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던전 탐사(5)
그녀가 다가간 곳은 바로 기사 모습의 기둥.
칼슨이 선택한 것은 다름 아닌 죽음의 기사였다.
그가 그것을 먼저 선택한 이유는 단순하였다.
죽음의 기사는 근접 전투를 한다.
그렇기에 자신이 상대하면서 일행들이 보조로 공격하기가 매우 수월하였다.
물론 마법사인 리치도 같은 방법으로 상대할 수 있긴 했다. 그러나 마법은 원거리나 범위 공격도 가능했기에 까딱하다간 다른 일행들이 위험할 수도 있었다. 특히 에밀리랑 아르모는 방어에 취약했기에 더 위험하였다.
그래서 좀 더 안정적으로 공략이 가능해 보이는 죽음의 기사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통로가 열리고 들어간 방.
들어가자마자 음습한 기운이 몰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눈앞에는 기둥에 있던 것과 동일한 모습의 기사가 서 있었다. 스카디엘라의 말이 맞는다면 바로 저것이 죽음의 기사일 것이다.
모든 인원들이 방안에 들어서자 이전과 같이 통로가 닫혔다. 그리고 앞에 있던 기사의 투구 속에서 푸른 안광이 뿜어져 나오며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너…희들은…누…구냐…?”
마치 쇠를 긁는 듯한 거친 음성이 들려왔다.
도저히 사람이 낼 법한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알아들을 수는 있었다. 자신들을 공격하지 않고 물어보기에 칼슨은 방어 자세를 취하며 대답해주었다.
“우리는 이 던전을 탐사하러 온 사람들이다. 그러는 당신은 누구지?”
“던…전. 탐…사? 그…게 무…슨 소리냐? 크으윽, 나…는……카…트룬. 곤…다르…의 기…사다.”
“곤다르?”
그런 이름의 나라는 들어보지 못하였다. 혹시나 해서 아르모를 보며 아냐는 제스처를 취해 보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른다는 듯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때 갑자기 놈이 괴성을 지르기 시작하였다.
“크아아아! 알…두르! 그 개…자식! 나…를 배…신……하다니. 내 부모…아내…아이…들……까지 모두 내…눈앞에서 비참하게 죽어갔다.”
“…….”
느릿느릿한 목소리임에도 불구 그 속에서 진한 분노가 느껴졌다.
두서없이 말하였지만 딱 봐도 알두르라는 녀석이 이놈을 배신해 온 가족이 눈앞에서 죽었다는 것 같은데, 그 원한이 대단해 보였다.
아마도 그 원한 때문에 죽음의 기사로서 안성맞춤인 재료가 되었을 터. 그렇게 생각하는 중에 다시 한번 녀석이 괴성을 지르며 분노하였다.
“크아아아아! 크르르르! 나는 복수를 원한다! 그런데 왜! 이런 곳에 가둔 것이냐! 왜!”
점점 감정이 드러나며 말 또한 또렷해졌다. 이에 칼슨은 조심스레 그에게 질문을 던진다.
“누가 너를 여기에 가둔 거야?”
“크으윽! 놈은 마법사! 나에게 복수를 약속하고 자신의 종복이 되는 것을 제안하였다! 나는 복수를 원한다! 그런데 왜 이런 곳에 나를 가뒀느냐! 크아아아아!”
“크으윽!”
카트룬이 뿜어내는 지독한 살기. 이에 칼슨은 피부가 따끔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놈의 말을 가만히 들어보니 잘하면 리치랑 서로 붙게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카트룬, 그 마법사가 너를 속였어. 이제 알두르라는 인간은 없어. 아니 곤다르라는 곳조차 존재하지 않아. 너는 그저 그자에게 이용당한 거야.”
“뭐라고! 그게 사실이냐! 크허어어억! 그럴 리가 없다! 그렇다면 나는! 내 가족의 원한은 어떻게 갚느냐 말이냐? 용서할 수 없다, 마법사여!”
원한의 대상이 마법사에게로 옮겨간 녀석. 그것을 확인한 칼슨은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우리도 그놈을 없애려고 왔어. 자, 우리와 함께 놈을 없애버리자!”
“좋다! 어서 나를 그놈에게 안내하라! 내가 당장 그 빌어먹을 새끼를 베어 버리겠다!”
다행히 이간질이 잘 먹혀들어 간 것 같았다.
이제 이 방을 나가 리치의 방에 녀석을 데려가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아직 통로가 열리지 않는다.
“저기 혹시, 여기서 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통로가 열리는 방법은 2가지다.”
“그게 뭐지?”
“하나는 나를 쓰러트리는 것.”
갑자기 놈의 기세가 변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
“다른 하나는 들어온 침입자가 모두 죽으면 된다! 크아아아아!”
“뭐? 이런 시발!”
괴성을 지른 카트룬이 시커먼 오러를 피어 올린다. 그것은 바로 암흑 오러. 그 오러가 점점 두꺼워지더니 어느새 하나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마치 오러 블레이드처럼.
“내 복수를 위해 죽어다오! 크아아아아!”
“이 미친 새끼가! 모두 전투 준비해!”
칼슨은 자세를 잡으며 일행들에게 외쳤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시커먼 오러 블레이드. 그에 대항하기 위해 순간적으로 오러 블레이드를 일으켜 막아본다.
치이이이이익─! 콰아아앙────!
두 오러 블레이드의 충돌로 인해 폭발이 일어나며 강한 풍압을 만들어 내었다.
“크으윽! 이런 개 같은!”
분명 같은 오러 블레이드끼리 부딪혔는데 자신의 오러가 밀리기 시작하였다. 자신의 오러는 이미 S등급을 넘어선 SS등급 초입. 그런데도 이렇게 밀린다는 것은 놈이 자신보다 위라는 이야기라는 것. 다급해진 칼슨은 스킬을 써서 상대의 능력치를 확인해보았다.
[인물정보 열람]
디딕─!
[스킬이 유효한 대상이 아닙니다.]
‘젠장!’
인간이 아닌 몬스터여서 그런 것인가? 스킬이 전혀 먹히지 않는다. 그때 또다시 놈이 공격해 들어온다.
“크아아아아! 죽어라!”
상대의 오러 블레이드가 변하기 시작하였다. 마치 날카로운 송곳 같은 모양으로. 그런데 그 수가 무려 수백 개로 늘어났다. 그 모습이 마치 수많은 아귀들이 자신을 물어뜯으려 하는 것처럼 보였다.
“으아아아압!”
그에 맞서 칼슨 또한 비전 검술로 응수하였다. 새하얀 수십 개의 검이 그것을 향해 쏘아졌다.
쾅! 콰광! 쾅! 콰과광! 콰앙!
흑과 백이 부딪히며 수십 번의 폭음이 터져 나왔다. 그 여파에 칼슨이 뒤로 물러서며 신음 소리를 내었다.
“크으윽, 뭐 이런 괴물이 다 있어?”
가까스로 놈의 공격을 막아내었지만 그 위력을 전부 상쇄시키진 못하였다. 충격이 일부 그에게 전해지면 가벼운 내상을 입고 말았다. 그 증거로 입가에 살짝 피가 맺혀있었다. 하지만 상대는 별 타격을 입지 않았는지 곧장 자세를 세우며 달려든다.
“크아아아! 아주 제법이구나! 다시 한번 받아보아라!”
놈이 다시 그 기술을 쓰려던 때 갑자기 그의 발목이 얼어가기 시작하였다.
“크으으윽! 이것은 도대체 무엇이냐! 크아아아!”
어떻게든 털어내려 발광을 하였지만 급작스런 냉각에 놈은 꼼짝을 못 하였다. 그렇게 위기의 순간을 벗어난 칼슨에게 에밀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영주님, 괜찮으세요?”
“크윽, 그래,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았어.”
“다행이에요. 스카디엘라, 당장 저것을 제압해주세요!”
【알았다. 나도 아까부터 저 언데드가 보기 역겨웠다.】
그 말과 함께 손가락을 휘젓는 그녀. 그러자 카트룬의 주변에 수십 개의 얼음덩어리가 생성되었다. 그리고 곧 그것이 뾰족한 가시로 변하더니 그대로 쭉 늘어나 상대를 덮친다.
푸욱! 푸욱! 푹! 푸욱! 푹! 푸욱!
순식간에 고슴도치처럼 되어버린 카트룬. 검을 휘두르려 하였지만 도저히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크아아아아!”
【그대로 얼어버려라, 이 더러운 종자여.】
그 말과 함께 창끝에서 가지가 자라듯 얼음이 자라나기 시작. 삽시간에 상대를 뒤덮어버렸다. 마치 새하얀 서리가 전신을 감싼 듯한 모습. 이윽고 카트룬의 움직임이 잦아들었다.
‘와, 저거 완전 사기네.’
스카디엘라가 상대를 단숨에 제압하는 것을 본 칼슨은 속으로 놀랬다. 자신은 직접 카트룬이랑 맞섰기에 그가 얼마나 강한 줄 알고 있다. 그런데 그런 그를 손가락만 까닥해서 꼼짝도 못 하게 할 줄이야. 칼슨이 그렇게 속으로 감탄하고 있을 때였다.
콰직! 파지지직─!
카트룬을 에워싸고 있던 얼음들이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점점 번져나간다. 그리고 이어진 포효.
“크아아아아아!”
파사사삭! 파앗───!
자신을 뒤덮고 있던 얼음을 그대로 털어버리는 카트룬. 하지만 다른 이들 또한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지는 않았다.
《낙뢰》
“크으으아아아!”
천장에서 굵은 벼락이 생성되더니 바로 상대에게 직격. 상대는 그대로 통구이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칼슨의 비전 검술. 방금 전 선보인 수십 개의 새하얀 오러 블레이드가 카트룬의 몸에 쇄도해 들어갔다.
파악! 퍼억! 퍼어억! 콰앙─! 퍼억!
“커허어어어억!”
연달아 맞은 큰 공격에 신체가 너덜너덜해진 녀석. 이때 역시나 기회를 엿보고 있던 에드가 오러 블레이드를 일으키며 카트룬의 목을 향해 휘두른다.
끼이이이익! 서걱──!
털썩─! 떼구르르──
그대로 바닥에 떨어지는 카트룬의 머리. 잘린 목의 단면에서 검은 기운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크아아아아!”
땅을 구르고 있던 머리가 괴성을 지른다.
머리가 없는 그의 몸이 움직였다. 떨어져나간 자신의 머리를 줍기 위해 걸음을 나아갔지만 그걸 그냥 두고 볼 칼슨이 아니었다.
“이제 그만 죽어!”
마지막 남은 오러를 쥐어짜며 비전 검술을 펼친다. 새하얀 빛이 카트룬을 덮치며 모든 것을 분쇄해 나갔다.
콰앙! 콰직! 쾅! 퍼억! 파직! 콰직!
그 일격에 이제 형체조차 남지 않은 카트룬. 그렇게 그가 최후를 맞이하게 되자 순간 칼슨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강대한 악을 쓰러트린 당신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보상으로 모든 능력치(지배력 제외) 5가 증가됩니다.]
[스킬 ‘비전 검술-일섬(一殲)(전설)’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비전 검술-일섬(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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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러를 응축하여 단숨에 분출한다.
절대적인 위력을 보이지만 오러의 소모가 극심하니 사용 시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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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쏟아진 보상에 칼슨의 눈이 커졌다.
모든 능력치 5 증가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눈에 들어온 것은 새로운 스킬.
‘비전 검술이 또 생겼어.’
기존에 있던 비전 검술이 변형 된 것이 아낸 새롭게 추가된 비전 검술이었다. 전의 것처럼 성장형은 아니었지만 스킬의 등급이 무려 전설. 게다가 설명을 보면 일격필살 같은 느낌이 들었다.
원래 있던 ‘암흑’도 좋았지만 단일 대상보다는 다수의 적을 상대하기 유용한 기술. 하지만 지금 얻은 ‘일섬’은 딱 봐도 대인에게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하는 것 같아 보였다.
칼슨이 그렇게 만족해하고 있을 때 들어왔던 통로가 열렸다.
전투가 끝나고 일행은 이 방 역시 수색을 하였다. 역시나 구석에 있는 궤짝 하나. 아르모가 마법으로 잠금을 풀고 열어본다. 열어보니 역시 전과 비슷하게 마나석 꾸러미와 함께 책이 하나 있었다. 그것을 살펴본 아르모가 입을 열었다.
“영주님, 이 책은 죽음의 기사를 만드는 방법이 적혀있는 것 같습니다.”
“죽음의 기사라고! 그게 정말이야?”
“예, 하지만 네크로맨서가 아닌 일반적인 마법사가 하기에는 힘들 것입니다.”
“그래, 아무래도 그렇겠지.”
그렇게 물건을 챙긴 다음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이제 마지막 남은 해골 기둥. 리치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곳이었다.
“자 이번이 마지막이다. 부탁해 아르모.”
“예, 영주님.”
그렇게 마력을 불어넣자 생성되는 통로. 일행은 전의를 다지며 그곳으로 들어갔다. 역시 다른 곳과 비슷해 보이는 공간.
“헐, 이것은 도대체…?”
원래라면 리치가 있어야 했던 방.
하지만 그곳의 광경은 예상과는 너무나도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