것은 리치의 라이프 베슬이라 생각됩니다.”
“라이프 베슬? 아! 그거! 진짜야?”
라이프 베슬이라는 말에 칼슨은 놀라고 만다. 그도 그것에 대해 들어는 봤다. 리치가 자신의 생명력을 따로 만들어 보관한다는 것을. 그게 바로 라이프 베슬이었고 눈앞에 있는 파편이 그것이라는 것.
“예, 오르하르콘으로 이런 용기를 만들었다면 그것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여기는 리치가 있던 방이 아닙니까.”
“그래. 그렇지.”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결국 그의 예상이 들어맞는 듯했다. 누군가 그들보다 먼저 이곳에 들어왔었고 리치가 있는 방에 먼저 들어가 전투를 벌였다. 그리고 모두 같이 공멸.
‘이거 완전 개이득인데?’
힘겨운 전투가 예상될 거라 생각했었는데 코도 안 풀고 해결되었다. 칼슨은 일행들에게 말하여 이곳을 수색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곧 아르모가 뭔가를 찾아내었다.
“영주님, 여기 마력이 감지됩니다.”
한쪽 벽면에 손을 대고 있던 그녀. 처음에 자신들이 들어왔던 식으로 고대어 글자와 숫자들이 빛을 내며 드러나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곳에 비밀 공간이라도 있는 것 같았다. 칼슨은 그곳으로 다가가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에밀리를 보며 부탁하였다.
“에밀리, 이곳에서도 아까처럼 번호를 알아낼 수 있겠어?”
“예, 한 번 해볼게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바로 노옴을 소환하여 그곳의 기억을 살폈다. 이윽고 노옴이 뼈다귀 손으로 변하더니 번호를 누른다. 아마도 리치의 손 같아 보였다. 그것이 번호를 다 누르고 벽으로 들어가려 하자 에밀리는 재빨리 노옴에게 주입하던 마나를 끊어 소환 해제를 하였다. 전처럼 노옴에게 타격이 가해져 충격을 받지 않기 위해서였다.
번호를 확인한 칼슨은 그 순서대로 비밀번호를 눌렀다.
드르르르르륵
문이 열리고 또 하나의 공간이 들어섰다.
그렇게 넓은 공간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제법 부피가 있는 방. 군데군데 테이블과 책장이 있는 걸로 봐선 누군가 머물던 공간 같았다. 특히 테이블 위에는 실험기구처럼 보이는 물품들이 놓여있어 연구 같은 것을 했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곳에 들어선 일행들은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왜냐하면 값비싸 보이는 물건들이 잔뜩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와아아, 영주님. 여기에 마나석이 가득 차 있습니다.”
“이곳에는 각종 병장기들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포션들이 잔뜩 있어요.”
여기저기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하는 일행들. 칼슨 또한 만족스러운 듯 입꼬리를 올리며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그러다 문득 어느 한 곳에 시선이 쏠렸다.
“응? 뭐지 이건?”
웬 선반 위에 낡아 보이는 가죽 주머니가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하기 그지없는 주머니였지만 이런 곳에서 그런 것이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게 아무래도 이상하였다. 분명 이것 또한 범상치 않은 물건이라 생각한 칼슨. 그것을 집어 들고 면밀하게 살펴보았다.
주머니 안을 살펴보니 짙은 어둠에 가려 안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손을 집어넣어 보았다.
“헉! 이건 뭐야?”
외관상 손 한 뼘이 조금 넘는 수준의 크기였는데 손을 집어넣어 보니 팔이 쑤욱 들어갔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눈앞에 벌어지니 칼슨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을 본 아르모가 깜짝 놀라며 말하였다.
“세상에! 영주님, 그거 아무래도 아공간 주머니 같습니다.”
“뭐? 아공간 주머니? 아! 그러고 보니….”
들어본 적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주머니지만 실제로 안쪽에는 훨씬 많은 공간을 가지고 있는 주머니. 적게는 주머니 크기의 몇 배, 많으면 수백 수천 배 정도로 많은 공간이 있다는 마법의 주머니였다.
현재 이것의 제작은 불가능하였고 이따금 발견된 것조차 그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귀하였기에 일반적으로 볼 수 있기는 힘들었다. 그런데 그런 엄청난 물건이 지금 눈앞에 있을 줄이야.
“영주님, 아공간 주머니를 사용할 때는 눈을 감고 손에 의식을 집중하셔야 할 겁니다. 그러면 그 안이 얼마나 넓은지 혹은 안에 무슨 물건이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아? 그래? 어디….”
아르모의 말대로 칼슨은 눈을 감으며 손에 감각을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그랬더니 주머니 속의 공간이 느껴지기 시작. 그 안에 물건들까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오, 이거 굉장한걸? 이거 크기가 큰 창고 정도 되는 것 같아.”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최상급의 아공간 주머니가 확실합니다.”
“그래? 이거 정말 운이 좋구먼. 하하하!”
뜻밖의 수확에 기분이 좋아진 칼슨. 입이 귀에 걸리며 절로 웃음이 나왔다.
“네, 축하드립니다. 영주님.”
“축하드립니다. 영주님.”
“영주님, 축하드려요.”
일행들 또한 모두 그를 축하하며 기뻐하였다. 그런데 그때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던전의 공략이 완료되었습니다.]
[처음으로 던전 공략에 성공하여 힘과 민첩성이 2씩 증가합니다.]
[던전에 있던 특수한 장치가 발동되었습니다.]
[던전이 붕괴되기 시작합니다. 빨리 탈출하시기 바랍니다.]
[던전 붕괴까지 남은 시간은 10분입니다.]
[9분59초]
[9분58초]
[9분57초]
[…….]
초 단위로 줄어드는 타이머.
그것을 본 칼슨은 일행들에게 다급하게 소리쳤다.
“젠장! 모두 어서 최대한 물건들을 챙겨!”
“예? 왜요?”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영주님.”
칼슨의 말에 모두들 이해를 못 하며 눈에 의구심을 떠오른다. 그때.
흔들. 투드득─
돌가루들이 떨어지며 지반이 흔들거리기 시작하였다.
“이제 곧 여기가 무너진다! 어서 이 아공간 주머니에 물건을 집어넣어라 어서!”
“허억, 네! 알겠습니다! 영주님!”
“으아아악! 영주님, 진짜 무너지나 봐요!”
“그러고 있을 시간 없어. 에밀리, 어서 빨리!”
“아! 네, 영주님!”
곧 이곳이 무너진다는 말에 일행들은 칼슨의 아공간 주머니에 물건들을 넣었다. 각종 무구랑 포션, 기타 값비싸 보이는 물건들 몽땅 그곳에다 집어넣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움직인 지 한참. 어느덧 타이머에 남은 시간은 고작 5분이었다.
‘젠장!’
제법 남은 물건들이 있었지만 이제 시간이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많은 물건을 주머니에 집어넣었지만 그 무게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단단히 주머니를 묶은 칼슨은 일행들에게 말하였다.
“이제 모두 나가자! 어서!”
“네! 영주님!”
투두둑─ 덜 덜 덜─
주변이 흔들리는 것이 더욱 더 명확해졌다. 일행들이 재빠르게 몸을 빠져나가자 칼슨도 같이 그 뒤를 따라갔다.
상대적으로 신체 능력이 떨어지는 아르모와 에밀리. 그녀들을 각각 에드와 우터가 업혀서 이동하였다.
투둑. 쿵! 투두둑!
그때 천장에서 떨어지는 돌무더기들.
여성들을 업어 양손을 움직일 수가 없게 된 그들은 그것에 대응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칼슨이 재빠르게 그것들을 쳐내었다. 그리고 말한다.
“이런 것들은 내가 처리해주겠다! 그러니 신경쓰지 말고 어서 뛰어!”
“예, 영주님!”
칼슨의 말에 두 남성은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며 뛰었다. 그렇게 한참을 가자 처음 들어왔던 공간에 다다른 그들. 하지만 그때 그들의 눈앞에 커다란 바위가 출구를 막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