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왕위 계승전(25)
막사를 나와 전방을 바라보니 지평선을 따라 수많은 인파들이 몰려오는 게 보였다.
얼핏 봐서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보고에 의하면 대략 1천 가량의 병력들. 수는 자신들보다 적었지만 도저히 방심할 수 없었다. 상대는 그 유명한 ‘전장의 사신’이었으니까.
“이제는 싸워야 할 때가 온 것 같소. 설마 대책이 없다고 이대로 항복할 것은 아닐 테니 말이오.”
“그렇습니다. 배가 넘는 병력을 가지고 적이 두려워 항복을 한다면 그거야말로 말이 안 되겠지요. 일단 수적 우위를 가지고 접근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피해를 최소화하며 적과 맞붙을 수 있도록 말이지요.”
로트비체 백작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유콘은 쓴웃음을 지은 채 답하였다.
“내 마법 병단 또한 있는 힘껏 도울 것이오. 그러니 너무 비관하지는 말게.”
“네, 바리안 자작님이 계셔서 그래도 든든합니다. 마법 병단의 활약을 기대하겠습니다.”
바리안 자작의 말에 그래도 조금 힘이 나는지 유콘의 표정이 한결 나아졌다. 아직 상대가 가진 공격에 대해 완벽하게 대응할 방법은 없지만 그래도 자신이 활용할 수 있는 수는 많았다. 그는 시작될 전투를 기다리며 마음가짐을 다잡았다.
* * *
그 시각 드레이크 군 진영.
“이제 저들만 처리한다면 이 지긋지긋한 왕위 계승전도 끝이 나겠군.”
“예, 그렇습니다. 영주님. 정보에 따르면 저곳에 있는 병력들이 적의 주요 전력이라고 합니다. 사령관인 유콘 또한 저곳에 있고요. 아마도 저들이 무너진다면 국왕파는 귀족파와 마찬가지로 왕위계승을 포기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칼슨의 말을 들은 우터가 진중하게 답을 하였다.
“아무래도 그렇게 되겠지. 그나저나 나를 제외한 서부파들이 영 힘을 못 쓴단 말이야.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조금 실망스러워.”
중소 영지들을 긁어모아 만든 세력이라고 하지만 고작 반쪽짜리인 남쪽 세력만 겨우 이긴 꼴이라니. 허나 어떻게 보면 그에 대비 자신의 공이 커졌으니 오히려 잘된 것일 수도 있었다. 그만큼 더 많은 것을 요구할 수 있을 테니까. 어찌 됐든 이제 눈앞의 놈들만 이기면 다 끝날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그것에 집중해야만 했다.
“자, 그럼 이제 시작해야 되겠지. 우터!”
“예, 영주님.”
“포격을 시작하도록 해라!”
“예, 알겠습니다.”
칼슨의 명을 받은 우터가 포를 담당하는 기사들에게 명령한다. 그것을 시발점으로 왕위 계승전의 마지막 전투가 시작되었다.
콰앙! 쾅! 콰광! 쾅!
굉음과 함께 터져나가는 적군의 진영. 수십 명의 병사들이 그에 휩쓸려 나갔지만 사전에 대비해 훈련하였기에 대열이 크게 망가지지 않았다. 유콘은 피해를 최대한 줄이며 속도를 높이기 위해 V자 모양으로 전열을 맞춰 전진시켰다.
긴 형태로 병사들이 대열을 이루며 오니 포격의 효과가 많이 감소하였다. 면이었던 진영이 선처럼 들어오니 포탄을 맞추기가 힘들었고 설사 명중한다고 하더라도 주변의 병력들이 금세 메워가며 전열을 유지 시켜나갔다.
그 모습을 본 칼슨은 조금 놀란 표정을 하며 입을 연다.
“음, 역시 귀족파의 군대들과는 다르게 제법이네. 에밀리, 어서 함정을 발동시켜 놈들을 한 곳으로 몰아줘.”
“예, 알겠어요. 영주님.”
에밀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대로 땅속에 있는 노옴들에게 마나를 불어 넣는다.
와르르르 콰광!
땅이 길게 무너지며 그대로 적들의 길이 봉쇄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들은 칼슨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좌익과 우익은 우회하여 전진하라!
“중앙은 그대로 돌파한다!”
동시에 세 개의 편대로 나눠진 그들. 한곳에 몰아 큰 타격을 가하려 했는데 3군대로 분산시켜버렸다.
하지만 칼슨은 당황하지 않았다.
“중앙에 밀집된 병력에 대해 집중 포격해라! 양 측면의 병력들은 신경 쓰지 마라!”
“예, 영주님!”
콰앙! 쾅! 콰광! 쾅!
병력이 몰린 곳에 포격이 집중되자 순식간에 그곳이 초토화되어버렸다. 물론 살아남은 병사들도 있었지만 그 수는 고작 수십에 불과. 거의 괴멸된 거나 다름없었다.
어설프게 여기저기 건들지 않고 한 곳에 집중한 결과였다.
이제 남은 적들의 수는 2천 남짓. 양옆으로 길게 열을 맞추며 들어오고 있었다.
“방패병은 우측을 막아라! 그리고 기병들은 나를 따라 좌측으로 따라와라!”
양쪽을 막기엔 방패병의 숫자가 턱없이 부족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보병이 많아 보이는 좌측을 상대하기 위해 기병들을 끌고 갔다.
콰앙! 쾅! 쾅 콰광!
칼슨이 적의 병사와 맞붙기 전 후방에서 포격을 하여 적의 진영을 흔들어 놓았다. 그리고 그로 인해 혼란스러워진 그들을 칼슨과 기마병들이 덮쳐 들어간다.
퍼억! 쾅! 콰직! 쿵!
“케에엑!”
“커어억!”
그대로 나가떨어져 버리는 적의 보병들. 그러나 이내 적의 기사들과 기병들이 이쪽으로 다가온다. 그 기세가 제법 사나워서 마치 굶주린 늑대와도 같은 모습.
허나 안타깝게도 그들의 상대는 소드 마스터였다.
“이아아아압!”
위이이이잉 서걱─스윽──서걱─!
이제 여유롭게 오러 블레이드를 쓸 수 있는 칼슨. 눈앞에 있는 기사들을 단숨에 베어버린다. 이전에 불완전한 오러 블레이드랑 달리 온전한 오러 블레이드가 고순도 미스릴 검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래서 그 출력이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농밀해졌다.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새하얀 빛을 뿜어내며 거침없이 적들을 쓸어가는 그런 칼슨의 모습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무신이 재림한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창 국왕파의 병력들을 무찌르고 있을 때.
《화염구》
어디선가 그를 향해 커다란 불구슬들이 날아왔다. 그는 그것이 직감적으로 마법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곧장 오러를 갑옷에 불어넣는다.
《굳센 의지》
콰아앙! 쾅! 쾅!
불구슬들이 터지며 커다란 화염을 뿜어내었다.
뭐든지 태워버릴 듯한 강렬한 불길. 비록 그가 타던 말은 순식간에 죽어 버렸지만 갑옷에 입힌 마법 각인이 칼슨을 지켜주었다.
마법을 버텨낸 그는 곧장 마법사들을 찾았다.
한쪽에 몇 명의 마법사들이 병사들 뒤에 숨어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타앗─!
그대로 단숨에 도약한 칼슨. 자신의 말을 죽인 대가로 그들을 사정없이 베어버린다.
스윽─ 서걱─ 서걱!
“크어억!”
“아아아악!”
갑옷조차 입지 않은 그들을 처리하는 것은 일반 병사보다 쉬운 일이었다. 오러 블레이드를 쓸 것도 없이 오러만 먹여도 두부처럼 썰려 나갔다. 그렇게 마법사들을 제거한 그는 다시 전투를 하기 위해 말을 찾았다. 그리고 곧 말을 타고 이쪽으로 다가오는 적의 기마들을 볼 수 있었다.
“저기 드레이크 자작이 있다! 모두 저자를 죽여라!”
호기롭게 외치며 다가오는 기사. 그러나 그의 바람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었다.
서걱─
“커헉?”
그가 미처 인식하기도 전에 그의 목이 잘려 나갔다.
그리고 그 뒤에서 에드가 나타났다.
“괜찮으십니까, 영주님?”
“나야 괜찮지. 그나저나 말이 없어 곤란했는데 때마침 잘 와주었어.”
에드가 죽인 기사의 말에 잽싸게 탄 후 고삐를 쥐었다.
말을 타고 주변을 둘러보니 여기저기 목이 잘린 시체들이 널려 있었다.
‘설마 에드가 한 건가? 그런데 이 자식 왜 머리만 잘라?’
그의 행동을 기이하게 여겼지만 어쨌든 그로 인해 주변이 깨끗해졌다. 다시 전투를 이어가기 위해 박차를 가하였다.
히이잉~
주인이 바뀌었는데도 불구하고 힘차게 울부짖으며 달리는 말. 새로 바뀐 주인이 맘에 드는지 연신 코를 킁킁거리며 달려 나간다.
“흐아아압!”
다시 검에서 피어오르는 새하얀 오러 블레이드. 그 무적의 신기가 칼슨의 검에서 다시 재현되었다.
그 새하얀 빛의 검으로 베지 못하는 것은 없었다.
수없이 많은 병사들이 덤벼들었지만 그저 지푸라기처럼 썰려 나갈 뿐.
“크아아악!”
“아악! 괴, 괴물이다!”
“도,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어! 도망가야 돼!”
압도적이었다.
그 항거할 수 없는 무력에 대항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병사들은 겁을 집어먹으며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한두 명씩 빠지더니 점점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갔다. 그리고 그 뒤를 드레이크의 기마들이 쫓아가기 시작.
서걱──
“아아악!”
푸욱!
“커헉!”
마치 작물을 추수하듯이 베어나갔다.
사정없이 죽어 나가는 적의 병사들. 그렇게 적의 좌측은 칼슨의 활약으로 인해 괴멸되어갔다. 그곳을 박살 내고 있을 때 우측 자리를 지키고 있던 방패병들 또한 적들을 잘 막아내고 있었다.
“모두 힘내서 막아! 여기서 무너지면 다 죽는다!”
“크으윽! 더럽게 많네. 제길!”
욕을 내뱉으면서도 굳건하게 적들을 막아내고 있는 방패병들. 두꺼운 강철 방패는 그 무게가 상당하였지만 그만큼 견고하고 단단하여 든든한 철벽이 되어주었다.
방패병들이 그렇게 적들을 막아내고 있는 사이 뒤에 있던 병사들은 적들에게 화살을 날려주었다.
휙 휘 휙 휙휙──
푸욱! 푹! 푹! 푸욱! 푹!
“커어억!”
“아아아악!”
화살 공격을 받은 국왕파의 병사들. 그들 또한 화살 공격을 하며 적들에게 응사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공격은 아쉽게도 닿지 못하였다.
휘이이이이이잉─────
에밀리가 바람의 중급 정령인 실라이론을 소환하여 화살들의 방향을 반대로 틀어버렸다.
푸욱! 푹! 푹! 푹!
“응? 크아아악!”
“왜 여기로…. 커억!”
자신들이 쏜 화살들이 그대로 본인들에게 쏘아져 내렸다.
화살이 무용지물이 되자 바리안 자작이 이끄는 마법 병단이 마법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화염구》
퍼어엉! 펑! 퍼엉! 화르르르르
“크으으읏!”
“으윽 뜨거워!”
마법의 불길은 철벽마저 녹일 정도로 고열을 내뿜었다. 그 지독한 열기에 방패병들이 고통스러워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내 에밀리가 운디네를 소환.
차아아아아악────
그 위로 물을 뿌리자 불길은 점점 사그라졌다. 그리고 바로 이어진 우터의 저격.
쉬이이익──── 푸욱!
“커어억!”
쉬이익───퍼억!
“아아악!”
쥐도 새도 모르게 마법사들의 숨통을 하나씩 끊어 놓는다.
상황이 호전되지 않자 바리안 자작은 본인이 직접 마법을 쓰기로 하였다.
위이이이잉─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자 마력이 모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손에 든 스태프에 그 마력을 집중시키자 빛이 퍼져나간다.
《낙뢰》
순간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지며 방패병들을 덮쳐버린다.
파지지지지직── 콰과앙──!
“크아아아아!”
“허어어억!”
그 엄청난 전격에 모두들 감전되며 순식간에 의식을 잃어버렸다. 비록 강철로 무장한 그들이었지만 전격에는 오히려 더 취약한 모습. 거기다 물까지 묻어있었기에 그 피해는 더 커지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보던 바리안 자작. 자신의 성과에 만족스러워하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때.
쉬이이이익──── 퍼어억!
“크어어어억!”
우터의 화살이 그의 머리를 관통. 그대로 절명해버리고 만다. 이제 적의 마법사들이 모두 죽었지만 방패병들의 진영 또한 무너져 버린 상태. 그 틈으로 상대방의 병력들이 밀려 들어오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