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던전 탐사(2)
“도대체 어떻게 그걸 알 수 있는데?”
칼슨이 에밀리에게 묻자 그녀는 마나를 일으켜서 노옴을 소환하였다. 그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노옴은 그곳에서 있었던 일을 보여줄 수가 있어요.”
“뭐? 그게 정말이야?”
“예, 영주님.”
그 말과 동시에 그녀는 노옴에게 마나를 주입하였다. 그러자 노옴의 형태가 변하더니 어떠한 형상으로 변하기 시작하였다.
“이, 이건 도대체…. 설마!”
“음, 아무래도 노옴으로는 여기까지가 한계인 거 같아요.”
그 형상은 바로 어떤 이의 손과 팔 부위. 에밀리의 말에 따르면 땅의 정령은 그곳에 있던 기억을 일부 재생해서 보여 줄 수 있다고 하였다. 다만 노옴 같은 하급 정령은 재현할 수 있는 크기가 작았기에 이렇게 일부분만 보이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번호의 순서만 알아내면 되었으니 그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칼슨의 예상대로 그 손은 숫자가 있는 곳을 몇 번 누른 후 그대로 벽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때.
퍼어억─!
“꺄아아아악!”
변환된 노옴이 터지며 그 여파로 인해 에밀리 또한 충격을 받고 쓰러졌다. 이에 칼슨은 그녀에게 다가가 괜찮은지 물어본다.
“괜찮아, 에밀리?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이야?”
“크응, 저도 잘 모르겠어요. 노옴이 저 벽 안으로 살짝 파고들자마자 이렇게 되어버렸어요.”
“뭐?”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저 벽에 정령의 힘을 제한하는 뭔가가 있다는 것이었다. 칼슨은 고민하였다. 과연 번호를 누르고 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옳은 판단인지. 그러나 달리 방도가 없었다. 결심을 한 그는 일행들을 향해 경고를 하였다.
“자, 뭐가 나올지 모르니 다들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해!”
그 말에 모두 침을 삼키며 자세를 잡기 시작하였다. 어느 정도 준비가 된 듯하자 그는 노옴이 보여준 그 순서에 맞춰 숫자를 눌렀다. 그러자 즉시 미약한 진동과 함께 벽면에 쓰인 글씨의 빛이 점차 강해지기 시작했다.
위이이이잉───
그 기이한 현상에 모두 긴장하였지만 이내 빛이 사그라지며 진동 또한 멈추었다. 그리고 이내 벽이 흔들리기 시작.
드르르르르르─
커다란 석벽이 움직이며 통로가 만들어졌다.
일행들은 자세를 잡으며 예상 못할 상황에 대응할 준비를 하였다. 하지만.
조용~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다.
안도의 한숨을 쉰 칼슨. 일단 안전해 보였지만 혹시 모르니 자신이 먼저 그 안으로 들어갔다.
“흐음, 여긴 어둡지 않군.”
석벽 안에는 제법 넓어 보이는 복도가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천장 위에 일정한 간격으로 빛이 나고 있어 시야가 멀리까지 닿았다. 안전이 확인되자 일행들 또한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주변을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우와! 이게 뭐죠? 마법인가요?”
“와! 이거 마법 각인이군요. 그런데 아무런 행동도 안 하였는데 어떻게 발현된 거지?”
에밀리와 아르모가 눈을 크게 뜨며 놀라워했다.
마법 각인에 상당한 조예가 있던 아르모는 그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런 그녀도 이것이 어떤 원리로 발현된 건지 알지 못하였다.
그렇게 주변 모습에 감탄하면서 따라오는 일행들. 복도를 한참 걸어가다 보니 어느덧 새로운 공간에 들어오게 되었다.
꽤나 넓은 네모반듯한 공간이었다.
한 변의 길이가 대략 수십 걸음 정도의 방이었는데 중앙에 석조로 이루어진 직육면체의 테이블이 있었다. 그 위에는 4개의 기둥이 솟아있었는데 각 기둥마다 독특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제일 정면에 보이는 것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남성. 그러고 보니 비율이 조금 특이하였다. 상체가 비약적으로 크고 얼굴 또한 작고 문드러져 있었다. 어떻게 보면 사람이라기보다는 몬스터와 같은 느낌.
오른쪽에 있는 기둥은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옷을 전혀 입지 않은 나체였다. 조금 민망한 느낌이 들었지만 딱히 외설적으로 보이진 않았다. 야하다는 느낌보다는 서릿발처럼 냉랭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좌측에는 기사로 보이는 기둥이 보였다. 두터운 전신 갑주를 에워싼, 우람해 보이는 체형. 그리고 갑옷의 디자인 또한 뾰족하고 날카로워 보이는 것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매우 공격적인 느낌을 주고 있었다. 게다가 그것이 들고 있는 검 또한 비슷해 보였는데 특히 손잡이 윗부분에 해골 모양이 양각으로 새겨진 것이 인상적이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기둥. 그것은 해골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머리에 뿔이 돋아 있었는데 그 모습이 상당히 기괴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그렇게 그것을 관찰하고 있었을 때 아르모가 다가와 말을 하였다.
“영주님, 이 기둥들에서 마력이 느껴집니다.”
“음, 그래?”
그렇다면 아까와 마찬가지로 이것들이 다른 곳을 갈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다. 그런데 4개 다 마력이 느껴진다고 한다. 칼슨은 그중 앞에 있는 것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아르모, 일단 이 기둥에 먼저 마력을 주입해보자.”
“예, 알겠습니다. 영주님.”
고개를 끄덕이며 사람 모양의 기둥에 다가간 그녀. 곧장 손을 뻗고 그대로 마력을 불어넣는다. 그러자 기둥의 얼굴 부분에서 빛이 나오기 시작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눈.
그 인간 형상의 두 눈에서 녹색 빛이 나오며 기이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기이이이잉───
무언가 격렬하게 흔들리는 듯 울리는 소리. 그리고 곧 벽면 한쪽이 움직이며 통로가 만들어졌다. 이전처럼 딱히 번호를 누르거나 암호가 있지 않고 손쉽게 해결되었다.
칼슨을 필두로 일행은 모두 그 안으로 들어갔다.
통로는 생각 외로 짧았다. 십여 걸음을 지나자 또 다른 공간이 나왔는데 전에 있던 곳보단 조금 작은 느낌.
“어, 저건 도대체 뭐지?”
눈앞에 뭔가를 본 칼슨이 묻는다. 다른 이들도 같이 그것을 보고 눈을 크게 뜨며 놀라고 말았다.
“저건 아까 본 기둥의 형상과 비슷한 것 같은데요?”
조용히 들려온 에밀리의 말. 그녀의 말대로였다.
눈앞에 있는 것은 기둥에 있던 인간 형상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것과는 너무도 달랐다. 왜냐하면 앞에 있는 이것은 그전 방에 봤던 기둥과는 달리 무척이나 컸기 때문이다. 마치 거대한 돌 거인이 눈앞에 서 있는 느낌. 그때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다.
「$##^&안&*@그@라#!」
방안에 울려 퍼지는 알 수 없는 소리. 그건 흡사 말처럼 느껴졌지만 그 뜻을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때 아르모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이 음성은 아무래도 고대어 같습니다. 정확한 뜻을 알 순 없지만 느낌상 좋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칼슨이 듣기에도 그렇다. 부드럽지 않은 강한 어조. 필시 경고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심상치 않다고 여기고 있던 그때.
드르르르르르────
들어왔던 통로에 벽이 생성되면서 출구가 막혔다.
“이런! 길이 막혔습니다, 영주님!”
후방에 있던 우터가 다급히 외쳤다. 허나 다들 그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바로 눈앞에 있던 돌 거인이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것의 눈에서 붉은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한 걸음을 내디딘다.
투두드드득─ 쿵!
발이 바닥에 닿자 크게 들썩거린다. 덩치도 컸지만 그 무게 또한 엄청나 보였다. 아무래도 돌로 만들어졌으니 무거운 것이 당연. 만약 저것에 밟히게 된다면 그대로 찌부러져 버릴 것이다.
“크윽! 모두 거리를 벌리고 전투를 준비한다!”
다급히 외치는 칼슨의 말에 모두들 즉각적으로 흩어지며 싸울 준비를 하였다. 부산스런 움직임이 감지되자 그것은 즉각 반응하며 고대어로 된 음성을 토해낸다.
「&디#*#&*%라$쿤@!」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뭔가 섬뜩한 느낌이 드는 음성. 그와 동시에 거인의 상체가 움직인다.
부우으으응───!
발보다 더 큰 놈의 주먹이 자신을 항해 다가온다. 그 압도적인 위압감에 칼슨은 발을 놀려 재빨리 그 자리를 피하였다.
콰아앙──! 파드드드득──
주먹이 그대로 바닥을 내리꽂으며 주변이 심하게 흔들린다. 허나 바닥에는 미세한 흠집만 날 뿐 금도 가지 않았다.
분명 일반적인 돌바닥은 아닌 게 확실하였다.
어쨌건 놈은 허점을 드러낸 상태. 칼슨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하아아아압!”
어설픈 공격을 할 필요 없이 그대로 비전 검술을 발동. 오러 블레이드를 먹인 검 수십 개가 그대로 거상에 직격한다.
퍼억! 콰앙! 쾅! 퍼억! 퍽!
오러 블레이드가 충만한 검이 녀석을 가격하며 그 거대한 몸이 부서져 나갔다. 그러나 이내 부서진 파편들이 들러붙어 버리며 원상으로 회복하였다. 그 모습을 본 칼슨은 혀를 내둘렀다.
‘씨발, 저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속으로 욕이 튀어나왔지만 달리 방도를 찾을 수 없었다. 그때 아르모가 소리쳤다.
“영주님, 아무래도 저것은 골렘인 것 같습니다.”
“뭐, 골렘?”
골렘이라면 고대 마법사들이 만든 창조물. 주어진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인간형 물체였다.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실제로 처음 봤다. 일반적인 공격으로는 상처조차 낼 수 없고 그 신체가 부서지더라도 금세 회복한다. 그야말로 무적에 가까운 괴물. 허나 놈도 약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마력 핵.
골렘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원인 마력 핵을 파괴하면 된다.
문제는 마력 핵이 위치가 일정하지 않다는 것. 그때 아르모가 칼슨에게 말하였다.
“영주님, 머리 쪽에서 강한 마력이 느껴집니다. 아마도 그곳에 마력 핵이 있을 겁니다!”
“그래? 알았어!”
그녀의 말을 들은 칼슨. 하지만 이내 자신에게 들어오는 골렘의 주먹에 몸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부우우웅──── 콰아앙!
가까스로 그것을 피해낸 그는 곧장 놈의 팔을 발판 삼아 도약. 그리고 바로 놈의 머리를 향해 비전 검술을 펼친다.
쾅! 퍼억─! 콰앙! 콰직─! 콰앙!
수십 개의 검이 머리를 그대로 난자. 골렘의 머리가 단숨에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후드드득.
머리가 박살 나며 상황이 끝날 거 같았지만 골렘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분명 아르모가 머리에 마력 핵이 있을 거 같다고 했었다. 그렇다면 쓰러져야 하는데, 골렘이 왜 계속해서 움직이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칼슨은 그 이유를 곧 알 수 있었다.
“허! 저건 또 뭐야?”
골렘의 머리에는 분명 마력 핵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파괴되지 않고 온전하게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반투명한 장막이 눈에 보였다. 칼슨이 그것에 대해 의문을 표할 때 아르모가 놀라며 소리쳤다.
“저것은 수호방벽 마법? 7서클 마법이 어떻게 여기에….”
“뭐! 7서클 마법이라고? 그럼 어떻게 해?”
“효과가 사라질 때까지 계속 공격해야 해요!”
“뭐! 이런 젠장!”
그녀의 말에 칼슨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일단 7서클 마법사면 일반 왕국에서 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거대한 제국에서나 몇 명 확인이 가능할 정도. 어쨌거나 골렘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고 계속해서 칼슨을 공격하였다.
콰아앙! 콰앙! 콰아앙!
방금 전 자신도 위협을 느꼈는지 전에 비해 그 공격이 빨라졌다. 그래서 피하기 바쁜 칼슨은 다시 공격할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녀석의 움직임이 둔해졌다.
“이이익! 영주님! 제가 잡고 있을 테니, 어서 빨리 공격하세요!”
에밀리의 정령인 실라이론이 골렘의 몸을 에워싸며 잡고 있었다. 하지만 그뿐 완전히 잡아두지 못하고 움직임을 늦추는 게 고작.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였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한 번 더 도약한 칼슨. 다시 놈의 머리를 향해 비전 검술을 시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