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왕위 계승전(21)
“이런 젠장! 놈이 오고 있다, 로우링 자작!”
“네? 도대체 누구를…. 아, 드레이크 자작 말입니까? 저기 병사들과 같이 오고 있군요. 오히려 잘되었습니다. 후작님께서 저자만 잡는다면 우리가 이 분위기를 바꿀 수 있습니다.”
“뭐? 이런 미친 새끼가!”
“예에? 후작님,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죽고 싶으면 너 혼자 죽어, 이 새끼야!”
성벽 위에서 칼슨에게 죽을뻔하다 간신히 도망쳐 살아나왔던 리나드 후작. 그런 자신에게 놈이랑 싸우라고 한다. 안 그래도 지금 몸 상태가 좋지 않은데 맞서 싸우라고 하다니. 그건 그보고 바로 죽으라는 이야기랑 다를 바 없었다.
한껏 욕지거리를 내뱉은 그는 말머리를 틀어 도망가기 시작하였다.
그 모습을 본 로우링 자작은 어안이 벙벙해져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지금 상황에 대장인 그가 저렇게 도망가 버린다면 아군의 사기가 어떻게 되겠는가. 예상대로 병사들은 전의를 잃어가기 시작하였다.
“혹시 저거, 후작님이 도망가시는 건가!”
“허억, 어떻게 저런…!”
“서, 설마 우리가 진 거야?”
이미 너덜너덜해진 귀족파의 군세. 그들을 지탱했던 마지막 주춧돌이 빠지자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버리고 만다.
“도, 도망가야 해!”
“으아아아! 이건 아니야! 으헉!”
“아아…! 난 죽고 싶지 않아!”
철퍼덕─ 털썩─ 털썩─
하나둘씩 무기를 버리고 자리를 이탈하는 이들. 기사들이 도망가는 그들을 막으려 하였지만 적들의 파상공세에 자신들도 여유롭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드레이크의 기사들과 기마병들이 아군의 중심부까지 파고들었다.
퍼억! 쾅! 콰직! 콰앙! 푹직!
“케엑!”
“커허억!”
끔찍한 소리를 내며 기마에 찢기는 병사들. 동료 병사들이 그렇게 처참하게 죽어 나가자 도저히 저항할 엄두를 못 내는 그들. 어느새 적의 기사들이 로우링 자작이 있는 곳까지 다다랐다.
“어어억! 이건 도대체….”
서걱──!
선두에 있던 에드가 그의 목을 단숨에 베어버렸다. 허공을 향해 날아가는 자작의 머리. 그의 시야에 자신의 병사들이 유린당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것은 전투가 아니었다. 그냥 일방적인 학살일 뿐.
서걱─! 슥─ 서걱! 스륵─ 서걱─!
푸욱! 푹! 푹! 푸욱! 푹 푹!
“아아악!”
“케헥!”
“으아아악!”
여기는 더 이상 전장이 아니었다. 끔찍한 고통과 죽음만이 가득한 지옥임이 분명하였다. 그 사념을 마지막으로 땅바닥으로 떨어지는 로우링 자작의 머리통. 그것을 집어 든 에드는 큰 소리로 외친다.
“로우링 자작이 죽었다! 이제 남은 잔당들을 처리하라!”
“기사단장님이 적의 지휘관을 죽였다!”
“적들에게 드레이크의 무서움을 보여주자!”
그들을 이끌던 로우링 자작마저 죽었다는 소리가 들리자 더 이상 싸울 의지가 없던 귀족파의 군대들은 모래알처럼 흩어지기 시작하였다. 이제 그들의 선택은 3가지뿐. 도망치거나 항복하거나 아니면 그대로 죽거나.
털썩─ 철퍼덕─ 털썩─
무기를 버리기 시작하는 이들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났다. 더 이상 싸울 의지가 없음을 내비치는 그들. 전장은 그렇게 서서히 정리되어가고 있었다.
* * *
다그닥 다그닥─
넓은 평야에서 말을 타며 혼자 달리고 있는 한 사람. 온몸이 상처로 인해 피투성이인 그는 바로 리나드 후작이었다.
전투에서 처참하게 패한 그는 살기 위해 그곳을 빠져나왔다.
‘크윽, 처음부터 이곳에 왔으면 안 되었어….’
자신들의 세력에 인접해 있었던 드레이크 영지. 베르호프 요새에 많은 병력을 투입했다 해서 쉽게 이곳을 점령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건 큰 오산이었다.
고작 자작의 영지였지만 그곳에 있던 인재들은 하나같이 대단하였다. 특히 자신을 한참 곤란하게 만들었던 귀궁이란 자와 소녀 정령사, 그리고 직접 보지는 못하였지만 아군을 힘들게 만들었던 해괴한 마법을 썼던 마법사들. 그뿐만이 아니었다. 영주인 칼슨 드레이크 또한 엄청난 괴물이었다.
비록 소드 마스터는 아니었지만 그 엄청난 힘과 속도는 자신과 견주어 봐도 전혀 손색이 없는 자였다. 특히 그자의 비전 검술은 경이롭다 못해 두려울 정도. 수십 개의 검이 사방에서 자신에게 내리꽂았던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몸서리가 쳐졌다.
전투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패배했을 것이다.
수장인 자신이 도주한 시점부터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남겨진 로우링 자작과 병사들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래도 자신부터 살아야 했다. 그래야 다시 후일이라도 도모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자기 합리화를 하며 계속해서 말을 타고 도주하는 리나드 후작. 그런데 저 앞에 누군가가 자신을 보며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응? 도대체 누구지?’
자신을 잡기 위해 온 드레이크의 병사들인가? 아니 그런 것 같진 않았다. 거기에 있는 것은 오직 한 명뿐이었으니까. 체형이나 신장을 보니 영락없는 여인으로 보인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그녀가 좀 더 자세히 보이기 시작하였다.
짙은 초록빛의 후드로 쓰고 있어 전체적인 인상은 보이지 않았지만 눈 밑으로 드러나는 피부가 하얗고 매끄러웠다. 거기다 도톰하고도 불그스름한 입술은 그녀가 꽤나 아름다울 거라 추측하게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뭔가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이런 들판에 웬 여자가 혼자 저렇게 서 있는 단 말인가. 쉽게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그녀가 갑자기 손을 앞으로 내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곧 손에서 푸른 섬광이 쏘아졌다.
《동결》
파사사사삭─
“으어억! 이건 도대체 뭐야?”
섬광이 닿는 곳이 순식간에 성에가 생기며 얼어붙기 시작하였다. 당황한 그는 순간적으로 오러를 일으키며 즉시 깨고 나왔지만 애꿎은 말은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땅에 발을 디딘 그는 성난 목소리로 상대에게 소리쳤다.
“도대체 넌 누구냐? 왜 내가 가는 길을 막느냐!”
당장이라도 그녀를 쓰러트리고 싶었지만 지금은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거기다 이곳은 적진 한가운데였다. 그러기에 쓸데없는 충돌은 피하고 싶었다.
“후후훗, 천하의 리나드 후작님이 이런 몰골이라니, 정말이지 돈 주고도 못 볼 귀한 장면이네요.”
귀가 절로 즐거워지는 청아한 목소리.
하지만 그 말의 내용은 엄연한 비웃음이기에 리나드 후작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나를 알고 있느냐? 그렇다면 어서 네년도 정체를 밝혀라! 더 이상의 무례는 용서하지 않겠다!”
“무례? 꺄하하하! 지금 무례라고 하셨나요? 정말이지 누가 무례한지 모르시나 보군요.”
“뭐라? 그건 또 무슨 말이냐!”
의문을 표하는 그를 보며 그녀는 후드를 벗어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었다. 그녀의 얼굴을 본 리나드 후작은 너무 놀란 나머지 눈을 크게 뜬 채 입을 닫지 못한다.
“서, 설마…. 엘리시아 공주님?”
“그래요, 저예요. 리나드 후작님.”
“고, 공주님께서 어째서 여기에…? 혹시 드레이크 자작이랑….”
“그건 아니에요, 드레이크 자작님이랑 상관없이 내 개인적인 일로 이곳에 왔어요.”
“…그렇군요. 개인적인 일이라….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어떤 일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풋! 아니 리나드 후작님. 아직도 정말 모르시겠어요? 아무리 아둔하여도 이걸 모르시다니…. 그런 처지가 된 것도 어쩌면 당연한 거 일지도 모르겠네요. 꺄하하!”
“이 무슨…….”
자신을 비웃자 화가 난 그는 말을 이어가려다 문득 처음에 그녀가 자신을 공격하였던 것을 떠올렸다. 그렇다는 것은….
“설마 나를?”
그 말에 그녀는 씨익 웃으며 주문을 외운다.
《절대 속박》
《동결》
“허억? 설마 이중 영창?”
이중 영창은 동시에 2가지 마법을 쓰는 것으로 타고난 재능이 없으면 시도할 수조차 없는 기술이었다.
2개의 마법이 동시에 리나드 후작에게 발현되자 어떻게든 오러를 일으키며 저항하려 한다. 허나 그 마법이 심상치가 않다. 뭔가가 자신을 꽉 잡은 듯 몸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 상태에서 점점 얼어붙어 가고 있는 자신의 신체.
그는 필사적으로 정신을 집중하며 그것을 저항하였다.
“호오? 역시 소드 마스터는 다르군요. 그렇다면 이것은 어떨까요?”
“…크윽, 뭐?”
그가 의문을 표할 새도 없이 그녀의 앞에 거대한 불꽃의 형상이 만들어졌다.
《화염창》
“커헉! 사, 삼중 영창!”
상상을 뛰어넘는 그녀의 모습에 그의 얼굴이 사색이 되고 만다. 상대가 두려워하자 그 모습을 보며 환하게 웃는 그녀.
“그럼 이만 잘 가세요, 후작님.”
“크아아아악!”
커다란 불꽃의 창이 그의 가슴을 꿰뚫어 버린다. 순간적으로 타는 고통에 의해 단말마를 지른 리나드 후작. 그러나 곧 힘을 잃어가며 고개를 숙이고 만다.
숨이 끊어졌지만 그녀의 마법은 어느 정도 유지가 되는지 후작의 시체를 태우면서도 그 신체를 얼려 나갔다. 이윽고 마법이 사라지며 그곳엔 상체는 불타고 하체는 얼어붙은 끔찍한 몰골의 시체만이 남아있었다.
“이걸로 그때의 빚은 갚았군요. 다음 생에는 좀 더 현명한 선택을 하길 바랄게요.”
그의 주검을 보며 쓴웃음을 짓는 그녀. 목적을 달성하였는지 고개를 돌리며 그곳을 떠난다.
그녀가 떠난 뒤 얼마 후 그곳에 등장한 낯선 자. 검고 낡은 후드를 뒤집어쓰며 복면을 하고 있어 그 정체를 알 수 없었다. 그 수상한 자와 더불어 그의 뒤로 그와 비슷한 행색을 한 자들 몇이 따라 나왔다.
선두에 있던 그자의 손짓에 그들은 리나드 후작의 시체를 들며 어디론가 이동하였다. 그리고 그들을 이끌던 그자도 곧장 그들을 따라 그곳에서 사라졌다.
* * *
귀족파와의 전투에서 이긴 드레이크 영지군.
모두들 그 승리를 기뻐하며 영주인 칼슨을 칭송하고 있었다.
“영주님! 만세! 드레이크 만세!”
“드레이크에 영광을! 드레이크! 드레이크! 드레이크!”
여기저기 기쁨의 환호성들이 터져 나오며 분위기가 무르익어갔을 때 칼슨은 자신이 받은 퀘스트 보상을 확인하고 있었다.
[리나드 후작과의 전투에서 승리하였습니다.]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퀘스트 보상이 지급됩니다.]
[추가로 지배력 수치가 4 증가됩니다.]
[능력치 보너스 수치 10이 생성되었습니다.]
달달한 성공의 보상.
지배력과 엄청난 보너스 수치에 칼슨의 기분은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
‘남은 보너스 수치를 어디다 넣을까?’
보너스 수치가 10이나 되었기에 고민을 하며 찍었지만 조금 찍다 보니 금세 바닥이 나버렸다.
어쨌든 만족할 만한 보상이었기에 칼슨은 입이 귀에 걸린 그는 그대로 확인 버튼을 눌렀다.
[힘이 4 올랐습니다.]
[민첩성이 3 올랐습니다.]
[체력이 3 올랐습니다.]
[능력치가 변경되었습니다.]
[힘이 18이 되었습니다.]
[민첩성이 18이 되었습니다.]
[체력이 18이 되었습니다.]
[지배력이 18이 되었습니다.]
[잔여 능력치 보너스 0]
───────────────────────────
이름 : 칼슨 드레이크
나이 : 20세
클래스 : 영주(자작)
힘 18 민첩성 18 지능 19 체력 18 정신력 19 지배력(오러) 18
스킬
인물정보 열람(중급)(에픽/성장)
비전 검술-어둠(희귀/성장)
칭호
잔혹한 카리스마
전장의 사신
벤투스 왕국 드레이크 자작령의 영주.
벤투스 왕국의 소드 마스터.
최근 연이은 승리로 인해 그 명성이 매우 높아져 있다.
리나드 후작과의 대결에서 승리하여 완전한 소드 마스터가 되었다.
───────────────────────────
그로 인해 칼슨은 지배력 수치가 18이 되면서 S등급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렇다는 말은 즉 그의 오러 또한 S등급이라는 것. 이제 자신은 온전한 소드 마스터가 되었다.
그때 갑자기 눈앞에 메시지가 추가로 떠오른다.
[모든 능력치가 S등급이 되었습니다.]
[다재다능한 당신에게 ‘초인’의 칭호가 내려집니다.]
[[칭호] 초인]
───────────────────────────
모든 능력치를 최상위로 올린 당신.
그 대가로 당신에게 한계 이상의 성장을 허락합니다.
수치 20 제한 해제.
최대 수치가 이제 100으로 변경됩니다.
───────────────────────────