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영지 개발(1)
왕위 계승전이 끝난 벤투스 왕국에 새로운 법령이 생겼다.
그것은 바로 ‘전쟁으로 인해 피해받은 영지의 재건에 관한 법’ 줄여서 ‘전쟁 재건법’이라고 불리는 법이었다.
법의 취지는 이랬다.
왕위 계승전으로 인해 부서지고 폐허가 된 영지가 많기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그래서 그렇게 피해를 본 지역을 빠르게 재건해주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물자의 지원은 물론이고 다른 영지의 영지민들 또한 이주도 가능하게 하였다.
이 혜택의 큰 수혜자는 단연 서부파의 영지들.
특히 드레이크 영지가 가장 큰 이득을 보게 되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법안을 제안한 자가 바로 칼슨이었으니까. 몇몇 귀족들이 반대도 하였지만 국왕인 데로스가 강하게 밀어붙이는 바람에 그대로 실행되었다.
반대한 귀족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일반 귀족들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곳에 자신들의 영지민들이 갈 리 없다 생각. 남의 집 불구경하듯이 방관하였다. 하지만 막상 법안이 실행되자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드레이크 건설.
대규모 인력 채용.
기본 월 금화 3개 지급. 연차, 직급에 따라 상승 가능.
가족을 포함한 숙식 제공.
드레이크 영지로의 이동 시 교통편의 제공.
칼슨 드레이크 백작-
위와 같은 팻말을 각 영지 도시 곳곳에 세워두었다.
“응? 이거 뭐야? 달마다 금화 3개를 준다고?”
청년 티토는 믿기 지가 않는 듯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요즘 일거리가 없어 하루하루 버티기가 힘들었는데 마침 이런 것이 눈에 띄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 옆에 서 있던 주민들 또한 상당히 놀란 표정을 하며 수군대고 있었다.
“허, 가족을 포함한 숙식 제공? 그럼 공짜로 먹이고 재워준다는 이야기 아니야?”
“뭐? 이게 사실이야? 말도 안 돼!”
옆집 브레드 아저씨와 칼리 아주머니 또한 눈이 커지며 동요하고 있다. 그들도 티토와 마찬가지로 요즘 경기가 좋지 않아 힘들어하는 중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을 시키려는 거지? 아니지, 건설이라고 하니 집이라도 지으려고 하는가 보네. 이거 자리가 금방 없어지겠는걸?”
“이런 안 되겠어! 우리 그이에게 이야기해서 내일 당장이라도 저곳으로 떠나야겠어.”
“크윽, 이런! 우리도 어서 가자! 당장!”
“안 돼! 내가 먼저 갈 거야! 야, 빨리 집에 가서 짐부터 싸자고!”
돈, 그리고 먹을 것과 집까지 마련해 준다고 하니 너도나도 드레이크 영지로 떠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들 중 상당수는 어딘가에 모여들고 있었다. 그곳을 가보니 꽤 많은 짐마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그중 사람들을 가득 태운 몇몇 짐마차들이 눈에 띈다.
“자! 모두 앉으십시오. 이제 출발합니다!”
다그닥 다그닥─
칼슨은 각 도시 한 편에 영지민들을 수송하기 위한 짐마차를 개설해두었다. 그 수만 무려 5천. 게다가 거리가 가까운 곳 보다 먼 곳에 많이 배정해 효율적으로 각 인원들을 드레이크 영지로 옮겼다. 그렇게 드레이크 영지의 인구 유입 계획은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었다.
체키스산 남쪽.
산 아래쪽 절벽에 커다란 동굴이 보인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그냥 단순한 암반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 몇십 명은 지나갈 만큼 커다란 동굴이 생성되었다.
“에밀리, 굴을 조금 더 크게 팔수는 없을까?”
“그건 곤란해요, 영주님. 노움이 그러는데 더 이상 크기를 늘리면 지반이 불안해져 무너질 우려가 있다고 하네요.”
“아,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대신 튼튼하게만 잘 파줘.”
“예, 걱정하지 마세요. 그럼 저는 계속해서 굴을 파고 있을게요.”
“그래, 수고해.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네, 영주님.”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한 에밀리는 그대로 다시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에는 그녀 말고도 수십의 인부들이 들어가 있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땅을 파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굴을 파는 일은 에밀리 혼자 전담을 하였고 나머지 인원들은 물이 고이지 않게 홈을 파거나 길을 평평하게 만드는 등 다른 부수적인 작업들을 하였다.
“이 속도로 진행된다면 다음 달이면 무난하게 끝이 날 것 같습니다.”
“음, 내 생각도 그래.”
어느새 옆에 다가온 레인. 그의 말에 칼슨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현재 이곳은 체키스산 터널을 만드는 곳이었다. 칼슨이 이곳에 터널을 만들려는 이유는 다름 아닌 교통의 편의성 때문이었다. 현재 그의 영지는 중앙에 체키스 산맥이 가로막고 있는 형국이라 남쪽이랑 북쪽이 단절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특히 본래 자신의 영지였던 남쪽은 무구 및 장비의 주요 생산지.
그 물건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려면, 특히 상업의 중심지인 네트비아까지 가려면 로우링 영지가 있는 동쪽까지 돌아서 가야 했다. 그렇게 가면 일반적인 짐마차의 속도로 부지런히 간다고 해도 무려 일주일은 족히 넘게 걸린다.
하지만 이렇게 터널을 뚫어버린다면 네트비아까지 이틀이면 도착하였다. 게다가 다른 물품들 또한 이곳으로 수급이 원활해질 터. 또한 이곳을 지날 때 추가로 통행세도 받을 수 있어 부가적인 수입이 예상되었다.
“그럼 이곳은 에밀리에게 맡기도록 하고 이제 다른 곳도 가보도록 할까?”
“예, 영주님.”
공사를 하고 있는 곳은 이곳뿐만이 아니었다. 칼슨은 왕궁의 지원에 힘입어 여기저기 개발을 하였다. 물론 자신의 돈도 많이 쓰긴 했지만 왕실의 지원이 없었더라면 이 일을 진행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는 각 지역마다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계획도시를 만들었다.
일단 기존 자신의 영지였던 남쪽은 일종의 공업도시로 만들었다. 원래부터 광물의 수급이 용이했던 곳이었기에 그 규모를 키우고 근처에 대규모 주거단지를 만들기만 하면 되었다.
그리고 중앙의 교역 중심지인 네트비아.
칼슨은 이곳 또한 대규모 개발을 하였다.
기존의 큰 시장이었던 그랜드 바자.
많은 상인들이 오가며 영지의 막대한 수입을 주는 곳이었지만 그곳에도 몇 가지 단점이 있었다.
그것은 이동하는 사람이 많은데 통하는 길은 좁고 너무 복잡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만약 화재라도 발생하면 대응하기가 너무 어렵고 주변으로 피해가 확산될 우려가 컸다.
또한 미등록된 점포들이 암거래를 하더라도 잡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위생적으로도 그렇고 치안 또한 좋지 않기에 이 기회에 확실히 정비해서 크기도 키우고 깔끔하게 만들기로 하였다.
그리고 돈 많은 이들이 많은 곳이니만큼 이곳에도 대규모 주택단지를 짓기로 하였다. 아파트 같은 고층 건물은 아니었다. 그렇게 짓기 위해서 아직 이곳의 건축 기술은 많이 부족하였다. 그래서 5층 건물로 이루어진 타운 하우스 형태의 주거단지를 조성하였다.
일반 서민들보다도 주로 중산층을 위해 만들어진 곳. 공동으로 쓰긴 하지만 단지에 공원도 조성하고 관리인도 쓴다. 물론 그 비용 또한 입주민들이 공동으로 쓰기에 부담은 적었다.
그것 말고도 귀족들이나 부호들을 위한 고급 주택단지도 구상하였다. 하지만 그곳은 현재 단순히 부지 조성만 했을 뿐 아직 건물을 짓지는 않았다. 추후에 예약을 받아 따로 주문 제작을 할 계획이었다.
그 외 지역들 또한 각 지역에 맞춰 계획도시를 만들려 하였다. 그렇게 플랜이 세워진 데가 총 5군대. 아무리 영지가 크다고 하지만 어마어마한 대공사가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그거 말고도 가장 중요한 공사가 또 하나 있었다. 그것은 각 도시들을 원활하게 잇기 위해 큰 도로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거기! 땅을 더 파라고! 그렇게 대충 파면 안 돼!”
“이봐! 여기 모양이 삐뚤어졌잖아. 제대로 안 해? 엉!”
감독관들이 인부들에게 성화를 내며 닦달하였다. 그들의 지도하에 인부들은 바짝 긴장하며 부지런히 일을 하였다.
원래 이런 대규모 토목 작업은 에밀리의 정령을 이용하려 하였다. 허나 그녀가 지금 터널 뚫는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인력을 고용하여 땅을 파고 있었다.
그래도 이런 상황이 마냥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없어서 일이 늘어난 만큼 이곳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일거리를 제공할 수 있었으니까.
“자 모두 10분간 휴식한다!”
감독관의 말에 동작을 멈추는 인부들. 고된 작업 중 꿀맛 같은 휴식 시간이 다가왔다.
“카아아, 이제 살 것 같네.”
“후우, 오늘따라 땅들이 더 단단한 것 같아. 안 그래?”
근육질 사내 사딕이 자리에 주저앉자 동료인 제프 또한 옆에 앉으며 푸념을 한다. 이에 그는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뭐, 난 똑같은 데 뭘. 아, 어서 월급날이나 왔으면 좋겠다.”
“크크크,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일은 힘들지만 그래도 돈은 많이 주니 저절로 힘이 나더라고. 안 그런가?”
“그렇지. 여기만 한 데가 없어. 밥도 주고 재워주기도 하고 돈까지 많이 주니까. 다른 곳은 이보다 힘들게 일을 해도 푼돈이나 주고 말거든.”
옛 생각에 조금 쓴 웃음이 나오는 사딕. 제프도 비슷한 경험을 해서인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 나갔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내 경우엔 푼돈은커녕 일한 게 맘에 들지 않는다고 그냥 쫓아버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그에 비한다면 여긴 낙원이나 다름없지.”
“크하하, 그래, 자네 말이 맞네. 여기야말로 낙원이지. 암. 그렇고말고.”
“하하하하.”
서로 웃으며 한 참 이야기를 나누는 그들. 이윽고 휴식 시간이 끝나자 다시 작업을 하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 * *
동쪽의 로우링 영지.
이곳은 농업을 주요 산업으로 정해 개발을 하였다. 원래부터 기름진 땅이어서 생산량이 많았지만 칼슨은 이보다 더 많은 땅들을 개간하길 원하였다.
그래서 숲에 있는 나무를 베어내고 그곳에 있던 동물들과 몬스터들을 몰아내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만약 계획대로만 이루어진다면 기존의 두 배 이상의 농지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로우링 영지 동쪽 하라달리아 숲.
“키에에에엑!”
“이런 젠장! 고블린들이다! 모두 자세를 잡아라!”
“옙! 부기사단장님!”
부기사단장 폴의 외침에 기사들과 병사들의 움직임이 기민해졌다. 자신들의 신장보다 한참 작은 고블린들이었지만 그래도 몬스터. 절대 만만히 봐서는 안 되었다.
휙! 휙! 휘익!
팅! 티잉! 팅!
“크윽! 이 새끼들이!”
멀리서 바람총을 쏘는 놈들. 뾰족한 독침들이 날아왔지만, 다행히 그들이 입고 있던 갑옷을 뚫지는 못하였다. 자신들의 공격이 통하지 않자 조잡한 검을 들고 달려드는 놈들. 이에 폴은 검에 오러를 실어 놈들을 향해 휘두른다.
“히야아아압!”
치이이익 서걱──
“끼아아아악!”
“카하아악!”
그 흔한 가죽갑옷 조차 없는 놈들이라 오러가 먹은 검에 푸딩처럼 베어져 나갔다. 그가 앞장서서 고블린들을 베어나가자 뒤를 따르던 기사와 병사들 또한 나서며 힘차게 창칼을 들이민다.
서걱─ 푸욱─ 푹─ 퍽─
“키에에엑!”
“카아앙!”
공격하는 족족 쓰러지는 고블린들. 비록 그들이 흉악한 몬스터이지만 잘 무장된 병사들에겐 큰 위협이 되지 못하였다. 그렇게 폴이 이끄는 부대가 몬스터 토벌을 순조롭게 진행하고 있었던 그때.
“쿠워어어어어!”
갑자기 귀를 찢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 흉포한 소리에 숲이 쩌렁쩌렁 울리며 나무에 쉬고 있던 새들이 이리저리 흩어지며 시야를 어지럽혔다. 그리고 이윽고 숲 안쪽에서부터 커다란 그림자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