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승리
“와아아아아!”
“벽이 무너졌다! 이때가 기회다! 모두 전진하라!”
“어서 앞으로 가라! 놈들을 없애 버려라!”
국왕파의 병사들이 밀고 들어오자 에밀리가 다급히 마나를 방출하였다.
와르르르르────
“으아아아악!”
“아아악! 살려줘!”
그들이 들어오는 길목에 구덩이가 생겨나면서 순간적으로 진입을 차단하였다. 그러나 뒤이어 들려오는 외침.
“머뭇거리지 마라! 머뭇거리는 놈들은 내가 용서하지 않겠다!”
금발에 구릿빛 피부를 가진 사내. 바로 로트비체 백작이었다. 그는 물론이고 그의 휘하 기사들까지 병사들을 겁박해 전진을 강요하였다. 견고한 벽이 뚫린 지금이야말로 승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그로서는 이 기회를 절대로 놓칠 수 없었다.
“커헉! 미, 밀지마! 으아악!”
“아아악! 안 돼! 커억!”
“사, 살려줘! 아아악!”
뒤에서 밀어붙이자 앞에 서 있던 자들이 구덩이로 떨어졌다. 어떻게든 살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뒤에서 밀려오는 인파의 힘을 그들로서는 막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백여 명가량이 구덩이로 떨어지자 그곳은 이제 사람이 발을 디딜 수 있을 정도가 되어버렸다.
“이런 미친놈들!”
병사들을 생매장시켜서 길을 만들어 버리는 놈들의 행태에 우터는 치가 떨려왔다. 활시위를 당기며 하나둘씩 쓰러트려 보지만 몰려오는 병사들을 그가 일일이 상대할 수 없는 법. 어떻게든 다시 전열을 가다듬어야만 하였다. 그때 방패병들 중 유난히 몸집이 큰 이가 큰 소리로 외쳤다!
“방패병들은 모두 나를 따라 대열을 맞춰라!”
그 말과 동시에 그는 방향을 틀어 들어오는 적들을 방패로 밀어내기 시작하였다. 그 모습을 보던 다른 방패병들.
“모두 햄 대장을 따라 이동하자!”
“대열을 유지해! 절대 밀려나면 안 돼!”
쿠웅! 쿵! 쿠웅! 쿠웅!
육중한 그들이 한 번에 움직이자 둔탁한 소리와 함께 땅이 울렸다. 그렇게 그들이 대열을 변형하자 그들과 대치하고 있던 적의 병사들이 중심을 잃고 그대로 쓰러져버렸다. 그리고 햄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지금이야! 찍어!”
콰직!─
무언가 처참하게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피가 사방에 뿌려졌다. 그 참혹한 장면에 적들은 순간 얼어붙어 버린다. 그리고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였다.
콰직! 쾅! 푹직! 콰직! 쾅!
다른 방패병들 또한 햄처럼 쓰러진 병사들을 사정없이 짓이겨 버린다. 순식간에 다진 고기가 되어버린 적들. 그런 자신들의 동료를 본 국왕파의 병사들은 두려움을 느끼며 동요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뒤이어 날아오는 드레이크 병사들의 화살 공격.
휘익 휙 휘익 휘이익─
푸욱! 푹! 푸욱! 푹! 푹!
“아아아악!”
“커어억!”
“으아아아악!
화살비가 그들에게 떨어지며 수십의 병사들이 고슴도치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되자 극도로 사기가 떨어지기 시작하는 국왕파의 병사들.
이 상황을 지켜본 로트비체 백작은 안 되겠다 싶었는지 기사들과 함께 자신이 직접 앞장서기 시작하였다.
“모두 나를 따라라! 승리로 가는 돌파구를 내가 뚫어내겠다!”
그가 큰 소리로 외치며 달려 나가자 그의 옆에 있던 기사들 또한 그를 뒤따르며 병사들에게 소리친다.
“로트비체 백작님을 따르자!”
“지금이 바로 놈들을 이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모두 걸음을 늦추지 마라!”
“와아아아아!”
로트비체 백작과 기사들이 앞으로 나가자 병사들 또한 사기가 오르며 그 뒤를 따르기 시작하였다. 그때.
쉬이이이익─── 퍼억!
“크아아악!”
기척을 느낄 새도 없이 옆에 있던 기사가 나가떨어졌다. 로트비체 백작의 놀라움이 가시기도 전에 다시 또 화살이 날아왔다.
쉬이이익─── 푸욱!
“크아아악!”
털썩─
또 한 명의 기사가 말에서 떨어졌다.
상황이 그렇게 되자 그는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드레이크 영지에 있는 귀궁이라 불리는 자가 있다는 것을.
‘바로 이것이 귀궁이라는 자의 솜씨인가! 젠장!’
바짝 긴장한 그는 정신을 집중하며 상대의 공격을 대비하였다. 그리고 곧 그를 향한 화살이 날아왔다.
쉬이이이익──── 치이익!
“크으윽!”
화살이 날아오리라 예상하고 있었건만 미처 피하지 못하며 화살이 그의 얼굴을 스치고 간다. 그 엄청난 궁술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보였지만 놈이 이제 눈앞에 보이기 시작. 이에 힘껏 박차를 가하며 속도를 높였다.
상대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들어왔지만 우터는 당황하지 않는다. 차분한 표정으로 활시위를 당길 뿐.
쉬이이이익──── 푸욱!
“허억?”
화살에 맞지는 않았지만 그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상대의 화살은 바로 그가 타고 있던 말의 눈을 노렸으니까.
히이이이이잉~~
눈에 화살이 꽂힌 말은 자지러지듯이 발광을 하였다. 그 위에 타고 있던 로트비체 백작이 있는 힘을 다해 고삐를 잡으며 진정시키려 하였다.
하지만 그것이 무색하게 말은 고통스러워하며 더욱더 몸부림을 칠뿐 더 이상 주인의 통제를 따르지 않았다. 그렇게 로트비체가 안간힘을 쓰고 있을 때였다.
쉬이이익─── 파앗!
“크으윽!”
철퍼덕─
귀를 관통해버린 우터의 화살. 로트비체 백작이 아릿한 통증에 고삐를 놓으며 귀를 부여잡자 그대로 중심을 잃고 말 아래로 떨어졌다.
“으윽! 이런 제길!”
땅에 떨어진 충격에 절로 욕이 나왔다. 하지만 이대로 바닥에 주저앉아있을 수 없었다. 상대의 공격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쉬이이이익───
“이이익!”
떼구르르──
푸욱! 푹! 푹!
필사적으로 땅을 구른 그는 가까스로 화살을 피한다. 계속되는 공격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로트비체 백작. 이대로 화살이 날아온다면 꼼짝없이 당할 판이었다. 그때 그의 기사들이 우터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흠!”
적의 대장을 마저 끝내지 못해 아쉬워한 우터는 활시위를 돌려 기사들에게 쏘았다.
쉬이이이익─!
푹! 푸욱!
“으아아악!”
“커헉!”
기사들에게 시선이 돌아간 틈에 로트비체 백작은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들어오는 기사들과 병사들의 대열에 합류하여 몸을 숨겼다. 그렇게 다시 밀고 들어오는 적군들. 우터 또한 뒤로 물러서며 아군이 모여 있는 쪽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양 병력들이 거리를 두고 대치하였다. 그리고 곧 조금씩 접근하며 창을 들이밀고 달려들기 시작한다.
“이야아아아압!”
“으아아압!”
“크아아!”
팅! 쾅! 푸욱! 챙!
서로 맞붙으며 시작되는 백병전. 수는 로트비체가 이끄는 국왕파가 많았지만 오히려 밀어붙이는 쪽은 드레이크의 병사들이었다.
그 이유는 바로 그들의 무장 상태.
그들이 입고 있는 갑옷이 워낙 견고하여 국왕파 병사들의 병장기로 치명상을 주기 힘들었다. 반대로 드레이크 쪽의 병사들은 찌르는 족족 그들을 쓰러트렸기에 적은 수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밀어붙일 수 있었다.
“이런! 뭣들 하느냐, 기사들은! 어서 병사들을 도와 적들을 쓰러트려라!”
로트비체 백작이 다그쳤지만 기사들 또한 별수 없었다. 무슨 놈의 갑옷이 어찌나 단단한지 그들의 오러도 쉽게 베어내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난전이 벌어지고 있을 때 마침내 칼슨과 기마병이 그곳에 당도하였다.
쾅! 콰직 쿵! 쾅! 퍼억!
적들의 측면을 그대로 밀고 들어가며 적들을 뭉개버린다. 그리고 그 선두에 선 칼슨이 그의 새하얀 오러 블레이드를 휘두르며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지이이이잉──
서걱─! 스윽─ 서걱! 서걱─! 서걱─
뭐든지 잘라내어 버리는 오러 블레이드 때문에 누구도 그에게 대항할 수 없었다. 그리고 칼슨을 따르는 기사들 또한 자신들의 주군에게 누가 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적들을 베어나갔다.
결국 사방에서 들어온 공격으로 인해 포위된 형국이 되어버리고만 국왕파의 병력들. 로트비체 백작은 그런 상황에 이를 갈며 분통을 터트렸다.
“젠장!”
그도 결국 패배를 직감했다. 아직 살아남은 병사들이 많았지만 급속도로 사기가 떨어져 가는 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지금 전세를 뒤집을 수 또한 보이지 않는다.
으득.
그는 이를 악물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한 놈이라도 더 길동무를 삼으려 하였다. 그리고 그의 눈에 새하얀 빛의 검을 휘두르고 있는 칼슨이 들어왔다.
“이아아아압!”
처절한 기합 소리를 내며 튀어 나가는 로트비체 백작.
상대는 소드 마스터. 비록 이길 수는 없겠지만 죽기 전에 놈에게 상처라도 내주고 싶었다. 그는 온몸에 오러를 끌어올리며 칼슨을 향해 달려 나갔다.
치이이잉── 콰직!
“크으윽!”
“응? 뭐야 이건!”
웬 기사가 자신에게 오러를 일으키며 덤벼들자 단숨에 그의 검을 막아내는 칼슨. 그리고 곧장 오러 블레이드로 그를 내리친다.
파지지지직! 콰직!
“커허어억!”
단순히 빠르게 내리쳤을 뿐인데 힘겨워하는 상대. 그래도 버텨내는 걸 보니 제법 한가락 하는 놈으로 보였다.
하지만 딱 그것뿐. 칼슨이 다시 한번 더 내리치자 그대로 그의 검이 부서지며 그의 몸까지 잘라내어 버렸다.
파지지직 서걱──!
“크륵…….”
털썩.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며 쓰러진 금발의 기사. 로트비체 백작은 그렇게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의 죽음을 끝으로 사기가 바닥이 된 국왕파의 병력들. 마치 모래성과 같이 빠르게 무너지고 말았다.
* * *
“결국, 이렇게 되어버렸군요.”
멀리서 그 상황을 지켜보던 잿빛 머리의 남성. 유콘 루페는 씁쓸한 얼굴을 하며 중얼거렸다.
자신은 최선을 다하였다. 그렇지만 보기 좋게 패배하였다.
싸우기 전부터 승산이 없다고 여겼지만 그렇다고 피할 수 있는 싸움도 아니었다. 그나마 이곳이 싸우기 유리한 지형이라 승부를 보았건만 안타깝게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였다.
이제 국왕파의 남은 병력이라고는 로버데인에 주둔해 있는 수백의 병사들. 그 얼마 남지 않은 병력을 추스른다 한들 저자를 이길 수 있을 까? 유콘은 고개를 저었다.
“스반 던 카르시아 왕자 전하….”
자신의 손으로 그를 꼭 보위에 올리고 싶었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다그닥 다그닥
어느새 적들이 여기까지 왔다.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게 뻥 뚫린 느낌이었다.
이제 초겨울이라 매우 쌀쌀했지만 햇살 때문인지 바람은 제법 따뜻하게 느껴진다. 그는 눈을 감고 그 온기를 느껴보았다.
서걱──
한 기사가 그의 목을 베어버렸다.
털썩.
그대로 땅에 떨어지는 유콘의 머리.
기사는 말에서 내려 그것을 주워 들었다.
“영주님, 적의 사령관을 잡았습니다!”
뒤이어 오는 칼슨을 향해 외치는 그자.
그는 바로 에드. 드레이크 영지의 기사단장이었다.
* * *
레르팔 평야의 전투에서 승리한 드레이크의 병력들은 그대로 수도인 로버데인까지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갔다.
이미 주력 병력이 괴멸된 상태인데다 베르호프에 있던 서부파의 병력들마저 같이 합류하자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던 국왕파는 결국 백기를 들고 말았다.
왕위 계승전이 시작된 지 불과 석 달.
비로소 그 치열하였던 전쟁은 끝이 났다.
그 승자는 바로 3 왕자를 지지하는 서부파.
왕위 계승전이 시작될 때는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그리고 그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만든 것이 바로 칼슨 드레이크. 고작 변방에 있던 작은 영지의 영주였다.
허나 그가 일궈낸 성과는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놀라웠다. 솔직히 그가 없었다면 서부파는 도저히 승리할 수 없었을 만큼 그의 업적은 압도적이었다.
게다가 그는 소드 마스터.
실종된 리나드 후작을 대신하여 그 자리를 새롭게 차지하였다.
소드 마스터이자 3 왕자를 왕위로 이끈 1등 공신.
이제 왕국의 모든 이들은 그를 주목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 * *
왕위 계승전이 끝나고 한 달 뒤.
벤투스 왕국의 수도 로버데인.
오늘따라 이곳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바로 오늘 이곳 왕성에 새로운 왕이 등극하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