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영지가 제일 강함-64화 (64/162)

63화 엘리시아의 경고

세르보를 따라가기 한참. 긴 왕궁 복도를 지나 어느 문 앞에 다다르게 되었다.

“바로 여기 계십니다. 백작님, 부디 좋은 시간되시기 바랍니다.”

“예, 감사합니다.”

그는 가볍게 인사를 하며 곧장 몸을 돌려 그곳을 떠났다. 칼슨 또한 고개를 돌리며 문을 향해 노크를 하였다.

똑똑.

“들어오세요.”

안에서 앳된 여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아마 엘리시아인 듯했다. 칼슨은 주변을 살짝 보고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안에 들어오니 테이블에 앉아 차를 들고 있는 엘리시아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칼슨을 보더니 자리에 일어선 후 궁중 예법을 보이며 다소곳하게 인사를 하였다.

“오랜만이에요, 드레이크 백작님. 진심으로 승작을 축하드려요.”

환하게 웃으며 자신을 반갑게 맞아주는 그녀. 전에 봤을 때는 조금 차가운 느낌이었는데 의상을 차려입고 단장을 하니 꽤나 활기차 보였다.

“감사합니다. 엘리시아 공주님. 덕분에 좋은 영지를 얻게 되었습니다.”

“호호, 드레이크 백작님이 하신 일에 비하면 부족하지요. 비록 제가 오라버니, 아니 폐하께 한 말씀 올리긴 했지만 폐하께서도 백작님에게 많이 고마워하고 있으세요.”

“예, 그렇습니까?”

반문하듯이 물었지만 사실 그런 건 진작 느꼈다. 아까 루보스인가 하는 늙은이가 따지고 들 때 제대로 한 방 먹일 때부터 그가 자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하긴 자신을 국왕으로 만들어준 1등 공신인데 사람이라면 당연히 고마울 테지.

“그럼요. 누가 뭐래도 드레이크 백작님은 그럴만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으세요. 그러니 부담 없이 그 영지들을 받으셔도 됩니다.”

“예, 감사합니다.”

칼슨이 미소를 지으며 감사를 표하자 그녀는 자리에 앉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저 일단 자리에 앉으시지요.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눠보아요.”

“예, 공주님.”

쪼르르르.

칼슨이 자리에 앉자 바로 그의 잔에 차를 따라주는 엘리시아. 그리고 자신의 잔에도 차를 따른 후 한 모금 마신다. 그것을 본 칼슨 또한 앞에 있는 차를 슬며시 입에 대었다. 그러자 향긋한 향과 함께 따스한 기운이 스며들며 몸이 개운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에 놀란 칼슨이 놀란 듯 물었다.

“오, 차가 참 좋습니다. 이것은 도대체 어떤 차인가요?”

“후훗,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이네요. 이것은 아크레프 제국에서 수입된 엘프의 차랍니다. 향도 참 좋지만 마시면 마음을 안정시켜주고 머리를 맑게 해주지요.”

“아, 이게 그 유명한 엘프의 차 군요.”

엘프의 차.

들어본 적이 있었다. 아크레프 제국 너머 대수림에 모여 산다는 엘프들만이 재배하는 특이한 작물로 만든 차.

아크레프 제국에 있는 혼혈 엘프들 중 친분이 있는 자들만이 그 엘프들과 거래를 할 수 있기에 일반적으로 이 차를 구하기는 무척이나 어려웠다. 아마 왕궁에서도 그 양이 얼마 있지 않을 것이다.

“말로만 듣던 이런 귀한 차를 맛볼 수 있다니 엘리시아 공주님 덕분에 제 입이 아주 호강을 합니다.”

“후훗, 이런 차야 백작님만 원하신다면 언제든지 대접해드릴 수 있답니다.”

“하하하, 아닙니다. 그건 그렇고 저를 보고자 하신 이유는 무엇이신지요?”

훈훈한 분위기 속에 칼슨이 용건을 묻자 그녀는 들뜬 기운을 가라앉힌 후 입을 열기 시작하였다.

“네, 제가 드레이크 백작님을 보려는 이유는 두 가지 일을 말씀드리기 위해서예요.”

“예? 그게 무슨….”

“게다가 2가지 일 중 하나는 가까운 미래에 벌어질 것이고요.”

“…….”

회귀자인 그녀가 말하는 미래라면 거의 확실히 벌어질 일일 것이다. 칼슨은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의 말을 경청하기 시작했다.

“일단 첫째는 리나드 후작이 죽었다는 사실이에요.”

“흠, 그것이 정말입니까? 허면 어떻게 그 사실을….”

“제가 직접 처리했으니까요.”

“아….”

하긴 그녀는 지난 생애에 리나드 후작으로 인해 비참한 최후를 맞았었다. 기회가 있다면 어떻게든 그에게 복수를 하려 했을 테니 이상할 게 없었다. 그런데 그런 다음 그녀의 말에 잠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저는 그의 시신을 그대로 방치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그의 시신을 찾았다는 말이 없더군요. 설마 백작님께서 그의 시신을 따로 숨겨놓으실 리는 없을 테고요.”

“예? 그게 정말입니까!”

“역시 드레이크 백작님도 모르고 계셨군요.”

꽤나 심각해진 엘리시아의 표정.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누군가 리나드 후작의 시신을 가져갔다는 말인데….

도대체 누가? 그리고 왜?

“혹시 짐작 가는 것이라도 있습니까?”

“아니요, 전혀요. 누군가의 시신을 가져갔다면, 특히 그것이 소드 마스터의 시신이라면 분명 좋은 뜻으로 가져간 것은 아닐 거예요.”

칼슨 또한 그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그 시신이 사라진 장소가 자신의 영지였다. 그렇다면 그 무리들 또한 그곳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상당히 찝찝하였다.

“엘리시아 공주님, 리나드 후작의 시신이 있었던 곳은 정확히 어디쯤인지 기억하십니까?”

“음, 라호르 평야에 있는 어느 길목이에요. 상당히 눈에 잘 띄는 곳이라 백작님께서 금방 발견하실 줄 알았는데 설마 다른 이들이 그걸 가로챘을 줄이야…. 아, 설마?”

무언가가 생각난 듯 눈이 커지는 그녀. 칼슨 또한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며 신중하게 묻는다.

“혹시, 뭔가 짚이는 게 있는 겁니까?”

“확실한 건 아니에요. 허나 시체를 가지고 뭔가를 하는 이들은 많지가 않지요. 그중 대표적인 것이 네크로맨서와 흑마법사인데 만약 그렇다면 이건 쉽게 처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네요.”

“네? 그게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네크로맨서, 흑마법사라니요?”

그녀의 말에 칼슨은 깜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네크로맨서와 흑마법사는 일반 인간들이랑 달랐다. 비록 사람들이 서로 싸우고 죽이는 일이 빈번한 세계였지만 이들은 그 선 자체를 넘어섰다. 특히 네크로맨서는 시체로 자신의 수족을 만드는 이들이었기에 사람의 생명 따윈 덧없이 생각하는 이들 중 하나였고 흑마법사 또한 살아있는 생명을 제물로 악마들과 계약하기에 그 악명이 자자하였다. 칼슨이 어이없어하며 되묻자 그녀는 한숨을 쉬며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후, 저는 그들 중 아마 네크로맨서가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아무리 리나드 후작이 소드 마스터라지만 이미 죽었기에 제물로서 가치가 그리 높진 않으니까요.”

“흠,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하였지만 그에게는 네크로맨서든 흑마법사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둘 다 똑같이 자신의 영지에 있어 암세포와 다를 바 없었다. 어찌 됐건 놈들을 빨리 찾아서 처리해야 추후에 큰일이 없을 것이다.

‘다시 돌아간다면 순찰대원들을 지금보다 몇 배로 늘려야겠군.’

칼슨이 심각한 표정을 하면서 말이 없자.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또 말을 이어 나갔다.

“그에 관한 문제도 그렇지만 다른 하나는 조금 더 심각한 일이랍니다.”

“예? 이보다 더 심각한 일이라니요?”

엘리시아에 말에 다시 표정이 안 좋아지는 칼슨. 당장 의문의 세력들로 인해 골치가 아픈데 그보다 더한 일이라니. 그는 다시 귀를 열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 일은 가까운 미래에 일어나게 돼요. 그 시기는 대략 내년 가을쯤. 그 시기에 우리 왕국은 물론 대륙 각 지역에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하게 되지요.”

“뭐라고요? 지금 몬스터 웨이브라 하셨습니까?”

“예, 몬스터 웨이브요.”

몬스터 웨이브는 몬스터들이 대량으로 발생하여 침입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보통 웨이브라 칭할 정도면 그 수가 굉장히 많았다. 보통 그 수가 적게는 수백에서 많게는 수천 이상. 아무튼 그런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볼 것도 없이 쑥대밭이 나는 것은 기본. 상황에 따라 그 동네가 사람이 살 수 없는 몬스터 거주지가 될 수도 있었다.

“그리고 벤투스 왕국에서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되는 곳은 바로 하라달리아 숲이에요.”

“예? 그게 정말입니까!”

그녀의 말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라달리아 숲은 바로 자신이 이번에 얻게 된 영지의 동쪽에 위치한 곳이기 때문. 그 말은 곧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되면 가장 먼저 피해를 입게 될 지역이라는 소리였다.

“…….”

‘뭐! 이 개 같은…!’

당했다. 알짜배기 영지를 자신에게 주어서 좋게 봤었는데 그게 다 이런 내막이 있었던 것. 알고 보니 골치 아픈 일을 자신에게 떠넘긴 격이었다. 밀려오는 배신감에 표정이 굳어졌다. 그리고 문득 새로 등급이 오른 스킬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녀에게 바로 스킬을 사용해 보았다.

[인물정보 열람]

띠링─

───────────────────────────

엘리시아 던 카르시아

나이 : 18세

클래스 : 마법사

힘 C(7)[+1] 민첩성 B(10)[+1] 지능 S(19) 체력 A(13)[+2] 정신력 S(18)[+1] 마력 S(18)[+2]

성향

[복수] [신뢰] [협력] [공정]

상태

미안함

관계

호감(38)

스킬

6서클(에픽/성장)

트리플 캐스팅(에픽)

마력회로(희귀/패시브)

환기(희귀)

망각하지 않는 기억(희귀/패시브)

칭호

불세출의 천재

벤투스 왕국의 공주.

새로운 국왕인 데로스 카리시아의 동생.

최근 리나드 후작을 제거한 후 무언가 깨달으며 조금 성장. 왕국의 실세 중 하나로 현 국왕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다.

───────────────────────────

‘호오?’

능력치가 전보다 더 보기 편해졌다. 등급도 바로 알 수 있었고 전에 비해 올라간 수치도 보였기에 복잡하게 가늠할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그전과 달리 몇 가지 정보가 더 생겼다.

성향과 상태 그리고 관계.

능력치랑 달리 그 사람의 심리를 보는데 유효한 정보였다.

‘일단 악의는 없는 것 같군.’

그녀의 성향을 보니 딱히 자신을 이용하려는 심산은 없어 보였다. 미안함 상태이고 관계 또한 호감.

그것을 본 칼슨은 미운 감정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기다렸다. 한동안 말이 없자 그녀는 정말 미안한 표정을 하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미안해요. 그래도 제가 믿을 수 있는 분은 백작님뿐이라 그랬어요. 백작님에게 모든 것을 떠넘기려 했던 것은 아닙니다. 대신 왕궁에서 할 수 있는 한 뭐든 지원해드릴게요. 그러니 노여움을 푸시길 바라요.”

진심으로 사과하며 말하는 그녀의 태도에 칼슨 또한 표정이 누그러졌다. 어쨌든 자신에게 알짜배기 땅을 준 것은 맞다. 그것도 대신들의 반대를 무릅쓰며 무리하게.

좋은 걸 얻은 만큼 그에 대한 책임도 같이해야 하는 게 당연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니까.

거기다 왕궁에서 지원까지 해준다고 하니 냉정히 보면 딱히 나쁜 상황은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어쩔 수 없지요.”

“백작님의 결단에 정말 감사드려요. 원하시는 지원이 있다면 언제든지 왕궁에 말씀해주세요.”

“예, 엘리시아 공주님.”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이에 엘리시아는 환하게 웃으며 기뻐하였다. 그 모습을 본 칼슨은 속으로 생각하였다.

‘그럼 왕궁에게 얼마나 뜯어갈 수 있을지 알아나 볼까?’

이왕 일을 맡은 거 최대한 뽑아먹어야겠지.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니까.

* * *

국왕이 새롭게 옹립된 벤투스 왕국.

하지만 새 국왕보다 사람들의 입에 더 오르고 내린 이는 바로 칼슨 드레이크였다.

왕위를 올린 공로를 인정받아 고위 귀족인 백작으로의 승작. 거기다 동부 대부분이 영토를 보유한 대영주가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왕국의 5명뿐인 소드 마스터.

게다가 모든 전투를 승리로 이끈 전장의 사신.

이 많은 수식어 중 어느 하나 평범한 것이 없었다.

그런 만큼 그와 만나기를 원하는 이들도 많았다.

“하, 이게 다 초청장이야?”

“예, 영주님.”

시종장인 에드윈이 가져온 편지들. 커다란 바구니를 가득 채우다 못해 넘쳐났다. 왕국의 귀족들이 죄다 보낸 듯 그 수가 어마어마하였다.

“일단 분류해서 놔둬. 그래도 고위 귀족이 보낸 것은 확인을 해야 하니까.”

“예, 알겠습니다.”

대답과 동시에 에드윈은 옆에 있는 시종들에게 손짓을 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재빨리 바구니를 들며 방문을 향하였다. 시종들이 나가자 에드윈 또한 고개를 숙이고 그들을 따라 문밖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조금 뒤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영주님, 레인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래, 들어와.”

드륵

무언가 손에 쥐고 들어온 레인. 얼굴을 보니 기쁜 듯 화색이 돌고 있었다.

“영주님, 드디어 왕궁에서 법령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래? 그럼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겠군.”

“예, 세부적인 조항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사업을 시작하기에는 무리가 없습니다.”

“그래, 그럼 당장 시작을 해야겠지. 어서 영지 회의를 소집하도록.”

“예! 영주님.”

잔뜩 신이 난 레인이 문밖으로 나갔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칼슨 또한 슬며시 미소 짓는다. 그의 손에 들린 문서.

그 상단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드레이크 영지 재개발 계획안-

이제 본격적으로 영지를 바꿀 때가 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