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영지가 제일 강함-72화 (72/162)

71화 던전 탐사(4)

【네가 에렐리안의 가호를 받은 게 사실이냐?】

“예, 그렇지 않다면 제게서 어찌 그분의 기운이 느껴지겠어요?”

【흐음….】

정령은 고민했다. 자신과 비록 다른 속성이긴 하지만 정령계에서 에렐리안의 영향력은 가히 절대적이었다. 그런 그녀가 아끼는 인간을 자신이 해하였다간 굉장히 피곤해질 것이다. 아니, 그녀가 눈앞의 인간을 얼마나 중히 여기냐에 따라 자신의 존재까지 위협받을 수도 있었다.

그녀는 다시 생각하였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문득 그녀는 오래전 자신이 이곳에 소환될 때를 떠올렸다.

그녀를 소환한 이는 어떤 마법사였다. 정령사도 아니었던 그가 특수한 방법으로 자신을 이곳에 소환하였다.

인간들의 세계에 소환될 수 있어 기꺼이 그와 계약하였지만 그것은 그녀의 최대 실수였다. 그 마법사가 자신을 소환할 수 있었던 것은 이곳에 특수한 장치를 만들었기 때문. 그렇기에 그녀는 이곳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물론 본체는 정령계에 있었지만 이쪽 세계에서 다른 정령사와 소통할 수 있는 길이 막혀버렸다. 그러나 만약 그 장치를 이자들이 부숴준다면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을 마친 그녀는 에밀리를 향해 말문을 열었다.

【그렇다면 내 평온을 깨트린 무례는 특별히 용서해주도록 하겠다. 대신 너희가 해줄 일이 있다.】

“말씀하세요. 정령님.”

“정령님?”

“아, 이름을 알려주시지 않아서요. 제 이름은 에밀리라고 해요. 혹시 제게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에밀리의 질문에 슬쩍 입꼬리를 올리는 그녀. 대뜸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에밀리를 보며 재미있다는 듯이 말하였다.

【훗, 내 이름을 알려달라고? 참으로 당돌한 아이로구나. 그래 알려주도록 하지. 내 이름은 ‘스카디엘라’라고 한다. 바로 서리의 정령이지.】

“서리의 정령 스카디엘라. 그럼, 저희가 해줘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바로 나를 이곳에서 풀어주는 것이다.】

“예?”

뜬금없는 그녀의 말에 당황한 에밀리. 하지만 이내 스카디엘라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이곳에 나를 묶어둔 장치가 있을 것이다. 그것을 파괴하여 나를 이곳에서 벗어나게 해다오.】

“장치라고요? 그게 도대체 어디 있나요?”

【그건 바로 여기 있다.】

그 말과 동시에 자신을 뒤로 물리는 그녀. 그러자 아까 처음 봤던 유리구슬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그것이 그녀를 여기에 묶어둔 장치.

“이거를 파괴하기만 되는 건가요?”

【그래, 그렇게만 해주거라.】

“네 알겠어요. 들으셨지요, 영주님? 이것만 부수면 된다고 하네요.”

“그래, 에밀리. 나도 들었어.”

그녀의 말에 바로 답하는 칼슨. 얼추 상황이 정리되자 그는 곧장 다른 일행들을 향해 말을 걸었다.

“다들 괜찮아?”

스카디엘라에게 나가떨어졌던 세 명. 그들은 어느새 일어서서 칼슨의 물음에 대답하였다.

“으윽, 예 조금 쑤시긴 해도 괜찮습니다.”

“예, 영주님.”

“크윽, 저도 괜찮습니다.”

그들이 괜찮은지 확인되자 칼슨은 재차 말을 이어갔다.

“저기 눈앞에 유리구슬 보이지? 이제 저것을 파괴하면 해결될 것 같아.”

눈앞에 있는 유리구슬을 가리키며 말하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모두 그것을 향해 공격을 하기 시작하였다.

“아아압!”

푸른빛의 강력한 오러 블레이드를 뿜어내며 힘껏 내리치는 에드. 하지만.

치이익─── 깡─!

그 기세가 무색하게 그의 검은 유리구슬을 베어내지 못하며 그대로 튕기고 말았다. 그리고 이어진 우터의 화살 공격.

쉬이이익──── 탕! 티잉! 팅!

연달아 3개의 화살이 쏘아져 들어갔지만 어느 하나 생채기를 내지 못하며 그대로 무산.

《화염 창》

곧이어 아르모의 화염 마법이 유리구슬을 강타. 구슬의 전신이 화염으로 뒤덮였지만 이내 사그라들며 다시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었다. 마지막으로 칼슨의 비전 검술.

파바바바박파바박────

치잉! 티잉! 캉! 콰앙! 텅! 타앙! 탕!

오러 블레이드를 먹인 수십 개의 검이 흠집 하나 주지 못하고 만다.

온갖 공격에도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하자 스카디엘라가 한마디 하였다.

【나 또한 그것에 여러 번 공격을 하였다. 그러나 결과는 이와 같았다. 일반적인 공격 말고 다른 방도를 찾아보기 바란다.】

그 말에 결국 공격하는 것을 포기한 일행들. 이내 다른 방법을 시도하기 시작하였다.

“흐으읍!”

칼슨이 그곳에 손을 대고 오러를 집어넣어 본다. 하지만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뭔가에 가로막혀 오러 자체가 주입되지 못하였다. 그리고 아르모의 마력 또한 마찬가지였다. 결국 남은 것은 에밀리의 마나뿐.

가장 순수한 에너지인 마나.

인간에 의해 가공된 형태인 오러와 마력과는 달리 자연 그대로의 힘이었다.

그곳에 다가간 에밀리가 손을 얹으며 마나를 불어넣는다.

그러자 푸른빛을 뿜으며 반응하는 유리구슬.

곧 그곳에 금이 가기 시작하였다.

쩌적 쩌억 빠지직─!

실선에서 시작한 금은 순식간에 유리구슬을 뒤덮으며 전신에 퍼져나갔다. 그리고.

퍼어어억───!

굉음을 내며 터져나갔다.

“꺄아아아악!”

갑작스런 폭발에 놀란 에밀리. 파편이 자신에게 다가오기에 순간적으로 팔로 얼굴을 가렸다. 날카로운 유리 파편이 자신을 헤집어 놓을 줄 알았지만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다. 슬며시 눈을 떠보니 익숙한 이가 보였다.

“괜찮아? 에밀리.”

“아, 영주님.”

칼슨이 몸으로 막아 그녀를 보호하였다. 파편이 그에게 쏟아졌지만 그가 입은 갑옷을 뚫지 못하고 그대로 떨어져 나갔다. 그는 에밀리가 괜찮은 것을 확인한 후 다시 몸을 돌려 유리구슬이 있던 곳을 보았다.

그곳에 원래 있어야 할 스카디엘라가 보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그녀를 묶어두던 유리구슬이 파괴된 후 사라진 것 같았다.

드르르륵──

상황이 마무리된 듯 다시 들어왔던 통로가 열렸다. 이에 일행들은 뭔가 쓸 만한 게 있는지 수색을 해보았다.

그리고 몇 분 뒤. 구석에서 작은 궤짝을 발견하였다.

“여기엔 뭐가 들어있을까요, 영주님?”

“글쎄, 아무래도 열어봐야 알겠지.”

“예.”

칼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아르모는 마법을 써 궤짝을 열었다.

《잠금 해제》

‘탈칵’ 소리와 함께 상자가 열렸다. 그 안을 들여 보니 마나석 꾸러미와 함께 책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 책이 무엇인지 아르모가 막 살펴보려 할 때였다.

파지직─

“앗 차거!”

갑자기 책이 얼어붙어 버리자 깜짝 놀라 그만 손을 놓치고 만다.

팍─ 콰직!

땅에 떨어지면 산산조각이 되어버린 얼어붙은 책. 그때 익숙해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빌어먹을 마법사가 남긴 책이다! 아마도 거기에 나를 잡아 가둔 방법이 적혀있겠지.】

사라진 줄 알았던 스카디엘라가 어느새 뒤에 나타나 있었다. 그 모습에 깜짝 놀란 칼슨과 일행들. 잔뜩 긴장하며 자세를 잡았다. 그때 에밀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아요. 스카디엘라는 싸우지 않아요.”

그 말에 모두 의아함을 표하였다. 그러자 스카디엘라가 코웃음 치며 한마디 하였다.

【이 아이의 말이 맞다. 너희들에게 해를 끼칠 생각은 없다. 왜냐하면 나 이 아이와 계약한 관계가 되어버렸으니까.】

“뭐! 그게 정말이야, 에밀리?”

그녀의 말에 깜짝 놀란 칼슨이 묻는다. 그대로 고개를 끄덕이는 에밀리. 자신의 손등을 보여주며 말을 하였다.

“예, 아무래도 아까 유리구슬이 깨졌을 때 계약이 저한테로 옮겨 간 거 같아요.”

“헉, 이, 이건 뭔가요, 에밀리?”

아르모가 그녀의 손등을 보고 깜짝 놀라며 묻는다.

손등에 새겨진 푸른색의 기하학적인 문양. 아무래도 마법 각인에 새긴 마법진과 유사해 보였는데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세밀해 보였다. 아르모 또한 파악이 안 될 정도로 높은 수준의 마법진이였다.

【나도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아이와 나는 계약 관계로 묶여 버렸다. 그러니 이 아이가 그럴 의도가 없다면 나는 너희들을 해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거라.】

‘그런데 왜 멀쩡한 책을 없애?’

계약이 되어 있다면서 저렇게 제멋대로 행동할 수 있는 것인가? 칼슨은 의구심이 들었지만 이미 책은 사라져버렸고 에밀리 또한 괜찮다고 하니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책 내용을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정황상 그녀의 말대로 정령을 가둬두는 내용을 다루었다면 그렇게까지 쓸모 있어 보이진 않았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칼슨은 마나석 꾸러미만을 챙긴 후 일행과 함께 다시 기둥이 있는 방으로 돌아왔다.

이제 다시 다음에 갈 곳을 선택할 차례였다.

남은 건 기사와 해골.

그때 그것을 본 스카디엘라.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을 하였다.

【저기 기사는 딱 봐도 ‘죽음의 기사’가 나오겠네. 해골은 ‘리치’일 테고.】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 이야기하는 그녀. 듣고 보니 그녀의 말이 맞는 듯하였다.

만약 그 말이 맞는다면 둘 다 골치 아픈 상대였다.

“어떻게 그것을 알고 있는 거지?”

칼슨은 좀 더 확실히 알기 위해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이에 그녀는 쓴웃음을 하며 대답한다.

【나를 이곳에 가둔 마법사가 리치였거든. 그리고 그놈이 했던 말 중에 이곳에 죽음의 기사도 있다고 했었으니까.】

그렇다면 그녀의 말이 확실하였다.

‘죽음의 기사’와 리치.

그 중 ‘죽음의 기사’는 네크로맨서가 원한을 가득 품고 죽은 기사의 시체를 이용해 만든 언데드 몬스터이다.

기본적으로 언데드의 특성상 공포심을 느끼지 못하고 생명체라면 당연히 필요한 수면이나 호흡 등이 없어도 움직일 수 있었다. 거기다 ‘암흑 오러’라는 특수한 오러를 사용한다.

암흑 오러.

그것은 일단 일반 오러랑 비슷하였다. 그러나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대상의 생명력을 빨아들이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것에 당한다면 상처뿐만 아니라 생명력까지 뺏기게 되어 매우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설상가상으로 빼앗긴 생명력은 그대로 죽음의 기사에게 흡수되어 부서진 신체를 회복시켰다.

그렇기에 죽음의 기사를 상대할 때 절대 상처를 입지 말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피해를 입혀도 계속해서 회복되기 때문에 큰 곤욕을 치를 수 있었다.

게다가 죽음의 기사는 재료로 쓰이는 시체가 강할수록 또 그 시체가 원한을 많이 품고 있을수록 더욱더 강하였다. 즉 지금 자신들의 상대가 그렇다면 최상급의 재료로 만든 죽음의 기사라면 무척이나 위험할 것이라는 말.

‘그런데 왠지 그럴 거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든단 말이야.’

그렇게 생각한 칼슨은 해골 모양의 기둥도 보았다.

리치.

죽음의 기사가 기사를 언데드로 만든 것이라면, 리치는 마법사를 그리 만든 것이었다.

여타 다른 언데드와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었으며 거기다 마법까지 쓴다. 죽음의 기사처럼 암흑 오러 같은 것은 없지만 대신 네크로맨서나 흑마법사의 마법을 전부 쓸 수 있었다. 보통 일반적인 마법사가 다른 클래스의 마법을 같이 사용하게 되면 몸과 정신에 큰 타격을 주게 된다. 각 클래스마다 마력의 운용방식이 다르기에 서클을 중심으로 신체에 퍼져있는 마력회로가 망가지기 때문.

쉽게 말해서 규격에 안 맞는 열쇠를 무리하게 꿰맞추는 격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되면 마력회로까지 꼬여버리기에 보통 불구가 되거나 심하면 정신까지 미쳐버릴 수가 있었다.

그런데 리치는 그런 부작용이 없었다. 이미 몸은 죽어있는 상태고 정신 또한 언데드라 전혀 타격이 없다.

그렇기에 리치 하나를 상대하는 것은 마법사 둘 셋을 한 번에 상대하는 것보다 더 골치 아팠다. 특히 고서클의 마법사를 재료로 만든 리치인 경우 그 위험도가 곱절로 올라가기에 상당히 조심해야 했다.

어찌 되었든 둘 다 껄끄러운 존재들.

그렇다고 해도 주눅들 필요 없었다. 자신은 이미 소드 마스터를 뛰어넘은 존재. 거기다 일행들 또한 모두 한가락 하는 실력자들이었다. 게다가 이번에 에밀리가 새로 계약한 저 엄청난 정령까지. 설사 상대가 드래곤이라도 해볼 만한 전력이었다. 그렇게 생각한 칼슨은 그 기둥 중 하나를 선택하였다.

“아르모, 이걸로 부탁해.”

“아, 예. 영주님.”

그의 말을 들은 아르모. 그녀는 마력을 불어넣기 위해 칼슨이 가리킨 기둥 앞으로 다가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