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즉위식(2)
“도대체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폐하!”
땅을 줄이라 말하였는데 오히려 작위를 높이라는 말에 눈이 커지는 루보스. 그런 그를 보며 데로스는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그렇지 않소? 재상께서 말하는 것은 그거이지 않소. 작위에 맞지 않는 영토를 가지고 있으니 헤아려 달라. 그렇기에 그리 말한 건대 무슨 문제라도 있소?”
“그, 그것이….”
“그렇다면 그렇게 하는 걸로 알고 진행하겠소.”
정말로 칼슨에게 공작 위를 주려는 듯하자 루보스는 다급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폐하, 신이 잘못 생각하였습니다.”
“도대체 또 뭘 잘못 생각했다는 말이오?”
“폐하의 깊은 의중을 헤아리지 못한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부디 처음 폐하의 뜻대로 하시기 바랍니다.”
그대로 말을 바꾸며 고개를 조아리는 루보스. 그 모습을 본 칼슨은 묵은 체증이 내려간 듯 너무나도 통쾌하였다.
칼슨의 그런 심정을 아는지 데로스는 루보스에게 한마디 더 이야기하였다.
“아니, 방금 재상께서 왕국의 위계를 지켜야 한다고 하지 않았소? 그렇지 않으면 나라가 바로 서지 않는다고….”
“아닙니다! 신이 어리석어서 그만 실언을 하였습니다. 부디 폐하의 뜻대로 하시길 바랍니다.”
“뭐, 재상이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그럼 이번에 특별히 그렇게 하도록 하겠소. 그렇지만 다음부터는 부디 잘 생각하고 말해주시오. 이렇게 말을 바꾸는 일이 없도록 말이오. 한 나라의 재상이 이렇게 줏대가 없어서야….”
“예, 폐하. 명심 또 명심하겠습니다!”
굴욕적인 언사에도 불구하고 목에 핏대를 세워가면서까지 자신의 승작을 저지하는 루보스. 그 모습이 참으로 우스워 보이기까지 하였다.
‘그러고 보니 신임 국왕 참 마음에 드네.’
비록 그를 지지하여 왕위에 올렸지만 혹시나 이상한 놈이 아닐까 걱정도 했었다. 그러나 지금 하는 것을 보니 제법 괜찮아 보인다. 그리 생각하고 있을 때 눈앞에 또 메시지가 올라왔다.
[보상이 확정되었습니다.]
[클래스가 영주(자작)에서 영주(백작)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영지가 대폭으로 증가되었습니다.]
[클래스 변동으로 인해 스킬 ‘인물정보 열람(중급)’이 ‘인물 정보 열람(상급)’으로 변경되었습니다.]
[클래스 변동으로 지배력이 3 증가되었습니다.]
[영지가 대폭으로 증가하여 지배력이 2 증가 되었습니다.]
[인물정보 열람(상급)(전설/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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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있다.
사용자 편의를 위한 인터페이스가 개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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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대박!’
보상과 더불어 그에 보너스가 더 붙었다.
자그마치 지배력이 5나 증가 되었다.
거기에 인물정보 열람 또한 상급으로 변경되었다.
그래서 새로운 스킬을 쓰려던 찰나.
“그럼 이것으로 논공행상을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모두 이들에게 축복을 내려 주기 바란다.”
데로스의 말이 끝나자 사람들의 환호가 쏟아졌다.
“국왕 폐하 만세!”
“와아아아! 바스테르 후작! 바스테르 후작!”
“드레이크 백작! 드레이크 백작! 와아아아아!”
그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짓는 데로스.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그 자리를 떠났다.
그렇게 모든 행사가 마무리되자 칼슨에게 많은 이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축하하오. 드레이크 백작. 나는 엔토 백작이라고 하네. 듣자 하니 미혼이라 들었는데…. 우리 막내딸이 이제….”
“승작을 축하드립니다, 백작님. 저는 다비든 자작이라고 합니다. 혹시 연상의 여인에게 관심이 있으십니까? 저희 장녀가 이제 나이가….”
“드레이크 백작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저는 라울 남작이라고 합니다. 우리 둘째 아이가….”
“저는 네스크 자작….”
“저는 델로스 남작….”
“…….”
여기저기서 봇물 터지듯이 그에게 정략혼을 제시하는 귀족들. 백작부터 남작까지 그 계층도 다양하였다. 허나 어느 하나 맘에 들지 않는 칼슨. 그들이 제시하는 여인들이 맘에 차지 않는 게 아니라 그냥 이 상황 자체가 짜증이 났다. 그렇다고 이 많은 귀족들에게 욕을 퍼부을 수도 없는 법. 그냥 영업용 미소로 완곡히 사양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그가 곤란을 겪고 있었을 때 누군가 그를 도와주었다.
“하하하, 이렇게 다시 보니 반갑네, 드레이크 자작! 아니 이제 드레이크 백작이로군.”
호탕하게 웃으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한 남성. 평소랑 다르게 정돈된 갈색 머리 때문에 익숙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 말투랑 체구는 제법 친숙하였다.
“안녕하십니까, 바스테르 후작님. 승작을 축하드립니다.”
“하하하, 그래. 자네도 백작으로의 승작을 축하하네. 이거 우리 둘이 나란히 승작을 하니 기분이 정말 좋군. 하하하!”
“감사합니다. 바스테르 후작님.”
화제의 인물들 중 하나인 그가 다가오자 그의 위압감에 모두들 한 걸음씩 뒤로 물러섰다. 과연 왕국에 3명뿐인 후작의 위세다웠다. 그리고 그에게 다가온 거물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벤투스 왕국의 젊은 영웅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게 되니 정말 영광이로군. 반갑네, 드레이크 백작.”
금발에 거구인 남성이 칼슨에게 접근하며 말을 하였다. 그의 특징이 워낙 유명해서인지 칼슨 또한 그를 알고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라델리안 공작님.”
“호오? 나를 알고 있는가?”
“벤투스 왕국에서 공작님을 모른다면 말이 되지 않겠지요.”
“하하, 그런가? 어찌 됐든 나를 알아봐 줘서 고맙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저야말로 이렇게 말로만 듣던 공작님을 뵙게 되어 무한한 영광입니다.”
“하하하, 이 늙은이를 봐서 영광이라 말해주니 이거 기분이 참 좋구먼.”
자신의 입으로 늙은이라 말하였지만 그의 외모는 고작 중년 정도밖에 안 돼 보였다. 아마도 소드 마스터여서 그런지 나이에 비해 엄청 젊어 보였다.
“그나저나 바스테르 백작, 아니 이제 후작이지. 자네도 승작을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라델리안 공작님.”
이제 최상위 귀족인 후작이 되어 목에 힘이 들어갈 법했지만 라델리안 공작을 향해 깍듯이 대하는 바스테르 후작. 아무래도 같은 소드 마스터이고 무인으로 그를 존경하는 마음이 커 보이는 것 같았다.
“하하, 그러고 보니 여기에 있는 이들이 모두 소드 마스터가 아닌가? 이거 참 귀한 장면일세, 그려.”
그의 말대로 이 3명은 모두 소드 마스터였다. 왕국 내 5명뿐인 소드 마스터 중 3명이 한자리에 있으니 흔치 않은 일. 하지만 칼슨은 그런 것보다 이들로 인해 귀찮은 귀족들이 떨어져 나간 것이 더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이내 그 생각은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자네 나이가 이제 스물이라고 하였나? 혹시 아직 미혼인가?”
말하는 각을 보니 딱 혼담이 들어올 기세였다. 하긴 객관적으로 자신을 보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것 같았다. 백작이라는 고위 귀족에 광활한 영지를 소유한 영주. 거기다 소드 마스터이며 나이까지 젊다.
앞길이 창창하게 빛날 거물인데 탐이 안 난다면 거짓말이다. 솔직히 하급 귀족들의 입장에선 정실이 아닌 후처라도 들이밀고 싶을 심정일 것이다. 게다가 아직 미혼이니 지금 결혼하면 정실은 따 놓은 당상. 어찌 목숨 걸고 덤비지 않겠는가.
‘하, 인기가 많은 것도 참 피곤하구먼.’
누가 본다면 배부른 소리를 한다고 하겠지만 딱히 현재 결혼 생각이 없는 그에겐 이런 것을 일일이 거절하는 것 또한 꽤나 고역이었다.
게다가 상대가 맘에 들어 연애를 하고 결혼하는 것도 아닌 계산해서 결혼하는 정략혼이라니…. 정말 내키지가 않았다.
그렇게 칼슨은 라델리안 공작의 말에 거절할 각을 잡으며 조용히 답을 해주었다.
“예, 아직 연이 없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래,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래도 자네라면 언젠가 좋은 인연을 만날 수 있게 될 터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게.”
“예, 예?”
바로 혼담을 얘기할 줄 알았는데 그냥 격려의 말로 끝내자 조금 당황한 칼슨. 그 모습에 라델리안 공작이 의아해하며 묻는다.
“응? 왜 그리 놀라는가?”
“아닙니다. 그냥 잠시 딴생각을 하느라 말을 놓쳤습니다.”
“하하, 그래. 이 늙은이가 너무 지루한 말만 늘어놓은 모양이로군. 미안하이. 그럼 난 이만 가보겠네. 그리고 백작이 된 것을 다시 한번 축하하네.”
“예, 감사합니다. 라델리안 공작님. 만나서 영광이었습니다.”
“하하하, 그래, 또 보게나.”
걸걸하게 웃으며 작별 인사를 하는 라델리안 공작. 뭐가 그리 기분이 좋은지 발길을 돌리는 순간까지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그렇게 라델리안 공작이 가고 난 후 이제 그의 옆에 남은 이는 바스테르 후작뿐. 그러자 다른 귀족들이 슬슬 눈치를 보며 칼슨에게 접근을 시도하려고 하였다. 그때 또 누군가 그에게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드레이크 백작님.”
짙은 흑발이 눈에 띄는 젊은 남성. 그러고 보니 그는 아까 데로스가 어전에 있을 때 엘리시아랑 같이 옆에 있었던 자였다. 처음 보는 그가 대뜸 자신에게 인사를 하며 악수를 청하자 조금 당황스럽긴 하였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그의 손을 잡으며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그런데 실례가 안 된다면 혹시 누구신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아,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제 소개가 늦었군요. 저는 세르보 체스터라고 합니다. 현재….”
“오랜만이오, 체스터 백작.”
말을 중간에 끊으며 아는 체를 하는 바스테르 후작. 그에 세르보는 머쓱한 표정으로 쓴웃음을 짓는다. 그가 무안해하며 말을 잇지 못하자 바스테르 후작이 대신 그자의 소개를 해주었다.
“이쪽은 체스터 백작이라고 하네. 현재 궁내부 장관을 맡고 있소. 비록 영지는 없지만 국왕 폐하의 신임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자라오.”
조금 퉁명스레 말하는 바스테르 후작. 둘이 뭔가 좋지 않은 감정이 있는 듯했는데 자세한 내막을 알지 못하는 자신이 나서긴 뭐해서 가만히 고개만 끄덕였다.
“체스터 백작, 그나저나 드레이크 백작에게 도대체 무슨 볼일이 있어 오셨소?”
“볼일이라니요? 바스테르 후작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꼭 무슨 목적이 있어서 온 것….”
“정말 아무 목적이 없단 말이오?”
바스테르 후작이 고압적인 자세를 취하자 그는 표정을 굳히더니 이내 말을 이어 나갔다.
“…아닙니다. 사실 드레이크 백작님에게 중요한 볼일이 있어 찾아온 겁니다. 드레이크 백작님, 실례가 안 되신다면 시간 좀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예? 도대체 무슨 일이시기에 그러십니까?”
갑작스레 따로 보자고 하기에 그 연유를 묻자 그는 칼슨의 귀에다 조용히 귓속말을 하였다.
-엘리시아 공주님께서 보고자 하십니다.
“예?”
그의 말에 깜짝 놀라는 칼슨.
무슨 일로 자신을 보고자 하는 것일까. 의구심과 함께 생각이 깊어졌다. 허나 바스테르 후작 또한 그 말을 듣고는 칼슨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것은 곧 그렇게 하라는 의미. 하긴 생각해보니 바스테르 후작도 엘리시아 쪽 사람이었다.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자신을 위해 알짜배기 영지를 챙겨준 그녀이기에 인사라도 해야 할 듯싶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안내해주시지요.”
“예, 드레이크 백작님. 저를 따라오시기 바랍니다.”
그 말과 함께 걸음을 옮기는 세르보. 칼슨 또한 그를 따라 홀에서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